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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4:2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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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8·03·08
현대는 물질문명이 발달하여 풍요롭고 편리해진 반면에 정신적으로는 편할 날이 없을 정도로 시달리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무한경쟁 속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어렵게 들어간 직장에서는 언제 어떻게 될지 마음을 놓을 수 없습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심한 경쟁과 어려운 여건 속에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습니다. 여기 저기 문을 닫고 부도가 나는 사업장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틈만 나면 그러한 상황에서 탈출하려고 합니다. 현대인들은 일상의 불안과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휴가와 취미와 술등을 이용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도박이나 마약에 빠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가지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휴일이 되면 복잡하고 억눌린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다보니 교통체증과 복잡한 인파 속에서 또 다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설령 맘껏 쉬고 즐겼다 하더라도 또 다시 갈등과 문제가 많은 현실 속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평안과 안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그날 밤 제자들의 심정
지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이제 곧 그들을 떠나시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매우 불안하고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직 주님만 따랐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께서 떠나가신다고 하십니다. 제자들에게 그것은 곧 신앙의 대상을 잃어버리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 동안 제자들에게는 예수님만 함께 계신다면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공격하고 모함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살벌한 분위 속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으셨고, 그들의 모든 공격을 통쾌하게 막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놀라운 이적들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불안하고 답답하여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27상)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떤 평안을 주시겠다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신다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다른 평안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27하)
세상이 주는 평안은 어떤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없으면 평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어려운 일이 닥쳐오면 모든 평안이 다 깨져버립니다. 실제로 어려운 일이 있는데도 그것을 모르고 있을 때는 또 평안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평안은 사라져버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이 순조롭게 잘 되면 평안한 줄 압니다. 건강하고 자녀들이 잘 자라며, 사업이나 직장이 형통하면 평안합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게 되면 다른 것이 다 갖추어져 있어도 평안하지 못합니다. 물질적으로 큰 손실을 입으면 다른 것이 다 좋아도 평안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이 주는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주는 평안은 진정한 평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진정한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어떤 평안입니까?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아무 문제가 없기 때문에 오는 평안이 아닙니다. 크고 엄청난 문제가 닥쳐왔음에도 불구하고 누리는 평안입니다. 심지어는 죽음 앞에서도 누리는 평안입니다. 어떻게 어려운 문제와 죽음 앞에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바로 이 평안을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지금 너무나도 두려운 일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믿고 따랐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하시는데 제자들이 무사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비참하게 처형을 당해 죽으시는데 제자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제자들을 떠나가시면 그들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을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모든 문제와 위기 가운데서도 누릴 수 있는 평안이었습니다.
어떻게 평안할 수 있는가?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를 바로 앞에 두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얼굴은 진정으로 평안했습니다. 제자들도 그토록 평안한 예수님의 얼굴을 보면서 차차 마음의 평안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앞에 두신 예수님은 어떻게 그토록 평안할 수가 있었을까요? 28절의 말씀에서 우리는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시는 것을 기뻐해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어떻게 기뻐하라는 것입니까? 그 일을 기뻐해야 할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영광을 받으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아셨기 때문에 평안한 마음으로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아버지께서 나보다 크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이단들은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성자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성부와 성자는 그 신성과 영광과 능력과 존귀가 동등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신성으로는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지금은 인류구원을 위해 자신을 낮추사 인성을 입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리에 계셨습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긴 채 철저히 순종하고 계십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신 그 절대적인 신뢰가 예수님께서 온전한 평안을 누리시는 비결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가시지만,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자신을 붙드실 줄을 확실히 믿고 계셨습니다. 이런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앞에서 그렇게 평안하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확신은 30절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말을 많이 하지 않겠다고 하신 것은 이제 그럴 시간이 없다는 뜻입니다. 잠시 후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곧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보낸 사람들에게 잡히시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사탄의 하수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 임금은 사탄의 세력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예수님과 관계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탄의 세력들에게 잡히시고 죽으시게 되는 것은 무슨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으시며, 사탄의 세력들은 예수님에게 손가락 하나도 댈 권리가 없습니다. 마귀에게는 예수님을 해할 권세가 조금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은 그들에게 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을까요? 그것은 사탄이 자기 뜻대로 행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셨던 것입니다. 사탄의 세력들은 단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사용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셨으며, 그래서 그렇게 평안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평안을 누리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도 온전히 평안을 누리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 속에서도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써 가능합니다. 나는 연약하고 무기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전능하신 능력과 권세로 만물을 홀로 다스리십니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인 나를 위해 모든 일을 가장 선하고 아름답게 이루어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며 돌보시기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크심이라” 예수님의 말씀은 얼마나 뜨겁고 확신에 찬 신앙고백입니까? 이 믿음을 가진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신앙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그 어떤 어려움과 문제 속에서도 평안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무엇도 우리를 해치거나 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
모든 일은 주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진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말씀해주심으로 제자들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29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장차 일어날 일들, 즉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에 대해서 미리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을 준비시키시기 위한 것이었으며, 그 모든 일이 이루어질 때 믿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과연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으며,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들 역시 영원하신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확실히 믿게 될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이것을 분명히 알고 믿게 될 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평안할 수 있게 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우리는 쉴 새 없이 닥쳐오는 문제와 풍파에 시달리며 삽니다. 때로는 우리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들 중에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벗어나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선한 결과를 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할 때, 모든 것이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기억할 때,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도 평안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시는 이유 - 약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때문
사람들이 보기에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잡혀가시고 조롱과 멸시와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것은 힘이 없기 때문인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버지를 사랑하셔서 그 명하신 대로 순종하신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다”(31절)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실 때의 모습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힘이 없어서 잡혀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왔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한 마디 말씀에 모두 땅에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유다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아랫사람들을 데리고 등과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그들과 함께 섰더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그니라 하실 때에 그들이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요18:3-6)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을 동원하셔서 이 사람들을 멸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마26:53)
예수님께서 그렇게 잡혀가신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기꺼이 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셔서 그 명하신 대로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때로 성도는 세상에서 연약할 때가 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욕을 먹고 불이익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두려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힘이 없어서 당하는 일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이런 성도를 그냥 내버려두시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눅21:15-18)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순종하기 위해서 자원해서 연약한 모습을 취하고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도 성도는 평안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안을 주십니다.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려운 일이 생기지 않으면 평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어려운 일이 닥쳐오면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세상에는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항상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이 있습니다. 성도에게도 많은 어려움과 문제가 닥쳐옵니다. 그러나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 평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어려움과 문제도 오직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문제와 어려움까지도 우리에게 선한 결과를 이루게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죽음 앞에서도 평안할 수 있습니다. “어둔 그늘 나를 에워쌀 때에 주가 함께 계심 믿고 자려네 죽은 후에 천국에서 깨어나 예수 함께 길이길이 살리라 어디를 가든지 겁낼 것 없네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찬440장 3절)
어려움이 닥치고 마음속에 불안과 두려움이 몰려올 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일들을 절대적으로 주관하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처럼 “하나님은 크시다!”라고 고백하십시오.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평안이 당신의 마음속에 충만하게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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