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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이현주의 구약산책]모태에서부터 다툰 쌍둥이 형제
너희가 나를 알게 되리라(7)
   ▲이현주 목사 ⓒ베리타스 DB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의 역사는 아래와 같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 이사악이 태어났는데, 이사악이 리브가를 아내로 맞을 때 그의 나이는 사십 세였다. 리브가는 바딴아람에 사는 아람 사람 브두엘의 딸로서 아람 사람 라반의 누이였다. 리브가가 아기를 낳지 못하였으므로 이사악은 야훼께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 야훼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는데, 뱃속에 든 두 아이가 서로 싸우므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어디 살겠는가!’ 하면서 야훼께 까닭을 물으러 나갔다. 야훼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태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태에서 나오기도 전에 두 부족으로 갈라졌는데,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억누를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 (창세 25, 19-23)

 

어머니 뱃속에 두 아이가 들었다. 쌍둥이다. 좋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그런데 두 아이가 태 안에서 싸운다. 그것도 좋다, 사람은 싸울 수도 있는 존재니까. 그러나 꼭 싸워야만 하는가? 싸우지 않고서는 존재할 수 없는가? 왜 인간은 서로 싸우는가? 어째서 전쟁은 끊일 사이 없이 벌어지고 있으며 형제 사이에 억압과 굴종이 그칠 줄을 모르는가?

두 아이가 뱃속에서 싸움질을 하는 것밖에는 할 일이 없었던가? 그것이 그들에게는 유일한 선택이었던가? 서로 안아주고 도와주고 받들어 주어 화목한 공생의 길을 걸을 수는 없었던가?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화 같은 공상일 뿐, 현실은 반드시 다툼과 분쟁으로만 이어져야 하는가? 답답한 질문을 던져보는데 성서는 오히려 말이 없구나. 별 수 없다. 고요히 마음을 가라앉혀 성서의 말없는 말에 귀를 기울여 볼밖에.

우선 사람들이 ‘이사악의 역사’를 글로 적고 입으로 전할 때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지독한 가부장제 아래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자. 그 무렵 여자와 아이는 남자 어른이 지니고 있는 인간의 무게에 견주어 티끌처럼 가벼운 존재였다. 여자는 비록 아내라는 이름을 얻었다 해도 집안의 남종, 여종, 소, 나귀와 같은 ‘재산목록’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못한다. 네 이웃의 아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 (출애 20,17) 아내는 여자인 까닭에 소나 나귀와 함께 남자의 ‘소유’인 것이다.

가부장제의 장단점을 따지는 일은 그만두자. 인류 역사에 그런 제도가 생겨났어야 할 이유는 충분히 있을 터이다. 다만 그 제도가 가족 구성원들 가운데 유독 남자, 그것도 맏이에게 집안의 모든 권한을 위임함으로써 얻어낼 수 있었던 유익한 작용만큼 반작용 또한 있었으리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상 일이 본디 그러하지 않은가? 장단(長短)이 상형(相形)이라, 밝은 면이 있으면 바로 그 까닭에 어두운 면이 있는 법이다.

가부장제로 말미암아 빚어진 어두운 면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태어나면서부터 한 사람에게 모든 권리가 부여됨으로써 나머지 가족들이 소외당하게 되고 거기서 생겨나는 갈등구조를 우선 생각할 수 있겠다. 눈먼 가부장제가 장차 태어날 아이들에게 전해줄 메시지가 있다면 아마 다음과 같은 것이리라. –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려면 일단 남자로 태어나라. 남자로 태어나되 맏이로 태어날 일이다. 아니면 평생 소외된 자로서 후회할 것이다.

자,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쌍둥이 형제가 왜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다투어야 했는지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 밖으로 먼저 나가기 위하여, 장자권(長子權)을 손에 거머쥐고 태어나기 위하여, 형제는 태 안에서 다투어야 했던 것이다.

가부장제도에 바탕을 두고 그 굳어진 체제로 해서 겨우 유지되는 화석화(化石化) 된 사회가 형제를 다투게 했다. 인간이란 본디부터가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할 수 없는 까닭에 야곱과 에사오는 바깥 세상이야 아무렇든지 우리는 의좋은 형제로 태어나자는, 만화 같은 이상을 실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병든 세상이 바야흐로 병든 인간을 낳는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떤 사람은 기골이 장대하고 어떤 사람은 왜소하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영민하고 어떤 사람은 둔하다. 그것이 자연이다. 똑 같은 모습으로 동시에 태어난 두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쌍둥이도 선동이와 후동이가 있게 마련이다.

우리 집엔 오죽(烏竹) 화분이 있다. 6월이 되자 죽순이 돋는데 하루 이틀 간격으로 다섯 개가 솟아났다. 우후죽순이라더니 날마다 눈에 보이게 키가 자란다. 그런데 그 가운데 가장 굵고 건강한 놈이 우쭐거리며 키가 자라 어느새 제 어미보다 두 뼘이나 더 컸는데 바로 그 곁에 나온 죽순은 새끼손가락만큼 올라오더니 거기서 성장을 멈춘 듯 그대로 있다. 아침마다 들여다보며, 꼬마야 너는 왜 자랄 생각을 않고 있느냐고 물으며 어서 너도 네 곁의 형처럼 쑥쑥 자라라고 격려하지만 도무지 들은 척 만 척이다.

아내가 들여다보더니 곁에 있는 큰놈이 양분을 다 빨아먹어서 그런가 보다고 안타까워한다. 내 생각도 비슷해서 한정된 식량을 고르게 분배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구나, 혀를 차는데 새끼손가락만큼 나오다가 성장을 멈춘 꼬마 죽순이 말을 건넨다.

“딱한 사람이군. 그렇게 눈에 들어오는 것만 보고 뭘 아는 척 쉽게 단정하지 마시게. 우리 둘은 한 몸이라네. 땅 밑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지. 저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장한 죽순이 바로 나의 다른 얼굴이란 말일세. 빼앗기는 누가 무엇을 빼앗는단 말인가?”

꼬마 죽순의 한마디는 나를 부끄럽게 하고도 남았다. 이런 것을 짧은 소견이라고 하겠지? 땅거죽 위로 나온 부분만 보고 장대처럼 솟은 죽순과 꼬마 죽순을 별개의 존재로 인식하는 불찰을 저질렀던 것이다. 야곱과 에사오는 태 속에 있는 동안 한 몸이었다. 공생공사(共生共死). 한쪽이 목숨을 잃으면 나머지도 잃는다. 태 밖으로 나오면 이 ‘진실’이 무너지는가? 눈에 보이는 겉모습만 본다면 그럴는지 모른다. 어머니 몸 밖에 나와 탯줄이 잘리우는 순간 야곱은 야곱이요, 에사오는 에사오다. 더 이상 공동 생명체가 아니다. 겉모습만 보면 한쪽이 살기 위해서 한쪽이 죽을 수 있고 나아가 그것이 불가피하다는 주장까지도 세울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야곱은 에사오를 없애야 존재할 수 있는가? 아니, 에사오는 야곱을 희생시키고도 진정 살아남을 수 있는가? 공생공사의 진실은 눈에 보이는 겉모습의 세상에서 과연 무너지고 마는가?

“아니다!”

이것이 성서의 대답이다. 그러나 창세기는 거기까지 언급하지 않는다. 우선 급한 것은 함께 살고 함께 죽는 공동 생명체를 뱃속에서부터 다투게 만드는 고약한 사회체제에 대한 정면 부정(否定)을 선언하는 일이다. 한 집안의 권한을 맏아들에게 모두 안겨주는 굳어진 가부장제는 사회를 현상유지하는 데 얼마쯤 기여하는 바 있기는 하겠으나 서로 사랑하고 보살펴 주어야 할 인간관계를 미움과 다툼으로 살벌하게 만든다. 시급히 청산되어야 할 제도요, 너무나도 비인간적인 체제다.

어디서 이 체제가 비롯되었는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겉모습을 실재(實在)로 착각하는 어리석음[無明]에서 나온다.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모든 것이 서로 다르게 보인다. 반대로 중심에 가까이 갈수록 모든 것이 하나임을 보게 된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중심에서 멀리 떠나 가장자리로 나갈수록 보이는 상대마다 이물(異物)로 되고 너와 나는 거리가 멀어져 마침내 서로 ‘그것’이 되고 만다.

존재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것을 ‘아담의 추락’이라고 말해도 좋겠다. 중심을 등지는 것은 하느님을 등지는 것. 저 넓은 우주와 하나되는 길은 로켓을 타고 대기권 밖으로 나가는 데 있지 않고 땅거죽을 뚫어 지핵(地核)으로 들어가 하나뿐인 ‘중심’에 서는 데 있다.

‘문 밖을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안다’는 노자(老子)의 유명한 말, ‘불출호지천하(不出戶知天下)’는 바로 뒤에 나오는 ‘멀리 갈수록 아는 바가 적다’[其出彌遠其知彌少]는 문장을 염두에 둘 때 ‘불출호라도 지천하’로 읽기보다 ‘불출호라야 지천하’로 읽는 게 타당하다. 문밖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를 아는 게 아니라 문밖을 나서지 않아야 천하를 아는 것이다.

그러나 거듭 말하거니와 창세기는 아직 존재의 중심에까지 들어가지 않는다. 현상으로 군림하는 저 가부장제의 틀에 대하여 “아니다!”를 말하는 일이 우선 급하기 때문이다.

“너의 태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태에서 나오기도 전에 두 부족으로 갈라졌는데,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억누를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

형이 동생을 억누르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에 동생이 형을 억누르고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되리라고 선포하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제도와 관습을 하늘이 무너뜨린다는 얘기다. 한 집안의 권한을, 한 나라의 권세를, 어느 한 사람한테 집중시키는 일을 하늘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 완성은 아니다. 형 대신 아우가 가장이 됨으로써 가부장제가 청산될 수는 없는 일이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정복함으로써 억압과 경쟁으로 얼룩진 국제관계가 평화와 화합의 공생관계로 전환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형은 아우를 섬기고 아우는 형을 섬기고,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섬기고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기고, 이처럼 모든 존재가 서로 섬기는 ‘꿈 같은 일’이 이루어질 때 비로서 이 땅에는 참된 하느님 나라의 평화가 꽃을 피울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율법의 완성자로 예수가 세상에 오신 것이다. 그 분이 오셔서 사랑의 법을 가르치고, 빼앗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내어주는 삶의 모습을 우리의 가야 할 ‘길[道]’로 제시해 주셔야 했던 것이다.

중심에서 중심을 볼 때, 태중에서도 태 밖에서도 다투어 싸울 상대를 만날 수 없으리라.

글·이현주 목사(1944년 충북 충주 출생, 1977년 감리교 신학대 졸업 1995년 강원 철원 반석교회 시무 1964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당선으로 등단, 2006년 드림실험교회 참여해 현재까지 사역, 저서로는 '사람의 길 예수의 길', '대학 중용 읽기', '이아무개 목사의 금강경 읽기' 외 다수)

 

http://www.veritas.kr/contents/article/sub_re.html?no=6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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