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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 바라는 겸손한 자의 평안

시편 복음............... 조회 수 3024 추천 수 0 2011.01.04 19:51:41
.........
성경본문 : 시131:1-3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하나님만 바라는 겸손한 자의 평안

본문: 시편131장 1- 3절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윌리엄 캐리는 위대한 선교사이며 우수한 언어학자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인도의 34가지 방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가 선교사로 인도에 왔을 때 어떤 이들은 혐오와 경멸의 눈으로 그를 보았습니다. 어느 만찬회 석상에서 거드름을 피우는 한 사람이 캐리를 망신시키려고 여러 사람이 듣도록 큰 소리로 “캐리씨, 당신은 옛날에 구두짓는 사람이었다면서요?”라고 비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자 캐리는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저는 구두짓는 사람이 아니라 구두 수선공이었습니다.” 자신은 구두를 만들 줄도 모르는 수선공에 불과했다고 겸손히 대답한 것입니다.

 

오랜 선교사역 후 마침내 그가 임종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이 “당신의 장례식 설교에 성경 어느 본문을 택하는 것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나 같은 죄 많은 인간에게 무어라 말해 준다는 것부터 과분하게 생각되지만 꼭 말해준다고 하면 ‘오! 하나님,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주의 많으신 자비를 좇아 내 죄를 도말하소서’라는 구절을 읽어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예수님의 겸손을 잃지 않고 훌륭히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시22:26)

 

본시는 다윗의 작품으로서 하나님을 향한 그의 겸손과 신뢰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깊은 경건과 겸손은 신앙인들에게 더없는 귀감이 됩니다. 다윗처럼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취할 가장 필요한 자세는 바로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와 평강을 베푸십니다. 성숙한 신자일수록 겸손의 미덕을 추구하는 법입니다. 겸손은 무엇입니까? 겸손은 교만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교만은 죄악된 인간의 본성입니다. 이 교만은 바로 마귀의 본질입니다. 교만은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교만한 마음은 자기를 하나님의 자리에 놓습니다. 마음이 교만하면 눈이 교만해집니다. 하나님 없이 큰 일, 즉 자기 중심의 욕망과 야심을 추구합니다. 결국 교만한 마음과 눈은 교만한 행동을 낳습니다. 자기를 높이기 위한 행동을 시도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교만해 지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겸손은 교만을 물리칩니다. 겸손은 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거룩한 비전을 품습니다. 겸손은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은사를 좇아 행동합니다. 겸손은 자기 능력의 한계를 인정해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철저하게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겸손한 자에게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하겠고 사람 중 가난한 자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사29:19)

 

본문 1절은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겸손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다윗은 세 가지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 시편을 시작합니다. 그는 교만치 아니하고, 눈이 높이 아니하며, 큰일을 힘쓰지 않습니다. 이 세 가지를 부정한다고 해서 그가 항상 이 자세를 견지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교만, 거만함, 이기적 욕망은 이전의 그의 삶을 형성했던 것입니다. 감당하지 못할 기이한 일은 하나님의 사역과 경쟁 관계인 영웅적 업적과 개인적 성취를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기 겸손의 새로운 길을 선택합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을 높이고 자기를 드러내며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더 이상 자신을 위하는 일을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한 것을 추구한 것입니다.

 

본문 2 절을 보겠습니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뗀 아이와 같도다”

어떤 묵상집에서 본 예화입니다.

“얼마 전 둘째 아이를 낳은 아내가 몸조리를 하느라고 두 돌 지난 아들을 며칠 동안 할머니 댁에 보냈습니다. 할머니 댁에 간 아들 녀석은 잘 놀다가도 결정적인 때에는 ‘엄마가 해달라’고 악을 쓰며 울어댄다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와 전화 통화라도 하면 ‘엄마가 보고 싶지만 잘 있겠다’고 하고 나서는 얼마 있지 않아 생떼를 쓰다가 지칠 만큼 운 후에야 흐느끼며 겨우 잠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녀석이 있는 큰집에 가서 오랜만에 안아 보니 엄마는 아니지만 아빠의 가슴에 꼬옥 안기면서 떨어질 줄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아들 녀석을 오래 안고 있으면서 느꼈습니다. ‘아, 아이가 엄마를 의지하고 평안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하나님을 유일하신 인도자로 믿고 섬기는 성도들은 어린 아이가 엄마의 품안에서 누리는 큰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엄마 외에는 자기를 보살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는 천진한 아이와 같은 평화를 누릴 수 있어야 그리스도인의 참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겸손은 젖뗀 아이의 중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젖 먹는 아이는 끊임없이 울며 보챕니다. 어머니가 옆에 있어도 젖을 달라고 울어댑니다. 그러나 더 성장한 젖뗀 아이는 어머니가 옆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평온하고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숙한 신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만으로 평온과 만족을 얻습니다. 때로 어렵고 힘들지라도 평온함을 잃지 않습니다. 겸손은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즉 축복이 아니라 축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는 것 입니다. 겸손한 사람, 즉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은 언제나 평온함과 만족감, 행복감이 있습니다. 반대로 교만한 사람의 마음은 시끄럽고 부산합니다. 사람은 그 시선을 하나님에게서 떼게 되면 금방 교만해집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여깁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을 바라는 한 교만해 질 수 없습니다.

어머니 손을 잡고 꽃밭에 놀러갔던 어린이가 꽃을 보자 어머니 손을 뿌리치고는 꽃밭에 들어가서는 이 꽃 저 꽃을 꺾으면서 기뻐했습니다. 한참 후에 주변을 보니 어머니가 안보였습니다. 아이는 앙! 앙! 울면서 손에 가지고 있던 꽃을 땅에 다 던져 버리고 엄마를 찾았습니다. 인생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서는 세상에 그 무엇이든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인생의 참된 평안은 하나님의 얼굴을 내게로 향할 때(민6:26) 주님의 품안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빌3:7-8)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는 철저하게 어린자녀와 같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범죄하였을 때 나단을 통하여 책망을 받자 죄를 자백하며 회개하였습니다(삼하12:1~15, 시51편). 부모가 자녀를 책망할 때 그 자녀가 순종하고 반성하는 모습입니다. 또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겨오려고 했으나 실패한 후 오벧에돔의 집에 안치된 언약궤를 다시 옮겨오기 위해, 이번에는 언약궤를 수레에 싣지 않고 제사장의 어깨에 메어 여섯 걸음씩 뗄 때마다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신의 몸이 드러나는 것도 개의치 않고 어린아이처럼 기뻐 뛰며 춤을 추었습니다. 이를 본 미갈은 다윗을 업신여겼지만, 다윗은 오히려 자기를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신 하나님 앞에서 그와 같이 온 마음을 다해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은 마땅하다면서 미갈을 질책했습니다. 한편 진정한 감사와 찬양을 몰랐던 미갈은 이 일로 인해 평생 자식이 없는 설움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제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운반해 옴으로써 신정 왕국의 기반을 더욱 확고히 다진 다윗은 언약궤를 안치할 성전을 건축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성전 건축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다윗의 뜻과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저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삼하 7:12, 1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비록 다윗의 소원과 계획이 자신의 뜻과 일치된 것은 아니었지만(삼하 7:5∼7),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다윗의 뜨거운 열정과 변함없는 신앙을 보시고 그의 후손을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는 놀라운 축복을 약속해 주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머리숙일 줄 알았습니다.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18: 2-4)

다윗은 위대한 업적을 이룬 왕이었으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듯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어떠했는가를 되돌아보고, 다윗이 하나님을 기뻐하듯이 나는 과연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는 가를 묵상해봅시다.

 

3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시인은 지금까지 개인에게 적용해온 언어를 이스라엘 전체의 공동체에게 선포하면서 그들에게 자신처럼 하나님 안에서 확신과 믿음을 갖고 겸허하게 하나님을 바라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잠22:4)

미국 켄터키 주에 살던 할랜드 샌더스는 65세가 되던 해에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습니다. 호주머니 속의 105달러짜리 수표와 고물 자동차가 그의 재산의 전부였지만, 그는 인생을 이렇게 끝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의 유일한 재주가 닭고기 요리라는 것을 생각해 낸 그는 흰색 양복을 차려입고, 닭고기 레시피와 양념 통을 들고 식당 주인들을 찾아 나섰는데, 그렇게 시작된 프랜차이즈 사업이 바로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FC)입니다. 그는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전 세계 20만 마일을 여행하면서 KFC 왕국을 건설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청장년 시절 무척 교만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합니다. 그런데 미국에 닥친 경제 불황을 겪으면서 사업은 위축되고, 경영하던 식당도 화재로 다 타버리고 맙니다. 유일한 희망이었던 아들마저 잃고 아내도 그의 곁을 떠나자 그는 일종의 정신적 공황을 앓습니다. 환갑이 넘어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한 그는 어느 날 예배당 앞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한 여인의 찬송 소리를 듣습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찬송가 432장이었습니다. 이 찬송을 듣고 그는 하염없이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 교만하게 살았던 지난날을 회개하고 자신을 낮추기로 결단합니다. 그리고 양념 통을 들고 다시 일어섭니다. 이것이 그의 65세 인생에서 재개의 계기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그가 자신을 낮추자 하나님이 그를 높이기 시작하였고 평안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잠29: 23)

오늘 우리도 우리에게 주신 은사와 물질들을 감사하면서 자신을 낮추십시오. 오직 하나님만 바라는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은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본문을 다시 정리해 봅시다. 우리가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드리는데 있습니다.(1)

 

우리가 마음에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지나친 욕심에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에 너무 미련을 두고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우리 마음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이 어느 날 자신은 화려한 왕궁에 사는데 하나님의 집은 초라한 천막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하려는데 하나님은 거절하셨습니다.(삼하7장) 성도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좋은 일도 하나님이 거절하시면 성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거절을 우기지 않았습니다. 억지를 부려 제 의견을 고집스럽게 내세우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거절을 수용하고 타인이 그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1절은 다윗의 이러한 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거절한 성전을 짓겠다고 고집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거절하신 성전 건축을 자신이 미치지 못할 큰일로 여겼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마음에 고요한 평화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큰 포부와 꿈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윗처럼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꿈을 거절한다면 그 꿈이 아무리 선하고 좋아도 다윗처럼 우리는 그 꿈을 접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은 고요한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약1:14-15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고했습니다. 마음의 고요한 평화를 원한다면 지나친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해야 합니다.

 

2. 마음의 고요한 평화는 주님 품에 안기는데 있습니다.(2)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모습이 아기가 엄마의 품에 안겨 웃는 모습일 것입니다. 아기가 엄마의 젖을 충분히 먹고 더 이상 부족함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아기는 엄마의 품안에서 고요한 평화를 누립니다. 엄마가 바로 아기의 평화요 행복입니다. 아기의 가장 큰 불안과 위협은 엄마가 그에게서 떠나는 것입니다. 아기에게는 엄마 밖의 그 무엇도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2절에 다윗은 자신이 마음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엄마의 젖보다 엄마의 존재자체입니다. 성도들의 행복한 고백도 이와 같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때로는 주님의 특별한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평안은 선물자체보다도 주님이 우리와 함께한 사실 때문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했습니다.(마28:20)

3. 마음의 고요한 평화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는데 있습니다.(3)

제 2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독일군의 연이은 폭격 때문에 영국 런던 시민들이 불안하여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평안히 잠을 주무시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비결을 묻자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매일 밤 기도한답니다. 그러고 나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확신이 들어 평안하게 잠자리에 들게 되지요. 사실 하나님과 내가 둘이 다 깨어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습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보살펴주시는 그분께서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는 어떤 환경에서 평안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시 121:3)

성도 여러분! 진정한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운 사람, 즉 하나님 앞에서 겸허하게 하고 낮추는 그 심령에게 임합니다. 하나님께서 참된 평안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사람, 낮아진 마음이 된 심령은 평안을 누이게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지금부토 영원까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심령에게 참된 평강과 행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성경은 내일도 중요하지만 오늘도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다.”고 했습니다.(마6:34) 3절에는 우리가 ‘지금부터’ 여호와를 바라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현재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이 내일도 역시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을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로 알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지금부터 영원까지’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을 지나치게 결과 지향적으로 살면 오늘의 행복을 놓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예배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서 자유롭게 호흡하며 누릴 수 있는 것들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그 옛날 다윗에게 임한 그 고요한 마음의 평화가 오늘 우리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이 거절하시는 것을 겸손히 수용합시다. 그리고 젖을 뗀 아기처럼 주님의 품에 머물러 삽시다. 그리고 지금 현재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을 소망하고 바랍시다.

 

*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본받기 원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고 낮아져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참 평안을 통해 우리의 삶이 복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겸손함을 제 마음에 가득 담기 원합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이 하나님께 있음을 신뢰하고, 오직 기도함으로 해결을 얻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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