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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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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고난 중에 필요한 성도의 믿음
본문: 시편 3장 1- 8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그 무시무시한 로마황제들의 핍박을 받으면서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믿음의 생활을 했던 무리들이 초대교회의 성도들입니다. 네로황제가 시를 쓰기 위하여 로마 시에 불을 질렀습니다. 6일 간의 화재로 인하여 로마 시의 삼분의 이가 타버립니다. 그 죄를 기독교인들에게 전부 뒤집어씌운 네로황제는 죄가 전혀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네로황제는 기독교인들을 잡아 밀납을 온 몸에 입히고 그 육신에 불을 붙여 황제의 정원을 밝히는 등으로 썼다고 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네로황제는 원형경기장에 그리스도인들을 몰아놓고 굶긴 사자들을 풀어놓았습니다. 그 원형경기장에는 로마인들과 네로황제는 사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을 뜯어먹는 것을 즐겁게 관람했습니다.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도대체 어디에 있느냐?’고 빈정거리면서 비웃음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네로황제는 밤에 사자 밥이 된 그리스도인들의 얼굴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합니다. 공포에 질려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황홀한 얼굴로 웃으면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사자 밥이 되는 공포의 순간에서도 저토록 밝게 웃을 수 있는가? 도대체 저들이 믿는 종교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어떻게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종교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중얼거리면서 네로황제는 그 자리에서 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네로황제는 정신병자가 되어 자살로 그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로 황제 이후로 9명이나 되는 악한 로마황제들이 기독교인들을 지속적으로 찔러죽이고 화형을 시켰으며 온갖 상상할 수 없는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하며 그들을 저주했습니다. 6번째 황제인 맥시무스 황제는 기독교인들은 집단으로 50명 이상씩 한꺼번에 합장했습니다. 그는 지독하게 기독교인들을 핍박을 한 악명 높은 황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7번째 데리우스 황제는 기독교인들을 말살시키기 위하여 가장 강도 높은 상상초월의 방법으로 소름끼치는 고통을 가한 자입니다. 심지어는 독사와 전갈이 가득한 가죽부대에 기독교인을 넣어 바닷물에 던져 죽이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독교는 환란과 핍박을 받을수록 강해지고 놀라울 정도로 활성화됩니다. 그것은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통이 배가될수록 더욱 기도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삶을 지속적으로 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난과 핍박이 오면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오히려 주님을 찬양하고 뜨겁게 기도합시다.
위 본문은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에 지은 시로서 당시 다윗이 자신의 셋째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부터 도망 나와 유리방황하는 중에 지은 당시 처절한 상황을 대변해 주는 듯합니다. 예전에는 자신의 아들이었고, 자신의 충성스러운 부하들이 배신하고 반역하여 아들은 아버지를 반역하여 왕의 자리를 침탈하였고, 부하들은 힘 있는 압살롬의 편에서 이전의 주군을 죽이려 함께 칼과 창으로 잡으러 쫓아오는 상황은 그야말로 가장 처참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 아꼈던 자신의 부하들이 이렇게 하루 아침에 배신과 반역을 하리라 다윗인들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들은 자신의 왕의 자리를 노리고 아버지마저 죽이려 달려들기에 부리나케 도망 나와 유리방황하고 현재 어려움을 겪으며 어찌 보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광야의 도피생활, 자신을 광야까지 내몰린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바라는 다윗의 간절한 마음은 오늘 현재 어려움을 당하고 어려움이라는 고난 앞에서 힘들어하는 많은 신앙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1절에서는 다윗이 자신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하나님께 고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은 멀리 있는 블레셋이나 앗수르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가장 가까운 인근 친척 자식 그리고 사랑하고 아꼈던 충성스러웠던 부하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다윗을 배반하고 반역하여 대적하려 하는 상황입니다. 어찌보면 다윗은 그 어느 적들보다 가슴 아픈 일이었을 것입니다. 돌이켜 보면 완전한 대적자들(예를 들면, 블레셋이나 아말렉 또는 그 외 가나안 족속들)이었다면 도리어 쉬웠을 지도 모릅니다. 대적자들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자기 인근에 자신의 자리나 이권 그리고 탐욕 때문에 그 자리를 노리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2절에서 그들은 쫓기고 있는 다윗을 보며 도리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자신들에게 힘과 권력이 온 것을 보니 말입니다. 그 힘과 권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실 그들의 욕망과 탐욕으로 이루어진 것인데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니 2절에서 다윗을 향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이 말은 자신들에게 권력이 있으니 그것은 또한 하나님께서 다윗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그것은 그들에게는 착각이자 모순이자 자기 도취였음에는 분명해 보입니다. 이후 그들은 삼하16장 이하에 일어날 일들을 아직 여전히 모르고 있었던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3절 이하의 모든 다윗의 모습에서 우리는 다윗의 모습을 보며 교훈을 삼습니다. 이러한 처절한 배신과 배반 반역 속에서 자신의 목을 향하여 창과 칼을 겨누고 있는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도 다윗은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모습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향하여 자신의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자신과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방패라 인정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방패로 삼고 눈에 보이는 창과 칼을 막으려 하는 모습입니다. 나아가 그것이 자신에게 있는 영광이라 찬양까지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머리라 인정하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한가요? 물리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힘앞에 무기력하게 놓여져 있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고 도리어 그 상황 안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신뢰하는 모습은 오늘 우리개개인의 어려움 삶이 놓여져 있을 때 그것을 포기하거나 놓지 않고 끝까지 그분을 인정하는 모습은 우리의 신앙의 삶을 본받게 만듭니다. 극한 상황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져 있을 지라도 다윗의 시편 3편의 고백을 오늘 우리도 한 번 되뇌여 보면 어떨까 감히 추천해 봅니다. 그 안에서 찬양해보십시오. 그 안에서 기도해 보세요, 그 안에서 자신을 목을 내놓고 그 목을 하나님의 신뢰의 방패로 한 번 막아보십시오.. 어찌 되는가? 잠잠히 지켜 볼 일입니다. 오늘도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면 그분의 역사하심을 기대해 봅시다.
본문 1, 2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많은 사람이 나를 대적하여 말하기를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하나이다 (셀라)”
우리의 대적은 보이는 대적과 보이지 않는 대적이 있습니다. 보이는 대적은 사람일수도 있고 사회적 구조일수도 있지만 성도에게는 보이지 않는 대적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지상의 교회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대적과 싸우는 전투적 교회입니다. 우리의 대적이 많은데 그 대적들이 하는 치명적인 말은 ‘하나님께 구원을 받지 못한다 는 것입니다. 다윗이 원수들에게 쫓길 때는 버림받은 자처럼 취급을 당했습니다. 즉 사울과 아들과 비류배들로 부터 조롱을 당할 때 버림을 받는 자 같았으나 마침내 승리했습니다. 예수님을 욕하고 때리고 침 뱉는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기적으로 살리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가 하나님의 예언된 말씀이 말씀대로 성취되고 무덤이 열리고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승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비방과 핍박을 받을 때 우리가 신앙의 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잡아야 할 중심사상은 ’주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라는 것입니다.(3절) 이것이 보이지 않는 대적들이 나를 치는 현장에서 중심을 잡는 방법입니다. 어떠한 환난이 몰아쳐도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여호와는 나의 방패시오 나의 영광이시오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영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주의 충만하시고 역사의 주인이 되셔서 하나님이 영원한 영광이 되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중심만 잡고 있을 게 아니라 기도해야 합니다. 4절에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라고 합니다. 살아계시고 나의 방패와 영광과 머리를 드시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만큼 강력한 것은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토의와 계획이과 기획을 세워도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면 승리는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기 바랍니다. 모세는 모든 사역 가운데 기도하였고 예수님도 어떠한 일에도 부르짖으심으로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을 나타내신 것같이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어 응답받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성도의 자세는 ‘네기 누워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들어 주신다는 자세이어야 합니다. 수많은 대적이 에워싸고 진을 쳐도 평안히 누워자고 쉴 수 있는 것은 내가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지들아 다 내개로 오라 내 짐은 쉽고 내 명에는 가볍다고 하셨고(마11:28)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고 하셨습니다. 진리와 평안을 누리는 추수감사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화와의 중심과 영혼과 인생을 붙드셔서 전진과 발전과 성장만 있을 것입니다.
본문 3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니이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셀라)”
한 남자아이가 아버지와 동물원에 갔습니다. 사자 굴 앞을 지나갈 때, 포효를 지르며 어슬렁거리는 사자에 놀라서 그 남자아이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얘야 무슨 일이 있니?" 새파랗게 질린 아이가 대답했습니다. "아빠, 저 사자가 보이지 않아요?" "보이지."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철장도 함께 보고 있단다." 당신은 사자를 보고 무서워하는가? 아니면 철장을 보고서 마음을 편안히 가지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재판을 받았고 유죄 판결을 받아서 패배한 사탄을 감금하고 다룰 수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해야만 할까요? 서양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누구나 불화살을 압니다. 인디언들의 불화살은 건물과 창고와 건초 더미 등에 불을 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이 전술의 의도는 적진에 불을 놓아 정신없게 함으로 방어를 소홀히 하게 하는 것입니다. 같은 방식으로, 사탄은 우리가 정면적인 맹공격에 관심을 쏟지 못하게 하려고 불화살을 쏘면서 공격합니다. 우리가 불에 마음이 다 빼앗긴다면 공격하기에 쉬운 표적이 될 것입니다. 믿음의 방패를 잊지 마십시오. 방패는 든든하고 움직일 수 있습니다. 당신은 빗발치는 화살을 방패로 쉽게 막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께 똑바로 집중되었다면, 이 믿음이 아무리 작더라도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진실하다면, 설사 사탄이 불을 놓을 때조차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계속 바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소화기를 열어서 던져주실 것입니다.“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시119:114)
주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을 지키시며 모든 어려움 가운데 방패이시며 영광이 되시며 모든 곤경에서 건지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이 그 아들 압살롬에게 쫒겨 가는 그 참혹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기대하며 그분의 역사하심을 기도했을 때 놀라우신 주의 역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 주의 응답이 없었지만 다윗의 믿음의 고백은 주의 응답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이러한 다윗의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방패와 영광이 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나의 목소리로 간절하게 주께 부르짖는 것이 필요합니다.
본문 4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나의 목소리로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그의 성산에서 응답하시는도다 (셀라)”
국민일보에 실린 이광호 목사의 글입니다.
24년 전인 1986년 경기도 반월공단의 지하 59㎡(18평) 작은 교회에서 처음 개척예배를 드렸습니다. 창이 없는 지하이다 보니 모든 생활이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공단의 많은 노동자들이 교회에 등록하면서 장소가 매우 협소해졌습니다. 그러나 400만원의 전세금을 가지고는 지상으로 올라갈 수 없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하며 우리 교회가 지상으로 올라가 예배 드릴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없었고 오히려 고난이 닥쳐왔습니다. 독재 시절 많은 사람이 고난에 신음할 때 나 역시 큰 시련을 겪었습니다. 견디기 힘든 시간들이었습니다. 교인들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하나님은 돕는 이들의 손길들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나의 통장에는 2000만원이 넘는 위로금이 모였고 우리는 교회를 이전해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고난을 준비하신 하나님은 오히려 그 고난을 응답의 기회가 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고”(호2:21)
본문 6 ~ 7절을 읽겠습니다.
“천만 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로마의 네로 황제 밑에는 ‘황제의 투사 씨름꾼’이라는 정예부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 베스파시안이 이끄는 그 부대에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황제는 베스파시안에게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처형하라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백부장이 부대원들을 모아놓고 그리스도인들은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무려 40명이나 되는 투사들이 앞으로 나왔습니다. 베스파시안은 천막 앞에 큰 불을 피워놓고는 40명의 군인들에게 옷과 신발을 벗게 한 후 꽁꽁 얼어붙은 호수 위로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불이 있는 곳으로 돌아오면 용서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늘 황제 앞에서 부르던 노래의 가사를 고쳐 이렇게 합창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40명의 투사! 주 예수를 위해 싸우고 주님이 주실 면류관을 받아 쓸 40명의 투사!’ 밤이 지난 후에야 한 명의 군인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불 곁으로 나아왔습니다. 그때 백부장 베스파시안은 지휘관의 옷을 벗고 장하게 죽음을 맞고 있는 그리스도인 부하들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천국의 소망이 있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겪는 고통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고통보다 큰 영광을 이미 맛보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롬 8:17-18).
본문 8절을 읽겠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온 땅에 주의 복을 내리소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가장 큰 축복의 방편은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갈 수 있는 큰 은총을 받았습니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 (셀라)”(시67: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 우리는 악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고난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찾아오는 그 수많은 고난들은 우리를 살로 힘겹게 하고 낙심케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이기고 믿음과 의를 지키며 끝까지 나아갈 때만이 영원한 생명과 하늘나라의 영광을 얻을 수 있기에 우리는 결코 그 고난들 가운데에서 지쳐 쓰러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에게는 고난을 이기고 끝내 소망을 이루게 하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보호와 위대한 능력, 그리고 그분의 철저한 공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끝까지 소유하고 더욱 공고히 할 때 우리에게 닥쳐오는 그 어떤 고난도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이며, 그것들을 보다 가볍게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진정 여러분 모두 이러한 믿음위에 굳게 서서 모든 고난을 능히 이기고, 영원한 승리의 기쁨에 참여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기도: 나의 반석이시며, 피난처요, 구원자되신 주님, 제게 다윗의 믿음을 주시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주를 신뢰하게 해주세요. 나의 방패이시며 영광이시며 머리를 드시는 주님을 잊지 않게 하시고 항상 찬양하게 하소서. 세상의 박해 때문에 믿음을 버리지 않게 해주소서. 나의 구원의 방패가 되신 주님을 의지합니다. 나에게 닥친 그 어떠한 고통과 위험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어찌할 수 없음을 확신합니다. 나를 두렵게 하는 세력이나 환경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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