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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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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인도는 마귀의 인도와 매우 다르다."
다음은 성령님의 인도와 마귀의 인도 사이의 차이점을 비교해서 보여준다.
1.성령님은 무한한 능력과 지식을 가지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따라서 하나님의 속성을 모두 갖고 계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제한된 피조물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속성을 갖고 있지 않으며 비록 그 지식과 지능이 인간에 비하면 훨씬 우수하다 할찌라도 역시 제한 된 것이다.
2.성령님은 우리의 개성을 존중하셔서 어떤 식으로든 개개인의 인격을 침해하려 하시지 않는다.
반면에 마귀들은 우리 인간을 미워한다. 그들은 개인의 인격을 강탈하여 자기의 인격으로 바꿔치려 한다.
3.성령님은 우리가 스스로의 행동을 관리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지길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항상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일하신다.(빌2:13)
반면에 마귀들은 완전한 통제를 원한다. 그들은 인간의 무의식 세계에 들어와서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이용한다.
4.성령님은 온화한 분이시다. 그분께서 어떤 사람에게 들어오시면, 너무나 온화하시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의 내부를 들여다 볼 때 어떤 것이 성령님이고 어떤 것이 자신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이다.
반면에 마귀들은 매우 거칠다. 자신들이 점거한 사람들의 모든 것을 탈취하려는 마귀들의 욕망 때문에 누구나 마귀와 자기 자신과의 차이를 늘 인식할 수 있다. 비록 마귀들이 자신들의 잠재의식 일부의 어떤 "상담자" 같은 존재라고 그들이 생각할지라도 위의 진술은 사실이다. 마귀는 항상 피해자의 의식과 분리된, 또 다른 "하나의 실체"인 것이다.
5.성령님은 거룩하고 정결하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 정결함을 가져오시며 또한 우리에게 죄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완전히 부정하며 사람들을 항상 죄 속으로 깊이 이끌어간다. 새 시대 운동(뉴에이지 운동)의 마귀들이 스스로를 선한 존재로 제시하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죄 가운데로 빠르게 인도해 가는 존재들이다. 새 시대 운동에 속한 죄의 영역으로는 구체적으로 성적 부도덕, 신비주의에 깊이 빠져들고자 하는 욕망, 그리고 영계와의 접촉 증가 등을 들 수 있다.
6.성령님은 항상 예수님을 높이고 찬미하여 자신이 내주하고 있는 사람의 삶 속에 겸손을 가져온다.
반면에 마귀들은 예수님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들은 항상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에게 관심을 돌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적을 행하는 사람에게로 돌리게 하며, 또 자기들이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찬미하도록 한다. 교만은 마귀들과 그들이 거주하는 사람들의 특징이다.
7.성령님은 결코 우리로 하여금 의식을 잃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생각을 우리의 마음속에 넣어주시지만 결코 우리의 마음을 흐릿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항상 "모든 생각을 사로잡고"(고후10:5)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빌2:13)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또한 우리가 적극적으로 자신과 협력하기를 원하시며 따라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도록 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텅 비울 필요가 없다. 즉 정신을 잃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분께서는 매우 능력이 크시므로 우리의 의식이 활발할 때도 우리의 의식을 누르시고 자신의 원하는 바를 주실 수 있지만 이 때에도 깨끗하고 질서 있게 행하신다. 성령님께서 자기들에게 말씀하시거나 혹은 운행하시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신을 잃어야만 한다는 잘못된 속임수에 빠지는 크리스천들이 매우 많은데, 이것은 결코 성경이 가르치는 바가 아니요, 증산도, 요가, 명상, 만트라 등의 뉴에이지 운동에 속한 기법에서 나온 것이다.
한편 마귀들은 자주 사람의 의식을 잃게 한다. 그들은 사람이 제 정신을 잃고 피동적으로 되어 그를 쉽게 점령할 수 있을 때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 이것이야말로 동양적이며 신비주의적인 명상에서 사람의 마음을 비우기 위해 긴장 이완의 기법을 도입하는 이유인 것이다. 사실 마귀들이 사람들의 능동적이며 강력한 의식을 무효화시키기는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심적으로 수동적 상태에 있으라고 격려하는 것이다.요즘 성령집회라고 하면서 정신없이 머리를 흔들어 대고 미친듯이 괴성을 질어대는 것을 성령의 역사로 보면 오해이다.
8.성령님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자각케 하시는 일은 결코 파괴적이 아니며, 그분께서는 항상 사람들을 회개, 용서, 구속 그리고 평화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를 행한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죄악을 정당화시키도록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용서나 구속에 대한 소망이 없는 파괴적이고 무서운 죄의식을 가져다준다. 마귀는 항상 "너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정죄와 심판의 메시지를 가져다준다.
9.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모순이 되는 메시지를 주시지 않는다.
반면에 마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뒤틀고 변경하여 우리의 죄를 정당화시켜준다.
10.우리는 결코 성령님을 통제할 수 없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원하실 때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일하신다. 우리는 그분의 종이며 그분께서는 우리의 주인이시다. 예를 들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하나님의 임재를 알게 하실 때, 우리를 고치시거나 통찰력을 주실 때, 우리는 결코 성령님을 제어할 수 없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같은 일을 두 번 하시지 않는다. 또한 그분께서는 우리가 어떤 틀에 박힌 일이나 혹은 의식에 의존하는 것을 인정하시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학습 방언과 같이 똑 같은 것을 반복하는 일은 결코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다.
반면에 마귀들은 자기들이 내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속이고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마귀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 뒤 이 마귀들은 그 사람이 부를 때마다 와서 그 사람이 원할 때 치료하는 일을 행하곤 한다. 또한 마귀들은 의식과 예식 등을 사랑하며, 사람들에게 영계를 많이 보여준다. 성령님의 은사를 마귀가 모방 할 때 그는 대개 이 일을 자기에게 사로잡힌 사람의 통제하에서 수행한다. 다시 말해 마귀에게 사로잡힌 사람은 자기가 원할 때마다 병 고치고, 예언하고, 지식의 말씀을 갖는 등의 일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마귀를 통제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궁극적으로 마귀의 통제를 받아 영원히 멸망 받게 되는 것이다.
11.성령님께서는 우리가 보는 것이나 감정에 의지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환상이나 감정의 치솟음 등과 같은 일을 일상적으로 혹은 자주 주시지 않는다. 분명히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고 우리의 육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려 하시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것'(sight)이 아니라 '보지 않고'(insight) 믿음으로 모든 일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영계를 보여주시지 않으며, 따라서 우리가 원할 때마다 그 원하는 것들이 우리에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즉 병을 고치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병을 고칠 수 없으며, 방언을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방언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성령님께서 하시고자 할 때 기적이 일어나며 단지 우리는 주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아뢸 뿐이다. 그 결과는 주님께서 처리하시는 것이다.기적이나 이적은 믿음을 주기위함이요,에수님을 더 알게하기위해 보여주시는 것이다.
반면에 마귀들은 인간의 감정을 교묘히 다루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정의 극치 즉 황홀경을 줌으로써 그들을 통제한다. 마귀들은 빈번히 사람들로 하여금 영계를 보게 하며 그 결과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게 한다. 자꾸 보게 되면 자연히 믿음이 필요 없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귀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자주 환상을 보거나 초자연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오직 우리에게 주신 한 권의 책, 즉 성경으로만 만족해야 한다. 그 안에 있는 대로 주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 바로 그것을 주님께서 요구하신다.모세가 잡은 지팡이가 힘이 있는 것이 아니고 모세의 손에 능력을 주셨다.모세의 지팡이에 성령님이 있었던 것같이 착각하지말라
12.구원받은 우리도 의도적으로 성령님께 불순종함으로써 그분을 탄식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분에게 복종하지 않을 때에, 그분께서는 단지 조용히 뒤로 물러나셔서 우리의 삶 속에서 일하시지 않는다. 성령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자유의지를 반대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인형극에서 손가락으로 놀리는 인형이나 로보트를 원하시지 않는 것이다. 성령님으로 밥티스마를 받아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다. 즉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relationship)는 영원 불변하며, 단지 그가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교제(fellowship)가 즐겁지 못할 것이다. 또한 그가 너무나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경우에는 그를 쳐서 죽게 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에 마귀들은 자기들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를 재빨리 징계한다. 그들은 항상 개인의 자유의지를 빼앗으려고 힘쓰며 그것을 점령하고 통제하기에 민첩하다. 마귀들은 인형이나 로보트들을 좋아한다.
13.성령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늘 우리를 하나님 앞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우리를 싫어하고 영원히 하나님과 분리되는 "영원한 파멸"로 인도한다.
14.예수님께서는 죄로부터 우리를 정화시키시기 위한 죄값을 친히 지불하사 우리를 위해 자신의 피를 흘리셨고 우리를 대신해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것을 믿는자만 구원하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우리를 위해 자기들의 피를 단 한 방울도 흘린 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위해 피를 흘릴 것을 요구해 왔으며, 자기들하려면 그들이 정화되어야만 하고 이를 위해 피흘리는 일을 해야만 한다고 가르쳐 왔다. 또한 크리스천들을 향해 마귀들은 하나님께 축복을 받으려면 신자들 스스로 부과한 모든 종류의 얽어매는 규례와 엄격한 형식에 따른 율법 조항들을 지켜야만 한다고 가르쳐 왔으며, 이 경우에도 마치 이런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처럼 꾸며 크리스천들이 하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만들어 왔다. 다시 말해 마귀들은 "주일 성수, 십일조 준수 등을 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거나 혹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등의 거짓 가르침을 신자들에게 불어넣어 그들로 하여금 항상 위기의식이나 죄의식 등을 느끼게 만든다. 사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종교의 특징이다. 구원받은 자도 행함이 없으면 구원에서 떨어진다고 겁을준다.속지마라.
15.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자유와 기쁨을 가져다준다. 또한 율법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예수님은 율법을 다 못지킬 것을 아신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 단 한번에 우리의 죄를 위한 대가를 지불하셨다.그러나 믿는 자만 구원하신다(벧전 3:18)
반면에 마귀들은 항상 점점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그들은 결코 만족하는 법이 없다.구원과 상급을 혼돈케 하여서 믿음을 약하게 한다.구약의 욥처럼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다고 속삭이거나 요구한다.
16.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에 성경을 읽고자 하는 갈망을 주신다.예수님 말씀에 생명이 있다.
반면에 마귀들은 사람들이 성경을 읽지 못하도록 방해한다.예수님의 복음보다 알지 못하게 계시록을 더 선호하게 한다.
17.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신다.죄와 의와 심판을 알게하신다.(요 14:26)
반면에 마귀들은 혼란을 가져와서 사람들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죄만 생각나게한다.지옥의 두러움을 준다.
18.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신다.하나님 나라와 믿음을 위해 기도하게 하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를 도우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성도들의 모든 참된 기도를 방해한다.세상 복만 위해 기도하여 상달이 안되게 하거나 헛된은사를 구하게 하여 시간을 허비하게 한다.
19.성령님께서는 절대로 자신을 과시하지 않는다.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아들이 영광받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성령의 사람은 영광을 주님께만 드린다.
반면에 마귀들은 항상 자랑하길 좋아한다.성령체험 했다고 하면서 자기자랑 하거나 주님의 영광을 가로채게 부추긴다.사람들에게 박수받기를 좋아한다.금가루,금잇발 좋아하지말라.이적이나 기적은 어린아이에게 보여 주는 것이다.
20.성령님께서는 진리의 영이시며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으신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령 죽으리라" 하셨다.
반면에 마귀들은 다 거짓말쟁이며 그들이 거주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이다.마귀는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같이 될것이고 죽지않는다"고 했다.
21.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배우는데 능동적으로 활용하길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결코 우리 마음의 의지와 상관없이 단지 우리의 정보 은행으로서 봉사하길 원치 않으신다.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하신다.성령님은 홀로 영광받지 않으신다.
반면에 마귀들은 자기들이 내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정보 은행이 되어 주며, 그 결과 마귀에 들린 사람들은 자기 의지대로 정보나 지식을 배울 필요가 없게 된다. 이것을 쉽게 풀이하자면, 예수님을 영접했어도 공부하지 않으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귀들은 기도만 하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기들이 노력하지 않는데도 성령님께서 도와주시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지 다 잘 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물론 마귀에게 사로잡히면 점 같은 것은 잘 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언기도, 축복성회 등에 참석해서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려 하는 것이다. 예전부터 우리 사회에는 두 세 살 먹은 아이들이 영어도 유창하게 하고 대학생이나 풀 수 있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서 신문에 보도가 되곤 했다. 성경적으로 보면, 바로 이런 경우의 대부분이 마귀에게 사로잡힌 경우이다. 하나남께서는 결코 정상적인 과정을 무시하신 적이 없다. 심지어 예수님도 아이로 태어나 지식이 자라고 영이 강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신동으로 불리던 아이들이 커서 잘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가? 일단 마귀가 떠나면, 그 아이의 삶은 완전히 망가지고 말며, 더 이상 정보나 지식 창고로 존재하던 마귀가 없으므로 그 아이는 사회의 폐인이 되는 것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 성령님께서 일하심을 기억해야만 한다.
22.성령님께서 들어오시면 자신들이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능동적인 의식과 자신의 뜻이 연합되어 우리 가운데 선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길 원하신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기를 포기하면, 마귀가 우리 속으로 쉽게 우리를 다스리게 된다. 마귀들은 자기들이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을 점령하고 통제하기를 좋아하는 것이다.
23.성령님께서는 결코 점쟁이가 아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예견력을 주시지 않는다.(마6:34) 오직 소망을 주어 승리케하신다.
반면에 마귀들의 가장 일반적인 속임수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간단한 예견에 불과한 "거짓 지식의 말들"을 주는 것이다. 마귀들은 또한 운수를 점치는 것에 불과한 많은 개인적인 "예언들"을 말해 준다. 성경의 예언은 대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며, 개인의 신상에 대한 것은 매우 드물다. 따라서 대학 진학, 배우자 선택, 직업 선택 등을 위해 소위 용하다는 예언기도를 받으러 가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큰 죄를 범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런 예언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들처럼 보이나, 사실 이들은 대부분 마귀에게 사로잡혀 그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매일 하나님을 만난다거나 예수님이 찿아오셨다면 경계하라. 그사람은 영의 사람이 아니라 혼의 사람이므로 영적으로는 실상 죽은 사람이거나 무당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다.예수를 잘못 믿은 사람이다.일례로 어떤 사람이 자동차로 물건을 사러 백화점에 갔는데 주차를 못하며 몇시간씩 왔다 갔다 하길래 " 왜 그러느냐" 물었더니 "성령님께서 응답을 안해주셔서 그런다" 했다. "성령님! 반찬은 무엇을 해서 먹을까요? ,운동을 어디서 얼마나 할까요?, 이 길로 갈까요?저 길로 갈까요? ,빨간 옷을 살까요? 아님 파란옷을 살까요? 이렇게 습관적으로 묻고 있다면 경계해야 할 것이다. 대답하는 이는 대부분 내 혼속에서 역사하는 귀신이라고 보아야 할것이다. 성령은 우리의 성숙함을 알고 계신다.유치원때는 부모에게 모든 것을 묻는다. 그러나 대학생은 자기가 판단 하여서 할것을 계속 묻지않는다. 대학생이 지금도 화장실갈까하고 묻는다면 저능아 아니면 미숙아 일 것이다.성령님은 우리의 믿음을 키워 주시지만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신다. 어릴때는 어디에 있는지, 어디에 가는지 부모가 일일이 확인하지만 책임질 나이가 되면 자율적으로 알아서 한다. 그와같이 늘 주님과 깊은 영적 교제가 있는 사람은 직관이 열려 있으므로 일일이 묻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 때문이다.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나누어 하나님께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힘써 연구하라(딤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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