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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있는 사람

시편 복음............... 조회 수 2906 추천 수 0 2011.01.06 07: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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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1-6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복 있는 사람

본문: 시1:1-6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새해 첫주일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 위에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총 150편으로 구성된 시편은 2/5의 내용이 탄원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한탄과 고뇌와 번민, 환난에서 견딜 수 없는 몸부림 속에서 하나님 앞에 구원을 호소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구하며 하나님의 은총을 구한 그런 기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생의 고뇌와 번민, 환난과 고통을 하나님께서 아시고 어떻게 하면 이런 인생이 복되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기본적인 축복의 굴레를 누리며 살 수 있는 인생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 교훈해주고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첫 글자부터 복이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복이란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으로만 국한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기독교에서 말하는 복은 전혀 그와 다른 더 높은 차원에서의 복입니다. 예컨대 예수 믿는 것도 복이고, 직분 받는 것도 복이며, 구원 받은 것도 복이고, 성령 충만한 것도 복이며, 내세에 천국을 소유한 것도 복입니다. 우리는 이미 천국을 확보한 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미 천국을 확보한 자들이기 때문에 땅을 보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을 생각하면서 소망 중에 즐겁게 살아갑니다.

 

복, 축복, 행복 등은 다 비슷한 말로서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소원 사항입니다. 요즈음 기독교 신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기복 신앙을 꼬집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교가 인간의 축복과 행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 신구약 성경은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메시지가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는 일반종교나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복에 대한 이해와 성경이 말하는 축복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읽은 시편 1편의 내용은 성도들이 일생을 살아가는데 참된 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놀라운 말씀입니다.

우리는 벌써 복 받은 사람입니다. 물론 이 본문의 말씀은 복 있는 사람의 조건을 말씀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 "복 있는"이란 말은 실제로 복수로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오는 풍성한 복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시편 1편의 사상은 렘17:5-8절에 사상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첫설교인 산상설교에서 팔복을 설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에게 은혜와, 구원과 사랑의 축복으로 찾아 오시는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성경은 의인과 악인을 구별했습니다만 의인이기 때문에 복받는 것이 아니고 사실 복 받은, 사람이기에 의로운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이니 복이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한결같이 자기중심적이며 향락추구적이며, 현세적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욕망을 충족 시켜주는 것을 축복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만큼 복을 추구하는 민족도 없습니다. 수저에도 복자를 새겨서 밥을 먹고 벼개잎에도 복자를 수놓아 베고, 복자로 수놓은 이불을 덮고 잠을 잘 정도로 복을 추구합니다. 자녀가 많고, 건강하고, 눈이 밝으며, 치아가 좋아 먹고 싶은 것을 잘먹는 것 등을 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계시하여 준 축복관은 하나님 중심적이며, 하나님의 말씀 중심적이며, 하나님의 은혜 중심이며, 공동체적이며, 죄를 극복하는 것이 축복이란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이 성경을 볼 때 물론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를 소원하고 기도해야 하겠지만,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안에 있는 사람은 벌써 복 받은 사람이란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시편 1편은 이미 복받은 성도가 살아가야 할 삶의 지침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벌써 복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벌써 하나님의 은혜로 사랑 받은 사람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받은 사람으로서 지혜가 있어야 하고, 복받은 사람으로서의 삶의 길이 있어야 하고 복받은 사람의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이 시편 기자의 호소입니다.

 

이 성경은 복받은 사람의 삶의 소극적 자세로 악인의 죄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어찌보면 이 성경의 내용은 복은 선택적인 듯이 보입니다. 내 스스로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면 축복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하나님의 축복 받은 백성으로 살아가야 할 삶의 철학이며, 확신이며, 뜨거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금년 한 해를 살아가면서 곁길로 가게 하는 유혹과 자신을 교만케 하는 함정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치도 못할 뿐 아니라 우리는 도리어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주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며 죄악의 포로가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함정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선택받은 백성이며 왕같은 족속이며 하나님의 축복받은 백성이란 확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명과 소명받은 택한 백성으로서, 축복받은 사람은 적어도 앉을 자리에 앉아야 하며 올바른 길을 걸어가야 하며 악한 자의 꾀에 빠져가는 어리석음과 무지를 범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는 복받은 사람으로서 긍지와 자부심과 확신을 가지고 죄를 이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축복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죄를 이기는 것이 축복입니다. 죄를 정복하지 않고는 세상에 축복도 평화도 없습니다. 죄는 인간을 망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죄는 우리를 좌절케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죄를 이기는 축복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까? 성경은 그 대답을 주셨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묵상함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축복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축복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축복일 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것을 다 가져도, 훌륭한 학문이 있어도, 아무리 좋은 직장을 가져도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고 도리어 저주가 됩니다. 우리의 축복은 그래서 하나님 중심의 축복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축복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쾌락주의에서 얻는 일시적인 기쁨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입니다.

시16:2절에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나이다"라고 고백한 시편기자의 고백은 옳습니다. 예수님의 산상보훈 가운데 팔복도 하나님 중심 사상으로 보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축복(祝福)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시119:105절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금년 한해 첫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앞에 펼쳐질 길을 알지 못하고 불확실의 먹구름이 드리운 채 출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고 그 말씀에 순종(順從)하며 살 때에 우리의 앞길은 환하게 빛날 것이며, 축복된 길이 될 줄 믿습니다.

 

본문 1, 2절을 읽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편은 의인과 악인을 선명한 이미지로 대조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전체 시편의 서론에 해당되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의 두 가지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악인이 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점진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악행은 먼저 생각을 통해 옵니다. 악행은 생각을 통해 다가와서 행동으로 옮겨지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죄인의 길’이란 악한 행동이 습관화되어 체질화된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깊어지면 죄악은 권세를 가지게 마련입니다. 죄악은 마침내 힘 있는 ‘자리’를 차지하게 되며 그 자리에 앉게 된 악인은 죄악을 일삼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악인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시편 기자는 악인과 구별되는 복 있는 사람의 특징을 한 마디로 ‘말씀을 가까이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말씀을 즐거워하는 자입니다. 말씀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새해를 시작하는 첫 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올 한 해를 살아가기로 굳게 결심합시다.

 

본문 3절을 읽겠습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영국 런던의 템스 강 근처에 있는 재판소 뜰에는 유명한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습니다. 그 포도나무는 유난히 맛이 좋은 열매를 맺기에, 식물학자들이 그 포도를 종자로 하여 우수한 포도를 보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학자들은 다른 포도나무와 별다른 특징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 포도나무는 뿌리가 템스 강 밑바닥까지 뻗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그 나무는 뿌리가 강 밑바닥까지 뻗어 있었기 때문에 수분을 충분히 빨아들일 수 있었고, 아울러 양분도 충분히 공급받아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에서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이란 뿌리를 물 근원에 두고 있는 그 포도나무처럼 하나님께 믿음의 뿌리를 두고 있는 성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라고 해서 환난과 어려움이 닥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심한 기근과 같은 어려움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께 믿음의 뿌리를 두고 있는 성도들은 그 모든 환난을 이겨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146: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축복받은 사람은 시냇가에 심겨진 상록수처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복받은 사람을 기술하면서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입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복있는 사람의 행복을 이토록 아름답고 절묘하게 표현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복 받은 사람이 의인이며, 의인이 곧 하나님의, 구속함을 받은 성도이며 이 사람은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같다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한국 사람으로서는 그렇게 감동적이 아닐지 모르지만 광야와 사막이 널려 있는 팔레스틴 지방에서의 시냇가에 심은 나무에 대한 이미지는 그야말로 행복에 대한 가장 적절하고 완전한 시적 표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예레미야 17장 7, 8절에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가뭄이 오고 계절이 바뀌어도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하는 상록수를 복받은 사람에 비유한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복받은 사람이며,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인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 말씀 없이 사는 삶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본문 4절을 보겠습니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며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악인이 하는 모든 것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먼저 악인인가? 의인인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의인과 악인이 함께 살아갑니다. 양과 염소, 알곡과 죽정이가 함께 존재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실 때에는 악인은 버림을 당하고 의인은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25:34)

바람을 잡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육신적인 것, 즉 내 눈으로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것 대부분은 바람입니다. 바람이 아닌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힘쓰십시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8:6)

‘어떻게 하면 세상에서 출세하고 부해질까? 쾌락을 즐길까? 내 몸을 멋있고 아름답게 할까?’ 등의 생각은 육신의 생각이며, 하나님의 원수가 되며, 바람을 쫓는 것입니다. 반면에 영의 생각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며 살까?’ 등의 생각입니다.

“그들은 지붕의 풀과 같을지어다 그것은 자라기 전에 마르는 것이라”(시129:6)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본문 5, 6절에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 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 하리로다 무릇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악인은 심판을 당해 망할 것이며 의인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겔33:30)

성경은 단순히 권선징악(勸善懲惡)이나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단순히 축복과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라는 교훈이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본질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이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의 승리를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적으로 볼 때 우리는 참으로 박복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의 정황을 보면 물가는 치솟고, 정치나 경제에 대한 희망도 없고, 사회 구조는 생산직을 버리고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향락산업에 종사하고 사회의 도덕적 타락은 극에 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살펴 볼 때, 건강문제로 늘 괴로워하고 자녀문제로 늘 가슴앓이를 하고 경제적 압박으로 늘 위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자신을 한없이 학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희망과 꿈을 가지고 한해를 시작합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목자되시는 하나님을 믿고 사는 자체가 축복이며, 꿈이며, 희망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축복받은 사람이란 자각이 없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오늘날은 흔히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확실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는 이미 축복받은 사람이며, 축복받은 우리는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있고 우리가 앉을 자리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며 살아가는 삶의 방향이 결정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복받은 사람이며, 우리교회는 복받은 교회이며, 우리 민족은 이미 복받은 민족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1. 악한 일을 멀리하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여기에서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 이 세 가지는 한마디로 말하면 모두 악한 일입니다. 이러한 악한 일을 멀리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가까이 할 일은 가까이 해서 복이 될 수 있고, 또 가까이 해서는 안될 일은 멀리 해야 복이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좋은 스승이나 좇은 친구, 의로운 일을 가까이하면 복이 될 수 있지만, 강도나 악한 일은 멀리 해야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해야 합니다.

"악인"이란 말은 ‘어지럽게 하는 자, 소란케 하는 자, 위반케 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악인은 어지럽게 하고, 소란케 하며, 정로에서 탈선하여 위반케 합니다. 우리는 필요 없는 욕심 등으로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거나 역행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본적인 질서에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악을 행하면서 누린 많은 소유로 기뻐하는 사람보다 선을 행하면서 비록 손해를 좀 보더라도 기뻐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복 있는 사람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죄"(하말티아; 과녁에서 벗어난다)란 "빗나간다"라는 뜻입니다. 양궁선수가 과녁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듯이 하나님의 질서에도 정해진 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질서에 어긋난 삶을 사는 자는 죄인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질서에 순응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또 "오만한 자"란 "조롱하고 비웃는 자"를 의미합니다. 찬양대원간에 서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은혜가 넘치는 찬양이 됩니다. 대인관계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존경할 때 원만한 대인관계가 이루어집니다. 조롱하고 비웃는 것이 습관적으로 되어지면 스스로 복을 포기하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남을 조롱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조롱하는 그 자체가 악한 일입니다. 우리는 남을 칭찬하기를 좋아해야 합니다. 아무리 나쁜 사람도 자세히 보면 좋은 점이 한 가지라도 다 있습니다. 우리는 나쁜 사람이 악한 행동을 해도 그것을 보고 조롱하거나 욕하지 말고 좋은 점을 보고 칭찬해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칭찬 한마디가 깡패를 성자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성자 같은 사람도 말 한마디에 상처 받아서 타락할 수도 있습니다. 남을 비웃는 사람은 오만한 사람입니다. 항상 우리 성도들은 이 한 해 동안 또 여러분 생애에 언제든지 다른 사람을 비웃는 자가 되지 말고 비록 약하고 연약하고 어리석고 부족해도 그분들에게도 더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좋은 점만 칭찬하고 나쁜 점은 하나님께 기도로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사람을 축복해야 될 의무와 권세는 주셨지만 저주와 심판의 권세는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심판권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 곧 악한 일을 멀리 할 때에 복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2.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묵상하는 자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 1:2) 여호와의 율법은 곧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을 읽을 때에 이 말씀이 즐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순종하고 준행할 때 그렇게 기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되는데 성경을 볼 때마다 이것도 하지 말라고 했고, 저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면서 성경 말씀을 보면 어떻게 은혜가 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속에 깊이 빠져 들어가 보면 구구절절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은 어딘가 모습이 다릅니다. 성경을 한 시간 읽고 난 후에 찍은 사진과 고민을 한 시간 동안 한 후에 찍은 사진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전혀 다를 것입니다. 같은 사람인데도 얼굴이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읽으면 생각이 달라지고, 성품이 달라지며, 행동이 달라지고, 취미가 달라지며, 말이 달라지고, 성격이 달라지며 품행이 달라지고 그의 모든 삶의 패턴이 달라집니다. 날마다 말씀을 즐거워하여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롬 1:16). 또 이적과 기사가 수반됩니다.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병든 자가 일어나게 되며, 죽고 싶은 심령들이 변하여 살고 싶은 심령으로 바뀔 뿐 아니라 춤을 추며 기뻐할 수 있는 이런 심령으로 변화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즐거워하고 묵상하고 생활화해야 합니다. 시편 119:97에 보면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라고 말씀했고, 출애굽기 13:9에 보면 ‘여호와의 율법으로 네 입에 있게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어야 됩니다. 사실 설교란 예언입니다. 요한계시록 1:3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설교 자체가 예언입니다. 예언이란 미래에 대한 것을 미리 알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즐거워하고 사랑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듣고 혼자만 간직하지 말고 이 말씀을 전해야 됩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3. 하나님께 심기운 자입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나무가 자라는데 무엇보다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은 수분으로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어떠한 일기의 변화에도 상관없이 잘 자랍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도 생명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께 심기운 자가 될 때에 영원토록 부족함이 없이 풍성한 삶을 누리는 복 있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7:37,38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심기운 자가 될 때에 복 있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누구든지 목마르지 않게 해주시고, 영원히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시는 주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1:6에 보면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라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셨습니다.

 

 4. 의인의 길을 걷는 자입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시 1:6)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길이지만 악인의 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 멸망하는 길입니다. 여기에서 "의인"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는 자를 가리키고, ‘악인’은 믿음 없는 자를 가리킵니다. 또 ‘길’이란 말은 각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생활 방식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마다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선택할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그러할 때마다 악인의 길을 걷지 말고 의인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의인을 길을 걷는 자가 영원토록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 34:15에 보면 ‘여호와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 귀는 저희 부르짖음에 기울이시는도다’라고 말씀했고, 시편 37:25에는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한 일을 멀리하고,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묵상하며, 하나님께 심기운 자가 되고, 의인의 길을 걷는 자가 되어 항상 복 있는 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복의 근원이 되신 주님, 올 한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의 인도함을 받아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주님을 찬송하며 기쁨으로 살 수 있도록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악한 일을 멀리하고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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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69 시편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시121:1-8  김이곤 목사  2008-06-06 2910
16168 요한복음 한계로부터 탈출 요4:46-54  김필곤 목사  2012-11-17 2909
16167 사도행전 사울의 회심 ..... 행9:1-9  이정원 목사  2011-06-15 2909
16166 사사기 우리 안에 있는 우상 삿6:25-32  김영봉 목사  2011-04-30 2909
16165 누가복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눅5:27-32  이한규 목사  2011-03-09 2909
16164 빌립보서 믿음의 능력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이정수 목사  2010-07-26 2909
16163 사도행전 사명을 따르는 삶의 축복 행22:22-30  이한규 목사  2010-02-04 2909
16162 사무엘상 자녀가 잘 되는 길(자녀 교육의 우선순위)/ 삼상2:22-30  김필곤 목사  2009-11-07 2909
16161 누가복음 차별화된 인생 눅7:1-10  김필곤 목사  2011-06-23 2908
16160 사사기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라 삿6:11-16  김영봉 목사  2011-04-30 2908
16159 창세기 주님과 동행하기 창5:21-24  한태완 목사  2013-11-13 2907
16158 누가복음 기도의 진정한 의미 눅11:5-11  윤은철 목사  2012-05-01 2907
16157 마가복음 새벽, 새 힘을 얻는 기도 막1:35-39  김필곤 목사  2010-08-21 2907
16156 창세기 선악과 사건의 의미 창3:1-8  이정수 목사  2010-07-26 2907
16155 다니엘 명품인생 단11:36-39  이한규 목사  2009-09-10 2907
16154 마태복음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라 마11:29  한태완 목사  2013-04-17 2906
16153 마태복음 말 한 마디의 힘 마12:36  한태완 목사  2012-06-05 2906
» 시편 복 있는 사람 시1:1-6  한태완 목사  2011-01-06 2906
16151 고린도후 강함과 약함의 역설적 신비 고후12:7-10  이정수 목사  2010-10-10 2906
16150 마가복음 예수님의 어린이교육(어린이주일) 막10:13-16  이상호 목사  2013-06-12 2905
16149 빌립보서 성탄과 예수님의 마음 빌2:5-11  김동호 목사  2012-09-15 2905
16148 고린도후 부요한 믿음의 실상을 가지라 고후6:1-10  윤은철 목사  2012-05-01 2905
16147 사도행전 머리는 버리고 귀만 갖고 있어라. 행5:29-42  박신 목사  2012-01-21 2904
16146 누가복음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라 눅6:32  김남준 목사  2011-12-12 2904
16145 누가복음 길 위의 신앙 눅24:13-35  차정식 목사  2004-05-05 2904
16144 다니엘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 단12:5~13  이정원 목사  2013-10-06 2903
16143 요한복음 최고의 예배를 우리 하나님께 요4:23-24  김동호 목사  2012-08-23 2903
16142 느헤미야 부흥 느8:1-12  김필곤 목사  2010-07-25 2903
16141 출애굽기 하나님과의 만남 출29:38-46  이성우 목사  2012-12-18 2902
16140 빌립보서 상대적 박탈감으로부터 탈출 빌4:10-20  김필곤 목사  2012-11-17 2902
16139 마태복음 용기 있는 믿음 마14:22-33  한태완 목사  2011-03-25 2902
16138 고린도전 바울의 감사 고백(Thanksgiving with Paul) 고전15:55-58  박순오 목사  2010-07-02 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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