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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요16:25-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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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8·06·14
당신은 하나님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자비로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무한대로 사랑하십니다. 당신은 이 하나님을 아십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이 정도는 누구나 알고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지식적으로만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온 마음과 모든 삶속에 충만하도록 아느냐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온몸이 전율하도록 깨닫고 무슨 일을 만나도 더 이상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이 터지도록 깨닫고 주체할 수 없는 감사와 감격의 눈물로 찬양을 드려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강하게 붙들어주시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이제 무슨 일을 만나도 안심이 됩니까?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고 사모하여 그 뜻대로 사는 것이 당신의 소원이 되었습니까?
불 말과 불 병거
예를 들어봅시다. 엘리사 선지자 때 있었던 일입니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공격해올 때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에게 아람 군대가 오는 길목을 미리 알려주어 방비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아람은 월등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스라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엘리사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아람 왕은 군대를 보내어 엘리사가 살고 있던 성을 포위하게 했습니다. 그 날 아침 선지자의 사환이 성을 포위한 아람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며 엘리사에게 보고했을 때, 엘리사는 하나님께서 사환의 눈을 열어 보게 해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눈이 밝아진 사환이 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이 일찍이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읍을 에워쌌는지라 그의 사환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하니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원하건대 그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청년의 눈을 여시매 그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왕하6:15-17) 엘리사는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사닥다리
야곱은 아버지를 속이고 형의 축복을 가로챘다가 형의 복수를 피해 삼촌 집으로 도망을 가고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밤이 되어 빈들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 무방비 상태로 빈들에서 잠이 든 야곱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3-15) 이 때 야곱이 한 말을 보십시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창28:16) 이렇게 하나님을 만났던 야곱은 그 이후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 간구하여 해결을 받게 됩니다. 고향으로 돌아올 때 형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밤을 새워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과 씨름하여 해결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한 번 체험적으로 알게 되면 이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불굴의 선지자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러한 예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들을 보십시오. 먼저 이사야를 봅시다. 이사야는 성전에 올라갔다가 영광의 하나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사6:1-3,5-8) 이렇게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이사야는 흔들림 없이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어떻습니까?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렘1:9-10)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만져주시자 그는 극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불굴의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에스겔의 경우를 봅시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하시기로 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에 머물렀는데 내가 전에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영광과 같은지라 내가 곧 엎드리니 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겔3:22-24)
이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만나 뵙고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감당해야 할 사명은 너무나도 힘들고 막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만난 그 체험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루만지시고 붙들어주신 그 체험이 그들을 어떤 상황에서도 견고하게 사명을 감당하는 위대한 선지자로 만들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이렇게 알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우리는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며,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문제들을 능히 극복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이렇게 만나며 알 수 있게 될까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문제를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 이 복된 은혜를 힘입게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실 때 비유를 사용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비유로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25절)
여기서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것은 제자들에게 진리를 완전히 드러내시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정말 중요한 진리를 그들에게 말씀하셨지만, 그들이 그 모든 것을 완전히 알 수 있게 하시지는 않으셨던 것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이 그 모든 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제자들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중요한 진리들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알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제 비유로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밝히 깨닫게 하실 때가 온다고 하셨습니다.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25하)
지금 제자들은 중대한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진리를 완전히 깨닫지 못했지만 이제 곧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되는 날이 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진리를 다 모른다고 해서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기초적인 복음만 듣고 믿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더 온전히 깨닫도록 사모하며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우리가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되면 그야말로 성숙되고 온전한 신앙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밝히 알게 되어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감추신 진리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좀 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15장에서 포도나무 비유를 말씀하셨고, 16장21절에서는 해산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유들은 제자들에게 진리를 보다 쉽고 분명하게 가르치기 위한 것이지 숨기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완전히 드러내지 않으시고 숨기신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28절에서 우리는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시니”
이 말씀은 예수님의 소명과 사역과 생애를 한 마디로 압축하신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비유를 사용하지 않고 분명히 드러내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도 하지 아니 하시니”(29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셨으며, 이제 곧 하나님께로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일에 대해서 좀 애매한 표현을 사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16절) 이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을 보십시오.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17-18절) 이것이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경우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가장 많이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 진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라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 때문에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정죄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 자체가 너무나도 큰 신비였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은 분명히 사람이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을 다반사로 행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사람이셨습니다. 얼마나 이상하고 신비로운 일입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잘 믿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믿는다고 했다가, 다시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육신 자체가 비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비유는 ‘알쏭달쏭하다’라는 뜻입니다.
특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감추신 것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가리켜 “인자가 영광을 받는다”고 하셨는가 하면, “아버지께로 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 가신다는데, 어떻게 가시게 될 것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몇 번이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잡히시고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제자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잡히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더욱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이 그 사실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잡히셔서 이리저리로 끌려 다니며 심문을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발가벗겨 참혹한 채찍질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온갖 모욕과 수치와 조롱과 처절한 고통을 당하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이 사실을 처음부터 제대로 알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그들은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 미치거나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사실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때가 오면 제자들은 이 모든 것을 밝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 ‘때’는 바로 성령께서 오시는 때를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이 모든 것들을 온전히 알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 때 제자들은 진리를 분명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깨달음
본문에서 우리는 이제 제자들이 차원이 다르게 말씀을 깨닫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말하되 지금은 밝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지금에야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또 사람의 물음을 기다리시지 않는 줄 아나이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29-30절)
이 말씀은 제자들이 비로소 모든 말씀을 온전히 깨닫게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제자들에게 다른 차원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제 비유를 사용하시지 않고 밝히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의문스러워하는 것을 정확이 짚어서 하나하나 설명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로써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심을 우리가 믿사옵나이다”(30하)
제자들은 아직까지도 예수님께서 떠나시는 것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서서히 진리를 새롭게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신성을 다시 한 번 분명히 깨닫게 되었고, 진정으로 확신있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새로운 지각을 갖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이렇게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27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실 정도로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당신은 하나님의 이 사랑을 진정으로 알고 있습니까?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이 진리를 단지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것은 이론과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체험적, 직관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더 이상 어떤 설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나를 무한히 사랑하시는 것이 확실히 깨달아지고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충만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나를 무궁히 사랑하시는 이 사랑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악한 것들과 시험을 능히 이기고도 남겠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깨달아 모든 시련과 문제들을 능히 이기며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가 진리를 온전히 깨달으며,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알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진리를 온전히 깨닫고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알 수 있을까요?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셔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과 지각을 여셔서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직관적으로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이 새롭게 깨달아지고 체험되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과 행복과 가슴 벅찬 감격이 밀려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히 알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혼란과 어둠과 방황이 물러가게 되며, 어떤 시련과 역경도 이길 수 있는 믿음이 생깁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제자들의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처음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들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만일 그때 그들이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서 낱낱이 다 알았더라면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아 미치거나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성령께서 그들에게 임하시자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밝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 소망 없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렇게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하셨다는 것을 온전히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우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그 사랑에 감격하고 녹아져서 전혀 딴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십자가를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하게 되었고,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담대히 전하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시고 진리와 하나님에 대해서 깨닫게 해주시자 이렇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닫게 될 때
오늘 당신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있습니까? 이 시간 듣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 꿀처럼 달게 느껴집니다. 그 말씀이 당신의 영혼 깊숙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설교를 들을 때 따분해 하거나 졸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어떤 연예인이 와서 세상 이야기를 한다면 너무나도 재미있어 할 것입니다. 직장에서 성공하는 법, 자녀들의 성적이 쑥쑥 올라서 대학입시에 성공하는 비결을 이야기한다면 흥미진진하게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오늘 우리에게 별 상관이 없게 느껴집니다. 이런 진리가 사업과 입시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꾸만 부담스럽고 언짢은 메시지가 선포될 때도 있습니다. 성경의 진리가 좀처럼 마음에 와 닿질 않습니다. 그래서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게 될 때가 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는 벌써 왔습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깨닫고 있으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깨달은 진리가, 하나님을 만난 그들의 체험이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습니다. 이제 그들은 어떤 시련과 고난도 능히 이기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온전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밝히 깨달아질 때 우리 안에 있던 의심과 어두움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채워집니다. 그것은 곧 주님께서 내 안에 충만하게 거하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갑자기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주체할 수 없도록 압도적으로 밀려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됩니다. 나를 구원하신 그 사랑, 십자가의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신가를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오직 이 사랑으로 내가 살게 되었고, 소망이 있게 되었음을 절실히 알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논리적으로 연구한 결과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나의 마음을 여시고 깨닫게 해주심으로 이런 일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경우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온갖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이 모든 것을 분명히 알게 해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제자들이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알았더라면 제 정신으로 견딜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성령께서 그들에게 강림하셨을 때 그들은 모든 것을 밝히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에 대해서 온전히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거룩하신 전능자가 죄인들을 위해 그토록 참혹하게 죽으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온몸이 떨리는 감격과 은혜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나타내주셨습니다. 그들은 신비롭고 놀라운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통해 놀라운 이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수많은 영혼들이 회개하고 돌아와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이 모든 계획에 대해서 분명히 깨닫게 되자 그들은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깨달음을 주옵소서
오늘 나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진리를 이렇게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도 역시 우리에게 이러한 깨달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우리를 뜨겁게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무엇을 통해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이 자리로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교회에 가서 그저 예배에 참석하고 돌아오라고 우리를 여기에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개인적으로 만나기 원하셔서 이 자리로 부르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단지 한 가지가 문제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진정으로 하나님 만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험과 환난이 많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성도는 이 모든 것을 능히 이기고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누리며 맘껏 하나님께 충성하며 살아갑니다. 반면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도 힘들게, 또는 희미하고 무기력하게 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 차이가 어디서 옵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뜨거운 체험, 그리고 말씀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대한 문제입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26절)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 제자들이 기도했다는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슨 문제든지 예수님께서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기도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큰 확신과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질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놀랍게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이 기도야말로 제자들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체험적으로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하면 무엇이나 응답받게 된다고 몇 번이고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기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깊이 만나며 풍성한 응답을 받습니다. 그래서 한 번 기도의 맛을 알게 되면 평생 기도하기를 더욱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 그 말씀을 깊이 깨닫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기도가 얼마나 능력있고 놀라운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요즘 우리가 묵상해왔던 히스기야의 경우를 보십시오. 그는 문제가 발생하자 즉시 하나님께 달려갔습니다. 그는 앗수르 왕 산헤립이 보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산헤립이 하나님을 모욕하고 우리를 위협하기 위해서 보낸 이 편지를 좀 보십시오.” 히스기야의 기도는 얼마나 즉각적이고 실제적이었는지 모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응답도 즉각적이고 실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앗수르 진영에 사자를 보내사 그 군대를 진멸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로 당시 세계를 제패하고 있던 앗수르를 완전히 물리치고 승리를 얻었습니다. 히스기야가 한 것은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그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통곡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즉시 이사야 선지자를 보내셔서 그의 수명을 연장해주시고 그를 회복시켜주시겠다고 응답하셨습니다. 히스기야의 기도와 하나님의 응답은 즉각적이고 실제적이었습니다.
오늘 당신도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무슨 문제를 만나든지 예수님으로 이름으로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갑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반갑게 맞이해주시고 사랑을 부어주시며 안아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선하게 해결해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안심하게 됩니까?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깨닫고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기도 합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수많은 문제들을 만나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면서도 기도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다면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이제는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십시오. 그리고 놀라운 응답을 체험하십시오. 이 모든 일들을 통해 당신은 하나님을 인격적, 체험적으로 확실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험한 세상에서 평안과 승리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더욱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32절) 예수님께서 잡히시고 끌려가실 때, 그리고 모든 고난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죽으실 때 제자들은 너무나도 두려워서 예수님을 버리고 다 흩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홀로 모든 고난을 당하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일을 미리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제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평안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절)
우리는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믿음으로 살고자 하는 성도일수록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이 길을 가셨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해해주거나 도와주는 사람 없이, 예수님께서는 홀로 이 모든 일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그 사랑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심으로 이 모든 것을 이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세상을 이기셨던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지금 이 험한 세상에서 싸우고 있는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33절) 오늘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나를 놓치시거나 포기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6-39)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넉넉히 이기게 될 것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 맘에 강 같은 평안이 가득히 밀려오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을 더욱 사모하십시오. 말씀을 더욱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을 더욱 뜨겁게 만나기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시험과 환난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능히 이길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시려고 준비해놓고 계십니다. 보십시오. 오늘 당신은 설교를 들으면서 무엇을 깨닫습니까? 집중해서 말씀을 듣다보면 나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문제가 다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지금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가 설교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문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설교자가 어떻게 그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설교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지극히 사랑하시며,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고자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무궁하신 사랑으로, 변치 않는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시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깨닫느냐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뜨겁게 체험하고 있습니까?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께서 나를 강하게 사로잡아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인도해주시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문제가 있습니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응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로 주님처럼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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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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