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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기독신춘문예 / 동화부문 당선작
천사와 할아버지
글 : 이경윤, 그림 : 김지혜
바울이는 숟가락을 홱 던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아니, 이게 어디서 배워먹은 버릇이야!"
"쳇, 반찬이 또 김치뿐이잖아. 맨날 김치하고 어떻게 밥 먹어!"
바울이의 반찬 타령에 엄마는 그만 고개를 떨굽니다.
"에휴~ 저 녀석이 언제 철이 들지……."
아빠는 화가 치밀었는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합니다.
그리고 바울이를 부르더니 종아리를 걷어라 합니다.
"오늘은 도저히 못 참겠다. 너 요즘 왜 그러는지 사실대로 말해 봐!"
바울이도 화가 가시지 않아 씩씩 거리기만 할 뿐 대답이 없습니다. 결국 아빠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회초리로 바울이 종아리를 세게 내리칩니다. 바울이는 앙 하고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동안 맘속에 쌓아둔 걸 한꺼번에 토해내듯이 씩씩거리며 말하기 시작합니다.
"흑흑, 이번 생일에 선물도 안 사주고…. 또 친구들 초대도 못하고…."
그러자 아빠는 그만 회초리 든 손을 떨어뜨린 채 힘겹게 눈을 감습니다. 사실 바울이네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바울이는 생일 때마다 멋진 선물을 받았었고 친구들도 초대해서 생일파티도 열었었습니다. 그런데 아빠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지금의 반 지하 단칸방으로 이사 오면서 모든 걸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바울이네 온 가족이 교회 가는 날입니다. 그런데 바울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여보, 바울이 어디 갔지? 이러다 교회 늦겠어."
"글쎄요. 조금 전까지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도 바울이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예배 시간은 늦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를 놔두고 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아빠는 급한 마음에 이곳저곳 뒤지다가 장롱 문을 열었습니다. 세상에! 그 속에 바울이가 숨어 있습니다.
"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나 교회 가기 싫단 말이야!"
"뭐??"
아빠는 깜짝 놀라 눈이 동그래집니다. 이건 지금까지 바울이에게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입니다.
"도대체 왜?"
"세상에 하나님이 어디 있다고 그래? 다 지어낸 이야기란 말이야!"
이번에는, 아빠는 물론 엄마까지 충격을 받은 듯 몸이 기우뚱해집니다. 아빠는 처음에는 멍하니 어쩔 줄을 모르다가, 뭔가 생각한 듯 바울이를 강제로 끌고 나와 교회로 향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동안 아빠와 엄마는 바울이 마음이 돌아오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주일학교 배 선생님이 바울이 엄마에게 다가왔습니다. 배 선생님은 교회에서도 믿음이 좋고 덕망 높기로 손꼽는 분입니다.
"저 정 집사님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바울이 엄마는 가슴이 덜컹합니다. 또 바울이가 무슨 사고를 쳤나 싶어서입니다.
"바울이가 예배 중에 갑자기 나가 버렸어요. 제가 붙잡아 말리려 해도 소용없더라구요."
"……"
"요즘 바울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바울이 엄마는 배 선생님이라면 바울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동안 집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을 다 털어놓았습니다.
"음, 그동안 함께 교회 다니면서 그런 일이 있는 줄도 몰랐다니 제가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오는 거니까요…."
"그동안 바울이 아빠가 늘 밝은 표정이어서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에휴….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더 있겠습니까? 우리 함께 기도실로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자구요?" 바울이 엄마는 배 선생님을 따라 기도실로 갔습니다. 두 사람은 기도실 안으로 들어간 후 문을 닫았습니다.
"하나님, 우리 사랑하는 정 집사님 가정에 이런 시련을 주신 것도 다 하나님 뜻이 있는 줄 압니다. 부디 정 집사 부부가 이 시련을 잘 이기고 가정이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 일로 인해 바울이가 더 이상 비뚤어지지 않게 하시고 바울이의 마음이 다시 하나님을 향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
기도하는 중에 바울이 엄마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릅니다. 바로 그때입니다. 컴컴한 기도실로 한 줄기 빛이 새어들어 옵니다. 그리고 그 빛은 바울이 엄마 눈물에 닿더니 반사되어 반짝거립니다. 기도 덕분인지 집으로 향하던 바울이가 갑자기 다시 교회로 발길을 돌립니다. 예배가 끝나면 초등부 아이들과 교회 마당에서 야구를 하는데 거기 끼기 위해서입니다.
"야! 바울이 왔다. 이제 우리 팀이 역전할 수 있겠다!"
바울이는 홈런 타자로 친구들 사이에서 유명합니다. 쳤다 하면 교회 담장을 넘기기 일쑤입니다. 그래서인지 상대팀 투수를 맡은 오석이가 바울이를 보더니 이렇게 외칩니다.
"이 공은 내가 생일 선물로 받은 건데… 엄청 비싼 거니까 너무 세게 치지 마. 잃어버리면 큰일 나니까!"
그러나 바울이는 '생일 선물'이라는 말에 울컥해 더 세게 배트를 휘둘러버렸습니다. 공은 교회 담장을 넘어 하늘 높이 날아갔습니다. 오석이가 당장 공 찾아오라고 난리를 칩니다. 바울이는 할 수 없이 공을 찾아 교회 밖으로 나섰습니다. 그러나 공이 너무 멀리 날아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막막하기만 합니다. 바로 그때 바울이 눈에 한 젊은 여자가 보입니다. 그 여자는 이상하게도 결혼식에서나 보는 하얀 드레스 같은 옷을 입고 있습니다. 머리카락도 하얗고 얼굴도 백지장처럼 하얀 것이 이상합니다. 하는 행동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교회 담장 옆에서 들어갈까, 말까 하는 눈치입니다. 바울이는 아무래도 이상한 사람 같아 지나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여자가 공이 어디로 날아갔는지 꼭 알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할 수없이 억지로 물어봅니다.
"저… 혹, 혹시 야구공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못 보셨어요?"
그러자 그 여자는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디론가로 갑니다. 바울이는 무서운 마음이 들었지만 공을 찾겠다는 마음으로 그 여자를 따랐습니다. 한 이삼십 미터쯤 갔을까요, 갑자기 허름하고 다 쓰러져가는 집들이 나타났습니다.
'교회 바로 근처에 이런 곳이 있었나?'
바울이는 교회에 다닌 지 제법 오래되었는데도 교회 근처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바울이네 교회 근처에는 주로 새 아파트와 빌라들로 즐비합니다. 그런데 이런 판자촌 같은 마을이 있다니, 놀라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여자가 한 집을 가리킵니다. 가장 누추해 보이는 집입니다. 바울이는 겁을 잔뜩 먹은 채 오래된 나무판자로 된 문을 열어봅니다.
삐거걱!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립니다. 안에는 쩍쩍 갈라진 시멘트 마당이 좁게 나 있고, 그 위에 그야말로 판자로 지어진 닭장 같은 쪽방들이 다닥다닥 이어져 있습니다. 바울이의 눈이 갈라진 시멘트 틈을 따라 가다가 한 곳에 머뭅니다. 놀랍게도 그곳에 공이 있습니다. 바울이는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듯 공을 얼른 집어 그 집을 빠져나가려 합니다. 바로 그때입니다.
"앗! 바울이 너 여기 웬일이냐?"
이건 아빠의 목소리입니다. 여기서 아빠를 만나다니요.
"어? 그건 저… 저기. 근데 아빤 여기 웬일이야?"
바울이는 아빠가 왜 이곳에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으응, 그…그건."
아빠는 뭔가를 생각하더니 바울이를 닭장 같은 방 중 한 곳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방문을 여는 순간 쾌쾌한 냄새가 바울이 코를 찌릅니다. 바울이는 금방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습니다. 그곳에는 짙은 눈썹에 조금 무섭게 생긴 할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얘가 누구야?"
할아버지가 묻자 바울이 아빠는 "예, 제 아들입니다"라며 바울이에게 인사하라고 손짓합니다. 바울이는 마지못해 꾸벅 인사를 합니다.
"어이구, 이 집사 닮아 아주 잘 생겼구먼."
바울이는 그제야 앉아서 방 안을 둘러봅니다. 세 사람이 앉았는데도 꽉 차는 좁은 방입니다. 벽지에는 땟국물이 꼬질꼬질하고. 낡은 TV 위에는 먼지가 뽀얗습니다. 세상에! 방바닥에 바퀴벌레가 기어갑니다.
"으악! 바퀴벌레다!"
바울이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자 아빠가 멋지게 바퀴벌레를 잡아냅니다.
"어휴, 언제 대청소 한 번 해드려야겠어요."
"응, 그 그럴 리가, 내 눈엔 전혀 보이지 않던데?"
그러고 보니 할아버지 앞이 잘 보이지 않나 봅니다.
"할아버지는 눈이 어두워 바퀴벌레 같은 것들은 잘 보이지 않아."
바울이는 도대체 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름이 바울이라고? 참 잘 지었구먼. 네 아버지가 얼매나 고마운지…. 지난 3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내게 도시락을 갖다 줬단다. 분명 복 받을 거여!" 바울이는 할아버지 말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아빠가 이런 일을 하고 있었다니….
'쳇, 우리 집도 망해서 못사는데 이런 할아버지 도와줄 돈이 어디 있어!'
바울이는 괜히 부아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만 그 집을 뛰쳐나와 버립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아직 가지 않고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어? 아, 아직 안 갔어요?"
"……"
그 여자는 계속 말이 없습니다. 바울이는 공을 찾아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얼른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합니다. 그때 처음으로 그 여자가 말문을 엽니다.
"저, 부탁이 하나 있어요. 저는 지금 갈 곳이 없으니 하룻밤만 묵게 해주세요."
바울이는 갑자기 반지하 단칸방 모습이 떠올라 생각지도 않고 거절해 버립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막 울면서 바울이에게 사정을 합니다. 바울이는 그 여자가 우는 모습이 하도 애처로워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마침 그때 아빠가 나왔습니다. 사정 이야기를 듣더니 좋다고 합니다.
"아니, 아빠 우리 집에 잘 데가 어디 있다고?"
"사정이 딱하잖니? 아빠가 거실에서 자면 되니 하룻밤만 재워주자."
바울이는 정말 아빠를 알 수 없습니다. 저런 거지같은 할아버지를 도와주지 않나, 이번엔 이상한 여자까지 도와주려하다니. 지금 우리 집이 어디 남 도와줄 사정인가 말입니다. 그런데 엄마도 아빠와 다를 바 없습니다. 흔쾌히 그 여자에게 하룻밤 묵게 해준 것입니다. 저녁 시간, 손님이 왔다고 제법 오랜만에 먹을 만한 밥상이 차려졌습니다. 불만이 가득한 바울이가 먼저 말을 꺼냅니다.
"아빠, 우리도 먹고 살기 힘든데 언제까지 그 할아버지 도울 거야?"
"으응, 사실 지금 우리도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그 할아버지는 우리보다 훨씬 어려우셔. 너도 봤잖니. 그리고 그전부터 쭉 해오던 일이라 여기서 그만 둘 수가 없어."
"그래, 바울아. 조금만 참으면 하나님이 분명 다시 그전처럼 잘 살게 해주실 거야."
"쳇, 또 하나님 타령. 이제 난 하나님 안 믿어!"
그때 조용히 있던 여자가 말을 꺼냈습니다.
"제가 밥값을 하고 싶어요. 아버님이 하시는 일을 도울 수 없을까요?"
바울이 아빠는 난처한 표정을 짓습니다.
"글쎄요. 이 일이 젊은 여자가 하기에는 좀…."
"아니에요. 그 전에도 그런 일 많이 해보았는걸요."
"정말요!"
아빠는 마치 구세주를 만난 듯한 표정입니다.
"누난 절대 못할 거예요. 그 할아버지 방엔 바퀴벌레가 우글거린 데요."
이번에는 바울이가 방해를 합니다.
"바퀴벌레쯤이야. 난 구더기 청소도 해보았는걸."
"헉! 구, 구더기!"
바울이는 갑자기 먹던 밥을 토할 뻔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 여자는 정말 이상하다 못해 신기하기까지 합니다. 무엇보다 여자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 속으로 빨려들 것만 같습니다.
다음날, 아빠와 여자가 쪽방촌 할아버지 집에 간다합니다. 여자가 바울이에게도 같이 가자합니다. 바울이는 가기 싫었으나 마치 여자의 마력에 끌린 듯 따라나섰습니다.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여자는 마치 늘 하던 일을 하는 것처럼 능숙하게 집을 청소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어지러이 늘린 잡동사니들을 싹 쓸어 모읍니다. 바닥에 깔린 모포를 들치자 숨어 있던 몇 마리의 바퀴벌레들이 이리저리 도망가느라 정신없습니다. 이번에는 준비해온 빗자루로 빗질을 한 뒤 걸레로 바닥을 닦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더럽던 바닥에 윤기가 번지르르 돕니다. 마지막으로 바퀴벌레 약을 뿌립니다. 그러자 이제 방안에서 바퀴벌레는 구경도 할 수 없습니다. 모포도 어느덧 뽀송뽀송 깨끗해졌습니다. 여자의 손놀림이 어찌나 신기한지 마치 청소의 마법사 같습니다. 아빠도 바울이도 넋을 놓고 지켜보기만 합니다. 이제 할아버지 방은 깨끗해졌습니다. 아빠는 연신 여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사실 그동안 늘 할아버지 집 청소를 해줘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청소해야 할지 몰라 막막했는데 이렇게 도와주니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할아버지도 덩달아 하늘에서 천사가 왔다며 좋아합니다. 그 더럽던 집이 깨끗해진 걸 보니 바울이도 마음이 깨끗해진 느낌입니다.
"아버님, 다음 집이 어딘지 가르쳐주세요."
누나의 말에 바울이 아빠는 깜짝 놀랍니다.
"아, 아니 그걸 어떻게?"
바울이는 아빠가 왜 놀라는지 몰랐습니다. 알고 봤더니 아빠가 도와주는 사람이 할아버지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아빠는 자그마치 열 명이나 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돕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가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여자가 어떻게 그걸 알았는지는 도무지 신기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그날 바울이는 아빠와 여자와 함께 나머지 집들을 쭉 둘러봤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할머니, 잘 듣지 못하는 할머니, 아파서 누워 있는 할아버지 등 하나같이 어려운 사람들뿐입니다. 바울이는 처음으로 세상에 참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집에 들어갔는데 마침 할머니 한 분이 겨우 숟가락을 들고 찬물에 만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 순간 바울이는 갑자기 자기가 밥투정했던 게 부끄럽게 생각되었습니다. 옆에 있는 아빠에게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을 나서면서는 집 투정했던 것까지 부끄러웠습니다.
'이 할아버지 할머니들 집에 비하면 우리 집은 그래도 나은 편인데….'
무엇보다 아빠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일을 하는 아빠에게 투정을 부리다니.'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제 바울이의 마음은 이런 저런 생각으로 꿈틀꿈틀 요동치기 시작합니다. 다음날, 여자는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보여주었습니다. 어제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청소를 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바울이도 여자를 도왔습니다. 아빠도 여자의 청소를 거들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하루 만에 아홉 집의 청소를 모두 끝낼 수 있었습니다.
여자와 아빠와 함께 청소를 하면서 바울이는 그동안 꽉 막혔던 마음이 뻥 뚫리는 느낌입니다. 마지막 집을 청소할 때는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할머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더욱 더 힘이나 신나게 청소할 수 있었습니다. 지친 몸으로 돌아온 그날 저녁, 바울이는 밥을 두 그릇이나 먹고 그대로 곯아떨어졌습니다. 많이 피곤했던 모양입니다. 평소 코를 골지 않는데 코까지 골면서 말입니다.
다음 날, 아침 여자가 이제 떠나겠다고 합니다. 아빠가 무척 서운해 하는 눈치입니다. 사실 더 서운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좀 더 있으면 안 돼요?"
"이제 떠나야지. 언제까지 바울이 아빠가 좁은 거실에서 주무시게 할 순 없잖아!"
"아뇨, 난 전혀 불편하지 않습니다."
"아니에요. 전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꼭 가야해요."
그렇게 여자는 바울이의 집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이는 도저히 여자를 그냥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무슨 마법사일지도 몰라.'
바울이는 여자 뒤를 따랐습니다. 물론 여자가 눈치 채지 못하게 조금 떨어진 채 말입니다. 계속 여자를 따르던 바울이는 하마터면 까무러칠 뻔했습니다. 여자 앞에 이상한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부리한 눈과 울퉁불퉁한 피부가 턱 보기만 해도 무서운 사람입니다. 여자는 갑자기 그 사람과 싸우기 시작합니다. 어찌나 치열하게 싸우는지 바울이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고 있는 것 같이 손에 땀을 쥐었습니다.
역시 여자는 보통 사람이 아닌 게 분명했습니다. 처음엔 좀 밀리는가 싶더니 드디어 그 사람을 때려눕힙니다. 바울이는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여자가 눈치 채고 돌아봅니다.
"미안해요. 도저히 궁금해서…."
"괜찮아. 이제 모든 게 해결됐으니까."
그리고 여자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난주일 네 엄마가 너를 위해 교회 기도실에서 간절히 기도를 했었지. 그 기도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신 거야. 당시 네 주변에는 마음을 괴롭게 하는 악마가 서성거리고 있었어. 그래서 네가 빗나가게 되었던 거야. 하나님은 나에게 그 악마를 물리치고 너를 구해주라는 임무를 주셨지. 근데 난 악마를 우습게보고 덤볐다가 그만 크게 당하고 말았어.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네가 나타나 나를 구해준 거야. 그런데 너의 집에서 네가 하나님을 믿지 않겠다는 말을 했을 때 정신이 뻔쩍 들었지. 그래서 네 아빠의 일을 도우기로 결심한 거야. 그러면서 다시 힘을 얻을 수 있었어. 우리 천사들은 착한 일을 많이 할수록 힘이 셈 솟거든. 난 마지막 열 번째 집을 청소하면서 완전히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어. 악마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던 거지. 그리고 오늘 멋지게 악마를 물리쳤어. 이제 악마가 물러갔으니 넌 다시 옛날처럼 될 거야."
정말 신기했습니다. 여자의 말대로 이미 바울이는 다시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바울이는 다시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그, 그럼 당신이 정말 천사란 말이죠."
"물론이지."
여자는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하늘로 사라져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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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통일성 있는 형태로 형상화"
[제11회 기독신춘문예 / 동화 심사평]
동화는 어린이를 위한 문학이다. 따라서 어린이들에게 재미(흥미성)을 주어야 한다. 성인을 독자로 하는 장르는 재미가 덜 하더라도 미문이나 주제 등 다른 요소에 매료되어, 인내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린이의 경우 내용에 재미가 없으면 당장 책을 덮어버린다.
어린이들은 자기들의 내면세계에 근거를 두고, 본능적인 충동을 만족시켜 활력을 찾아가는 이야기에 흥미를 갖는다. 어른들이 흥미롭다고 이미 만들어 놓은 틀 속에 갇히기를 싫어한다. 날로 변해가는 세상에서 오늘의 어린이는 이미 어제의 어린이가 아님을 명심하고 창작에 임해야겠다.
무엇(교훈)을 주기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줄 것인가에 심혈을 기울임이 필요하다. 이러한 관점으로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올라온 동화 응모작 40편 중 네 편을 우선 추렸다.
'나의 짝 영남이', '어린 양의 눈물', '엉겅퀴, 네 마음을 열어봐!', '천사와 할아버지'이다.
'나의 짝 영남이'는 학원 여선생이 지능이 좀 모자라는 제자 영남이와의 갈등과, 병을 앓고 있는 둘째 언니와의 불편했던 감정, 그 후 자신의 심경변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린 양의 눈물'은 자기 때문에 언니가 성폭력을 당했다고 믿는 동생이 관찰자 시점에서 언니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충격으로 실어증에 걸렸던 언니가 교회에 다니는 친구의 도움으로 회복되어가는 내용인데 사회문제의 심각성을 대변해 준다. '엉겅퀴, 네 마음을 열어봐!'는 자기를 구하려다 경운기 사고로 하늘나라로 가신, 믿음 좋은 친할머니를 그리워하며 괴로워 하던 연두가,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엉겅퀴꽃에서 애틋한 정을 느끼며 위로를 받는다는 이야기다. 예술성 짙은 작품으로 문장이 잘 다듬어져 깔끔한 느낌을 준다. '천사와 할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하여 가난해진 아빠가 그래도 온 가족이 교회에 잘 다니며 불우한 노인들을 돕는 이야기로 주제가 건강하고 교훈적이다. 동화에서 흔히 꿈으로 처리하는 환상세계를, 현실과의 통일성 있는 형태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하여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우열을 가림에 있어 '나의 짝 영남이'는 소재와 문장에서 동화로는 무리가 된다는 점이 흠으로 잡혔고, '어린 양의 눈물'은 동일 사건의 서너번 중복설명으로 식상한 감을 주었다. 반대로 '엉겅퀴, 네 마음을 열어봐!'는 중요한 부분의 지나친 함축 또는 비약으로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러나 작가의 문학적 가능성을 높이 사 가작으로 선했다. 하여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비참한 모습을 그림에 다소 거부감은 있으나 작품의 깊이와 무게에서 역량이 인정되는 '천사와 할아버지'를 당선작으로 올린다.
/심사위원 김영자
"하나님께서 주인공인 멋진 동화 쓰는 작가 되고파"
[제11회 기독신춘문예 / 동화 당선소감]
할렐루야! 하나님께 가장 먼저 이 영광을 돌립니다.
4년 전,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13년간 다니던 직장을 박차고 나왔던 때가 떠오릅니다. 한 번도 글쓰기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그렇다고 밑천도 없었던 제가 단지 어릴 적 꿈 하나만 믿고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는지 지금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 후로 하나님은 놀랍게 저를 인도해 주셨고, 여러 분야의 책을 쓰는 작가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맑고 아름답고 신기한 동화의 세계를 만났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작은 혁명이요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동화작가가 되기 위해 제 앞에 가로놓인 등단이라는 무서운 벽은 저의 가슴을 짓눌렀습니다.
'과연 나도 해낼 수 있을까?'
이번 당선은 이런 저의 무거운 고민을 단 한 방에 날려버린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주인공인 멋진 동화를 쓰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처음 기독교 동화를 쓸 때는 몰랐는데, 지난 주일 예배 때 하나님께서 왜 이런 영광을 주셨는지, 앞으로 어떤 동화를 써야 하는지 정확한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 글에 대해 날카로운 지적을 해주었던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들(기범 10살, 주형 8살), 처음으로 동화를 가르쳐주셨던 어작교 정해왕 선생님, 아침나무 식구들, 그리고 지금 글공부를 함께 하고 있는 동국대 대학원 장영우교수님과 선배님들, 동기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경윤
- 1967년 경남 진주 출생
- 고려대학교(세종캠퍼스) 화학과 졸업
-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 재학 중
- 출판사에서 13년 근무
- 현재 프리랜서 기획 작가로 활동
- 다운교회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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