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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에 있나이다, 주여
나 여기에 있나이다, 주여
바람에 불리우는 밤의 이 작은 촛불
혼자서는 이 한밤 서서 타기 어려운
너무 짙은 어둠을 물러가게 하소서.
나 여기에 있나이다, 주여
파도에 덮치우는 밤의 이 작은 쪽배
혼자서는 이 풍랑 헤쳐 가기 어려운
너무 미친 이 파도를 잔잔하게 하소서.
불길이게 하소서, 차라리
지직지직 타는 불길, 밤을 불질러
저 덧쌓이는 악의 섶을 불사르게 하소서.
어둠이란 어둠을 다 불사르게 하소서.
파도이게 하소서. 차라리
가라앉아 햇볕에 일렁이다가도
일어서서 허옇게 밀고 가는 노도
일체 악을 말살하는 노도이게 하소서.
박두진 1916-1998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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