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동심의 세계는 모든 어른들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동화읽는 어른은 순수합니다

동화읽는어른

[2011기독신춘] 사막에 강물이 흐를 때 -이순남

신춘문예 이순남............... 조회 수 1478 추천 수 0 2011.02.08 23:37:34
.........

2011 기독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사막에 강물이 흐를 때

 

사막에 강물이 흐를 때

 

이순남


인디언 주니 마을은 가뭄으로 작은 바람에도 흙먼지가 폴폴 날립니다.

마을의 우물이 절반이나 말라버려 마리네는 아랫마을에서 물을 싣고 옵니다. 울퉁불퉁한 흙길 위를 달리는 트럭이 덜컹거립니다. 물이 출렁거리며 물통 밖으로 넘쳐 나옵니다.

“아까운 물이 다 쏟아지겠어요.”

마리 엄마는 넘치는 물이 아깝습니다.

“괜찮아, 그래도 물통에 남아 있는 물이 더 많을 테니. 저 흙먼지 좀 봐. 길바닥인들 목마르지 않겠어?”

마음 좋은 마리 아빠가 트럭이 만들어 내는 뿌연 흙먼지를 보며 안타까워합니다. 길가의 풀도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누렇게 말라가고 있습니다. 살아 있다 해도 힘없이 축 늘어져 있습니다.

물을 길어 놓은 마리 아빠는 바삐 집을 나서 마을회관으로 갔습니다.

이틀 후엔 인디언 주니족이 기우제를 지내는 날입니다. 마을의 남자 어른 모두가 기우제에 참여합니다. 마을회관에서는 기우제 때 입을 옷과 가면을 점검하고 머리에 쓸 독수리 깃털도 손질합니다. 발목에 묶을 방울도 미리 챙깁니다.

기우제 준비로 마을회관은 분주하지만 마을은 고요합니다.

기우제를 준비하는 남자 어른들은 일주일 동안 밥을 먹지 않습니다. 마리 아빠도 물만 마시고 다른 음식은 먹지 않습니다. 작은 잘못도 해서는 안 됩니다. 나쁜 짓을 한 사람은 기우제를 지내지 못합니다. 기우제 준비를 하는 동안에 죄를 지으면 부족에서 쫓겨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기우제를 앞두고 사람들은 더 조심합니다.

마리는 물을 벌컥벌컥 마십니다. 가뭄에 부는 바람으로 목이 자주 마릅니다.

아빠가 나가시자 엄마는 예쁜 색실로 마리의 하얀 원피스에 수를 놓습니다. 기우제 날 입을 새 옷입니다. 엄마의 손끝으로 하얀 원피스에 풀꽃들이 곱게 피어납니다. 마리는 엄마 옆에 앉아 색실을 바늘귀에 꿰고 있습니다.

오후가 되면서 하늘에 먹장구름이 덮였습니다. 마리는 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밖을 내다봤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기우제도 지내지 않았는데 비가 오네요. 밖에 나가 비를 맞아 볼래요.”

마리는 실과 바늘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발을 신었습니다.

“그래라. 귀한 비가 내리니 흠뻑 젖을 때까지 맞아도 괜찮겠다. 빗물에 목욕해도 좋고.”

마리 엄마도 수를 놓던 원피스와 바늘을 한쪽으로 가지런히 내려놓았습니다. 집 안에 있는 빈 항아리를 모두 밖으로 들고 나가 줄줄이 처마 밑에 받쳤습니다.

마리는 집 밖으로 뛰어나갔습니다. 두 팔을 벌리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시원한 빗방울이 입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마리는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춤을 추듯 나풀나풀 걸었습니다. 마을 곳곳에서 비를 맞는 아이들의 소리가 떠들썩했습니다. 비가 떨어지며 촉촉하게 젖어오는 느낌이 마음속까지 시원합니다.

뿌연 흙먼지가 날던 길바닥에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먼지 같은 흙이 빗방울을 감싸듯 또르르 말려 작은 구슬 모양이 됩니다.

오랜 가뭄에 힘없이 늘어져 있던 풀잎에도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풀잎에 떨어진 빗방울은 청소하듯 흙먼지를 둥글게 말아 데굴데굴 굴러 내렸습니다. 풋풋한 흙냄새가 마리의 콧구멍을 간질였습니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집니다.

마리는 아빠가 계시는 마을회관 앞까지 왔습니다. 촉촉이 젖어가는 너른 마당 앞을 지났습니다. 마리는 길을 따라 마을 가운데 있는 돌담집까지 왔습니다.

돌담집은 주니 마을에서 가장 큰 집입니다. 긴 사각형으로 돌담을 높게 쌓아서 지은 집입니다. 지붕 아래에 몇 개의 창이 있을 뿐 안으로 통하는 문은 커다란 나무 대문만 있습니다. 두 짝으로 만들어진 나무 대문은 언제나 굳게 닫혀 있습니다. 주인도 없고 대문이 열린 적도 없었습니다. 굳게 닫힌 대문처럼 누구도 돌담집에 대해 입을 열지 않습니다.

마리는 이곳을 지나칠 때 돌담집 쇠막대 울타리 너머로 담벼락만 쳐다보았습니다. ‘접근금지’라는 팻말은 없지만 모두 접근금지 구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돌담집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말입니다.

지난봄이었습니다.

마리는 인디언 주니 마을에 여행 온 사람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여기도 교회가 있었네.”

“인디언들이 하나님을 믿었을까?”

“글쎄, 이들은 아직도 해마다 기우제를 지낸다는데.”

“맞아, 인디언 주니족은 비의 신이 비를 내려 준다고 믿는 거야.”

여행을 온 사람들은 돌담집을 바라보며 소곤거리듯 한마디씩 했습니다.

마리는 돌담집의 정체가 더 궁금해졌습니다. 그렇지만 마을 분위기는 누구에게도 돌담집에 대해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마리가 5학년이 끝나고 여름방학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장 친한 친구 호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호세야, 너 혹시 돌담집에 대해 들은 적 있니?”

“응 예전에 여행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 그 돌담집이 교회래. 교회 안에 하나님이 살아 있대.”

호세는 목소리를 낮추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비밀스럽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교회를 지은 지 백 년이 넘었대.”

“누가 지은 거야?”

마리는 더욱 궁금했습니다.

“그게 말이야. 우리 부족을 이 황무지처럼 쓸모없는 땅에 몰아넣은 백인들이 지은 거래.”

호세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그들이 믿는 하나님을 믿으라는 거지. 우리가 믿는 태양의 아버지, 비의 신, 대지의 어머니 따위는 없다는 거야. 그들은 태양도 비도 땅도 모두 하나님이 만들었대. 그래서 하나님을 믿어야 우리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거야.”

“그런데 왜 그들은 떠나고 돌담집만 남았어?”

“마리, 너 정말 몰라서 묻니?”

호세는 실망스럽다는 듯 낮은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습니다.

“백인들이 우리 부족에게 한 짓을 생각해봐. 자존심 강한 우리 부족이 백인들이 믿는 신을 받아들이겠어? ‘선교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하나님을 믿으라고 했지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대. 그들은 일 년 정도 버티다가 우리 부족들이 보내는 따가운 눈총에 못 이겨 이곳을 떠났다는 거야.”

호세 아빠는 주니족의 추장입니다. 부족 대표로 사람들을 만나러 도시에 나가기도 합니다. 호세도 가끔 아빠를 따라간다고 합니다. 호세는 부족 밖의 세상도 많이 알고 있는듯합니다. 그렇지만 호세는 비밀을 지키는 사람처럼 돌담집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었습니다.

마리는 비를 맞으며 돌담집 울타리를 따라 걷다가 대문이 바로 보이는 곳에 섰습니다.

말라가던 풀잎이 서서히 생기를 찾아갑니다. 땅이 깊은 곳엔 벌써 빗물이 고이기 시작합니다. 질퍼덕거리는 흙길도 있습니다. 비를 맞으며 떠들어대던 아이들의 소리도 잠잠해졌습니다. 모두 집으로 돌아간 모양입니다. 바람에 날리는 빗소리만 우두둑거릴 뿐 마을은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마리는 백인들이 믿는 하나님이 궁금하고 돌담집 안이 더욱 궁금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마리는 띄엄띄엄 휘어져 벌어진 쇠막대 울타리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대문까지 갔습니다.

둥근 문고리가 양쪽에 하나씩 붙어 있습니다. 문고리 두 개가 쇠사슬로 묶여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문고리와 쇠사슬은 벌겋게 녹이 슬어 있습니다.

마리는 문틈으로 양손을 넣어 문을 벌렸습니다. 묶여 있던 쇠사슬이 철커덕 소리를 내며 문틈이 조금 벌어졌습니다. 마리는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에 놀랐습니다. 얼른 몸을 옆으로 세워 좁게 벌어진 문틈으로 돌담집 안에 들어갔습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돌담집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는 마음속에 품고 있던 궁금증에 발동이라도 걸린 듯 어두운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둑하던 집 안이 희미하게 밝아 왔습니다. 긴 나무의자가 양쪽으로 줄지어 있습니다. 앞쪽으로 보이는 벽에 커다란 통나무 십자가가 붙어있습니다. 한쪽 벽에는 글이 쓰여 있습니다.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마시게 하리라.’

‘사막에 씨를 뿌려도 내 이름을 부르면 열매를 볼 것이라.’

다른 벽에는 한 남자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그림 위로 먼지와 거미줄이 쳐져 있어 십자가에 달린 사람의 얼굴은 더욱 고통스럽게 일그러져있습니다.

‘이 집에 몰래 들어오면 저렇게 죽는 걸까?’

어두컴컴하고 텅 빈 집안이 소름끼치도록 무섭습니다.

마리는 뒷걸음질로 들어갔던 문을 빠져나왔습니다. 울타리 사이를 지나 얼른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밖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빗줄기가 떨어지자 흙탕물이 톡톡 튀어 올랐습니다.

마리는 몸이 파르르 떨렸습니다. 가슴이 콩닥콩닥 벌렁거렸습니다. 온몸이 젖고 얼굴이 파랗게 물들었습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철벅철벅 흙탕물을 튀기며 집까지 뛰어왔습니다. 처마 밑에 받쳐 놓은 항아리에는 이미 빗물이 넘치고 있습니다.

아빠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여태까지 비를 맞고 다녔니?”

엄마가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어- 예.”

“비를 너무 오래 맞고 다녔구나. 뜨거운 차를 마셔야겠다.”

“…….”

“어서 옷부터 갈아입어라. 감기 걸리겠다.”

엄마가 옷을 꺼내 주었습니다.

마리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불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에서 차가 끓고 있습니다.

엄마가 건네준 찻잔을 받아든 마리의 손이 아직도 떨렸습니다.

“밖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왜 그렇게 떨고 있어?”

“아, 아뇨. 아무 일도 없었어요.”

마리는 돌담집에 들어갔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았습니다. 기우제를 앞두고 몹쓸 짓을 했다고 마을이 발칵 뒤집힐지도 모릅니다.

마리는 따끈한 차를 마시니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떨리던 마음도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돌담집에서 본 십자가는 무얼까? 벽에 적혀 있는 글은 하나님이 쓴 것일까? 그 남자는 왜 십자가에 매달려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마리의 머리를 스쳤습니다.

“마리, 여기 누워라. 감기 걸리겠다.”

엄마가 양탄자를 깔아주었습니다.

마리는 자리에 눕자, 몸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습니다. 마리는 머리가 혼란스러워 눈을 감았습니다.

돌담집 안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마리는 두려웠던 돌담집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했습니다. 차라리 잠들고 싶었습니다. 눈을 감고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마리는 복잡한 생각에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겨우 잠이 들었습니다.

답답하던 마리에게 환한 빛이 쏟아졌습니다. 빛이 마리를 감싸 안고 돌담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마리는 긴 나무의자 사이로 나아갔습니다. 마리를 감싸고 온 빛이 십자가를 비췄습니다. 마리는 밝은 빛 때문에 눈이 부셔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 이름을 부르라.”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마리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내가 네 하나님이다.”

돌담집 안을 꽉 메우듯 목소리가 부드럽게 울려 퍼졌습니다. 메아리처럼 울려오는 소리가 마리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마리는 다시 둘러봤지만 누구도 없었습니다. 십자가만 환하게 보일 뿐입니다. 낮에 보았던 글과 그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돌담집 안이 고요해졌습니다.

마리는 눈을 감은 채 큰 숨을 조용히 삼켰습니다. 살며시 눈을 떴습니다. 양탄자 위에 그대로 누워 있었습니다. 밖엔 비가 그치고 어둠이 내렸습니다. 마리는 돌담집 안 공중에서 울리던 말을 가만히 기억했습니다.


기우제를 지내는 날입니다.

마리는 엄마가 곱게 수놓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마을회관 앞 너른 마당으로 갔습니다. 마당 가장자리로 아이들과 여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마당이 잘 내려다보이는 지붕과 옥상에도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습니다. 호세가 마리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여행하는 사람들로 보이는 낯선 사람들도 있습니다. 크게 웃거나 장난치는 사람도 없이 조용히 기우제를 기다립니다. 소곤거리는 소리만 낮게 들립니다.

인디언 주니족의 기우제가 시작되었습니다.

흰옷에 여러 가지로 장식하고 각가지 가면을 쓴 사람들이 줄지어 마당으로 들어옵니다. 발을 맞춰 쿵쿵 울리도록 힘주어 땅을 밟습니다. 발목에 달린 방울 소리도 장단을 맞춥니다. 추임새처럼 휘파람처럼 길게 또는 짧게 인디언의 소리를 지릅니다. 마당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줄을 맞춰 마당을 빙글빙글 돕니다. 신비하고 특별한 소리로 비의 신을 부릅니다.

기우제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마리와 호세는 마당을 빠져나왔습니다. 기우제 지내는 마당을 벗어나자 온 마을이 조용합니다.

“나, 돌담집에 들어가 봤어. 그 교회라는 곳 말이야.”

마리는 호세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뭐! 정말! 어떻게?”

호세의 놀란 눈이 튀어나올 듯합니다.

“쉬잇!”

마리가 집게손가락을 펴서 입에 갖다 댑니다.

“비밀이야. 아무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돼.”

마리가 다짐하듯 호세와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했습니다.

마리와 호세는 어느덧 돌담집까지 왔습니다. 멀리서 기우제 지내는 발자국소리에 땅이 울리는 소리, 딸랑이 소리, 비의 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마리와 호세는 서로 눈이 마주쳤습니다. 돌담집 주변을 먼저 살폈습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마리는 호세의 손을 잡고 울타리 사이로 들어가 대문을 살짝 열었습니다. 삐거덕 철컥 소리를 내며 문틈이 벌어졌습니다. 마리와 호세는 배에 힘을 주고 몸을 가늘게 세워 겨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캄캄하던 집안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마리는 꿈속에서 들은 말이 생각났습니다. 분명 ‘내가 네 하나님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마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습니다.

“저 십자가에서 빛을 봤어. 저 통나무 십자가에 무슨 비밀이 있을지 몰라.”

마리가 꿈에서 본 밝은 빛을 떠올리며 십자가로 나아갔습니다. 십자가 앞에까지 가자 먼지가 뿌옇게 쌓인 빛바랜 책 한 권이 바닥에 놓여 있습니다. 마리는 책 위에 쌓인 먼지를 입으로 후우 불었습니다. 책표지에 'BIBLE'(성경)이란 글자가 희미하게 드러났습니다.

“이게 무슨 책일까?”

마리가 호세에게 속삭이듯 물었습니다.

“잘 모르겠지만 이 책 속에 하나님과 십자가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책 속에서 비밀을 찾아내는 환상 같은 이야기도 있잖아?”

“호세야, 다음에 아빠 따라 도시에 나가면 서점에 가서 성경책이 있는지 한 번 찾아봐. 오래된 책 속에 수수께끼가 숨어 있을 것 같아. 우리가 풀어 보자.”

“알았어.”

호세의 얼굴이 문제의 실마리라도 잡은 사람 같았습니다.

“빨리 나가자. 기우제가 끝나기 전에.”

마리가 재촉했습니다.

마리와 호세는 벽에 걸려 있는 그림과 글자를 읽으면서 대문 쪽으로 나왔습니다. 문틈으로 밖을 살폈습니다. 밖에는 여전히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리와 호세는 얼른 돌담집 밖으로 나왔습니다.

갑자기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리와 호세는 놀라서 온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습니다. 울타리에 기댄 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돌담집에 들어간 것을 마을 사람들이 알면 아마 벼락이 떨어질 것입니다. 사람들 소리가 점점 가까워옵니다. 몸을 숨길만한 곳도 없습니다. 담벼락 모퉁이에서 사람들 모습이 보이더니, 뚜렷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난 7년 동안 여름마다 이곳으로 여행을 왔어.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이야. 기우제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거든.”

마리와 호세는 소리 나는 쪽을 보고 깊은숨을 쉬며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마을 사람이 아니라 정말 다행입니다.

멀리서 기우제 지내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여행 온 사람들이 기우제를 보다가 가는 길에 돌담집 쪽으로 나온 모양입니다.

“이 황무지 같은 땅에도 꽃이 피어 있는 것 좀 봐. 해마다 새로운 꽃을 볼 수 있는 것도 참 신기해.”

조금 전 그 목소리의 주인입니다.

“사막 같은 이 땅에도 수많은 종류의 꽃씨가 묻혀 있다는 것이네. 그렇다면 이 땅에도 소망이 있다는 말이군.”

“그렇지, 인디언 주니족의 마음에도 희망의 씨앗이 묻혀 있을 테니까.”

“인디언들도 언젠가는 그들이 묻어둔 씨앗에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열매를 보겠지.”

“이 땅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이 다시 일어나는 날을 꿈꾸고 있을지도 몰라.”

“꽃씨가 싹틀 날을 기다리며 열매를 꿈꾸는 것처럼, 인디언들은 마음에 뿌려질 비를 기다리는지도 몰라.”

마리와 호세는 여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인디언 보호구역이 생기고 많은 세월이 흘렀어. 이젠 저 인디언들도 기우제로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그럴 거야. 그저 조상이 하던 습관을 따라 기우제를 지낼 수도 있으니까.”

“몇 년 지나지 않아 이 교회도 다시 문이 열리겠지.”

여행객들은 돌담집 문이 열리길 바라는 사람들 같았습니다.

마리와 호세는 돌담집 건너에 있는 낮은 바위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기우제를 지내는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쪽으로 바위에 걸터앉았습니다.

사람들 모습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그 사람들 이야기하는 것 들었지?”

마리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여행 온 사람들?”

“응, 그 사람들 눈엔 우리 부족이 흙먼지 뒤집어쓰고 힘없이 말라가는 들풀 같은가 봐.”

“가물어 메마른 땅에서 목말라 하는 사막 풀 말이지.”

마리와 호세가 앉은 바위틈에도 자라다 누렇게 말라가는 풀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엊그제 비가 내릴 때 골짜기를 따라 콸콸 흘러가던 흙탕물은 벌써 말라버렸습니다. 깊이 팬 바위 웅덩이에 물이 조금 고여 있을 뿐입니다.

주니 마을의 들풀은 비를 흠뻑 맞아도 목마름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꽃이라면 저렇게 작은 꽃이겠지.”

마리는 풀잎 사이에 여리게 피어 있는 꽃을 보며 말했습니다.

“짓밟힌 땅에 해마다 가뭄이 와서 마르고 굳어져 버렸는데 더 얼마나 튼실한 꽃이 피겠어?”

호세는 아빠의 흉내라도 내듯 한숨 섞인 말을 했습니다.

“마리, 돌담집 그 교회 안에서 읽었던 글 기억나지?”

호세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을 이었습니다.

“벽에 써 놓았던 글자?”

“그래, 바로 그거야. 우리 부족에게도 일어날 수 있을까? 사막에 강을 내어 마시게 하는 그 기적 말이야.”

“돌담집, 그 교회에서 본 성경이란 책 속에 답이 있지 않을까?”

“우리가 그 책에서 비밀을 찾아보자.”

마리와 호세는 결심이라도 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우리가 그 비밀을 찾는 날엔 모든 식물이 살아나겠지. 예쁜 꽃도 피어날 거고.”

“이렇게 가물어 흙먼지 날리는 땅이 아닐 테니 우리도 목마르는 일은 없어지겠지.”

마리와 호세는 기우제 지내는 곳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빨리 비가 왔으면 좋겠다.”

마리는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여행 왔던 그 사람들 말대로 우리 마음이 흠뻑 젖도록. 백인들에게 짓밟혀 굳어진 땅이 질퍽해질 때까지 비가 왔으면 좋겠다.”

호세의 목소리에 빗방울이 통통 튀는 듯했습니다.

“그럼 우리 마음에서도 싹이 날까?”

“씨앗이 있으면 싹이 나고 꽃도 피겠지. 내 옷에 핀 꽃처럼 싱싱하게.”

마리는 원피스에 수놓은 꽃을 만지작거리며 일어났습니다. 마리와 호세는 바위언덕에서 내려왔습니다. 돌담집을 지나는데 쇠사슬에 묶여있는 대문 틈이 살짝 벌어져 있습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53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71] 모기와 황소 최용우 2008-11-11 1372
652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70] 개구리와 황소 최용우 2008-11-11 1817
651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69] 여우와 빵 최용우 2008-11-11 1250
650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68] 당나귀과 애완견 최용우 2008-11-04 1403
649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67] 개와 잔치 최용우 2008-11-04 1222
648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66] 박쥐와 싸움 최용우 2008-11-04 1657
647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65] 사슴과 황소 최용우 2008-11-04 1195
646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64] 나팔수와 나팔 최용우 2008-11-04 1202
645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63] 개와 사나이 최용우 2008-11-04 1304
644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62] 다랑어와 상어 최용우 2008-10-27 1181
643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61] 사자와 새끼 최용우 2008-10-27 1303
642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60] 나그네와 말다툼 최용우 2008-10-27 1211
641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59] 새잡이와 뱀 최용우 2008-10-27 1190
640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58] 말벌과 자고새 최용우 2008-10-27 1386
639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57] 여우와 사자 최용우 2008-10-24 1599
638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56] 뱀과 왕벌 최용우 2008-10-24 1273
637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55] 개구리와 생쥐 최용우 2008-10-24 1426
636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54] 나귀와 그림자 최용우 2008-10-24 1336
635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53] 시골 쥐와 도시 쥐 최용우 2008-10-24 1535
634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52] 낚시꾼과 물고기 최용우 2008-10-16 1476
633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51] 참나무와 도끼 최용우 2008-10-16 1544
632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50] 독수리와 목소리 최용우 2008-10-15 1405
631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49] 진실과 거짓 최용우 2008-10-15 1492
630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48] 쐐기풀과 아이들 최용우 2008-10-15 1253
629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47] 청년과 목욕탕 [1] 최용우 2008-10-10 1751
628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46] 개미와 습관 [1] 최용우 2008-10-10 1279
627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45] 처녀와 우유통 최용우 2008-10-10 1848
626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44] 거북이와 조물주 [1] 최용우 2008-10-06 1400
625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43] 황소와 암송아지 [1] 최용우 2008-10-06 1561
624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42] 사자와 생쥐 최용우 2008-10-06 1551
623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41] 까마귀와 백조 최용우 2008-10-06 1928
622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40] 태양과 두꺼비 최용우 2008-09-29 1372
621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39] 까마귀와 주전자 최용우 2008-09-29 1582
620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38] 어부와 물고기 최용우 2008-09-29 1625
619 이솝우화 [꼬랑지달린이솝우화137] 어부와 하나님 최용우 2008-09-29 1142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