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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시편 복음............... 조회 수 2544 추천 수 0 2010.12.09 07:47:48
.........
성경본문 : 시113:1-9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본문: 시113: 1- 9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무더기에서 드셔서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 또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로 집에 거하게 하사 자녀의 즐거운 어미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

 

사이가 좋지 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술을 마시고 서로 치고 받으며 싸웠습니다. 그것을 해결하려고 부부는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하고, 상담도 받아 보고, 함께 자살하려고 수면제까지 먹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화해가 되지 않자 별거를 하였습니다. 물론 이혼을 전제로 한 예행연습과도 같은 별거였습니다. 이 부부는 아무리 애써 봐도 안 되니 마지막으로 이 상황을 주님께 맡기면서 찬송을 하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하자 그들의 마음이 서서히 풀렸습니다. 찬송을 할 때에 그들의 마음속에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새로이 싹튼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다시금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찬양하는 자녀들에게 복을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주변에서 단순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드리는 찬양이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 질병을 고치는 능력으로 작용했다는 간증을 듣습니다. 찬양은 감사이고 감사하는 자세는 동시에 하나님을 높이고 기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찬양하는 생활을 새롭게 시작하는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저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너의 가운데 자녀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시147:12-14)

 

할렐루야!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하나님 보다 높으신 이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돌보시니 온 민족과 온 땅과 만물들이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시148: 3)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어찌 찬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내가 살아있는 동안 여호와를 찬양하며 내 평생에 하나님을 찬송하리라”(시146:2)고 한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나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기 원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시103:1)

이사야 43:21절에는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들을 만드셨다고 합니까? 그렇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할렐루야! 이제부터 우리의 인생이 찬양하는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송하면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생각납니까? 저는 야곱의 네 번째 아들 유다가 생각납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눈을 피해 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쳤을 때 그는 그곳에서 첫눈에 반한 여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여인은 바로 라헬이라는 여인이었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라헬을 사랑하고 좋아 했는지 7년 동안 삼촌 라반의 집에서 고생하며 양떼를 돌본 시간을 며칠 같이 여겼다(창29:20)고 했습니다. 드디어 7년이 지나고 결혼하는 첫날밤을 치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사랑하는 라헬은 간곳이 없고, 옆 자리에는 처형이 되어야 레아가 누워 있었습니다. 레아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아버지의 물질적인 이익의 희생양이 되어 정략적으로 결혼한 것입니다. 참으로 불행한 여인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을 보면 여자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려면 남자가 여자보다 더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해야 합니다.

이때부터 레아는 어떻게 하면 자신이 동생 라헬보다 더 남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것이 그녀 인생의 큰 주제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렸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창세기 29:31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레아가 사랑 받지 못함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자녀가 없었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레아가 야곱으로부터 천대 받고, 그로 인해 마음에 고통 받고, 남편으로부터 멸시를 받는 모습을 보셨던 것입니다. 아마도 이 연약하고 남편으로부터 소외당하여, 외로움 속에 있었던 연약한 여인의 고통의 신음 소리를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그녀에게 4명의 아들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 첫째는 르우벤으로 그 뜻은 “보라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들이 없는 야곱과 라헬에게 당당하게 이제 내가 아들을 낳았다라고 인간적으로 자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 자랑 속에서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얼마나 남편의 사랑을 받기 원했으면 아들의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짓고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할 것이다”라고 선언 했겠습니까?

그러면, 그녀의 기대와 바람처럼 야곱은 그녀를 사랑했나요? 결코 아니었습니다. 레아는 자신이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함을 한탄하면서 한스럽게 다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녀는 아들을 낳고 “여호와께서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을 들였으므로 내게 이 아들을 주셨도다”(창29:34)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들의 이름을 시므온이라고 했습니다. 시므온이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제 야곱이 그녀를 사랑했을까요? 역시 야곱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오직 라헬만을 사랑했고, 그 모습을 보면서 레아는 다시 고통의 피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그녀는 세 번째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바로 레위라는 아들이었습니다. 레위라는 뜻은 “연합하다”“하나가 되다”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왜 이름을 레위라고 지었겠습니까? 그녀는 레위를 낳고 하는 말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라고 자신의 소망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녀는 진실로 남편과 연합하기 원했고, 하나가 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남편 야곱은 레아보다는 아직도 라헬을 사랑하였습니다.

결국, 그녀가 낳은 마지막 아들이 바로 유다였습니다. 그런데, 유다를 낳은 후에 그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남편의 사랑에 붙들려 사는 여인이 되지 않았습니다. 과거 세 명의 자녀에게 보였던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말을 합니다. 과거에 그녀가 자녀를 출산한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남편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서 자녀를 생산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남편의 사랑은 그녀에게 오지 않았고, 그녀는 깊은 절망과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여인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그 자녀의 이름 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를 임신하고 유다를 출산하면서 그녀의 인생의 가치관이 달라졌던 것입니다. 그녀는 네 번째 아들을 출산하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창29:35) 할렐루야!

그리고는 네 번째 아들의 이름을 유다로 짓습니다. 유다라는 말은 찬송이라는 뜻으로서 “내가 하나님을 찬송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녀가 네 번째 아들의 이름을 이렇게 여호와를 찬송하리라는 의미로 찬송이라고 지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녀는 네 번째 아들 유다를 낳으면서 인생에서 어디로부터 오는 사랑이 더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그녀는 남편의 사랑을 최고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세 명의 아이들을 낳았지만 남편의 사랑은 그녀에게 육체적인 것에 불과했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설움에 고통당하고 있을 때, 그녀를 돌보고 그녀를 위로하고 그녀에게 안식을 준분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녀는 이제 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육체적인 사랑과 비교할 수 없는 영적인 돌보심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레아는 세 아들을 낳은 후에야 이제 사람의 사랑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 보다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깨닫고 고통 중에 기도 소리에 응답하신 그분의 이름을 찬송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의 사랑에 매달리지 않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녀는 세 자녀를 출산하면서 남편으로부터 사랑 받지 못하는 인간적인 고통과 눈물과 외로움의 길고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을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녀가 네 번째 아들 유다를 낳는 순간 그녀는 사람을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에게 사랑을 주신 그 하나님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그녀는 너무나도 감격하고 감사하면서 “이제 내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녀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 속에는 더 이상 남편에 대한 원망도,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소외감도,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서 남편의 사랑을 구걸하듯이 매달렸던 모든 어둠의 그림자도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제부터 내가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과 찬송뿐이었습니다. 그녀가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지금까지 자신을 지켜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는 순간 그녀는 인생의 어둠의 동굴과 빛이 사라진 그늘에서 빠져 나와 참된 빛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믿음의 고백을 통해 태어난 유다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복을 받았겠습니까? 받지 않았겠습니까? 유다는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엄청난 축복을 받는 큰 지파로 성장하였습니다. 창세기 49:8절 이하에는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서 절하리로다”라고 야곱은 자신의 네 번째 아들 유다를 크게 축복하였습니다. 유다는 야곱의 축복대로 형제들의 찬송이 되는 지파였습니다. 이처럼 자녀도 육신의 욕망에 따라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출산 할 때 축복받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성령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으로 성막을 세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브살렐입니다. 그가 어디 지파 사람이었겠습니까? 그는 당연히 유다지파의 사람이었고, 광야에서 모든 사람들이 가나안 땅에 대해 불신하였을 때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가나안 땅은 우리들의 밥이라고 외쳤던 갈렙 역시 유다지파의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의 고난 중에서도 가장 크게 번성한 지파가 바로 유다지파였고, 가나안 땅에 들어 갈 때도 가장 먼저 선봉이 되어 믿음으로 들어간 지파 역시 유다지파였습니다. 유다 지파는 다윗부터 시작해서 23대에 이르는 시드기야 왕까지 유다를 다스리는 왕이 끊이지 않았고, 만왕의 왕이시며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유다지파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의 결단이 필요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속해서 인간의 사랑을 구하면서 시기와 질투와 분노라는 어둠의 삶에 있겠습니까? 아니면, 인간으로부터 오는 사랑보다 더 크고 무한한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닫고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고백하시겠습니까? 나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던 찬송하는 레아, 그리고 “내가 하나님을 찬송하리라”고 믿음의 결단을 내리는 레아가 되기를 진실로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할렐루야!라는 말을 발견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라는 말이 바로 하나님을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시편 150:6절에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찬송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심지어 시편 22:3절에는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15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19절 이하의 말씀에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태어 날 때에 베들레헴에는 천군과 천사들의 찬양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그날에는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끝임 없이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경배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예배는 찬양으로 시작해서 찬양으로 마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의 가정과 인생에서 멈춰서는 안 될 것이 찬양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장로님 가정의 부부싸움이 있었답니다. 화가 난 장로님이 방에서 밖으로 나가 어슬렁거리자 권사님이 간절한 목소리로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만 오오”라고 찬양을 하였답니다. 그러자 밖에 있는 동안 화가 풀린 장로님이 그 찬양에 화답하여 “멀리 멀리 갔더니 처량하고 곤하며~~”라고 찬양을 하면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권사님이 문을 열면서 “참 반가운 신도여 이리 와서~~”라고 하면서 문을 열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악한 귀신에 붙들려 고통당하고 있었던 사울에게 찬양을 통해 그 악신을 몰아내었던 다윗의 찬양을 잘 알고 있습니다. 찬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고 강하고 능력이 있는지 사울을 괴롭게 하던 악신을 제압하고 떠나게 한 것입니다. 찬송 중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마음에 고통이 있고, 마음을 괴롭게 하는 악한 영이 역사하고 있습니까? 이 시간 찬송과 기도를 통해 떠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16: 24- 26)

우리는 바울 선생과 실라 선생님이 빌립보 감옥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39대의 매를 맞고, 손과 발에는 착고가 채워진 상태에서 지하의 어둔 감옥에서 던져졌습니다. 살을 애는 듯한 고통이 그들을 엄습해 왔고, 어둠은 그들을 더욱 두렵게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 분은 고통과 두려움을 찬송과 기도를 통해 이겨냈습니다. 그들은 그 어둠의 감옥에서 소리를 내어 기도하기 시작했고, 큰 소리로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얼마쯤 기도하고, 찬송했을 때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감옥 문이 활짝 열리고 말았습니다. 할렐루야!

PGA 골프 선수 중에 아프리카 짐바브웨 출신 닉 프라이스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는 슬럼프가 없는 선수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기자가 그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프라이스 선수는 “제가 어릴 때 우리 아버지께서 어려움이 있을 때는 휘파람으로 노래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난 게임이 풀리지 않을 때는 휘파람을 붑니다.”라고 대답했답니다.

여러분도 얼마든지 인생의 문을 찬송을 통해 열 수 있습니다. 본문 2절에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인생의 문을 열겠습니까? 어떤 축복을 받겠습니까? 레아는 인생의 고난을 찬송을 통해 극복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자녀의 이름을 유다라고 했고, 유다는 그 이름대로 하나님의 찬송 거리가 되었고, 영원한 축복의 뿌리요 시작하는 영원한 축복의 근원지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래전에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약을 가르치던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님은 예배 시간에 이상하게 찬송을 부르지 않습니다. 알고 보았더니 이 교수님은 대단한 음치였습니다. 학생들은 이 교수님을 ‘찬송 음치’라고 놀리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교수님이 어찌된 일인지 예배 시간에 크고도 힘차게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너무나도 신기해서 강의 시간에 조심스럽게 “교수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교수님께서 찬송을 다 부르시고 ... ” 그랬더니 겸연쩍은 표정으로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였습니다. 그분이 밤에 꿈을 꾸었답니다. 천국 문에 이르러 노크를 했더니 베드로가 사도가 나오더니 누구냐고 묻더랍니다. 그래서 자신은 어릴 적부터 예수님을 믿었고, 지금은 신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 사도가 무슨 장부 같은 것을 뒤지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공부는 많이 해서 아는 건 많은데, 찬미의 제사를 올린 기록이 없소이다. 천국은 지식이 많은 신학 박사를 원하는 게 아니라 찬송을 열심히 부르는 사람을 원합니다. 그러니 다시 가서 찬송을 많이 부르다가 오시오!”라고 하면서 천국 문이 탕 하고 닫는 것입니다. 닫는 소리가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음치기 때문에 주님을 찬송하지 못한 것을 크게 회개하고, 마음으로 찬양 드리기 위해 힘써서 찬양의 제사를 드리기로 결심했다고 결론을 맺었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시135: 1)

 

성도여러분, 우리에게도 꿈과 비전이 있듯이 하나님에게도 꿈과 비전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3절의 말씀처럼 해 돋는 곳에서부터 해지는 곳까지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을 받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온 세상이 온 민족이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하게 하는 꿈과 비전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부터 환경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부터 우리 입술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피리가 되고, 나팔이 되고, 수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낙심하지 말고, 좌절하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그 자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세계를 찬양의 도시로 만들고, 이 나라를 찬양의 나라로 만드는 꿈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하나님이 꿈꾸시고, 하나님이 소망하시는 것처럼 이 온 세상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나라와 민족과 가정과 개인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있는 모든 인생의 문제가 찬양을 통해 해결되고, 악한 귀신들이 찬양을 통해 물러가고 제압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기도: 영원히 찬양받으실 주님! 주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능히 역사하시는 주님을 찬송하게 하소서. 우리 생활에서 찬송이 가득하게 하시고 주님만을 찬송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가 찬양하는 삶을 통해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나 믿는 사람들에게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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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01 디모데후 매일 성경을 읽읍시다. 딤후3:15-16  한태완 목사  2013-01-08 2538
14600 디모데후 후회 없는 인생을 삽시다 딤후4:7~8  김양인 목사  2010-07-31 2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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