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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고치시고 나를 구원하소서

시편 복음............... 조회 수 2656 추천 수 0 2011.01.23 16: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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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6:1-10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나를 고치시고 나를 구원하소서

 

본문: 시편 6편 1- 10

1.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4.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5. 사망 중에서는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6.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7.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

8.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10. 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오래도록 교회문 밖에서만 맴돌던 인도의 한 청년이 눈병으로 심히 고통을 당하다가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눈을 정밀히 진찰한 의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눈에 살인적인 병독이 들어가 감염되었으므로 두 눈을 뽑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므로 내일 즉시 두 눈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절망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아픔과 번민과 슬픔으로 몸부림치고 있는데 크리스천 친구가 찾아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매달려 보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무슨 말인들 못 듣겠습니까? 그는 친구와 함께 교회에 나가 기도하는데 참으로 염치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예수 믿으라고 할 때는 끄덕도 하지 않던 자신이 죽게 되자 살려달라고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는 완악했던 마음부터 회개하기 시작하니 기도의 홍수문이 열려 모든 것을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그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눈이 퉁퉁 부을 정도였습니다. 다음날 마음이 홀가분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수술대에 올랐는데 다시 진찰을 하던 의사는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심하게 번졌던 독균이 깨끗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그의 뜨거운 회개의 눈물은 영육의 생명을 모두 고침 받게 했습니다.

“만일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 정의와 공의대로 행하면 그가 그로 인하여 살리라”(겔33:19)

 

 시편6편은 참회의 시입니다. 다윗의 시로 알려져 있는 이 시 역시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내용으로 되어있습니다.

시인은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자기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먼저 고백하는 것입니다. 항상 그러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에 대하여 분명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주목하시지만 우리가 기도 가운데 무심결에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가 있지는 않은지 고민해 볼 문제입니다. 눈은 감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지만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여전히 나에게서 멀다면 우리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간구하기를 하나님께서 분노가운데 또 진노로 자기를 징계하시지 말 것을 간구합니다. 스스로의 죄를 알고 그 죄를 하나님께 고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시기를 간청하는 것입니다. 그가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도 자기의 죄의 무게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간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로지 시인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기대고 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인애에 기대고 있습니다. 그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에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 놓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인애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때때로 도무지 하나님을 뵈올 수 없는 죄악 가운데 있다할지라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시인은 그 죄의 결과인지 모르지만 그 몸이 심히 쇠약한 가운데 있다고 고백합니다. 심지어 그는 자기의 탄식과 고통이 그의 뼈를 흔들 만큼 고통스러우며 자기의 모든 힘을 다 놓아 버릴 정도로 쇠약하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밤마다 침상을 적실만큼의 눈물을 흘린다고 고백하면서 그의 심중에 있는 고통이 얼마나 크며 그 괴로움의 크기가 얼마인지를 분명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걸음 가운데 때로는 이러한 때를 지날 때가 있는 것을 고백합니다. 나의 삶에서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길고 긴 터널을 지나는 듯한 상황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도무지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 같은 그 때를 우리도 경험하지 않습니까? 시인의 지금 심정은 아마도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그의 대적들도 시인을 향해 조롱할 것입니다. 그의 쇠약과 고통을 기뻐하기에 이를 인해서 시인은 더욱 큰 아픔과 고통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시인은 아니 다윗은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의 이러한 형편을 아시고 해결하실 분은 그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 밖에 없음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고 간구하기를 그의 침상이 눈물로 덮일 때까지 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자기의 범죄함으로 떠나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지키시는 손길이 돌아와 자기를 감싸 안아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바로 이러한 마음의 고백이어야 할 것입니다. 나의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를 기억하시고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앞에 나의 모든 것을 내어 놓을 수 있는 그 기도를 하나님은 들으실 것입니다. 다윗은 여러 번 자기의 인생 가운데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났던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택하신 왕으로 세움을 입었으나 실제로 왕위에 오르기 까지 얼마나 긴 시간을 고난 가운데 보냈으며 그의 왕위에서도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긴 고통의 터널을 지나야 했던 것을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의 기댈 곳이 하나님 밖에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기도하다가 지치거나 힘겨울 때가 있는 것을 고백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별 변화가 없는 것 같아 보이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에는 나의 삶이 하나님보시기에 그리 온전하지 않을 때에 우리는 자주 기도를 할 수 없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인은 그의 형편이 변해서가 아니라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을 믿음으로 기쁨으로 승리를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이미 그의 기도가 응답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시인의 기도의 시작은 두려움이고 또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긴 어둠 가운데 연약하고 힘겨운 기도를 시작하였지만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므로 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므로 이제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비록 지금 우리의 현재가 변하지 않는다 해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고 하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가장 첫 번째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며 그 동행하심을 믿음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빌1:19)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다윗은 자신이 지금 처한 상황이 주의 진노로 생각합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아들이 앓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아들이 병에 걸린 것이 하나님이 하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다윗을 통하여 우리 주위에 일어나는 여러 일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주권 속에서 바라보는 것에 대한 중요함을 배웁니다. 우리 주변에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이 있습니다. 심지어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아도 이 안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모든 고난을 나의 죄, 나의 잘못으로 생각한다면 마음에 쉼이 없고 고난은 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연약한 인간은 항상 죄를 짓고 잘못을 행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고난을 하나님의 징계로 인정할 때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주시는 징계는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관심의 표시이며 회개하기만 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깨끗이 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앞길을 섬세히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민감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노하심으로 나를 책망하지 마시고 주의 분노하심으로 나를 징계하지 마소서”(시38:1)

 

 본문 2, 3절을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유지하며 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이 영혼이 떨리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힘겨운 삶을 살도록 허락하신 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명심하고 조용히 그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인내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누에고치에서 나방이 나올 때 테이블 위에 몇 개의 고치를 놓고 그 과정을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애벌레들은 안간힘을 다해 누에고치를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하도 안쓰러워서 누에고치 하나를 잘라서 쉽게 빠져나오도록 해주었습니다. 다른 누에고치에 있던 나비는 천신만고 끝에 나와서 몸을 가다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몸을 가다듬고 난 나비들이 모두 날아올라 찬란한 나비춤을 추는데도, 고치를 잘라 준 그 나비는 끝내 날지 못하고 테이블 바닥을 맴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고통스럽게 누에고치를 빠져나온 나비들은 그 과정에서 날아오를 수 있는 힘을 얻은 반면 일부러 고치를 찢어 준 나비는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통에는 바로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의 병든 영혼을 치료하시기 위함입니다. 병원에 가 보면 태어날 때부터 질병이나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들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선천적인 장애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을 때 가장 먼저 치료받는 것이 우리의 죽은 영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던 사람이 그분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존재를 전혀 생각지 않던 사람이 그분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아무 유익이 없는 것처럼, 사람의 영혼이 병들어 있으면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일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믿어 죽은 영혼이 치유받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삶에 적용할 때 우리의 성품에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성령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변화된 성품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나 사이에 약혼반지와 같습니다. 우리가 변화된 성품으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 천국문이 열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그분의 모든 능력을 가질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죄악을 아뢰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시38: 18)

다윗은 자신이 수척하고 뼈가 떨리고 영혼이 떨린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그가 극심한 고통가운데 있다는 것을 그대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강한척하지만 흙으로 지어진 연약한 존재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본연의 모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고백하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고통을 그대로 호소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게 자신이 심히 죽게 되었다고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긍휼을 베풀어 우리를 치료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느 때까지입니까?’하며 그 시간을 단축시켜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시13:1)

 

 본문 4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

다윗은 주님이 돌아오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해 성령님이 자신에게서 소멸된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51절 10절을 통해 이 기도를 구체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하며 자신 안에 있는 성령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은 영어 성경에 보면 unfailing love로 주님의 실패하지 않는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그는 주의 인자하심을 근거로 구원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죄에 빠져 절망할 때 하나님의 부르심을 의심 하거나 사랑에 확신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가 없고 하나님의 사랑은 실패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5, 6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관여하시고 견책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남의 자식은 때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의 잘못이 나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자식이 잘못하며 크게 책망합니다. 부모가 자신의 자녀만 때리듯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만을 징계하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징계 받을 때 이를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현재의 고난은 모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시는 것이며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더욱 성숙해 질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범하더라도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죄사함을 주시고 성령님이 다시 우리 마음속에 들어오실 것입니다. 우리가 죄와 병과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끈질긴 사단의 공격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케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8, 39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우리는 위험에서나 질병가운데서나 사업실패, 인간관계의 실패, 영적싸움의 실패 심지어 사망에 이를지라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사랑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시44:26)

 

 본문 5절을 읽겠습니다.

‘사망 중에서 주를 기억함이 없사오니 음부에서 주께 감사할 자 누구리이까’

다윗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주를 기억하지도 찬양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음부에서 ‘으으으! 주님 저를 뜨거운 지옥불로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감사기도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공의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려주시면 주님을 마음껏 찬양하고 싶었습니다.

“스올이 주께 감사하지 못하며 사망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며 구덩이에 들어간 자가 주의 신실을 바라지 못하되”(사38:18)

 

본문 6, 7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을 인하여 쇠하며 내 모든 대적을 인하여 어두웠나이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으시는가? 눈물로 호소하는 탄식을 알고 계신가? 고난의 현장에 과연 하나님은 성도들과 함께 계시는가?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사도행전 9장에 있는 사울의 다메섹 길 위 회심 장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 계속하여 교회를 핍박하던 사울은 그날도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사울은 강렬한 빛과 함께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 여기서 예수님은 교회를 핍박하는 사울을 향해 ‘왜 나를 핍박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핍박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핍박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1세기에 고난받던 그리스도인들의 박해 현장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시며 친히 고통받으셨다는 것을 잘 말해 줍니다.

임마누엘이신 그리스도는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으면서 절망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그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귀를 크게 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찬양하는 기도를 하기 위해 먼저 회개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징계하시지만, 회개하는 자에게는 그의 죄가 주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꽃같이 깨끗하게 용서해 주십니다. 다윗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침상을 적셨습니다. 그는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대적들로 인한 근심 때문 이였습니다. 사단은 다윗을 송사하여 사망으로 끌고 가고자 하였습니다. 모두에게 버림받고 사람들로 하여금 손가락질 받을 때 우리는 홀로 벼랑 끝에 서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희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이대로 인생의 끈을 놓아 버리는 것이 더 편할 것 같은 때 말입니다. 다윗은 위대한 점은 골리앗을 물맷돌로 쓰러뜨린 것보다 하나님을 멸시하고(삼하12:9) 살인과 간음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와서 통곡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통곡하며 기도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는데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문제를 인하여 통곡하는 기도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무엘상 1장에 나오는 한나의 통곡입니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풍성하게 받았지만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또 한명의 부인인 브닌나는 아이를 쑥쑥 잘 낳아 한나를 만날 때마다 자식 자랑을 하였습니다. 이에 한나는 한이 맺혀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녀에게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을 허락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또한 열왕기하 20장 3절에서 통곡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는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에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심히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더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8장에는 야이로의 딸이 죽어 많은 사람들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통곡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아이를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둘째는 죄를 회개하는 통곡입니다. 마태복음 26장 75절에는 베드로의 통곡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고, 심지어 저주하며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닭이 우는 소리에 예수님께서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이 떠올라 닭똥 같은 눈물을 뚝, 뚝 흘렸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충신 우리아를 죽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다윗을 책망하였습니다. 다윗은 눈물로 침상을 적시며 회개하였습니다.

세 번째는, 십자가를 지기위한 통곡입니다. 히브리서 5장 7절 말씀을 근거로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위해 통곡하며 기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을 십자가를 앞두고 통곡하며 기도하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통곡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찢겨 죽지 않으시고 내려와 하늘에서 불을 내려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통곡하시며 우리를 위해 온전히 죽으셨습니다.

네 번째는 양들을 위한 통곡입니다. 누가복음 19장 41,42절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는 예루살렘에 대한 예수님의 목자의 심정입니다. 예루살렘 은 역사적으로나 영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러한 예루살렘이 온갖 거짓과 위선으로 얼룩져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를 생각할 때 눈물이 나셨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1절을 보면 바울이 양들로 인해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많은 통곡이 있지만 공통적인 특징은 통곡하는 기도에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통곡기도를 하기까지는 절망스럽고 힘이 들지만 하나님은 통곡하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양들을 위해서 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눅23:28)

우리는 얼마나 많은 통곡으로 기도하였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한 맺힌 질병이나 가난으로 얼마나 울었습니까?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얼마나 울어 보았습니까? 우리는 십자가를 지기위해 얼마나 울었습니까? 우리는 양들의 죄로 인해 얼마나 울었습니까?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하오니”(시55:2)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쉰들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의 성공을 추구하는 냉혹한 기회주의 자였지만, 유태인 학살에 대한 양심의 소리를 듣고 자신의 물질을 이용하여 유태인을 구해냅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쉰들러는 ‘나의 이 시계로 한사람을 더 살릴 수 있었는데.. 나의 이 옷으로 한사람을 더 살릴 수 있었는데..’ 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제가 저의 이익이나 편의보다 양들의 생명을 더 귀히 여기는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흘리는 눈물은 작은 물방울입니다. 그러나 이 물방울이 땅에 떨어질 때 하나님께서 이 눈물을 받으시고 싹이 나게 하시며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른 눈물샘을 여시고 기도할 때 많은 눈물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본문 8, 9절을 보겠습니다.

‘행악하는 너희는 다 나를 떠나라 여호와께서 내 곡성을 들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다윗은 이제 행악자들을 떠나라고 책망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기도를 받으신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사실 다윗이 칠일 금식 기도를 하였어도 아기는 죽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비록 아기는 잃었지만 하나님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다윗에게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을 주었습니다. 현재 아들을 데리고 갔어도 하나님은 다윗의 기도를 들으신 것입니다. 한나도 기도한 후에 수심이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했으면 하나님이 들으신 것을 확신하고 마음에 감사와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당장은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더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들어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시116:1)

 

 본문 10절을 읽겠습니다.

‘내 모든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떪이여 홀연히 부끄러워 물러가리로다’

다윗이 기도했을 때 원수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심히 떨며 물러가게 됩니다. 우리는 통곡의 기도 후에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것을 확신하고, 사단을 대적하며 담대해야 합니다. 더 이상 사단이 주는 정죄와 위축감에 시달려서는 안 됩니다.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우리 안에 다시 오신 성령님을 환영하고 높여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로 삼아주십니다. 더 나아가 내안에 영원히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원수를 부끄럽게 하시고 심히 떨며 물러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나의 대적들이 욕을 옷 입듯 하게 하시며 자기 수치를 겉옷 같이 입게 하소서”(시109: 29)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의 표현이며, 통곡하는 기도를 하라는 표시입니다. 징계를 받을 때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더 악해지는 것이고 한 부류는 곧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갈수록 더 많은 고난을 주실 것입니다. 저희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성령이 주시는 눈물을 흘리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안에는 아직도 치유되지 못하고 여러분을 곤핍하게 하는 죄의 문제가 있습니까? 그토록 털어 버리고 싶은 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신앙을 방해하는 죄가 있지는 않느냐는 말입니다. 죄로 더럽혀진 마음과 악한 죄의 요소들이 여러분 안에서 온전히 치유되지 않으면 그것은 여러분을 더욱 피폐시키고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그 모든 죄의 문제로부터 온전히 치유함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죄에 대한 영혼의 심각한 떨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죄에 대해 진정으로 탄식하며 온전히 회개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죄가 주님 안에서 물러감으로써 치유받을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의 모든 죄는 깨끗이 소멸될 것이며 그렇게 온전히 치유함 받은 우리 모두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참 평안과 자유함이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 기도: 자비와 긍휼의 하나님, 나의 몸과 마음이 상하고 나의 죄가 무거워 눈물 흘리고 괴로워 할 때 주님 외면하지 마시고, 주님의 못 박히신 손으로 나를 고쳐주시옵소서. 내가 지금 굳게 믿고 주님 앞에 구하오니 주여 크신 권능으로 곧 고쳐주십시오. 주님을 의지하오니 나를 구원하시고 삶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이 부여하신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나와 나의 가족문제로만 안타까워하지 말고, 주님의 나라를 위해 의로운 눈물을 흘리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확장하는데 귀히 쓰임 받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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