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011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박향희 / 나를 칭찬합니다
내 이름은 나종수. 서당초등학교 3학년이지요. 그러나 키도 덩치도 작아서인지 아직도 1학년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줌마, 과학상자 주세요.”
내 말에 문구점 아줌마는 상자를 집으려다 말고 묻습니다.
“1학년용은 없는데…….”
그럴 때마다 난 기분이 팍 상합니다.
“저 3학년이거든요!”
내 목소리가 컸는지 표정이 무서웠는지 갑자기 아줌마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과학상자를 꺼내 줬어요. 난 당당하게 값을 치르고 과학상자를 들고 학교로 뛰어갑니다.
그러나 사실 내가 당당할 땐 이럴 때뿐입니다.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공부도 그냥 그렇고, 만들기도 그렇고, 축구도 그렇고. 상은커녕 뭐든지 그럭저럭 꼴찌만 안 하는 실력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선생님은 1학년 때도 나를 가르쳤으면서 기억을 못하는 거 있죠. 공부를 아주 잘했던 것도 아니고, 아주 말썽꾸러기였던 것도 아니고, 그저그런 애라서 기억을 못하나 봐요. 물론 그때는 친구도 없었어요. 축구도 못하고, 말도 잘 못해서 애들이 나를 끼워 주지 않았거든요. 나랑 앉으려는 아이도 없었어요.
그런데 3학년 올라와서 효민이가 나랑 앉게 되었을 때 싫다고 하지 않아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올봄에 우리 동네로 이사 온 효민이는 나와 학교 갈 때도 같이 가고 집에 올 때도 같이 오는 단짝이 되었어요.
“글쎄,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공부는 말할 것도 없고 미술도 별로고 음악도 별로야. 덩치가 작아서 그런지 운동에도 소질이 없어.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럴까? 속상해, 정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또 서울 사는 이모랑 통화하나 봐요. 이모네 아들은 나와 같은 3학년인데 공부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고 바이올린도 잘해서 무엇을 특기로 정할지 고민이래요. 시험은 만날 백점이라 엄마가 선물 사 주니 좋고, 축구할 땐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서 좋고, 바이올린 켤 땐 요정들의 합창을 듣는 것 같아서 좋다나요? 뭐, 그런 녀석이 다 있대요? 게다가 왜 나랑 같은 해에 태어나서 비교가 되는지 정말 얄미워요.
나도 어려서부터 그 녀석처럼 엄마가 시키는 대로 종이접기 학원, 피아노 학원, 축구에 바둑 학원까지 다녔어요. 난 매번 최선을 다했지만 어디서도 소질 있다는 말은 못 들었지요.
얼마 전 읽기 시간이었어요. 국어사전에서 낱말 찾아오기 숙제가 있었는데 현수하고 나만 못해 갔어요. 사실 나는 못해 간 게 아니라 한 개를 하기는 했어요.
선생님은 자리를 돌아다니며 숙제 검사를 하다가 내 공책을 보고 찡그리셨어요.
“나종수, 숙제하기 싫으냐?”
“사실은, 엄청 많이 찾았는데요…….”
왜 숙제를 못해 왔는지 설명하려고 하는데 선생님이 딱 끊으셨어요. 그리고 교실 뒤로 나가라고 하셨어요. 내 뒤를 따라서 현수도 나왔고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고선, 내 말은 듣지도 않고…….'
나는 억울했어요. 우리 반에서 국어사전을 제일 많이 찾은 사람은 나일 걸요? 나는 최선을 다했어요. 정말이에요.
전날 저녁 집에서 읽기 숙제를 하려고 공책을 폈어요. 그런데 숙제로 내 주신 첫 번째 낱말인 ‘폐허’가 말썽이었어요.
국어사전의 ‘ㅍ'을 찾아가서 폐허를 찾기는 했는데 거기에는 -파괴당하여 황폐하게 된 터-라고 씌어 있었어요. 그래서 얼른 공책에다가 적었지요. 그런데 ‘황폐'의 뜻이 궁금했어요. '황폐'를 모르는데 어떻게 폐허를 알겠어요? 그래서 찾았더니 거기엔 이렇게 씌어 있었어요-거두지 않고 그냥 버려 두어 거칠고 못 쓰게 됨-그런데 이번엔 ‘거두다'가 좀 이상했어요. 그래서 이번엔 ‘거두다'를 찾았죠. 그런데 거기에는 ①모아들이다 ②기르거나 가꾸거나 하여 뒤를 보살피다 ③어떤 결과나 성과 따위를 얻거나 올리다……. 이렇게 씌어 있지 뭐예요? ‘성과'는 무슨 뜻이고 ‘따위'는 또 어떤 때 쓰는 낱말일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또 그것을 찾았죠.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모르는 게 계속 나오는데 어떻게 해요? 아직 3학년인 내가 모르는 게 많은 건 당연하잖아요? 그래서 계속 찾다 보니 11시가 넘은 거예요. 평소에는 10시 땡 치면 잤는데……. 국어사전 찾기 숙제가 그렇게 흥미로울 줄은 몰랐어요.
엄마가 늦었으니 얼른 자라고 해서 그제야 시계를 본 거예요. 시간을 확인하고 났더니 갑자기 졸음이 쏟아졌어요. 그래서 늦잠을 자는 바람에 겨우 가방만 챙겨 가지고 왔어요.
하지만 내가 최선을 다한 건 사실이잖아요? 나처럼 즐겁게 숙제한 사람이 또 있을까요? 공책에 적어 오지 않았다고 하나도 안 해 온 현수랑 똑같이 벌주다니 너무해요. 초등학생용 국어사전을 찾았으면 단박에 끝냈을 텐데 우리집에 그런 사전이 없는 게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어쨌거나 현수랑 나는 운동장 청소를 해야 했어요.
그리고 나서 별일은 없었어요.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지만 특별히 못하는 것도 없는 나니까요.
그런데 그만 일이 벌어졌어요. 우리 학교 운동회 때 생긴 일이에요.
내게 아주 좋은 기회가 찾아왔지요. 바로 내가 달리기 선수로 뽑힌 거예요. 사실 나는 달리기 실력도 그냥 그래요. 다섯 명이 뛰면 꼴찌는 안 하지만 일등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운이 좋아서 3등을 한 적은 딱 한번 있었지만…….
그런데 하필 우리 반 대표 선수를 뽑는 날 영석이가 결석을 한 거예요. 영석이는 유치원 때부터 친구인데 워낙 발이 빨라 항상 1등을 도맡아 하는 아이예요. 선생님은 아쉬워 하셨지만 달리기를 해서 공정하게 선수를 뽑기로 했어요. 3학년 올라와 아이들 체력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나요. 그런데 체육시간이 시작되려고 할 때 민기가 배를 잡고 교탁 앞으로 나갔어요. 선생님 얼굴이 찡그려졌죠. 민기는 영석이 다음으로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거든요.
“뭐야, 민기. 왜 그래?”
“저 선생님 배가 아파서……달리기를 못할 것 같…….”
민기는 얼굴이 하얗게 되어 말도 제대로 못했어요. 선생님은 한숨을 푹 쉬더니 영찬이에게 민기를 보건실에 데려다 주라고 했어요.
선생님은 '공정하게'라고 한 말 때문인지 나머지 아이들 모두에게 달리기를 시켰어요. 그런데 그만 내가 선수로 뽑힌 거예요. 영석이, 민기 빼고 우리 반에는 거북이들만 모였나 봐요.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이번 달리기에는 피자까지 걸려 있어요. 반 대항 경주에서 3등 안에 들면 선생님이 피자를 사주신대요. 그래서 내 어깨는 더 무거워졌어요.
“이번에 달리기 선수로 뽑혔대. 육상에 소질이 있으려나?”
내가 엄마에게 소식을 전하자마자 다시 이모에게로 전달이 되었어요. 물론 영석이와 민기 얘기는 빠졌죠.
나는 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운동회 날까지 최선을 다하기로 했어요. 선생님과 친구들을 실망시키고 싶진 않았어요. 혹시 알아요? 다른 반 아이들도 우리 반 아이들처럼 거북이라면…….
그날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에서 달리기 훈련법을 검색해 봤어요. 코치도 감독도 없지만 나는 최선을 다할 거예요.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도 있다잖아요.
다음 날부터 나는 인터넷에서 찾은 방법대로 훈련을 했어요. 다른 때처럼 효민이랑 걸어오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지요. 난 호흡법에 주의하며 학교 끝나고 집에 올 때도 혼자 뛰어 왔어요. 저녁을 먹고 나서도 동네를 몇 번씩이나 돌며 달이 환히 비출 때까지 달렸어요. 심지어 집에서도 그랬다가 엄마에게 혼날 뻔했죠.
"나종수, 너 누가 집안에서 뛰래?"
"선생님이 최선을 다하라고 했는데."
"그래도 그렇지. 남들이 보면 올림픽 나가는 줄 알겠다."
엄마의 핀잔에 집안에서의 훈련은 끝이 났지만 다음날 아침에도 훈련은 계속되었어요. 그런데 아침 일찍 학교에 달려가 훈련을 하다 보니 좋은 점도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 지각하던 버릇이 싹 없어졌지 뭐예요? 그래서인지 난 달리기 훈련이 좋아졌어요.
점심시간에도 다른 애들이 축구할 때 난 운동장 구석에서 혼자 뛰었어요. 그런 나를 보고 몇몇 친구가 응원을 해주었어요.
"나종수, 파이팅!"
효민이도 여자애들과 공기를 하다가 나를 보고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어요. 나는 힘이 나서 더 열심히 뛰었지요.
몇 주를 훈련하고 나자 출발 자세도 익숙해지고, 호흡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어요. 정말 내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드디어 운동회 날이 되었어요. 체육복에다 가방도 없어 다른 때보다 더 가뿐하게 학교로 뛰어갔지요. 마지막 훈련이라고 생각하면서요.
우리 엄마는 잔뜩 기대를 하고 왔어요. 구령대 옆에서 나에게 손짓으로 파이팅까지 보냈다고요.
그런데 세상에! 어쩌면 좋죠?
점심시간이 끝나고 반 대항 달리기를 시작할 때였어요. 내 차례가 되자 난 두 주먹을 꽉 쥐고 입을 꼭 다물고 출발선 앞에 섰어요. 그동안 수없이 연습한 자세라서 문제없었어요. '탕' 하고 신호가 울리자 아이들이 냅다 뛰기 시작했어요. 나도 아무 생각 없이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렸어요.
그런데 바로 내 앞에서 뛰던 녀석이 방귀를 뿡뿡 뀌지 뭐예요. 녀석은 시치미를 뚝 떼고 열심히 달리기만 했어요. 방귀 냄새는 사방으로 퍼졌는지 흔적도 없었지만 뿡뿡 소리가 몇 번 더 들려 왔어요. 나와 옆에서 달리던 아이들이 피식 웃음을 참는 사이 정작 방귀 뀐 녀석은 쭉쭉 앞으로 잘도 나아갔어요. 어쩌면 창피해서 더 빨리 달렸는지도 몰라요. 나는 웃지 않으려고 이를 꽉 물고 열심히 팔 다리를 움직였어요.
'3등은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평소에 훈련한 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이제 결승선이 얼마 안 남았어요. 그런데 자꾸 나만 뒤로 처지는 것 같아요.
둥그런 피자 위로 우리 반 친구들과 선생님 얼굴이 떠올랐어요.
‘안돼, 3등은 해야 해.’
난 앞서 뛰는 친구에게 따라붙으려고 다리를 더 크게 벌렸어요. 그런데 너무 욕심을 낸 걸까요? 다리를 쭉 뻗어 앞으로 내민 순간 쫙 미끄러지면서 그만 넘어진 거예요. 그 사이 내 뒤에 바짝 따라오던 아이들이 나를 제치고 앞서 갔어요. 난 무릎이 아팠지만 꾹 참고 얼른 일어났어요. 앞을 보니 다른 애들은 벌써 결승선 너머에 가서 헉헉대고 있었어요. 팔뚝에 도장 찍는 것도 끝난 것 같아요. 혼자서 거기까지 달려갈 생각을 하니 눈물이 나오려고 했어요.
그래도 난 용기를 내서 끝까지 달려갔어요. 1등 하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결승선에는 다른 반 친구들만 모여 있었어요. 우리 반 친구들은 실망해서 모두 자리로 돌아갔나 봐요. 어쩌면 좋죠? 욕심 안 부렸으면 3등은 했을 텐데…….
옆에서 경기 점수판을 적고 있던 선생님을 쳐다봤더니 못 본 척 눈을 마주치지 않으셨어요. 갑자기 몸도 마음도 뻣뻣해지는 것 같았어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우리 반 자리로 돌아왔어요.
“다친데 없지?”
우리 반으로 찾아온 엄마가 이렇게 물었을 때 갑자기 엄마 가방 속 휴대폰이 울렸어요. 발신자를 확인한 엄마가 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었어요.
"중요한 전화야. 이따 집에서 보자."
휴대폰을 받으며 운동장을 빠져나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천천히 자리로 와서 앉았어요.
"너 때문에 피자 날라갔잖아."
영석이와 민기가 나를 보며 화난 얼굴로 말했어요. 난 점점 고개가 수그러졌어요.
"미……."
미안하단 말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미안하니까 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나는 말도 못하고 그냥 땅바닥만 내려다보았어요.
그때였어요.
“아까 많이 아팠지?”
눈앞에 무지갯빛 포장지에 싸인 막대 사탕이 불쑥 나타났어요. 고개를 들어보니 효민이가 웃고 있어요. 효민이가 준 사탕을 먹고 있으니 뻣뻣해진 마음이 조금 녹는 것 같았어요.
운동회가 끝나고 나는 효민이도 먼저 보내고 학교에서 늦게 나왔어요. 아까 넘어져 다친 무릎이 쓰라렸지만 집에 빨리 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문구점 앞을 지날 때 갑자기 비가 후드득 쏟아졌어요. 어떤 아이가 '상'도장 찍힌 공책으로 머리를 가리고 뛰어갔어요. 나도 3등쯤 했다면 저런 공책을 받았을 텐데……. 그 아이 팔뚝에 빨갛게 찍힌 '1등' 글씨를 보니 다리가 또 뻣뻣해지는 것 같아요. 비가 내려도 뛰어갈 수가 없어요.
난 허리를 굽히고 체육복 바지를 걷어봤어요. 무릎에 살짝 배어나온 피가 빨간 도장처럼 찍혀 있어요.
"어이구, 아프겠네."
돌아보니 문구점 아줌마가 나를 보고 있어요. 아줌마는 내 손을 잡더니 문구점 안으로 당겼어요.
"일기예보에도 없는 여우빈가 보다. 그러고 보니 너, 아까 넘어진 아이로구나."
아줌마도 달리기 경주를 봤나 봐요. 아줌마는 내 무릎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 주며 웃었어요.
"손목 대신 무릎에 도장을 받았네."
그리고 손으로 젖은 내 머리를 털어내며 말했어요.
"괜찮아. 최선을 다했으니 1등이나 마찬가지야."
약 때문인지 아줌마가 한 말 때문인지 뻣뻣한 다리가 풀리는 것 같아요.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가만히 서 있었어요. 주머니 속에 있던 천 원짜리가 만져졌어요. 나도 '상'공책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나는 천 원을 만지작거리다가 용기를 내서 아줌마에게 말했어요.
“아줌마 공책 주세요.”
“그래, 무슨 공책 줄까? 일기장? 알림장?”
“아니, '상'공책이요.”
아줌마는 무슨 말인지 몰라 머뭇거렸어요. 나는 공책 두 권을 찾아들고 아줌마에게 천 원을 내밀었어요.
‘항상 최선을 다하는 나종수를 칭찬합니다.’
오늘, 나는 처음으로 내가 주는 상을 받았습니다. 내 마음도 뿌듯해서 어깨가 쭉 펴졌어요.
"어? 여우비 끝에도 무지개가 뜨네."
아줌마 말에 고개를 들어보니 그새 비가 그치고 머리 위로 무지개가 떠 있었어요. 반달눈으로 웃고 있는 무지개 아래에서 아줌마와 나는 서로 마주 보며 활짝 웃었습니다. <끝>
◆심사평
아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보태주는 글
동네 골목이나 빈터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이 사라져버린 현실에서 동화를 쓰려는 사람들은 어떤 문제의식과 시선을 가져야 할까 하는 물음을 던지면서 작품을 살펴보았다. 그 물음에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이만하면 어떤 자리에서도 떳떳하게 당선되겠다 싶은 작품을 여러 편 만나게 되어서 반가웠다. 마지막까지 거듭 읽었던 작품을 들어본다.
최은옥 씨의 ‘나의 첫 번째 손님’은 딸의 진로를 두고 겪는 모녀 간의 갈등과 풀어가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마지막까지 저울질했던 작품이다. 하지만 상장 하나로 갈등이 풀리는 것 하며, 초등학생이면서 당장 대학 선택이라도 하는 듯한 과장된 결말이 걸린다. 학년도 정확히 밝혔으면 좋았겠다. 우미옥 씨의 ‘포도나무가 될지도 몰라’ 역시 여러 번 읽었던 작품이다. 포도알 삼킨 작은 사건 하나를 두고 이만큼 재미있게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다는 데서 작가의 역량이 크게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런데 여덟 살 아이의 고민치고는 너무 유아스럽다. 김혜영 씨의 ‘넌 그냥 너야’ 성추행범 자식이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주인공에게 속 깊은 동무가 ‘넌 그냥 너야’라고 힘을 불어넣어 주는 따스한 이야기다. 하지만 전학이라는 너무 쉬운 방법으로 결말을 맺는 게 아쉽다. 김현비 씨의 ‘고여사, 사랑하는 내 엄마’는 읽고 또 읽은 작품이다. 작가가 의도한 것이라고 해도 그 어떤 계기도 없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우스개 하듯이 엄청난 출생의 비밀을 주고받는 게 아무래도 너무 낯설다. 우정태 씨의 ‘씩씩한 아빠’는 아버지 잃은 아이 앞에서 씩씩한 아빠가 되어주는 엄마의 삶이 든든하다. 하지만 엄마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아빠가 된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보다는 엄마의 이야기가 너무 중심에 서 있다. 김애란 씨의 ‘거꾸로 쓰는 일기’는 어머니가 집을 나간 충격에 말을 더듬게 되고 일기까지 거꾸로 쓴다는 이야기가 감동을 주지만 아버지의 삶이 엉뚱하고 자꾸만 거치적거린다.
박향희 씨의 ‘나를 칭찬합니다’는 평균 이하의 3학년 아이가 꿋꿋하게 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고 든든하다. 스스로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상을 주는 장면은 읽는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기에 충분하다. 가끔 교훈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버리게 하는 미숙함과 마지막에 무지개 아래서 서로 마주보고 웃는다는 사족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 마음을 이만큼 세심하게 살필 수 있다면 아이들에게 용기와 힘을 보태주는 동무가 될 것이라는 바람으로 박향희 씨의 ‘나를 칭찬합니다’를 당선작으로 뽑는다.
요즘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특기나 소질이 있든 없든, 부유한 집에서 자라든 그렇지 않든 바쁘고 힘들다. 자기들의 특권인 놀이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간다. 제 삶이 없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한없는 사회적 약자가 되어버렸다.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대상이다. 윤태규(동화작가)
◆동화 당선 소감 -박향희
찹쌀떡처럼 말랑말랑해졌다. 버터를 바른 듯 목소리도 나긋나긋해졌다. 갑자기 우리집 식구들에게 인기짱이다. 누가 내 발등을 밟아도 허리 굽혀 '고맙습니다' 인사를 할 것 같다.
오늘 당선 통보를 받고 내게 일어난 변화다.
갑자기 내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이렇게 착해질 줄 알았으면 진즉에 뽑힐 걸. 흐흐흐.
이 세상 사람들 모두 당선시키면 세상이 착한 사람으로 꽉 찰 거라는 엉뚱한 상상까지 해 본다. 사실 열다섯 살 때부터 나의 꿈은 작가였다. 청마 유치환의 시에 반해서 나의 호를 '백마'라고 미리 지어 놓기까지 했는데…. 그러고도 삼십 년, 하루 세 끼 꼬박꼬박 밥을 먹으면서도 배가 불렀던 적이 없다. 물론 밥을 잘 먹어 살은 통통하게 쪘다. 그러나 항상 속이 헛헛했다. 마음이 부르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어느 날 내가 가르치던 아이가 '선생님은 꿈이 뭐예요?'라고 물었다. 남들처럼 '꿈이 뭐였어요?'라고 과거형으로 묻지 않고 현재형으로 물어 준 그 아이. 덕분에 나이 사십을 넘겨서도 꿈 꿀 수 있어 행복했고 이제 ‘꿈은 이루어진다’의 한 예가 될 수 있어서 기쁘다.
부디 내가 쓰는 동화가 어린이들에게 한 알의 영양제만큼이라도 될 수 있기를……소망한다. 그리고 내가 동화를 읽으며 아이들을 더 사랑하게 되고 더욱 이해하게 되었듯 많은 어른들이 동화를 가까이해서 아이들과 소통하게 되기를 역시 소망해 본다.
부족한 작품을 밀쳐내지 않고 당선작으로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옆에만 있어도 힘이 되어주는 남편 한주섭 씨, 기꺼이 나의 첫 독자가 되어주는 두 딸과 오늘의 나를 있게 하신 부모님께도 감사드린다. 늘 힘을 주시는 김리리 선생님, 조용히 응원해 주시는 '어린이와 문학' 편집부 식구들, 함께 동화를 공부하는 '거미똥구멍' 문우들, 그리고 내 문학의 고향 외대문학반 동기들에게도 감사드린다.
레드카펫 위의 여배우가 꽃다발을 들고 감사 인사를 길게 늘어놓을 때 눈총을 주었었는데 이제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부디 긴 제 소감문을 용서하시길…….
◆약력
박향희
▷1966년 생 ▷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교육과 졸업 ▷중학교 국어교사 ▷천안에서 글쓰기 논술지도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