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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사모하고 즐거워하라

시편 복음............... 조회 수 3122 추천 수 0 2010.12.18 09:01:54
.........
성경본문 : 시119:16.77.123.131 
설교자 : 헌태완 목사 
참고 :  

말씀을 사모하고 즐거워하라

 

본문: 시편 119편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시119: 16)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시119: 77)

“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시119: 123)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시119:131)

 

시편 119편은 22개의 히브리 알파벳 순서를 따라 각각 8개 구절의 22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시입니다. 작자와 기록된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시편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작자를 다윗이라고 보는 분들도 많습니다. 시인은 히브리어 알파벳 전부를 동원하여 이 시편을 기록하면서 주님의 말씀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드러낼 뿐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얼마나 완전한지, 그리고 그 말씀이 얼마나 풍부한지, 나아가 말씀이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 시편에서 주님의 말씀을 여러 가지의 이름과 표현을 동원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략 10개의 단어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표현하는데요. “법”(토라; 25번), 다바르로서의 “말씀”(20번), 이므라로서의 “말씀”(19번), “계명”(미츠와; 복수형 21번, 단수집합명사 1번), “율례”(후킴; 21번), “규례”(미슈포트; 단수형으로 4번), “법도”(피쿠딤; 21번), “증거”(에다; 복수형으로 22번, 단수형으로 1번), “도”(데레크; 복수형으로 5번, 단수로 6번), “길”(오라흐; 시편에서 5번 사용됨) 등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향하여 어떤 마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도 표현합니다.

“즐거워한다(16,24,35,47,70,77,92,143,144).”

“사랑한다(47~48,97,113,119127,132,159,163,165,167).”

“지킨다(8,17,34,44,566-57,60,67,88,100-101).”

“묵상한다(15,23,27,48,78,97,99,148).”

“기뻐한다(14,74,162절).”

“사모한다(23,37,40,50,88, 93,107,149,154,156,159).”

그런데 여러분, 이러한 표현을 쓰고 있는 시인은 원수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습니다(23, 46, 161). 즉 “즐거워한다.” “사랑한다.” “지킨다.” “묵상한다.” “기뻐한다.” “사모한다.”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그가 누구든지 가장 먼저 바라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을 추적하고 괴롭히는 원수들이 사라지는 것이고,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쉬지도 못하는 고문과도 같은 고난이 그치는 것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안전과 평안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런 상황에서 시인이 가장 바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자신을 조롱하고 괴롭히는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시인은 그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위로를 받았으며, 그 곤경에서 자신을 건져줄 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뿐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1.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시119:97)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듣는 것입니다.

느혜미야 8:1-12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성전재건 후 7달째 되는 날에 스스로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게 하고 말씀을 사모하여 알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 새벽부터 정오 까지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에스라가 강단에 설 때 좌우편으로 13명이 섰는데 성경을 봉독하는 사람이라 말씀을 낭독할 때에 백성들이 일제히 일어서고 귀를 기울여 들을 때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위대하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여호와를 송축하니 모든 백성들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습니다.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는 모든 것을 나누어줍니다. 깨닫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자는 눈물을 흘리며 회개합니다. 근심하지 않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교만하지 않고 조용하며 근신합니다.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시119:20)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시119: 174)

 

시인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145절에서 시인은 여호와께 “전심으로 부르짖으면서 구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부르짖는다”는 말은 어린아이가 소리 내어 울면서 부모에게 무엇을 구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말합니다. 시인은 말씀을 사모하여 구하는 자신의 모습이 마치 어린아이가 울면서 부모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과 같다는 것,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부르짖었다는 말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내가 주의 교훈, 주의 증거를 지키겠다!”고 고백합니다(145,146). 이러한 시인의 기도는 어떤 특별한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그것에 응답해 주시기를 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구한 것은 주님의 교훈, 주님의 증거, 주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향한 시인의 태도는 오늘 본문만이 아니라 다른 시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편 119편 131절에 보면, “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의 “헐떡이다”는 말은 ‘숨이 차서 힘겹게 호흡하다, 숨이 넘어갈듯 하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한여름 땡볕 아래서 타는 듯한 열기로 인하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찌들어 가는 가운데서 한 모금의 시원한 물, 혹은 잠시 스쳐지나가는 서늘한 바람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잘 될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을 자주 한 사람은 다윗입니다. 그는 시편 42편 1절에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허덕이는 것은 단순히 詩的이고 문학적인인 표현이 아닙니다. 높은 산지의 바위들과 깊은 계곡을 뛰어다니던 사슴들은 쉽게 목이 모르게 되는데요. 목이 마를 때 제 때 물을 찾아 마시지 못하면, 기진맥진하다 못해 헛것이 보여서, 흙이나 모래를 퍼먹기도 하고, 물 한 방울 없는 나무 밑이나 바위 밑을 앞발이나 주둥이로 파다가 발이나 입이 다 헤어져 많은 피를 흘리다가 죽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슴이 물을 찾아 갈급해 하며 허덕인다는 것은 ‘삶이냐 죽음이냐’와 관계되는 처절한 싸움을 뜻합니다. 여러분, 다윗이 주님의 말씀을 사모했다는 것은 시간이 남고 형편이 좋아서, 삶의 여유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생사의 기로에서 주님의 말씀을 사모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말씀에 대한 기갈, 즉 굶주림을 구구절절이 표현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도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암8:11~13).”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굶어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요즘 세상에도, 전 세계적으로 5세 미만의 아이들이 하루에만도 약 4 만 명이 굶어 죽는다고 합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굶어 죽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음식에 대한 갈망이 대단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정신이 점점 혼미해져서, 마침내 어떤 음식도 먹고 싶지 않는 단계에 이른다고 합니다. 영적인 굶주림도 이와 같은 절차를 밟습니다. 날마다 성경 말씀을 묵상하던 사람이 하루 정도 말씀 읽기를 거르게 되면 그때는 말씀에 대한 배고픔을 느낍니다. 그러나 말씀 읽기를 계속해서 멈추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말씀에 대한 배고픔조차 못 느끼는 상태가 되어버립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혹, 말씀에 대한 배고픔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는 아닙니까?

또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모했든지 때로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때로는 밤을 새워 가면서, 또 어떤 날은 자다가 깊은 밤중에 깨어서, “주의 말씀을 사모했노라”고 말합니다. 62절, “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147, 148절, “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스위스의 철학자인 카알 힐티는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라는 책에서 사람들이 잠을 이룰 수 없는 많은 경우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왜 불면이 생기는가를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불면은 대개 병이나 걱정되는 일이나 불안한 생각으로부터 생긴다. 그러나 때로는 지나친 휴식, 안일한 생활 방법, 갖가지 무절제, 혹은 긴 시간의 낮잠 등으로 해서 오는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몸이 아파서도 그렇고, 자녀의 일이 걱정이 되어서도 그렇고, 혼자 있게 된 일이 서럽고 가슴 아파서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사업이 풀리지 않아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사회가 엉망이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서도 그렇습니다. 어떤 이들은 먹을 것이 없어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합니다. 직장을 잃어버리고, 가장의 자리를 상실하여 잠을 못 이루기도 합니다. 부도를 막지 못하여 그러하고, 아이의 병치레 때문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시인이 잠을 이루지 못한 이유, 즉 밤을 꼬박 새우거나 혹은 자다가 깨어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주님의 말씀을 사모함 때문이었습니다.

20대 초반부터 사울 왕에게 쫓기기 시작한 다윗은 10년 조금 넘는 세월을 도망자로, 마치 사냥꾼에 의해 추격을 당하는 짐승처럼 서글프게 살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쫓겨 다니던 시절에 가장 필요로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도망 다니지 않고 안정되게 살아가는 것? 저녁 식사를 준비한 식탁에 가족들과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식사하는 것? 고향에 돌아가 부모형제들과 함께 지내는 것?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다윗이 도망자 시절에 가장 많이 불렀던 노래, 그리고 가장 많이 부르짖었던 기도는 주님의 말씀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여러 경우에서 주님의 말씀을 사모했던 다윗은 그 말씀을 얻고 난 다음에 주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시19:10).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군사들이 전리품을 나누는 것보다 주님의 말씀이 기쁘다고 했습니다. 162절, “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잠16:19 참조).” 그리고 추수를 끝낸 농부들이 만끽하는 수확의 즐거움보다 더 큰 것이라고 했습니다(시4:7, 참조 사9:3). 심지어는 127절,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이 세상의 돈, 그 어떤 재물보다도 주님의 말씀을 더 사모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이제부터 여러분도 시인처럼 이렇게, 아니 시인보다 더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2. 말씀의 능력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 105)

독일의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 1906~1945)는 그가 쓴 『윤리』라는 책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아름다운 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를 변화시키고 죽은 자를 살리는 말씀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유대민족들을 다 합하면 1천 5백만 정도가 되는데, 그 인구는 60억 세계인구 중에서 0.25%에 불과한 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전체 노벨상 수상자의 33%를 차지하고 있고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어떻게 유대민족은 이렇게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민족이 되었습니까? 유대민족의 특징을 이야기할 때, “유대민족은 책의 민족, 교육의 민족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구약성경을 묵상하고 암송하면서 그 말씀과 더불어서 성장합니다. 그들은 “책이 없는 집은 혼이 빠진 몸과 같다.”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유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며 절대적으로 신뢰함으로써 세계의 뛰어난 민족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는 강력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고 읽히고 있는 책이 무엇인줄 아십니까? 바로 성경입니다. 우리나라 대한성서공회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한 해 동안에 국내, 국외의 성경이 무려 3천 5백만 부가 팔려 나간다고 합니다. 이것은 실로 엄청난 숫자입니다. 이렇게 귀하고 능력 있는 성경말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말씀대로 살고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실패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과 더불어 산다면 여러분은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계 1위의 기업은 미국 최대의 할인점인 ‘월마트’라고 합니다. 이 월마트의 창립자 샘 월튼은 성경말씀 속에서 경영철학을 발견했고, 그것으로 10가지 경영원칙을 만들어 조그만 할인점을 40년 만에 세계 최대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는 “사업의 목표는 돈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성경말씀에서 성공의 비결을 찾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고, 명철함이 스승보다 낫고, 노인보다 나아집니다.(시119:98- 100) 하나님의 말씀은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합니다. 그러므로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해야 합니다.(시19:7-10) 또한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행실을 깨끗하고 정결하게 하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합니다.(9절, 101절) 그리고 성경말씀은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딤후3:15, 16) 뿐만 아니라 말씀은 우리가 지은 죄를 깨달아 회개케 하고, 소망을 가지게 하고(49절), 고난 중에 위로를 주고(50절), 자유함을 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4:12)

 

3.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에서 뜻을 찾아야 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주님의 말씀을 찾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오늘 우리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대한민국을 향한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세종시 계획을 수정하는 것이 주님의 뜻일까요? 분당 샘물교회 성도 두 명이 순교한 아프카니스탄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이 주님의 뜻일까요? 겨울철 굶주림에 허덕이는 가운데, 돌연 화폐개혁을 단행함으로서 민중봉기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북한, 탈북자들을 비롯하여 국민들의 인권을 철저히 짓밟고 있는 북한 당국과 북한을 향한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불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한국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지에 대한 주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여러분, 어디 이러한 일반적이며 큰 범위에서의 하나님의 뜻만 궁금합니까?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나’를 중심한 구체적인 하나님의 뜻 아닙니까? 나의 내일은 어떻게 될까? 내 가족과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어떤 것일까? 내가 가야할 인생길의 방향은 어디일까요?

신라 시대의 학자이자 최고 문장가였던 최치원의 漢詩(한시) 가운데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笑指門前一條路(소지문전일조로) 纔離山下有千岐(재리산하유천기)” ‘웃으며 문 앞 외길을 가리키니 겨우 산 아래서 천 길로 갈라지네.’ 시인이 시골집 마루에 앉아 그 앞에 난 외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좀 더 멀리를 바라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바로 앞에 보이는 산 아래에서부터 그 외길은 천 갈래로 갈라지고 있었습니다! 시인은 바로 이것이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이란 언제나 외길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 앞에는 항상 천 갈래, 만 갈래의 인생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많은 길 가운데 여러분이 가야할 길은 어떤 길일까요?

오늘 본문의 시인도 그러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시인은 150절에서 “악을 따르는 자들이 가까이 왔사오니”라고 고백하면서, 그들은 “주의 법에서 먼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즉 시인을 해치려는 자는 단순히 자신의 원수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멀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하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개인을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들은 결국 주님과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자들이라는 것이죠. 즉 현재 시인이 처한 상황은 원수들이 바로 곁에 있어서 자신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피해야할 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 원수들을 피할 수 있으며, 안심하며 지낼 수 있을까?’

그런 가운데 이어지는 시인의 고백은 무엇입니까? 151절, “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그렇게 앞뒤 길이 전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문득 깨닫고 보니 하나님께서 자기 곁에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기 곁에 계신 것을 알게 해 준 것은 바로 주님의 “계명”, 즉 주님의 말씀이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51). 결국 시인은 말씀을 통하여 주님께서 자기 곁에 계신 것을 알았고, 말씀의 지도를 받아 그 위기를 벗어나 안전한 길로, 승리의 길로 나아갈 것임을 믿었습니다.

시인은 105절에서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시인은 자신의 인생살이를 어두운 밤길을 자기 앞만 겨우 비추는 등불을 들고 걷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상 20장 3절에서 죽음과 자신은 겨우 한발자국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표현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야말로 자기 앞을 비추는 등불과 같아서, 그 말씀이 비추는 대로, 그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그 말씀이 가라고 하는 대로, 가지 않으면 길을 잃거나 실패의 벼랑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여러분은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찾는 모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이 주님의 말씀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세계와 열방이라는 큰 범위이든지, 나와 내 가족 혹은 건강과 돈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이 성경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 말씀을 통해 대기업을 일구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 말씀을 통해 유명한 정치인이 되고, 또 어떤 사람은 대통령이 되었으며, 수상이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 말씀을 통해 우주 과학자가 되었고, 어떤 사람은 말씀을 통해 물리학자가 되었으며, 또 화학자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말씀은 자기 인생길이 어디로 가야할 지를 묻는 사람들에게 아주 구체적이고 실재적으로 그 뜻을 알려줍니다. 오늘도 인생의 길을 묻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그 뜻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책, 즉 기록된 주님의 말씀이지만,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하고, 주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경 말씀은 분명히 주님의 음성입니다. 이 성경을 통하여 지금도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듣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신의 인생길만이 아니라 그렇게 고민하던 문제들을 해결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 해결이나 인생의 답을 찾기 위해 여기 저기 기웃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잠시 세상과 사람들로부터 떠나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꿇어앉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까지 기도하면서 성경 말씀을 읽으십시오. 주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겠다는 작심을 해보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음성이 여러분에게도 들릴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항상 들으면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의 뜻 가운데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 1-2)

 

4. 말씀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한 젊은 여자가 책을 한 권 들고 읽으려 했으나 너무 재미없고 딱딱해 곧 포기해 버렸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한 청년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바로 전에 읽으려던 책의 저자였습니다. 그때서야 그녀는 그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여 드디어 독파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그 책을 그토록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그 작가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하면 성경도 우리에게 살아 있는 책이 됩니다. 성경말씀에 대한 관심 어쩌면 우리의 주님에 대한 관심의 척도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보내신 사랑의 편지인 성경을 부지런히 읽어 영생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렘15: 16)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며”(시119:47)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시119:70)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119:103)

코끼리는 우둔해 보이지만 생존을 위한 지혜는 정말 경이로울 정도라고 합니다. 코끼리가 더울 때 어떻게 하죠? 귀로 부채질을 하거나, 물이나 진흙으로 샤워를 하여 더위를 이겨냅니다. 또 근처에 개울이나 연못이 없을 때 쓰는 비상수단으로 침을 잔뜩 괴었다가 코로 들이마신 후, 자기 몸에 뿌리는 식으로 더위를 피합니다. 햇볕이 따가우면 나무 그늘을 찾아 가서 몇 시간이고 꼼짝하지 않고 서 있을 때도 있습니다. 코끼리의 지혜는 음식 섭취에도 숨어 있습니다. 코끼리는 칼슘을 섭취하여 이빨 등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대나무를 즐겨 먹습니다. 단단하고 질긴 통 대나무를 으깬 다음, 코로 말아 올려 먹고, 그냥 입으로 ‘우지직’ 씹어 먹으면서 부족한 영양소를 섭취합니다. 또 건조한 아프리카 초원 지대의 코끼리는 죽은 동물의 뼈를 먹음으로써 부족한 칼슘을 보충합니다. 비록 먹기에 까다롭고 불편하고 더럽게 여겨질지라도 자기에게 필요한 것은 서슴지 않고 먹는 것이 코끼리라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영적 건강도 그가 어떤 음식을 섭취하는가와 직결됩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편식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밥상에서 편식을 하듯 말씀에 대한 편식을 하는 것이죠. 귀에 거슬리는 설교에는 스스로 방음 막을 칩니다. 좀 까다롭거나 부담스러운 말씀은 그냥 건너뜁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코끼리가 달콤한 야자열매만 찾아다니지 않고, 칼슘을 보충하기 위해 억센 대나무를 씹기도 하고, 죽은 동물의 뼈를 먹기도 하는 것처럼, 비록 여러분에게 힘들게 여겨져도 반드시 필요한 것이 성경 말씀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첫째로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을 정말 사모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는 말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함이요,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사모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사모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 알기를 원하십니까? 넓게는 온 세상을 향한 주님의 뜻을 찾고자 하고, 좁게는 여러분 자신과 관련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말씀 속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묻는 질문의 답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질문, 어떤 궁금증,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든지, 말씀 앞에 설 때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려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면 성경 말씀을 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펴는 그 성경 속에 주님의 뜻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말씀은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넓으며, 가장 풍부한 보물창고와도 같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여러분이 받은 최고의 복입니다. 성경이야말로 여러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최고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든 사람이 다 누리지는 못합니다. 오직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에서 주님의 뜻을 찾고, 말씀을 즐거워 하는 자만이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항상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기록된 모든 복을 여러분의 것으로 삼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생명의 말씀이요 축복의 언약인 성경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고 계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들이 언제나 성경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믿음 위에 굳게 서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만백성이 말씀을 사모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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