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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와 용서

창세기 한태완 목사............... 조회 수 2366 추천 수 0 2011.01.09 20:4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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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45:1∼10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복수와 용서

본문: 창세기 45: 1∼10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8절)

'어느 군인의 복수' 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한 남자가 입대해 전방으로 갔습니다.

몇 달 후 여자친구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우리 이제 헤어지자, 그러니 내 사진을 돌려보내 줬으면 좋겠어"
화가 났지만 군대에 있는 몸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대 동료들의 여자친구 사진을 죄다 모아서 다음과 같은 편지와 함께 보냈습니다.
"어떤 게 네 사진인지 기억이 안 나네. 네 것만 빼고, 다른 사진은 빨리 돌려보내!"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다보면 억울하고 원통해서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억울한 일을 당하고 복수하지 않고 사랑으로 모범을 보여준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입니다.
17살 나이에 이복형제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다가 노예로 애굽에 팔려갔습니다. 가까스로 보디발 장군의 종으로 들어갔지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이 참담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월이 지나 총리가 되고 형제들을 만났을 때 대제국의 총리로서 복수할 수 있었고 하고 싶은 원망을 모두 접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로 삼아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요셉은 말합니다(창 45:7∼8).

요셉은 복수하지 않고 사랑으로 모든 형제와 아버지의 친척을 먹여 살렸습니다(창 45:9∼10). 자신의 넓은 아량으로 용서하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이 도구가 된 것이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살펴봅시다.

첫째, 우리가 용서함 받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웃집에 가서 낫을 빌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뒤, 그 이웃이 호미를 빌리러 왔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호미를 챙겨주었습니다. 이웃이 가고 난 후 아들은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은 우리에게 빌려주지 않았는데, 우리는 왜 빌려주어야 하나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그 이웃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우리도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복수와 증오란다. 하지만 상대방의 행동이 어떠했든지 상관없이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는 것은 용서이자 사랑이란다." 지금 내 마음에는 어떤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지요? 용서와 사랑은 복수와 증오의 마음을 덮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18:35)

둘째, 용서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아일랜드에 있는 어떤 학교에서 한 소년이 다른 소년을 때렸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으로부터 처벌을 받으려는 순간에 맞은 소년이 그를 용서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선생님은 그에게 "왜 그를 용서해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우리의 원수를 용서해 주어야만 한다고 하신 말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용서해 주며, 나로 인해 그가 처벌을 받지 않게 되기를 원합니다."
억울한 소리를 듣고 누명을 쓰고 짓밟히거나 심한 타격을 받으면 원수를 갚겠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최소한 자신이 받은 만큼은 보복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기회를 엿보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롬12: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19∼21)고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악을 갚으면 그로 인한 원한의 고리가 이어져서 또 다시 악을 반복하는 일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보응이 있음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잠20:22)

셋째, 용서함으로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고후2:8) "그러므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랑을 저희에게 나타내라"
한 청년은 자기의 형이 집안 사업의 약속된 몫에서 자기를 제외시키려고 모략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크게 분개했으며 그의 형을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업에서 동생을 완전히 배제시킨 형의 사업은 결국 실패로 끝났으며 설상가상으로 병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형의 사업실패와 병 악화 소식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받은 동생은 그 길로 모든 것을 제쳐두고 형에게로 달려갔습니다. 동생은 형을 시설이 좋은 병원으로 옮겨 주었고, 그 치료비 일체를 부담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형의 사업 일부를 재건시켰고, 정당한 절차로 형에게 그 일을 다시 맡겼습니다. 솔직히 그 청년은 형을 쉽게 용서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오랫동안 참아 온 울분을 극복하고 복수의 유혹을 과감히 이겼던 것입니다. 용서란 용서를 받는 사람과 똑같이 용서하는 사람에게도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랑으로 용서하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일인지도 모릅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잠25: 21)
흑인들이 대부분 살고 있는 남아프리카 반투에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폭도들은 독일인 미망인 버뮤렌의 17세의 무남독녀를 사로잡아 도끼로 토막을 내 죽였습니다. 그 소녀를 구하려던 이웃 집 소년도 꼭 같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폭동 때 독일 개혁파 교회도 불타버렸습니다. 버뮤렌 부인의 마음에는 복수심이 일어났고 복수를 종용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어떤 날 밤은 증오하는 마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반투족이 그들의 교회를 재건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어머니들은 종탑 헌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버뮤렌 부인도 종탑 헌금에 참여했습니다. 그 순간 버뮤렌 부인의 마음에는 그 반투족들을 증오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서 증오심을 없애 주셨음을 보여 주어야 할 때라고 생각했습니다. 반투 사람들의 교회 헌당의 날 그녀가 헌금한 돈으로 세워진 종탑에서 종이 올렸습니다.
사랑과 용서의 종소리가 은은히 그 일대를 울렸을 때 그들의 마음을 녹아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용서의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6:14-15)하였고, 또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막11:25)하였습니다. 용서는 베풀어서 즐겁고, 받아서 고마운, 인간관계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귀한 덕목입니다. 또한 사랑은 만사를 이기게 하며 사랑은 어떤 완고한 마음도 솜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1968년 조용한 사건이지만은 위대한 일이 있었습니다. 세계 제 2 차 대전 당시에 나치 독일이 유대사람 600만을 죽였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 학살에 원흉이었던 아이히만 이라는 사람이 체포되어 가지고 재판을 받고 사형선고를 받았고 이제 사형집행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시점에서 유대사람 중에 꼴 란즈라고 하는 사람은 아이히만을 석방해 달라고 대대적으로 데모를 했습니다. 대대적으로 석방 운동을 했습니다.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그는 상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아이히만을 죽인다고 해서 죽은 유대사람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2) 사형하지 않고 내버려두어도 인생은 다 죽듯이 저 사람도 곧 죽을 텐데 뭐 미리 죽일 거 없지 않느냐? 3) 하나님은 그의 영혼을 이미 심판 하셨으니 우리가 심판할 것 없지 않느냐? 4) 동생을 죽인 가인도 하나님은 용서 하셨는데 우리가 누구를 정죄해서 그것이 옳단 말이냐고? 5) 사랑이 식어지는 세상에 이제부터라고 참 사랑을 심어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여러분 언제까지 보복을 할 겁니까?
(엡4: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다섯째, 그리스도께서 본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참된 용서의 모범을 예수님께서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자신을 죽이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셨습니다.(눅23:34)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3:12-14)
레오나드 그리피스 목사의 설교집 <십자가 밑에서>에는 필라델피아에서 발생한 한국 학생 피살 사건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1958년 4월 25일 교환학생으로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유학 중이던 한국인 학생이 편지를 부치러 가다가 불량배에게 몰매를 맞고 사망한 사건이었습니다. 살인자는 체포되었고, 대학가의 높은 여론과 시민의 분노로 사형이 언도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피살자의 부모가 담당 판사에게 탄원서를 보냈습니다. 탄원서에서는 자식을 죽인 살인자의 생명을 구해주면 그의 재활까지 책임지겠으며 이런 탄원을 하는 이유는 우리를 멸망의 길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조금이라도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막상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도저히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우리의 능력과 환경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눅 6:27∼28)

여섯째,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본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스펄전이 젊었을 때 순교자 스데반에 대해서 설교하는데 비신자의 질문으로 인하여 설교가 갑자기 중단되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도대체 무얼 하셨습니까?" 그것은 매우 당혹스런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나? 그는 돌을 옆으로 치우지도 않으셨고, 스데반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스펄전은 이미 예정된 정답 그 자체로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스데반으로 하여금 기도할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시옵소서.'라고 말입니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려 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잠24:17)
원수가 잘못되는 것을 보면 그리 기분 나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잘못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옛사람의 죄악된 습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공의로 선악간에 판단하시고 그에 따라 갚아주시기 때문에 내 원수가 잘못되었을 때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자신을 점검하고 근신하여야 합니다. 내게는 그와 같이 징계를 받을 만한 요소가 전혀 없는지 살펴야 합니다.
미국 위스콘신대 연구논문을 보면 인간은 용서하지 못할 때 우울증 고혈압 위경련 격렬한 분노 편집증 등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은 용서할 때 감소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있는 모든 분노와 원통함을 품고 살지 말고 먼저 용서하십시오. 용서하는 것이 바로 내가 사는 길입니다.
미국 켄터키 산기슭에 브라운 가(家)와 스미스 가(家)의 두 가족이 나란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소한 일로 총격전이 벌어져 브라운 가의 가장이 죽었습니다. 브라운 가의 맏아들 빌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리라고 굳게 결심했으나, 그는 곧 군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모진 고생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크리스마스 날, 스미스 가족은 오랫만에 교회에 출석하였습니다. 그 날의 설교는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스미드는 큰 감동을 받았고, 브라운 가의 가장을 죽인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남몰래 그들을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한 꼬마를 시켜 날마다 브라운 가에 양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복수의 칼을 갈던 빌이 제대해서 집으로 왔습니다. 그는 누군가가 매일 양식을 전해 준다는 말을 듣고는, 그 고마운 분을 만나 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꼬마의 뒤를 밟았는데, 그곳이 바로 스미드 가였습니다.
분노와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보고 있는 빌을 향하여, 스미드는 웃으면서 "빌, 원한다면 나를 쏘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빌은 자신이 군대에 있는 동안 가족을 돌보아 준 그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참된 용서의 모범을 예수님께서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자신을 죽이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셨습니다. (눅23: 34) 스데반 집사는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자신을 돌로 쳐죽이는 사람들을 용서했습니다(행7:59∼60). 결국 용서는 나를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내가 사는 길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용서하십시오. 참된 복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복수입니다.

일곱째, 용서가 최선의 복수이기 때문입니다.
한 소녀가 아버지와 함께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나섰습니다. 그때 한 테러리스트가 쏜 총알이 아버지의 머리를 관통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소녀는 범인을 찾아내 복수할 생각으로 히브리어와 아랍어를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리고 워싱턴 포스트지의 기자가 되어 이스라엘 근무를 자청했습니다. 그녀는 법원 기록을 뒤져 12년만에 범인의 소재를 확인했습니다. 테러범의 이름은 오마르 하티브….
“이제 드디어 복수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을 숨긴채 범인과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인 그녀의 마음 속에 갑자기 주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진정한 복수는 그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리적 복수는 동물적 본능일 뿐이다.”
그녀는 테러범과 가족들에게 오히려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범인의 가석방을 위해 청원서를 제출하는 차원 높은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여인의 이름은 로라 블루멘펠트. 전 워싱턴포스트지 기자의 이름입니다. 세상의 싸움은 상대를 때려눕혀야 승리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싸움은 상대를 용서해야 승리합니다. 용서는 최선의 복수입니다.
(고후2:10)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

여덟째, 용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목사님이 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 남았던 유대인 부인을 만나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이 독일에 대해 "복수하고 싶지 않느냐"고 말했더니, 그녀는 잔잔히 웃으며
"나는 복수에 대한 감정으로 내 인생을 파괴시키고 싶진 않습니다. 그러기엔 내 인생은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가장 큰 복수는 용서라고 합니다. 한 순간의 복수를 위해 일생 동안 타인의 삶에 매달려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한 순간의 용서로 응어리를 풀고 자기 삶을 더 아름답게 가꾸어가라는 뜻일 겁니다. 기억하되 용서하는 것, 가장 아름다운 복수입니다.
"너는 그가 내게 행함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 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잠24:29)
인종차별이 심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미국신사가 자기 집 정원 앞에서 맥주를 마시며 서있었습니다. 이때 남루하고 몹시 피곤해 보이는 한 인디언이 지나가다가 그 신사에게 빵을 좀 달라고 애걸했습니다. 신사는 "너에게 줄 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이 마시는 맥주라도 한 잔 주십시오"하고 부탁했으나 역시 거절당했습니다. 몹시도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난 인디언은 마지막으로 물 한 모금이라도 달라고 사정했지만 미국신사는 "너처럼 개 같은 인디언에게 줄 물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인디언은 슬픈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얼마 후에 이 미국신사는 사냥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깊은 산중에서 사냥개를 놓쳐 그만 길을 잃었습니다. 방향감각도 없이 산 속에서 헤매는데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배고프고 목이 말라죽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마침 그때 그 곳을 지나가던 인디언이 그의 딱한 사정을 보고 당장 구출해서 자기 집으로 안내하며 후히 대접했습니다. 그 신사가 정신을 차리고 난 후 가만히 보니 자기를 구출한 인디언은 바로 얼마 전에 자기가 박대했던 그 인디언이었습니다. 미국신사는 너무 어이가 없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하였습니다. 그런 미국신사에게 이 인디언은 조용히 말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얼마 전에 나에게 한 것처럼 내가 당신을 대했다면 지금쯤 당신은 산중에서 죽었을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을 감동시키며 감복하게 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잠25:21-22)
그런데 일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우리가 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형제를 용서 못하는 때가 있습니다.(마18:23-35)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마태복음 5장 44- 48절까지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44절)
주님이 하신 이 말씀은 실천하기 쉽지 않습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원수나 핍박자들이 죽기를 바라지 않으면 오히려 다행이라 할 것입니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45절)
그러나 이렇게 해야만 하고 만일 성도가 그렇게 못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못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가벼이 여기고 넘길 일이 아닙니다. 왜 그런지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오.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46절) 이 같은 말씀을 다 하신 다음에 하신 말씀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48절) 이는 더욱더 못할 일입니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말씀을 그냥 넘겨서야 되겠습니까. 힘이라도 써봐야 하고 최대한의 노력이라도 기울여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지 않고 핍박자를 위해 기도하지 못할까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너희도 온전하라”고 하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넓게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원수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하고 핍박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온전하고 건전하고 성숙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치, 사회가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세력이 서로 원수라도 되는 것처럼 싸웁니다. 우리는 같은 민족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용서하고 사랑합시다.
미국의 한 흑인이 백인의 집 옆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백인은 이 흑인을 쫓아 보내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흑인은 백인을 사랑으로 굴복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느 날 흑인의 소 한 마리가 백인의 초장에 들어갔습니다. 백인은 흑인에게서 많은 벌금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낮에는 백인의 여러 마리 소가 흑인의 농장에 들어갔습니다. 백인은 놀랬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불러 많은 돈을 가지고 가서 소를 찾아오라고 했습니다. 백인의 아들은 조금 후에 소와 그 돈을 도로 가지고 왔습니다. 백인은 이상히 여겨 까닭을 물었습니다. 아들은 흑인이 돈을 안 받는 것은 물론, 기쁜 마음으로 용서해 주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백인은 마루바닥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흑인을 불러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했습니다. 마침내 백인은 그리스도 신자가 되었습니다. 이 두 크리스천은 평생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성경에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 두지 말고 그를 도와 짐을 부리울지니라"(출23:4-5)하였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웃을 향해 용서하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마음자세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내게로 끌어들이는 힘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능력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보는 성도여러분 모두가 용서와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내 삶에 상처를 준 모든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복수의 감정을 넘어서게 하소서. 사랑을 열망하게 하소서. 십자가의 온기로 원수까지라도 사랑하게 하소서.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사랑을 실천하게 하소서. 자비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묵상 및 토의
0 당신은 악을 선으로 갚기 위해 노력하셨습니까?
0 나는 원수를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는가?
0 나를 분노하게 만들거나,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용서한 경험을 이야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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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72 이사야 하나님께서 꿈꾸는 교회 사1:18-20  하원양 목사  2011-01-15 3250
13471 시편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시134:1-3  한태완 목사  2011-01-15 2829
13470 사도행전 통성기도와 위기 극복 행12:5-10  김홍도 목사  2011-01-16 2927
13469 시편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시135:1-21  한태완 목사  2011-01-16 2757
13468 시편 고난의 길 승리의 길 시1:1∼6  김영진 목사  2011-01-16 2119
13467 시편 인자하시고 성실하신 주께 대한 찬양 시138:1-8  한태완 목사  2011-01-17 2286
13466 사도행전 참된 기쁨 행5:40-42  강종수 목사  2011-01-17 2306
13465 시편 고난 중에 필요한 성도의 믿음 시3:1-8  한태완 목사  2011-01-17 2493
13464 히브리서 주님만을 바라보자 히12:1-2  한태완 목사  2011-01-18 3281
13463 시편 고난을 이기는 믿음의 용기와 기쁨 시4:1-8  한태완 목사  2011-01-18 2966
13462 시편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주님 시139:1-24  한태완 목사  2011-01-19 4235
13461 하박국 기쁨의 선지자 하박국 합3:16-19  한태완 목사  2011-01-20 4944
13460 시편 악에서의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 시141:1-10  한태완 목사  2011-01-20 2301
13459 시편 의로운 자를 도우소서 시140:1-13  한태완 목사  2011-01-20 2428
13458 시편 외로운 영혼의 구원 호소 시142:1-7  한태완 목사  2011-01-21 2253
13457 창세기 헌신의 3단계 창12:1-9,13:8-9  하원양 목사  2011-01-22 3149
13456 시편 상한 심령의 구원 호소 시143:1-12  한태완 목사  2011-01-22 2970
13455 시편 악인의 응징과 의인의 보호 시5:1-12  한태완 목사  2011-01-23 2402
13454 에배소서 계시의 영안을 밝히라 엡1:17-19  강종수 목사  2011-01-23 2229
13453 시편 나를 고치시고 나를 구원하소서 시6:1-10  한태완 목사  2011-01-23 2657
13452 시편 참으로 복 있는 사람들 시144:1-15  한태완 목사  2011-01-24 2674
13451 고린도전 옛 사람을 벗어 버려라 고전4:10-11  조용기 목사  2011-01-27 2374
13450 누가복음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눅8:5-11  조용기 목사  2011-01-27 2577
13449 창세기 바라봄의 법칙 창12:1-5  조용기 목사  2011-01-27 3247
13448 누가복음 예수님의 오심과 사명 눅4:16-21  조용기 목사  2011-01-27 2258
13447 시편 복 있는 사람 시1:1-6  조용기 목사  2011-01-27 2353
13446 사사기 300명 삿7:1-8  하원양 목사  2011-01-28 2357
13445 아모스 정의를 외친 선지자 아모스 암5:1-15  한태완 목사  2011-01-28 3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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