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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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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예배당을 보면서 ‘이런 시골에도 멋진 예배당이 있구나!’ 싶었는데, 태권도장 간판을 보고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교인들이 예배당이 좁아서 그 건물을 팔고 새 예배당을 지어서 이사했는데, 구 예배당에 태권도장이 들어와서 뾰족한 탑을 그냥 둔 채 태권도장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예배당을 하나님의 몸된 교회로 생각하고 있고, 강단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예배당은 교회가 아니며 거룩한 성전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장소에 불과하다. 목사가 설교하는 단상도 거룩한 이 아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설교할 때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볼 수 있도록 높은 단을 만들고, 성경과 노트 또는 물건을 놓기 위해 예술성있게 만든 것뿐이지 결코 거룩한 단이 될 수는 없다.
강단은 강단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뿐이고, 강대상은 교탁과 같은 역할을 할 뿐이지 그것을 신성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으로 생각하고 있다. 강단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강단에 오르기 전, 속죄 기도를 하고 강단에 올라 청소하는 것을 보면 너무 무지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아무나 올라가서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직분을 맡은 자라야 오를 수 있다고 한다.
강단이 진정 하나님의 성전이며, 예배당이 그의 몸된 교회라면 그 안에서 태권도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저주를 받아 죽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태권도를 하고, 고함소리로 가득차게 한다면 마땅히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라 건물에 불과하므로 그 안에서 일을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찬물을 한 그릇 떠다 놓고 빌면 그것이 하나의 신이 되듯이, 강대상도 하나님의 성소로 생각하고 섬기면 그것도 신이 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하나님과는 전혀 상관없는 미신에 불과하다. 강대상이 진정 거룩한 성소가 되며 예배당이 진정 성전이라면, 그것을 만든 사람도 거룩하고 신령한 자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강대상은 목공들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워가며 만든 것일텐데 어찌 거룩할 수 있으며, 예배당도 일반 건축자들이 세상 집 짓듯이 지었을 텐데 어찌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 될 수 있겠는가?하나님은 강단이나 예배당을 중요시하지 않으신다. 산 속에서 예배를 드리든지, 지하 동굴에서 예배를 드리든지, 미석으로 꾸며진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든지, 가정집에서 예배를 드리든지 하나님은 아무 상관치 않으신다. 책상을 놓고 강단으로 삼든지, 종이 상자를 쌓아놓고 강단으로 삼든지 하나님은 전혀 상관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단지 외형적인 건물이나 강단의 아름다움을 보시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그 중심이 모든 죄를 씻음받고 하나님의 의를 소유한,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들을 거룩하게 여기시고, 그들이 어디서 예배를 드리든지 기쁘게 받으신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가 예쁜 옷을 입든지, 그렇지 않든지 무릎을 꿇든지,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든지, 그렇지 않든지 하나님은 나타나는 외형에는 마음을 두지 않으시고 그 중심을 보신다.
그러므로 그 중심이 죄로 가득찬 마음이면, 아니 호리라도 그 중심에 죄가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받지 않으신다. 그들이 멋진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린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예배를 거절하신다. 그러나 그 마음의 중심이 모든 죄에서 깨끗함을 입은 성도라면 그들이 어느 곳에서 예배를 드리든지, 혹 지하 깊은 동굴 속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10여 년 전에, 어떤 기도원의 예배당을 빌려서 수양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한 예배당 앞에는 조그마한 마당이 있었으며, 마당 측면에는 흙이 무너지지 않게 돌로 축대를 쌓아놓았다. 그 둘레는 온통 나무, 풀, 잡목으로 우거져 있었다.
수양회 둘째 날, 유아를 데리고 온 부인 자매들이 기저귀를 빨아 예배당 앞 마당 축대에다 걸쳐놓았다. 그런데 축대에도 널 곳이 없자 예배당 아에도 기저귀가 널려지게 되었다.이 광경을 본 기도원 원장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더러운 똥기저귀를 채웠다.”고 노발대발 하는 것이었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 마당에다 똥기저귀를 널어 천벌을 받을 거라고 하면서 당장 하산하라는 것이었다.
만약 ‘예배 장소에 기저귀가 널려 있어 보기가 좋지 않다.’ 든지, ‘분위기가 산만해서 은혜가 안 된다.’든지 해서 화를 냈다면 이해가 가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더럽혀 놓았다고 말할 땐 어이가 없었다. 그분은 예배당을 성전으로, 강단을 하나님의 제단으로 믿고 있었다. 또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자는 하나님의 제단인 강단에서 예물을 드려야 된다고 믿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강단은 하나님의 거룩한 제단이 아니다. 하나의 책상, 교탁에 불과하다. 제단에 예물을 올려야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시고 예물을 받으신다. 그 중심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하다면 강단에 올려놓든, 예배당 뒤의 연보함에 넣든, 연보 주머니에 넣든 그건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십자가가 높이 세워진 예배당이 하나님의 교회요, 멋있게 꾸며진 강단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성전이라면, 하나님은 로마 시대에 핍박으로 지하 동굴 속에서 그러한 장식을 할 틈도 없이 전전긍긍하며 드린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예배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받지 않으셨는가?
사실 외형은 아무것도 아니다. 목사가 까운을 입든 양복을 입든, 성가대가 노래를 잘 부르든 못 부르든, 무릎을 꿇든 말든 외형에 치중하지 말고, 중심, 즉 마음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진정 자기 마음이 하나님의 성령을 모실 만큼 거룩하며 깨끗한가를 생각해 보라. 하나님의 성령을 모실 수 없는 죄인이라면, 아무리 엄숙하고 거룩하게 보이는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섬긴다 하더라도, 강단 바로 밑에서 예배를 드린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 밖에 있는 사람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예배당은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 장소에 불과한 것이고, 강대상은 목사가 설교하는 교탁에 불과하다. 그것을 신성시해서 섬긴다면 그는 진정 섬겨야 할 하나님을 모르는 자인 것이다.
진정한 성전
출애굽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성전(성막)은 웅장하지도, 그리 크지도 않은 것이었다. 장이 100규빗, 광이 50규빗이니까 1규빗을 50㎝로 생각해도 가로, 세로 50m×25m의 크기다. 이것은 마당까지 합한 전체의 크기고, 성소는 더욱 작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성전을 형성하고 있는 것들은 모두 다 거룩했다는 것이다.
성전 안 마당은 거룩한 곳이며, 드려지는 제물도 거룩하고, 식물도 거룩하고, 단도 거룩한 단이었으며, 사르는 향도 거룩한 향이었다. 쓰는 기름도 거룩하며, 제사장이 입는 옷도 거룩한 옷이었다. 왜 이 모든 것들이 거룩해야만 했는가?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해야만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제사장 중 누구든지 부정하게 된 자는 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길 수 없었다. 여인을 가까이 했다든지, 시체를 만졌다든지… 이런 부정한 제사장은 율법의 규례대로 정결해지기 전에는 결코 하나님을 섬길 수 없었던 것이다.아론의 아들 제사장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하다가,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켜 그들은 여호와 앞에서 죽고 말았다.(레 10:1) 왜냐 하면 그들은 모든 것을 거룩하게 갖추었지만,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써야 할 거룩한 불, 거룩한 향, 거룩한 옷 모든 것이 거룩하지 않으면 이렇게 하나님 앞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고, 만약 성소가 부정해진다면 하나님은 그 곳을 떠나실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셨기에 아론의 아들들은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도 “나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가까이 섬기는 자는 “하나님은 거룩하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거룩함을 우리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 앞에 모셔 섰는 스랍들의 이야기가 이사야 6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 천사들은 날개가 여섯인데, 둘로는 얼굴을 가리웠고, 둘로는 발을 가리웠으며, 둘로는 날며 하나님을 창화했다. 하나님을 모신 천사들도 거룩할 텐데 거룩한 천사들조차 하나님을 바로 뵐 수 없어서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웠다. 또한 부족한 다리를 날개로 가리웠다. 스랍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들은 날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사6:3) 라고 창화했다.
이같이 창화하는 자들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했다. 하물며 미물과 같은 인간으로서 어찌 거룩한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으랴? 성경은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시며, 죄를 멀리하는 분인가를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모실 만한 거룩한 처소가 없으면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
십자가는 아무 데나 걸 수 있지만, 아무리 깨끗하고 아름답게 꾸며진 곳이라도 하나님은 아무데나 모실 수 없다. 십자가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은 아니다. 즉 멋진 예배당에 십자가가 걸려 있어도, 하나님을 모실 만큼 깨끗하고 거룩한 곳이 아니면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하나님께서 구약 시대에는 성막이나 성전에 계셨지만, 신약 시대에는 거룩한 성도의 마음에 임하셔서 그 마음을 성전으로 삼으셨다. 사람의 마음이 거룩한 하나님을 모실 만큼 거룩하면 하나님을 모신 마음이 곧 성전이 된다.
찬송가에 “나의 마음 성전 삼고, 주께서 계시네.” 하는 찬송이 있다. 하나님은 이제 이런 건축물들을 성전으로 삼지 않으시고, 우리들의 마음을 성전으로 삼으신다. 그러나 아무 마음에나 하나님이 임하실 수가 없는 것은, 하나님은 너무나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 분은 온전히 거룩하신 분이므로 마음에 호리라도 죄가 있다면 그 마음에는 결단코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수 없다.
그러나 모든 죄를 씻고 거룩하며 온전케 되었다면, 하나님은 그 마음을 당신의 전으로 삼으시고 그 안에 계신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모든 죄를 씻고 거룩하게 된 자들의 마음이고, 하나님을 모신 자가 곧 성전인 것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
이런 거룩한 자들이 하나님을 모시고 살 때 그들을 성도라 하며, 성도가 모여 예배드리는 집을 예배당이라고 한다. 어떤 예배당에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린다고 하자. 그러면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전인가? 우선 생각해 봐야 할 대목이 있다. 그들이 비록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부르고 예배를 드릴지라도 그들 마음에 죄가 있다면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마음은 성전이 아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셔야 성전이 되고, 하나님을 모시려면 성도가 되어야 하는데 교회만 다닌다고 성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성도란, 말 그대로 거룩한 무리를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한 자만이 성도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는 진정 거룩한 성도인 것이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처럼 거룩할 수 있겠는가?’하는 의문이 생길지 몰라도, 성경은,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10)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10:14)
라고 말하고 있다.
거룩하며 영원히 온전케 된 심령이라야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성전이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 마음에 죄를 두고도 성도라고 자칭하고 있다.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처럼 거룩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도 성도라 부르고 있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성도는 말 그대로 거룩한 자라야만 되는 것이다. 거룩한 마음에 하나님이 계실 때 그가 곧 진정한 성전이 된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을 보셨다. 예수님은 즉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시고는 양이나 소를 성전에서 다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여기서 가져 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
그 성전은 46년 동안이나 걸려 아름다운 돌로 지은 웅장한 건물이었다. 그러나 죄로 가득찬 그 성전에는 하나님이 머물지 않으셨다. 더 이상 하나님의 성전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성전으로 삼으셨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던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대적하는 데 앞장섰고, 성전은 이미 강도의 굴혈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멋있고 웅장한 집일지라도 하나님이 떠나버린 곳이라면 더 이상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없다. 이와 같이 만약 당신이 아무리 훌륭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모시지 못한 죄인이라면 당신은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없다. 거룩한 마음에 성령을 모신 자만이 진정 하나님의 성전인 것이다.
+둥글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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