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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과 신적치료

수도관상피정 토마스 키팅............... 조회 수 2287 추천 수 0 2010.12.29 22: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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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관상과 신적치료

 

토마스 키팅   - 신부 -

 

"너는 누구인가?" 이것이 영적 여정 후반부에 제기되는 중대한 질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정서적 욕구 덩어리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것들 중에 특히 세가지, 즉 안전과 생존, 애정과 존중, 힘과 지배가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들이 어느 정도 충족되지 않으면 유아들은 우울과 무감각에 빠지고 마침내는 심리적 기아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의 기본 욕구가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이러한 생물적 욕구들이, 실재든, 가상이든, 충족되느냐 제한 되느냐가 이후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행복을 찿는 데 쏟는 에너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늘어나는 경향이 있습니다.어릴 때 받은 거부의 고통은 무의식에 억압되어서, 그것이 일상 생활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와 성인으로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일상적 심리 차원에서 갖는 삶의 체험은 외적인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정서적 반응에 지배되는 것입니다.어떤 체험은 의식적 차원이지만, 많은 무의식에 뿌리박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인간 조건이라는 질병입니다.

 

매일의 생활은 우리의 행복 추구 정서 프로그램을 좌절시키는 사건을 끓임없이 촉발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두려움, 분노, 낙담 같은 괴로움같은 감정들이 일어납니다. 불안이나 괴로움을 경험한다는 사실은 무의식 속에서 행복 추구 정서 프로그램이 막 좌절되었다는 표지입니다. 인간의 속성상 상상과 감정은 옛 시계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작동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감정으로 인해 흥분하게 되면, 상상력은 무의식 속에 기록된 테이프들 중에서 그 감정의 강도에 맞는 것을 즉시 불러들입니다.

 

이러한 일은 미미할 정도부터 강한 정도까지, 그 강도는 다르지만 우리에게 매일 일어납니다.

우리의 무의식적 가치 체계는 종종 특정 사건이나 사람에게 도전받습니다. 즉시 우리는 감정적 혼란뿐 아니라 심각한 내면의 대화에 들어갑니다.. 우리가만일 이 과정을 거꾸로 되돌리지 않으면 그 과정이 일어날 때마다, 언제나 그러했던(똑같이 반복되는) 행복 추구 정서 프로그램과 그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좌절감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이 인생을 영위하는 방식입니까? 이러한 상황 때문에 예수님께서 회개하라는, 곧 우리의 의식적 . 무의식적 동기를 바꾸고, 우리가 행복을 찿는곳을 바꾸라는 권고를 하기에 이릅니다. 우리에게는 신적 치료가 필요합니다. (신적치료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하느님과의 친밀> - 토마스 키팅 지음, 을 보라)

 

신적 치료는 익명의 알코올 중독자 모임처럼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고우리 삶을 마음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 기초를 둡니다. 우리는 비교적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신적 현존 인식에 방해되는 것들을 놓아버리는 데서 오는 진정한 행복은 체험하지 못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적 인식이 우리의 정상적 인식이 되게끔 하셨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인식은 무엇에 비길 수 있었까요? 이것은 마치 좋은 영화를 보면서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영화관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 버리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성 수련을 통하여 우리의 이기적인 행복 추구 정서 프로그램을 와해시키지 않으면, 사건들과 사람들 혹은 계획과 기억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신적치료의 일차적인 장소인 관상 기도를 하도록 준비시키는, 향심기도 같은 수련으로, (아직 그분이 누구신지 모르는 채)하느님과 그리고 나 자신과 있기 위해서만 매일 30분을 침묵과 고독에 할애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러한 수련을 통하여 오는 깊은 휴식과 침묵의 결과로 우리의 정서 프로그램이 상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 프로그램들은 우리가 아직 하느님 현존이 주는 확신과 선성을 알지 못할 때 형성된 것입니다.

 

하느님 현존이 진정한 안전입니다. 더 이상 다른 것은 없습니다.

 신적사랑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인정합니다.(신적 사랑은 우리에 대한 충만한한 긍정입니다.)내적 자유는 우리의 집착과 혐오, 당위와 정서 프로그램들을 놓아버릴 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이러한 것들은 어린 시절부터 지녀온 것이지만 어른으로서의 삶에 결코 맞지 않습니다.

 

향심기도와 같은 영성 수련을 통하여 우리는 영적 인식을 체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일상 생활이 시시한 영화처럼 되어서 우리는 더 이상 등장 인물이나 줄거리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일어나서 영화관을 떠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적 의식과 그 내용들을 자신과 지나치게 동일시했을 때에는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이러한 것은 진정한 자유를 방해하는 폭군입니다. 하느님 자녀로서 누리는 자유란 어떤 사건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내릴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제 존중받고, 통제하며 안전감을 바라는 지속적 충동에 지배 받는 대신 점점 더 자발적으인 동기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교 관상으로 인도하는 향심 기도나 다른 수련들은 우리의 내적 자유로 이끌어 줍니다.

우리는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운 날에 오아시스와 같은 곳입니다. 순전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모든 사람은 자신이 사는 방식이 좀 더 인간적이고 창의적이 되기 위해서라도 매일의 생활 속에 어는 정도 고독과 침묵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영성 훈련은 거짓 자아의 독재에 대한 치료입니다.

이것은 행복 추구 정서 프로그램뿐 아니라 가족과 나라와 종교와 집단에 대한 지나친 동일시를 치료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는 나라와 가족과 종굑와 가정에 어느 정도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흥미롭게도, 예수께서는 자신이 부모를 미워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토라의 네 번째 계명에서 명령한 것과 달리 연로한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돌보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시정해야 할 불의 못 본 척하는 특정 집단(심지어 자신의 가족이라도)에 맹목적을 충성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평화를 위해서나 사랑받기위해서 중대한 문제들을 정직하고 진실하게 다루는 대신 그것들을 덮어버립니다.

 

일단 규칙적인 향심 기도 수련이 몸에 배면, 대개 우리는 기도 때마다 우리 기는들이 비교적 잠잠하고 고요해지는 쉼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생각이 흘러들어오지만, 그것들을 무시하는 법을 배우면서 우리는 신적 감각과 현존 차원이라는 더 심오한 실재가 있습니다. 이것은 일상의 심리적 인식과는 다르며 실재를 인식하는 다른 방식입니다. 그 결과로, 우리 마음이 일상의 평범한 관심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며 고요하게 될 뿐 아니라 몸도 휴식하기 시작합니다. 그 휴식은 잠보다 더 깊은 휴식입니다.

 

무의식에 억압된 것은 우리의 다양한 성향이나 편견, 특히 무의식 속의 특정한 행복 추구 프로그램에 대한 정서적 몰입으로 굳건한 보호를 받습니다. 향심 기도의 깊은 휴식은 우리가 어린 시절의 정서적 상처를 직면하지 못하도록 막아 주었던 방어 기제를 느슨하게 풀어놓습니다. 아동기에 겪는 가장 파괴적인 정서적 상처는 신체적 성적 학대입니다. 어린이의 섬세한 정서 생활에 가해진 손상은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무의식 속에 억압됩니다. 그것들은 심리 치료나 관상 기도를 통해 방어 기제가 풀어지지 않는 한 본인이 알지 못한 채 무의식 속에 남아 있습니다.

 

향심 기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그러나 향심 기도의 깊은 휴식은 일생 동안의 정서적 잡초들을 헐겁게 만듭니다. 우리의 방어가 줄어들면 인격의 어두운 면들, 무의식의 작용(역동) 행복 추구 프로그램에 몰입했던 감정들이 올라 오고, 또한 우리가 특정한 문화적 배경에 지배받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합니다.

 

누구든지, 어느 정도는 문화적 배경의 지배를 받습니다.

가장 위대한 성인들도 문화와의 동일시에서 어느 정도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그러한 과잉 동일시는 향심 기도 중에 도전받습니다. 우리는 우리 일생의 반을 자신의 역할을 찿는 데---어머니, 아버지, 교수, 의사, 사목자, 군인, 사업가, 장인, 등등이 되는데 소비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이러한 역할을 놓아버릴 준비가 되기까지는 결코 그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 또는 적어도 가장 고통스럽지 않은 방법은 영적 여정이라는 과정을 통하는 길입니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는 우리 인격의 어두운 면, 그리고 행복 추구의 거짓 프로그램과 자신의 특정 문화 체계에 정서적으로 힘을 쏟아 부었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합니다.

 

향심 기도 중의 휴식은 깊은 치유를 가져옵니다.

정말로 치유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어두운 면들을 온전히 의식 위로 올라오게 한 다음, 그것을 놓아버리고 하느님께 드려야 합니다.신적 치유는 우리가 하느님과 맺는 약정과 같습니다. 행복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겨 드립니다.

 

이 치유 과정 중에 일어나는 일은 영적 여정에서 갖게 되리라고 예상치 않았던 폭발적 생각들과 원시적 감정들의 짐을 덜어내는 일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러한 것들을 비워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들이 우리 의식을 통과할 때 잘 가라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가 원래 지향으로 되돌아가면--대개 내적으로 하느님께 향한다는 어떤 상징을 통해, 즉, 거룩한 단어를 말하거나 거룩한 경험으로서의 호홉을 따라감으로써--이 과정은 다시 시작됩니다.

 

우리는 휴식으로 나아갑니다. 깊은 휴식은 무의식에 억압되어 있던 것들을 풀어냅니다.

우리는 일종의 정신적 구역질을 경험하고, 이어서 아동기의 소화 안 된 심리적 요소들을 제거한 데서 오는 자유로운 감각을 경험합니다. 신적 치료릏 받는 것은 우리 자신과 인류 전체의 덕분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자신과 행복 추구 프로그램에 대한 우리의 깊은 집착을 처리하시도록 우리가 맡겨드리지 않으면, 우리는 자기 중심적인 부정적 요소를 이 세상에 부어 넣게 되고, 우리의 특정 문화와 교육환경의 편견과 선입경과 과잉 동일시하는 데서 오는 갈등과 사회적 재앙에 한 가지 더 덧붙이는 셈이 될 것입니다. 글로벌 문화와 종교적 신념의 다원화로 진입하는 이 시점에서 이것이 점점 더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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