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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심령의 구원 호소

시편 복음............... 조회 수 2976 추천 수 0 2011.01.22 09: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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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43:1-12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상한 심령의 구원 호소

본문: 시편143편 1- 12“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지 오랜 자 같이 흑암한 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셀라) 여호와여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내 영혼이 피곤하니이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을까 두려워하나이다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주의 신이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좌우 편에 행악자 둘도 함께 못 박혔습니다. 그런데 함께 달린 행악자 중에 한사람이 회개하고 구원 얻는 놀라운 구원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끝까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예수를 비방하고 조롱하며 죽어갔습니다. 십자가상에서 죽어가면서 한 사람은 구원을 얻었고 한사람은 죄 가운데 죽어갔습니다. 회개한 강도가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이 무엇입니까? 회개한 강도는 바른 예수관을 가졌습니다. 우리 인생의 최대 최고 문제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바른 이해에 달려있습니다. 회개한 강도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십자가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예수님의 모든 행동을 보시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동료 행악자에게 예수님을 가리켜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 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해,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라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천국의 주인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비록 죽어가지만 부활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것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만 보지 않고 그 이후에 있을 천국과 내세를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회개한 강도는 지은 죄를 인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행악자를 향하여, '네가 동일한 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느냐? ' 고 질책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마땅히 받아야 될 십자가의 처형을 받아야 된다고 자신의 죄를 인정했습니다. 우리도 회개한 강도처럼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그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 돌릴 수 있는 회개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회개하는 영혼을 변함없이 사랑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천만강수의 제물보다도 상한 심령을 더 귀히 여기십니다. 회개한 강도는 십자가상에서 자기의 가슴을 치면서 회개할 때 구원을 받았습니다.

 

시편 51편 17절에 보면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하고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죄를 깨닫고 깨어진 심정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그것이 죄인 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은 죄에 대하여 민감하게 느낍니다. 죄를 지었을 때 그의 영혼은 지옥의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하게 됩니다. 이는 그의 심령에 내리던 하나님의 은혜의 단비가 그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나 성도들이 지은 죄를 자복하면 다시금 죄 사함의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약하여 죄를 범하였을 때에는 즉시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에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았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저 멀리 형들이 있는 도단까지 찾아갑니다. 그런데 형들은 자기를 잡아 물 없는 구덩이에 쳐 넣습니다.(창37장) 형들로부터 배신당한 요셉의 마음은 얼마나 상하고 참담했을까요? 예수님은 신임하여 재정까지 맡긴 가롯유다에게 배신당했고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의 부인에 얼마나 마음이 상하고 아팠을 까요? 다윗은 장인인 사울이 아무 잘못 없이 자신을 죽이려 쫓아 다녔고, 심지어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고 신뢰했던 신하들이 배신하였다는 소식에 허둥지둥 도망다니는 다윗의 상한 심령과 참담함은 과연 어떠했을까요?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참담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상한 심령의 탄식에만 빠져있기 보다는 먼저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 발견되는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인자하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간구하는 자세가 요청됩니다.“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본문은 원수들로 인한 상한 심령을 토로하며 구원을 호소하는 간절한 기도문을 보게 됩니다. 그들의 핍박과 공격은 영혼을 파괴시킬 정도의 괴로움이고 죽음에 가까울 만큼의 상처를 냅니다. 믿음의 사람 곧 의인은 하나님 아버지만이 피난처가 되심을 알고 주님을 사모하며 또 아버지의 지금까지 행하시고 인도하심의 신실하심을 굳게 확신 할 뿐만 아니라 그 아버지께서 어떠한 분, 곧 선하신 하나님이시며 말씀으로 주의 뜻을 알리시고 이제 구원의 길로 보호 인도하시고 원수들을 공의로 심판하여 멸하실 것을 호소합니다. 특별히 자신을 주의 종으로 표현함을 통해 하나님의 소유와 하나님을 대적한 원수의 종들의 공격을 보며 그들이 하나님의 종의 영혼을 파괴시키려 함을 알게 됩니다. 세상에 의인이 하나도 없음에도 하나님의 것 곧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의 탄식과 환난으로 인한 내외적인 공격에 대한 방어는 오직 아버지의 인자하신 위로의 말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신 말씀을 마음에 세깁니다.

 

한 시인의 기도문입니다.

“주님, 나의 간구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주께서 죄를 찾으려 하신다면 주 앞에 의로운 인생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이미 무덤의 흑암 속에서 죽은 자 같이 속박을 느끼고 있어 내 속의 참담함을 무어라 표현 할 길이 없지만 전에 내게 감동이 되고 은혜가 되었던 주의 행적을 생각하며 주를 향하여 갈급한 심령을 사모하는 노래로 읊조립니다. 주여, 내 영혼이 메마르기 전에 내 영혼이 절망하여 일어날 수 없게 되기 전에 응답해 주십시오. 아침엔 주의 인자하신 말씀으로 활력을 얻고 길을 행할 때 곤란하지 않게 하시고 저녁엔 주의 은혜로 감사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모든 악한 자들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함을 느끼며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선한 길로 인도받음을 확신케 하십시오.“

 

 본문 2절을 읽겠습니다.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치 마소서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

인생은 모두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내 평생을 돌아 볼 때 뭐 그렇게 특별한 죄를 안 진 것 같아도 그가 설령 욥과 같이 아니 욥보다 더 의롭게 살았어도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율법의 행위가 그것을 모르게 하고 있고 마치 자기 행위를 보면서 심판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 오해를 하게끔 만들고 있습니다. 의로운 인생이 없습니다.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말을 합니다. 누구는 조금 더 낫게 살고 저 사람은 개차반으로 살았는데 어떻게 똑 같이 취급을 하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는 것은 사람의 눈입니다 하나님이 볼 때는 그 마음의 폐부까지도 감찰을 하시기 때문에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사진을 봅니다. 인생의 전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사진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극히 일부의 사진을 보면서 마치 전체를 보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또 그 일부의 사진을 보면서 누구는 의롭고 누구는 악하다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더 많은 사진이 어떤 가를 모르면서 자기 눈에 보이는 사진 몇 장을 보면서 행위를 말하고 있습니다. 확 까집어서 다 보면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극히 일부의 사진을 보니까 누구는 의롭고 누구는 죄인으로 보이고 하는 것일 뿐입니다 모든 사진을 다 본다면 절대로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사진을 다 보는 순간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구하게 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10: 18, 눅18:19)

 

본문 3절을 보겠습니다.

“원수가 내 영혼을 핍박하며 내 생명을 땅에 엎어서 나로 죽은 지 오랜 자같이 흑암한 곳에 거하게 하였나이다”

여기서 시인은 매우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시인의 생명이 경각에 상태에 이르는 위기에 처해 있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다윗은 일국의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오래 전에 죽은 자와 같이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반역들에 의해 쫓기어 비참한 날을 보내야만 했습니다.(삼하15: 13- 37)

 

 본문 4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 심령이 속에서 상하며 내 마음이 속에서 참담하니이다”

어떤 목사님이 길을 걷다 특이한 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상한 마음만 빼고 뭐든지 고칠 수 있는 집’이라는 잡화점이었는데 목사님은 호기심이 생겨 가게 주인을 만나보았습니다.

“사장님, 궁금한 게 있습니다. 상한 마음은 어째서 고칠 수가 없나요?”

“물건이야 원래 모습대로 뚝딱 고치면 되지만, 사람 마음이야 뭐 그게 가능한가요? 사람 마음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목사님은 가게 주인이 복음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신분을 밝히며 성경을 꺼냈습니다.

“사장님, 저는 사실 목사입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시면 상한 마음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은 이사야 61장 1절과 57장 15절 말씀을 찾아 읽어주었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오시고,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함이라.”

구절을 읽은 뒤 목사님은 사장님께 복음을 전했습니다.

“분명 사람은 마음은 고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가능합니다. 주님을 영접한다면 말씀으로 사람의 마음까지도 고칠 수 있는 가게가 될 것입니다.”

목사님의 말씀을 들은 가게 주인은 복음을 받아들였고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그 순간 성령님이 가게 주인에게 임하셨습니다. 며칠 뒤 그 목사님이 그 거리를 다시 지날 일이 생겼는데 가게 간판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상한 마음까지 고쳐주는 집”

성령님이 임하시면 놀라운 능력이 나타납니다. 성령님의 역사를 사모하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사66:2)

몇 년 전 모 잡지사에서 '기분이 아주 나쁠 때 어떻게 해결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 20대는 1위가 술을 마신다, 2위가 스탠드바에 가서 땀이 나도록 춤춘다, 3위가 노래방에 가서 목이 쉬도록 노래를 부른다, 4위가 방 안에서 문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한다, 5위가 친구를 만난다 였습니다. 반면 40대는 1위가 술을 마신다, 2위가 무조건 집을 뛰쳐나간다, 3위가 드라이브를 한다, 4위가 노래방에 간다, 5위가 친구를 만난다 였습니다.

다음 질문이 '당신이 선택한 방법으로 마음의 아픈 것이 해결되었는가?'였는데 단 한 사람도 속이 풀렸다든지 해결된 사람은 없고 오히려 밤새도록 마신 술로 인해 속이 쓰려 고생했다든지, 차 몰고 집을 나갔다가 교통사고가 날 뻔했다든지, 이비인후과에서 치료만 받았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어떻게 인생이 문제를 풀어야 할지를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주님을 바라보고 거기서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떻게 고난 앞에 대처했을까요.

 

첫째,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현재의 상황은 다윗 왕이 승리하면 아들이 죽게 되고 압살롬이 이기면 아버지가 죽게 되는 상황입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자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처한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용장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아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회개하는 심령으로 간구하면 응답하리라 믿습니다.

 

둘째, 주님을 묵상했습니다. 그는 지난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언제나 복되고 선한 길로 인도해주신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주신 일이며, 깊은 홍해를 가르시고 난공불락의 여리고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복지로 인도해주신 일과 그리고 다윗과 함께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행사를 생각했습니다.

 

셋째, 주를 향하여 손을 폈습니다. 손을 폈다는 것은 외적 행동이며, 결단의 의미로 자신의 무능력을 의미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갈 때, 낙심될 때, 좌절에 빠질 때, 힘 잃을 때가 많고 실패할 때도 많고 배반당할 때도 많습니다. 그때 주님을 향하여 손을 폈던 시편 기자처럼 나의 필요를 채우시고 내 마음을 위로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그 능력을 믿고 하나님을 향해 손을 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마음 상할 때마다 겸손히 나의 모든 형편을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며, 주님을 생각하고, 특히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깊이 생각하고, 주님을 향하여 손을 펴고 기도하며 찬송하십시오. 여러분 심령속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넘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5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다윗은 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옛날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묵상했습니다. 사람에게 과거란 늘 아름답거나 즐거울 수만은 없습니다. 때로는 생각하기 싫은 괴롭고 추한 과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거의 경험들은 오늘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소중한 밑거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날 불신앙의 자리에 있던 기억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누리기도 하고 반대로 믿음으로 인해 고난 받던 기억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교만해지거나 믿음이 낙심되고 나태해질 때마다 지난날 나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함으로 하나님께 인정 받는 아름다운 믿음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8절을 보겠습니다.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

아침 시간을 어떻게 보내십니까? ‘아침’이라는 명사에 붙는 일반적인 형용사인 ‘상쾌한’, ‘신선한’, ‘산뜻한’ 같은 말이 당신의 아침에도 붙을 수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허둥대면서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집을 뛰쳐나와 막히는 길을 뚫고 직장에 도착하면 이미 지쳐버리는 나날을 보내십니까? 그렇게 아침 시간이 바쁘고 숨막히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딱히 일이 많지도 않은데 늦게 잠자리에 드는 것은 아닙니까? 영상문화의 발달이 초래한 무력증에 그리스도인들도 전염된 것은 아닙니까?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세계 교회사에 유례가 없는 독특한 유산을 한국 교회에 선물하였습니다. 바로 새벽기도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떤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최근 10여 년 간 활발히 확산된 Q.T.도 우리 선배들의 새벽기도 전통에 버금가는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이 두 전통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우리 한국 교회의 신구세대 간의 조화를 이루며 경건생활의 맥을 이어갈 것입니다. 과연 당신은 아침에 주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까?

 

 성경에 나타난 많은 신앙의 선진들을 살펴보면, 한 사람 한 사람,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신앙의 위대한 장점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주인공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의 신앙의 장점과 위대함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영적인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수많은 그의 장점들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고난에 대한 그의 태도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마음이 상하는 고통,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어려움을 만나면, 남을 탓하거나 환경과 여건을 탓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곤 합니다. 그래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짜증을 부립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인 경우에는 영적인 무감각으로 인하여 처음에는 작은 문제였는데 그것을 더 큰 고난으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많은 풍랑과 어려움을 만났지만 그는 한 번도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환경과 여건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영적으로 깨어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경우, 언제나 실패합니다. 인생의 난제들을 잘 풀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위대한 점은 바로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언제나 영적인 모습으로 신앙적인 모습으로 풀어 나갔다는 것입니다. 심령이 상하고, 마음이 참담한 일들을 만났을 때, 가장 바람직한 반응은 영적인 통찰력을 가지고 현실을 진단하는 것입니다.

고난이 왜 오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살펴보는 것이야말로 매우 중요합니다. 다윗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해 도망하면서 지은 시입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원수들로 인하여, 다윗의 마음은 지금 몹시 상해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고통스럽고 죽을 지경입니다. 충성스러웠던 신하도 배반하였고,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도 배반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믿을 인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9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그랬습니다.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 다윗은 주님께 피하여 숨었습니다. 때로 우리는 이런 일들을 만나면 다 떨쳐버리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지내고도 싶습니다.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대화할 상대가 없습니다. 내 마음을 털어 놓을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경우, 다윗은 주님께 피하여 숨었다는 것입니다. 그 날은 다윗에게 암울한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다윗에게 완전한 실의의 날이요, 절망의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은 지난날에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추억하게 만드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왜 주님께 피했을까?" 라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왜 주님께 피하지 못할까?" 라는 질문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께 피하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으로만 일관하게 되는 것입니까?

 

첫째는 우리가 주님께 피하지 못하는 이유는 영적인 무지 때문입니다. 다윗이 주님께로 피하였던 이유는 지금 그에게 닥친 영적인 위험의 심각함을 알고 그것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내가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살지 못한다는 심각성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주님께 피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문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께로 피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잠에 빠져 있으면, 문제의 심각성도 모르고, 그래서 주님을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주님께 피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확실한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주님의 능력과 권능으로 나의 문제를 얼마나 속시원하게 해결해 주시는지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께 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만이 나의 문제를 가장 완전하고 완벽하게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주님에게는 이해되지 못하는 것도, 해결하지 못하시는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주님께 피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기도로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모든 염려와 고난과 역경의 짐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피하는 것은 곧 영원한 안식의 통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로 피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마음으로만 "가야지" "그렇게 해야 될텐데" 하는 생각으로만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생각만으로는 안됩니다. 주님께 피한다는 것은 생각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과 의지를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어떤 경우를 만나든지 우리가 하나님께 피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복입니다.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요,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다윗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종류가 다를 뿐이지 어려움과 고통은 누구나 다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속이 상하는 일이 조금도 없는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본문 10절을 읽겠습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

옛 그리스의 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 왕은 부인이 많았는데, 제각기 자기만이 왕을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왕은 부인들을 모아놓고 말했습니다. ‘그대들이 날 사랑한다고 하니 그대들이 원하는 것을 주겠소. 왕권만 빼고 뭐든지 한 가지씩만 원하는 것을 말하시오.’ 그러자 부인들은 갖가지 진기한 보석과 좋은 것들을 달라고 법석을 떨었습니다. 왕은 부인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적었습니다. 그런데 인품이 훌륭하다고 알려진 한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왕이 그 부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가만히 있는 거요. 원하는 것을 말하시오.’ 그러자 그 부인은 ‘제가 원하는 것은 바로 전하이옵니다. 저는 전하만 계시면 족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지고 싶은 것을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하시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과연 그때 ‘주님만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주님만 계시면 족합니다!’라고 대답하는 성도들을 가장 기뻐하실 것이 분명합니다.

 

본문 11, 12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

본 절은 다윗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선택받은 종이요 이스라엘을 위한 일꾼으로서의 사명으로 완전히 하나님 말씀에만 따르겠다는 철저한 하나님 중심 사상을 갖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이 사울의 위협 속에서도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적 믿음을 갖게 했고,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신뢰하던 신하들의 배신으로 인한 참담한 상황에서 상한 심령을 치유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의 상처로 인하여 낙심하거나, 다른 마음을 먹거나,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대응하지 마십시오. 그 깨어진 심령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심령을 어루만지시고 고치십니다. 고치시는 아버지의 손길을 느끼시고, 여러분의 눈에 감격의 기쁨의 눈물이 흘리는 체험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기도: 용서의 주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로나 행동으로 실수하여 주님께 범죄할 때가 많이 있음을 봅니다. 나의 잘못에 대해 주님께 즉시 고백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죄로 인해 애통하며 통회하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주님의 용서와 한없는 사랑의 은혜 안에서 살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을 섬기되 성실함으로 하게 하시고 이웃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게 하옵소서. 아침 시간이 주님의 은혜로 인해 풍성하고 의미 있게 하옵소서. 상한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해결 받는 우리 가정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참 구주십니다. 저를 친히 가르쳐 주시옵소서. 성령을 체험함으로 살아있는 신앙을 갖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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