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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이기는 믿음의 용기와 기쁨

시편 복음............... 조회 수 2975 추천 수 0 2011.01.18 20: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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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4:1-8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고난을 이기는 믿음의 용기와 기쁨

본문: 시편4편 1- 8

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나를 긍휼히 여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축구 경기를 하다가 넘어졌다고 “내가 왜 축구 선수가 됐나.” 하며 후회하거나 낙심하는 선수는 없습니다. 수없이 넘어지고 온몸이 땀으로 젖어도 최선을 다해 기쁨으로 뜁니다. 이것은 우리가 마땅히 지녀야 할 신앙의 자세와도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때로는 시험도 들고 환난을 당하기도 하지만 성도의 마음은 하나님으로 인하여 한결같이 즐거워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감사하고, 하나님 영화롭게 하는 것이 기쁘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은 성도는 어려움을 당할지라도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항상 기쁨을 간직한 신앙생활을 합니다.

기쁨은 성령의 한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기쁨이 없다면 성령이 떠났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열심히 일하려는 사람도 찾기 힘들지만 기쁨으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정말 귀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됩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16:11)

이 시는 표현과 구성에 있어 전편(3편)과 유사하므로 비슷한 시기에 지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편이 환난 중에 쓴 것이라면 이것은 환난의 소용돌이가 지난 후 당시를 회고하며 쓴 것입니다. 다윗은 대적이 자신을 해침으로써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으며, 그분에게 올바른 제사를 드리고 신뢰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본문 1절에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라는 말씀은 시편 3편 5절에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라는 말과 연관됩니다.

 

 본문 2절을 읽겠습니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변하여 욕되게 하며 허사를 좋아하고 궤휼을 구하겠는고”

러시아의 프리드리히 대왕은 교회를 비웃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심복인 본진랜드 장군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하루는 지방의 귀족들이 모인 잔치에서 대왕이 천박한 야유를 섞어 기독교를 비웃자 장내는 온통 그런 분위기로 변해갔습니다. 그때 본진랜드 장군이 자리에서 일어나 대왕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대왕 폐하! 대왕께서는 제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터에서 대왕을 위해 서른 여덟 번을 싸워서 이긴 것을 잘 아십니다. 저는 이제 늙어서 대왕이 비웃으시는 나의 구주 그리스도를 곧 뵈러 가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 이제 영원을 바라보는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대왕보다 훨씬 위대하신 분인 것을 압니다. 폐하!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장군의 용감한 말과 태도에 사람들은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대왕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본진랜드 장군! 내가 잘못했소. 나를 용서해 주시오!’

마가복음 8장 38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인생들아(O men)”는 인간의 아들들아(sons of man)라는 뜻입니다.

“궤휼을 구하겠는고”(2절)는 거짓 신들 즉 헛일을 구하겠느냐는 뜻입니다. 다윗은 스스로 경건한 자라고 자부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자란 뜻입니다. 그는 자신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신다고 확신했습니다(3절). 이런 확신을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심어주셨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누가복음 18:7)

 

 본문 3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경건(敬虔)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존경하고, 받들어 공경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중심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입니다.

“그를 높이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높이 들리라 만일 그를 품으면 그가 너를 영화(榮華)롭게 하리라”(잠 4:8)

인간은 티끌과 같은 존재요(창 18:27) 수아사람 빌닷의 말처럼 벌레요, 구더기 인생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네카는 “약하고 타락한 존재’라 하였듯이 인간은 안개 같고 아침 이슬처럼 쉬이 사라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경건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경건한 자를 좋아하시고 경건한 자를 택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자기(自己)를 위하여 경건(敬虔)한 자를 택(擇)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시 4:3)

“주(主)께서 경건(敬虔)한 자는 시험(試驗)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벧후 2:9)

하나님은 경건한 자를 보호해 주십니다.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義)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 (保存)하시고 경건(敬虔)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洪水)를 내리셨으며” (벧후 2:5)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同一)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看守)하신바 되어 경건(敬虔)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審判)과 멸망(滅亡)의 날까지 보존(保存)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

 

  본문 4절에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하였습니다.

일본에 한 후덕한 군주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군주가 말에서 떨어졌습니다. 미처 손을 쓸 겨를도 없이 숨지고 말았습니다. 군주의 대를 이어 외동딸 유미코가 군주직을 물려받았습니다. 유미코도 선친처럼 선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했습니다. 유미코가 나이가 들어 신랑감을 자신이 직접 고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커다란 북통에 무명천을 씌워 이상한 북을 만든 후 신랑을 선발하다는 방을 써 붙였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청년들 앞에서 명주 북을 힘껏 내리치며 물었습니다. “북소리가 들립니까?”

많은 청년들이 그녀에게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무명 북이 소리가 날 리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청년만이 대답이 달랐습니다. “소리가 들립니다” “무슨 소리가 들립니까?” “침묵의 소리입니다”

유미코는 그 청년의 대답을 듣고 그를 신랑으로 점찍었습니다. 참된 지도자는 침묵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유미코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지도자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 의미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청년이 지도자로서의 가능성이 있음을 보고 그를 선택한 것입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시119:11)

 

 본문 5절을 보겠습니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하나님께 조금 더 가까이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가치와 하나님이 주신 영광과의 사이에 심한 몸살을 앓습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소유로 인해 얻는 짭짤한 재미를 버리기가 힘듭니다. 설사 세상을 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자신을 온전히 의탁했다 할지라도 세상이 눈앞에 알짱거리며 하나님의 영광의 가치를 능욕할 때는 분이 나고 속이 엄청 상합니다. 선교사로서 바늘 하나 꽂을 땅도 내일에 대한 대책도 없이 복음을 가지고 돌아다니다 보면 한국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나를 향한 위로인지 아니면 제 자랑인지 모를 말로 귀를 거슬리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사람도 내가 사랑하고 축복하는 마음으로 섬길 수 없으면 만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점심 한 끼라도 그 분에게 내가 도움이 될 수 없으면 사양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의 능력, 그리고 그 일을 위한 청지기의 가치가 하나님의 영광을 모르는 사람들의 동정어린 눈에 비치는 것이 딱 질색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주려 죽을 지언정... 하는 바울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 형제와 친구에게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SOS를 보내기도 합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영광과 세상의 그것을 뒤집을 염려가 없는 믿을만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세상이 요구하는 왕의 권위와 체통 그리고 친분과 우호관계로 인해 은근히 밀려오는 그 영광을 중시하는 사람들과 사이에 큰 갈등의 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비취는 하나님의 영광과 자신 안에 생명의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그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세상의 영광과 다투고 있습니다. 가치관의 차이, 이는 예수님께도 들이 댄 인간의 몰염치이며 우리 신앙의 평생 싸움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로 인해 열 받지 말고 조용히 자신의 속을 살피고 스스로 말을 하고 잠잠하라고 합니다(시4:4절)

대신 의의 제사를 드리고 주님을 의지하라고 권합니다. 가인처럼 자기 식으로 땅에서 난 소산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벨처럼 위엣 것을 드리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그리스도, 그 분의 구속과 속량과 화목하게 하심과 새 생명을 주심과 그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심, 그 거룩하게 하심을 따라 아버지의 영광에 나아가는 실물의 제사를 드리라 그것이 바로 의의 제사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사심을 체험하고 그 영광을 보고 느끼게 되고 더욱 견고하게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동선에 자신을 철저히 일치시키는 제사가 바로 의의 제사입니다. 성령은 이 제사를 도우시기 위한 보혜사로 파견 되셨습니다. “의의 제사”라고 했는데 미가는 의의 제사를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6-8)

다윗은 대적에게 잠잠하라고 했는데(4절) 고요를 깨지 말라는 뜻으로 하나님에게 대한 적대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는 뜻입니다. 오로지 침묵하며 행동을 더 이상 진행시키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가 아들 압살롬에게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5절)라고 한 말은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제사를 드리지 말고(사무엘하 15:12) 올바른 제사를 드리라는 뜻입니다(신명기 33:19). 속제물을 하나님께 바쳐 죄를 벗으라는 말입니다.

 

 본문 6절에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취소서”라고 했는데 이 말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제사장들이 예배에 참석한 회중의 축복을 기원할 때 사용했습니다.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민수기 6:25-2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을 비취소서 우리가 구원을 얻으리이다”(시편 80:19)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인 무디 목사님의 일화 중 하나입니다. 어느 날 밤, 무디 목사님은 시카고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목사님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도하는 것을 철직으로 생각하고 그 날도 전도할 대상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어두운 밤에 홀로 가로등에 기대어 서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는 물었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이 갑작스러운 질문에 깜짝 놀란 그 남자는 주먹을 쥐고 당장 때릴 듯이 노려보았습니다.

“아, 이거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목사님은 공손히 사과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참견 말고 당신 갈 길이나 가시오.”라고 거칠게 말하였습니다. 이에 무디 목사님은 “사실은 참견을 하는 것이 나의 일이라서요”라고 유머스럽게 응답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더욱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그에게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권면했습니다. 약 3개월이 흐른 어느 추운 겨울날의 새벽녘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무디 목사님의 집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에 잠을 깬 목사님은 곧 문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누구십니까?”

“부탁드릴 말씀이 있어서....실은 제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만...”

이 말을 들은 목사님은 기뻐하면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마 전 자기에게 큰 소리로 “참견 말고 당신 갈 길이나 가시오.”라고 말한 그 남자였던 것입니다.

“아! 당신이었군요. 자, 어서 들어오십시오!” 안으로 들어온 그는 목사님의 집까지 찾아오게 된 자초지종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는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이렇게 해야 좋을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기분으로 지내왔습니다. 밤마다 한숨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가슴 깊이 사무쳤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그는 마침내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남북전쟁이 발발할 때까지 무디 목사님을 도와 주일학교 교사로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듣든지 아니 듣든지 주의 복음을 힘써 전파하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주의 얼굴을 빛을 비추시어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본문 7절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기쁨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로마 황제 네로는 기독교를 박해하기로 악명이 높았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원형 경기장에 몰아넣고 사자 밥이 되게 하거나 갖가지 방법으로 학살하였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죽어가면서도 기쁜 표정을 짓는가 하면 찬송을 부르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들의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나 슬픔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황제의 경호장교 한 사람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살이 찢겨 죽으면서도 그렇게 기뻐할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궁금하던 장교는 그들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생명이 있기 때문임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예수를 믿기로 작정했고, 결국은 순교의 대열에 동참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기쁨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은 기쁨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재물이나 권력보다도 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행복 바이러스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쁨도 그렇습니다. 리더가 우울하면 모두가 우울해집니다. 리더가 기뻐하면 모두가 기뻐할 것입니다. 기쁨은 에너지를 불러일으키고, 창의력을 번득이게 하고, 관계를 발전시킵니다. 다윗의 영성과 리더십에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어떤 기쁨일까요?

 

첫째, 전투적인 기쁨입니다. 다윗의 생애는 평안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시편 4편 1절에서 보듯 극심한 곤경 가운데 있었습니다. 대적자들이 4편 2절에서 말씀하듯이 원수가 그의 영광을 욕되게 하고 헛된 일을 도모하고 거짓을 구하여 덫을 놓고 있었습니다. 곤란 가운데 다윗은 전투적인 영성으로 다가갔습니다. 전투적인 기도가 있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를 건지시는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하며 부르짖었습니다.

또 전투적인 선포가 있었습니다. 시편 4편 3절에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을 알지어다”라고 했고, 4절에서 “잠잠할지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1952년 에드먼드 힐럴리는 세계 최고봉 8700m 높이의 에베레스트 정복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선포했다고 합니다. “에베레스트여, 처음은 네가 날 이겼지만 다음엔 내가 이긴다. 왜냐하면 너는 성장을 멈추었지만 나는 더 자란다.” 다음 해 그 산을 정복했다고 합니다. 기도하고 선포하십시오. 우울한 마음은 사라지고 기쁨을 주실 것입니다.

 

둘째, 내면적 기쁨입니다. 다윗은 환난을 당하면 사람을 의지하거나 다른 것을 붙잡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시편 4편 5절에 의의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환경 개선이 우선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이었습니다. 그때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이라는 말씀과 같이 내면적 기쁨을 주셨습니다. 이 내면적 기쁨을 외형적 기쁨과 대비하였습니다. 외형적 기쁨을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라고 말씀했습니다. 내면적 기쁨이 외형적 기쁨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다윗의 기쁨은 환경 때문에 주어진 외면적 기쁨이 아니라 성령님으로 인한 내면적 기쁨이었습니다.

 

셋째, 신앙적 기쁨입니다. 시편 4편의 시작은 우울했으나 마지막은 평안과 기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때문이었습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습니까? 나를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시4:8). 마귀에겐 기쁨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기쁨으로 충만하시고 우리에게 기쁨의 영성을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본문 8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라는 찬양으로 노래를 마쳤습니다. 안전하다(safe)는 것은 행복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행복은 일정한 시기에만 유효한 상태지만 안전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난 것으로 그분이 함께 하는 영구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로서 이제 다윗에게는 대적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한 염려 하나 없이 평안한 잠을 청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성도들만의 기쁨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실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 도다’(시127:2)고 하였으며 예수님께서도 자신이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요14:27)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기쁨과 특권을 소유한 성도의 행복이 본시의 마지막 구절에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십시오. 그것은 아마 고난과 역경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많은 고난의 때마다 여러분을 지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 손길이 있었음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 있는 우리와 함께 하셨기에 고난을 고난으로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감사와 기쁨의 조건으로 삼았던 것을 고백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들은 고난 중에 더욱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의 빛을 받아 누리고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기에 고난을 능히 감당하고도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진정 고난의 때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분의 자녀로서 합당치 않은 실망과 좌절, 슬픔의 늪에서 헤매지 말고 하나님의 더욱 풍성히 부어 주시는 은혜를 받아 누림으로써 그 고난을 이기고 나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기도: 우리에게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다윗의 내면적 기쁨을 소유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은혜만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올 한해는 쫓기며 살기보다는 마음의 평안과 여유를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때때로 주님의 신비한 손길을 느끼며, 조용히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살게 하옵소서. 어떤 청천벽력 같은 선언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경제문제, 건강문제, 미래문제, 노후문제, 결혼문제,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과 영혼의 여유를 누리며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에 나가 하나님의 영광을 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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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1 에배소서 계시의 영안을 밝히라 엡1:17-19  강종수 목사  2011-01-23 2235
4680 시편 악인의 응징과 의인의 보호 시5:1-12  한태완 목사  2011-01-23 2414
4679 시편 상한 심령의 구원 호소 시143:1-12  한태완 목사  2011-01-22 2976
4678 창세기 헌신의 3단계 창12:1-9,13:8-9  하원양 목사  2011-01-22 3156
4677 시편 외로운 영혼의 구원 호소 시142:1-7  한태완 목사  2011-01-21 2256
4676 시편 의로운 자를 도우소서 시140:1-13  한태완 목사  2011-01-20 2431
4675 시편 악에서의 구원을 요청하는 기도 시141:1-10  한태완 목사  2011-01-20 2305
4674 하박국 기쁨의 선지자 하박국 합3:16-19  한태완 목사  2011-01-20 4987
4673 시편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주님 시139:1-24  한태완 목사  2011-01-19 4287
» 시편 고난을 이기는 믿음의 용기와 기쁨 시4:1-8  한태완 목사  2011-01-18 2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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