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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성경신춘문예 동화부문 당선작]
세자오 이야기 / 강미진
< 1 >
'winter 마을'은 에베레스트 산 중턱에 있다.
마을엔 계절이 없다.
꽃피는 3월, 푸르른 5월 중에도 'winter 마을'엔 항상 눈이 내린다.
어느 집이든 문이 닫혀있다.
마을주민들은 눈과 바람, 이방인 그리고 반갑지 않은 이웃의 방문을 대비해 문을 굳게 닫아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마을을 'winter 마을'이라 부른다
< 2 >
마을 가장 구석진 곳, 허름한 집이다.
작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하다.
사람보다는, 길 잃은 짐승이 살기에 더욱 적당하다.
바람소리 한번에, 대문 여닫히는 소리 두 번이 난다
< 3 >
집안에는 한 늙은 남자가 낡은 신발들을 고치고 있다.
세자오다.
다른 사람들과 생김이 다르다.
등은 흡사 낙타의 등처럼 솟아 있고,
한쪽다리의 길이가 다른 한쪽의 다리의 길이와 다르다.
어쩌다 그가 고개를 들어 당신을 본다면, 당신은 그의 몹시 일그러진 얼굴에 찌그러진 입술, 송충이 같은 눈썹의 사내의 얼굴에 불쾌해 졌을 것이다.
< 4 >
아침이다.
오늘 'winter 마을'은 다소 분주하다.
내일은 겨울뿐인 이 마을에, 1년에 단 하루뿐인 축제일이기 때문이다.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만큼은, 이 마을도 활기를 띈다.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고, 따뜻한 수프, 달콤한 과자와 아름다운 케익을 구워 가족과 이웃, 집 없는 아이들 그리고 길 잃은 짐승들에게 까지도 친절히 대접한다.
이날만큼은, 어느 집 이라도 문을 활짝 연다.
< 5 >
아침햇살이 자고 있는 세자오를 비춘다
세자오가 눈을 뜬다.
침대에서 일어난다.
침대의 구석구석에서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난다.
세자오가 절뚝거리며, 난로로 걸어간다.
이제 하루를 시작할 참이다.
< 6 >
오래 된 난로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유용한 난로다.
커피를 끓이거나 음식을 데울 수도 있고, 무엇보다 그의 차가운 몸을 녹일 수 있다.
하지만, 우선은 난로에 성에를 제거해야 한다.
지난 저녁 무렵엔 작은 불씨라도 타올랐으나, 새벽이 지나며 불이 꺼진 난로에 성에가 둘러쌓다.
세자오가 성에를 제거한다.
그리고, 새로운 불을 지핀다.
< 7 >
세자오는 작은 주전자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주전자에 눈을 담는다.
눈이 녹으면, 그 물로 커피를 만들 생각이다.
그러나, 데울 음식은 없다.
< 8 >
세자오가 커피를 마신다.
< 9 >
세자오가 커피를 다 마시고, 누군가를 기다린다.
< 10 >
"땅땅, 땅땅"
누군가가 세자오의 대문을 두드린다.
"세자오야 세자오야, 문을 열어라"
세자오는 공손히 문을 연다.
빵집을 하는 뚱뚱이 한스다.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스의 신발은 모양은 없고 튼튼하기만 한, 소가죽으로 만든 가죽장화다.
한스는 수레가 달린 썰매를 타고 세자오의 집에 왔다.
"세자오야 이 장화를 고치렴.
내가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에 신을 신이다.
내일 아침까지 말끔히 고쳐 놓아야 한다"
세자오는 고개를 끄떡인다.
한스는 차가운 빵 한 덩어리를 준다.
(어제 구운 빵으로 팔 수는 없으나, 버리기엔 아까운 빵이다.)
세자오는 빵을 고맙게 받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한스는 집을 나선다.
세자오는 문밖까지 나가, 허리를 숙이며 배웅을 한다.
한스는 돌아보지도 않고, 수레가 달린 썰매를 타고 집을 떠난다.
< 11 >
"뚝뚝, 딱딱"
세자오는 한스의 장화를 고치고 있다
< 12 >
"똑똑, 똑똑"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린다.
"세자오야 세자오야, 문을 열어라"
세자오는 공손히 문을 연다.
대장장이네 둘째 딸 마틸다다.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다
마틸다의 신발은, 모양은 그런대로 예쁘장하지만, 신으면 발이 불편한 멋을 부린 구두다.
마틸다는 수레가 달린 썰매를 타고 세자오의 집에 왔다.
"세자오야 이 구두를 고치렴.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에 제니의 집에서 무도회가 있다.
내가 그 무도회에 신고 갈 신을, 내일아침까지 말끔히 고쳐 놓아야 한다"
세자오는 고개를 끄떡인다.
마틸다는 포도주 한 병을 준다.
(어젯밤 대장장이가 잠들었을 때 몰래 훔쳐낸 술이다.
반쯤은 마시고 그 반은 물로 채웠다.)
세자오는 고맙게 받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마틸다는 집을 나선다
세자오는 문밖까지 나가 허리를 숙이며 배웅을 한다.
마틸다는 돌아보지도 않고, 수레가 달린 썰매를 타고 집을 떠난다.
< 13 >
"뚝뚝, 딱딱"
세자오는 아직 한스의 장화를 고치고 있다.
< 14 >
"똑똑, 똑똑"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린다.
"세자오야 세자오야, 문을 열어라"
세자오는 공손히 문을 연다.
교회의 엄숙한 사제 미카엘이다.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다.
미카엘의 신발은,단순하지만 교양이 넘치며, 약간은 거만한 검은 신발이다.
"세자오야 이 신발을 고치렴.
나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에 설교를 해야 한다.
너는 사제의 신발을 만질 자격도 없지만, 고칠 수 있는 영광을 준다.
내일 아침까지 말끔히 고쳐 놓아야 한다"
세자오는 고개를 끄떡인다.
미카엘은, 자신의 목도리를 벗어 세자오에게 감아 준다
(미카엘은, 어제 신도에게 훌륭한 새 목도리를 선물 받았던 것이다.)
세자오는 목도리를 고맙게 받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인다.
미카엘은, 세자오의 집을 나선다.
세자오는 문밖까지 나가, 허리를 숙이며 배웅을 한다.
미카엘은 돌아보지도 않고, 수레가 달린 썰매를 타고 집을 떠난다.
세자오는 미카엘의 목도리를 조심스레 벗어, 그의 작은 식탁에 가만히 놓는다.
< 15 >
빵과 포도주, 목도리를 받았다.
한스의 장화, 마틸다의 구두, 미카엘의 신발을 고치려면 저녁까지 쉴 틈 없이 일을 해야 한다.
오늘은, 손님이 더 오지 않아도 좋다.
< 16 >
세자오는 일을 한다.
"뚝뚝, 딱딱"
< 17 >
세자오의 작업은 매우 꼼꼼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점을 알고 있다.
세자오는 불평하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은 그 점도 알고 있다.
그리고, 신을 고친 대가를 아주 적게 받는다
마을 사람들은 그러한 세자오를 잘 알고 있다.
세자오는 일을 하고 있다.
"뚝뚝, 딱딱"
이제 한스의 장화를 다 고쳤다.
자신의 고친 신발을 살펴본다.
촘촘히 박힌 바느질, 만족한다.
이제는 마틸다의 구두를 고칠 차례다.
< 18 >
"뚝뚝, 딱딱"
세자오는 일을 한다.
< 19 >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다.
점심식사준비를 한다.
한스가 준 차가운 빵을, 반으로 잘라 난로 안에 넣는다.
마틸다가 준 도주 반잔을 컵에 따른다.
그리고 기도를 한다.
"제가 이 신발들을 잘 고치게 해 주십시오"
그뿐이다.
세자오는 반쪽자리 빵과 반잔의 포도주를 먹고, 마신다.
< 20 >
"똑...똑....."
누군가 작은 소리로 대문을 두드린다.
"누구지...?'
이제까지 세자오의 대문을 그렇게 두드리는 사람은 없었다.
"누굴까?"
세자오가 문을 연다.
< 21 >
"어...?"
누군가의 도움이 몹시 필요한 여자다.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여자의 신발은 정말 형편없는 신발이다.
무겁고 따듯하지 않는, 나무로 만든 나막신이다.
이 신발은 눈은 커녕, 작은 바람이라도 전혀 막아주지 못한다.
"저.... 혹시 남는 신발이라도 있으신가요?"
가냘픈 목소리다.
"제 아이가 신발이 없습니다
제일 작은 신발 하나만 이라도 주실 수 없나요?"
문 뒤로 아이들이 발자국이 보인다.
세자오는 망설인다.
< 22 >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실례했습니다"
여자는 목소리가 힘이 없다.
여자는 돌아 서려 한다.
세자오는 문까지 나서며 그 여자를 막는다.
여자의 뒤에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는 3명이다.
제일큰아이는, 고수머리에 눈이 큰 여자아이다.
중간아이는, 헝클어진 머리에 고집 센 입술의 사내아이다.
막내아이는...막내아이는 그래, 막내아이다.
아주, 아주..작고, 손이 빨갛게 얼어 있다.
< 23 >
세자오는 여자에게 자신을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세자오는 서랍장으로 간다.
서랍을 연다.
서랍 안에는 신발들이 있다.
가장 인색한 사람이라도 더는 신을 수 없는 헌 신발들이 여러켤레가 있다.
세자오는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달력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달력에는 내일, 그러니까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여자가 묻는다.
"내일 와도 괜찮은가요?"
세자오는 고개를 끄떡인다.
여자는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한 후, 집을 나간다.
< 24 >
여자가 집을 나서 몇 발자국 걸었을 때, 세자오는 세 아이 중 가장 큰아이의 호주머니에 한스의 남은 빵 반 덩어리를 넣어준다.
여자가 집을 나가 몇 발자국 더 걸었을 때, 세자오는 둘째 아이의 손에, 마틸다의 남은 반 병의 포도주를 쥐어준다.
여자가 이제는 집에서 얼마쯤 멀어졌을 때, 세자오는 가장 작은 막내아이의 목에 미카엘의 목도리를 감아준다.
여자가 감사인사를 하기 전, 세자오는 집 쪽으로 돌아선다.
그리고 서둘러 집 쪽으로 걸어간다.
< 25 >
저녁이다.
눈이 내린다. 바람이 분다.
"그 여자는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잘 갔을까?"
눈이 더 많이 내리고, 바람이 더 많이 분다.
저녁식사는 오래된 콩 약간과 겨우 녹인 미지근한 물이다.
< 26 >
"뚝뚝, 딱딱"
세자오는 일을 한다.
< 27 >
"뚝뚝, 딱딱"
미카엘의 신발을 다 고쳤다.
꼼꼼히 고친 신발을 살펴본다.
역시나 촘촘히 박힌 바느질, 만족한다.
이제 한스의 장화, 마틸다의 구두, 미카엘의 신발을 다 고쳤다.
아주 말끔하고, 촘촘하게 고쳤다.
세자오는 흐믓하다.
< 28 >
평소보다 시간이 지체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만들어야 할 신발이 세 켤레나 남아있다.
그러니까 늦은 밤까지 쉴 틈 없이 일을 해야 한다.
세자오는 그 세 아이들의 신발을 만들기 위해 다시 일어선다.
< 29 >
이 시간엔 사람들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이 시간엔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다.
따듯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대화한다.
세자오의 집을 방문하기엔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
< 30 >
"똑똑, 똑똑"
누군가가 세자오의 대문을 두드린다.
"이상하다.."
세자오는 일어선다.
< 31 >
낯선 손님이다.
낯선 손님은 따듯하고, 유쾌한 사람이다.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다.
낯선 손님의 신발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털이 가득 달린 커다란 신발이다.
방안이 조금 환해진다.
"저 넘어 관대하신 그분께서, 나를 이리로 보내셨소"
그 손님은 빙그레 웃는다.
"관대하신 그분은 당신을 몹시 맘에 들어 하시오. 그래서 내일 그분의 파티에 당신을 초대하시기로 하셨소. 그러니 당신은 자정이 되면 지금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파티에 오시오"
세자오는 묻는다.
"제가 제 일을 그만두면, 누가 이 일을 하나요?"
손님은 껄껄 웃는다.
"당신이 하던 일은, 관대하신 그분께서 마무리 하실거요. 걱정 말고 파티에 오시오"
말을 마치고 손님은 느긋하게 나간다.
세자오는 문밖까지 나가 허리를 숙이며, 배웅을 한다.
< 32 >
세자오는 혼자 남았다.
"파티?....파티? ....관대하신 그분이라니..... 나는 그분을 모르는데, 그분은 나를 잘 아신다고...?"
한번도 초대된 적 없는 파티..
가슴이 설랜다.
그 파티에 꼭 가고 싶다.
< 33 >
돌아본 식탁 위엔 바구니가 놓여있다.
따듯하고 먹음직한, 둥근 빵 3개가 담아져 있다.
시장기를 느낀다.
그러나 세자오는 빵을 집어 들기가 망설여진다.
"아하...그래...그러면 되겠군....."
내일 아침엔 그 여자와 그 여자의 세 아이들이 온다.
그들에게 주고 싶다.
"아무래도 내일은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이니까...
이건 ...아주 잘된 일이야"
< 34 >
늦은 밤이다.
세자오는 빵이 담긴 바구니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는다.
< 35 >
세자오는 서랍장으로 걸어간다.
그 여자의 세 아이들의 신발을 만들 셈이다.
서랍장을 열고, 신발들을 고른다.
신중하게 고른다.
그 여자의 제일 큰아이는, 고수머리에 눈이 큰 여자아이다.
그 아이를 위한 신발을 만들고 싶다.
세자오는 즐겁다.
아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에 세자오가 만든 신발을 신고, 감사기도를 드릴 것 이다.
신발을 만들기 시작한다.
< 36 >
"뚝뚝, 딱딱"
세자오는 열심히 일을 한다.
첫째 아이의 신발이 거의 완성 되었을 때, 세자오의 굽은 등이 좀 더 굽어졌다.
세자오는 중얼거린다.
"왜지?
오늘따라 등이 조금 더 무겁고, 귀에선 윙윙 소리가 나... 이건 문밖의 바람소리인가?"
"땡땡"
벽시계가 열두 번 울린다.
< 37 >
"뚝뚝, 딱딱"
세자오는 일을 한다.
"뚝뚝, 딱딱"
여자의 첫째 아이의 신발을 다 만들었다.
꼼꼼히 신발을 살펴본다.
역시나 촘촘히 박힌 바느질, 세자오는 만족한다.
이제는 여자의 둘째 아이의 신발을 만들 차례다.
다시 서랍을 열고, 둘째 아이의 신발을 고른다.
신중하게 고른다.
둘째 아이는, 헝크러진 머리카락에 고집 센 입술의 사내아이다.
고집 센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라면, 좀 알고 있다.
자존심 세고, 키가 더 자라면, 어머니와 누이를 위해 무슨 일이건 열심히 하려 들것이다.
"하하"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그 아이를 위한 신발을 만들고 싶다.
세자오는 즐겁다.
아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에 세자오가 만든 신발을 신고, 감사기도를 드릴 것이다.
신발을 만들기 시작한다.
< 38 >
"뚝뚝, 딱딱"
세자오는 일을 한다.
이 시간엔 사람들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이 시간엔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잠을 잔다.
따듯한 집에서, 서로를 껴안고 다정하게 잠을 잔다.
세자오의 집에 방문하기엔 너무 어둡고, 너무 춥기 때문이다.
< 39 >
"똑똑, 똑똑"
누군가가 대문을 또 두드린다.
"이상하다.."
세자오가 일어선다.
< 40 >
낯선 손님이다.
손님은 차분하고, 공정한 사람이다. 그리고 여자다.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다.
손님의 신발은, 화려하진 않지만 고상하고 아름다운 날씬한 신발이다.
방안이 조금 더 환해지는 것 만 같다..
"저 넘어 관대하신 그분께서, 나를 이리로 보내셨습니다.
관대하신 그분은 지난 저녁 당신을 파티에 초대 하셨습니다.
당신은 자정이 되면 지금까지 일을 멈추고, 파티에 오기로 대답하셨습니다.
당신은 혹시… 그분과의 약속을 잊으셨나요?"
손님은 상냥하게, 그러나 약간은 엄격하게 묻는다.
세자오는 고개를 가로 젖는다.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은 갈 수 없다.
자오는 그 여자의 둘째 아이의 신발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당신의 일은 관대하신 그분께서 마무리 하실 겁니다.
당신은 지금 저와 함께 출발하시지요"
세자오는 당황한다.
세자오가 아니면, 그 고집 센 둘째 아이의 신발을 누가 만든단 말인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이다.
손님은 한숨 쉰다.
"그 신발을 마무리하면 곧 오십시오. 그 분께서 당신을 걱정하고 계십니다"
세자오는 고개를 끄덕인다.
말을 마치고, 낯선 손님은 망설임 없이 집을 나간다.
세자오는 문밖까지 나가, 허리를 숙이며 배웅을 한다.
< 41 >
돌아본 식탁 위엔, 포도주가 한 병 놓여있다.
유리병 안의 포도주는 빛깔이 아주 아름답고, 달콤해 보인다.
목마름을 느낀다.
그러나 세자오는 포도주를 집어 들기가 망설여진다.
"아하... 그래... 그러면 되겠군....."
내일 아침엔 그 여자와 그 여자의 세 아이들이 온다.
그들에게 주고 싶다.
"아무래도 내일은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이니까...
이건... 아주 잘 된 일이야"
< 42 >
"뚝뚝, 딱딱"
열심히 일을 한다.
둘째 아이의 신발이 거의 완성 되었을 때, 세자오의 굽은 등이 더욱 굽어졌다.
이번에는 세자오도 알아차린다.
"이건 이상하군. 등이 많이 무거워졌어…. 이런 일은 별로 없었는데, 귀에선 계속 윙윙 소리가나고. 이 소린 문 밖에서 부는 바람소리가 아니야. 그건 알 수 있어."
"땡땡"
벽시계가 다시 울린다.
이젠 새벽이 얼마 남지 않았다.
< 43 >
"뚝뚝, 딱딱"
일을 한다.
"뚝뚝, 딱딱"
둘째 아이의 신발을 다 만들었다.
꼼꼼이 신발을 살펴본다.
역시나 촘촘히 박힌 바느질, 세자오는 만족한다.
이제는 여자의 막내아이 신발을 만들 차례다.
세자오는 다시 서랍을 열고, 막내아이의 신발을 고른다.
신중하게 고른다.
이건 좀 어려운 일이다.
평생신발을 만들었지만, 아무래도 고민스럽다.
막내아이는. 막내아이는…
그러니까.. 아주 작고, 아주 약하다.
5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빨갛게 언 손을 호호 불고 있었다.
왠지.. 왠지 마음이 뭉클하다.
그 아이를 위한 신발을 만들고 싶다.
세자오는 즐겁다.
아이는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에 세자오가 만든 신발을 신고 감사기도를 드릴 것이다.
신발을 만들기 시작한다.
< 44 >
"뚝뚝, 딱딱"
일을 한다.
이 시간엔 사람들이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이 시간엔 사람들은 자신의 집에서, 가족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있다.
따듯한 집에서, 서로를 껴안고 아름다운 꿈나라를 여행한다.
세자오의 집을 방문하기엔 너무 어둡고, 너무 춥고 그리고 너무 쓸쓸하기 때문이다.
< 45 >
"쿵쾅, 쿵쾅"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린다.
대문은 부서 질 것만 같다.
"이상하다.."
세자오는 재빨리 일어선다.
< 46 >
낯선 손님이다.
손님은, 성격이 불같고 용감한 사람이다.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다.
손님은, 질기고 단단한 가죽과 짧은 털이 잔뜩 달린 튼튼한 신발을 신고 있다.
험한 눈이나 바람 따위는 문제도 되지 않는, 튼튼한 신발이다.
방안이 대낮처럼 환해지는 것만 같다..
손님은 마치 침입자처럼 세자오의 집에 들어선다.
"당신은.. 당신은.. 그러니까..
약속을 했소.
그런데도 아주 늑장을 부리고 있군.."
흥분한 손님은 커다란 발을 '쿵쿵'구르며, 큰 목소리로 말을 한다.
"당신은 내 주인을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오? 주인께서는 당신을 기다리느라, 빵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달콤한 케익과...맛 좋은 통닭...심지어...따뜻한 차 한잔 조차 마시지 못하시고 있소"
성질 급한 손님은 세자오에게 호통친다.
세자오는 벌벌 떤다.
손님은 여차하면 세자오를 둘러 메고서라도 나갈 기세다.
그러나 세자오는 정신을 차린다.
벌벌 떨면서도, 손가락은 세번째 아이의 신발을 가리킨다.
손님은 성난 목소리를 누르며,
"그 일은 우리 주인께서 마무리 하실 거요...당신은 지금 당장 나와 함께 갑시다"
세자오는 고개를 가로 젖는다.
막내아이의 신발을 만드는 일은, 세자오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몹시도 송구스럽지만, 관대한 주인은 세자오를 조금 더 기다려주어야 할 것이다.
손님은 울퉁불퉁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오"
손님은 '쿵쾅쿵쾅' 발소리를 내며, 세자오가 배웅도 하기 전에 나가버린다.
< 47 >
돌아본 식탁 위엔, 두꺼운 털 목도리 하나가 놓여있다.
털목도리는 매우 보드랍고 따뜻해 보인다.
세자오는 갑자기 한기를 느낀다.
그러나 목도리를 집어들기가 망설여진다
"아하...그래...그러면 되겠군....."
내일 아침엔 그 여자와 그 여자의 세 아이들이 온다
그들에게 주고 싶다.
"아무래도 내일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일이니까...
이건 아주 잘 된 일이야"
< 48 >
"뚝뚝, 딱딱"
세자오는 열심히 일을 한다.
막내 아이의 신발이 거의 완성 되었을 때, 세자오의 굽은 등이 더욱 더 굽어졌다.
"등이 몹시도 아프군. 이러면 곤란해. 하지만 이제 곧 이 신발이 완성할 테니까.."
그러나 더 곤란한 건 귀에서 나는 소리다.
이제는 윙윙거리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가 없다.
< 49 >
"땡땡"
벽시계가 울린다.
이른 새벽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이다.
아직 막내아이의 신발을 완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자오는 이제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
< 50 >
"뚝뚝, 딱딱"
세자오는 일을 한다.
"뚝뚝, 딱딱"
막내아이의 신발은 특별히 세심한 주의를 기우려 만든다.
세자오는 언제나 모든 신발에 최선을 다하지만, 이번엔 좀 더 세심히 신경을 썼다.
아무래도, 이건 너무나 작은 아이의 신발인 것이다.
< 51 >
눈이 많이 내린다.
바람은 더욱 더 세차게 분다.
세찬 바람에 낡은 집 대문이 날아가 버린다.
난로의 불은 꺼져있고, 난로 주위엔 두툼한 솜이불처럼 성에가 둘러져 있다.
오늘도, 추운 날이다.
< 52 >
"뚝뚝, 딱딱"
막내아이의 신발을 다 만들었다.
꼼꼼히 신발을 살펴본다.
역시나 촘촘히 박힌 바느질, 세자오는 만족한다.
세자오의 등은 더욱 더 굽었다.
이제는 제대로 걷는 것 마저, 무척 힘이 든다.
윙윙거리는 소리는, 세자오의 귀를 넘어 머리속까지 가득 울린다.
조심스럽게 세 아이의 신발을 낡은 침대로 가져간다.
그리고, 마치 그 신발들이 그 아이들이라도 되는 양 낡은 이불로 잘 덮어둔다.
< 53 >
이젠 완전히 날이 밝았다.
아침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일이다.
세자오는 모든 일을 마쳤다.
이제는 파티에 갈수 있다.
하지만 좀 자고 싶다.
성에가 낀 난로 옆, 몸을 잔뜩 구부리고 앉아 잠깐 눈을 붙인다.
세자오의 등이 몹시, 몹시도 굽어 있다.
< 54 >
누군가 세자오의 집으로 썰매를 타고 다가 오고 있다.
빵집을 하는 뚱뚱이 한스다.
한스가 집으로 들어선다.
< 55 >
세자오가 자고 있다.
그러나 한스의 신발은 보이지 않는다.
자고 있는 세자오를, 한스가 깨운다.
"이 게이름뱅이야, 내 신발은 어디 있지?
내가 성 아우구스티누스님 생일에 신을 신발 말이야."
한스는, 이미 차가운 빵 한 덩어리를 지불 했던 것이다.
세자오는 잠에서 깬다.
손가락으로 한스의 신발을 가리킨다.
그리곤, 다시 잠이 든다.
한스는 자신의 신발을 본다.
"정말 솜씨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해.."
한스는 만족한다.
< 56 >
한스는 이제 수레가 달린 썰매를 타고 집으로 갈 참이다.
그런데 문득 세자오의 식탁에 어제는 없던 무언가가 보인다.
어제는 텅 비어있던 식탁이다.
따듯하고 먹음직한 둥근 빵 3개가,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다.
게다가 그 빵에는 빵집하는 뚱뚱이 한스가 제일 좋아하는, 달콤한 시럽이 듬뿍 발라져 있다.
"이건 정말 훌륭한 빵이야.".
< 57 >
"하지만 세자오에게는 너무 과분해. 우선 세자오는 나눠먹을 가족이 없거든.."
한스는 잠든 세자오를 한번 돌아보고는, 빵 한 개를 오른손에 든다.
그리고, 또 한 개를 왼손에 든다.
잠시 망설이다가, 세 개째 빵을 옆구리에 낀다.
한스는 세자오의 잠이 깨지 않도록 가만가만 걸어서 세자오의 집을 나선다.
썰매에 달린 수레에 세자오가 고친 신발과 빵을 함께 싣는다.
그리고, 세자오네 집은 돌아 보지도 않고 한스네 집으로 간다.
< 58 >
누군가 세자오의 집으로 썰매를 타고 다가 오고 있다.
대장장이 둘째 딸 마틸다다.
마틸다는 집으로 들어선다.
< 59 >
세자오가 자고 있다.
그러나 마틸다의 신발은 보이지 않는다.
자고 있는 세자오를, 마틸다가 깨운다.
"이 게으름뱅이야, 내 신발은 어디 있지?
내가 제니의 집에서 열리는 무도회에 신고 갈 신발 말이야"
마틸다는, 이미 포도주 한 병을 지불 했던 것이다.
세자오는 잠에서 깬다.
손가락으로, 마틸다의 신발을 가르킨다.
그리곤 다시 잠이 든다.
마틸다는 신발을 본다.
"정말 솜씨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해.."
마틸다는 만족한다.
< 60 >
마틸다는, 이제 수레가 달린 썰매를 타고 집으로 갈 참이다.
그런데 문득 세자오의 식탁에 어제는 없던 무언가가 보인다.
어제는 텅 비어있던 식탁이었다.
포도주병이다.
유리병 안의 포도주는 빛깔이 아주 아름답고 달콤해 보인다.
게다가 그 포도주는, 오랫동안 마틸다가 그토록 마시고 싶어했던 고급 포도주다.
< 61 >
"이건 정말 훌륭한 포도주야. 하지만 세자오에게는 너무 과분해. 우선 세자오는 나눠 마실 애인이 없거든.."
마틸다는, 잠든 세자오를 한번 돌아보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포도주를 앞치마 주머니 속으로 살그머니 감춘다.
마틸다는 세자오의 잠이 깨지 않도록 가만가만 걸어서 세자오의 집을 나선다.
썰매에 달린 수레에 세자오가 고친 신발과 세자오의 포도주를 함께 싣는다.
그리고, 세자오네 집은 돌아보지도 않고 집으로 간다.
< 62 >
누군가 세자오의 집으로 썰매를 타고 다가오고 있다.
교회 엄숙한 사제 미카엘 이다.
미카엘은 집으로 들어선다.
< 63 >
세자오가 자고 있다.
그러나 미카엘의 신발은 보이지 않는다.
자고 있는 세자오를, 미카엘이 깨운다.
"이 죄 많은 자여, 내 신발은 어디 있지?
내가 성 아우구스티누스님 생일에 설교를 할 때, 신어야만 할 신발 말이다"
미카엘은, 이미 어제 자신의 목도를 벗어 세자오에게 감아 준 것이다.
(미카엘의 목에는, 그저께 신도에게 받은 훌륭한 새 목도리를 감겨져 있다)
세자오는 잠에서 깬다.
손가락으로 미카엘의 신발을 가리킨다.
그리곤, 다시 잠이 든다.
미카엘은 자신의 신발을 본다.
"정말 솜씨 하나만큼은 인정해야 해.."
미카엘은 만족한다.
< 64 >
미카엘은, 이제 수레가 달린 썰매를 타고 집으로 갈 참이다.
그런데 문득 세자오의 식탁에 어제는 없던 무언가가 보인다.
어제는 텅 비어있던 식탁이었다.
식탁 위엔 두꺼운 털목도리 하나가 놓여있다.
털목도리는 매우 보드랍고, 따뜻해 보인다.
게다가 교회의 엄숙한 사제가 갖춰야 할 경건함을 갖추고 있다.
< 65 >
"이건 정말 훌륭한 목도리야. 하지만 세자오에게는 너무 과분해. 이건 정말이지 교회의 엄숙한 사제한테나 어울리는 목도리거든.."
미카엘은 잠든 세자오를 한번 돌아보고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미 목에 걸려있던 목도리(이제는 왠지 품위가 없어 보인다)를 벗고, 그 훌륭한 목도리를 감는다.
"이거야 말로 성아우구스트님의 생일날, 주님이 나를 위해 준비하신 선물인 거야.."
주님께 짧은 감사기도를 드린다.
미카엘은 세자오의 잠이 깨지 않도록 가만가만 걸어서 세자오의 집을 나선다.
썰매에 달린 수레에, 세자오가 고친 신발과 이제는 헌 목도리인 신도에게 받은 목도리를 싣는다.
그리고, 세자오네 집은 돌아보지도 않고 집으로 간다.
< 66 >
아침을 지나 이젠 정오다.
세자오의 눈을 뜬다.
이제는, 잠이 오지 않는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여자와 세 아이다.
세자오는 일어선다.
일어선다는 것만도 이제는 너무나 힘이든다.
등이 ..등이 ..너무너무 무겁다.
이제는, 무릎도 아프다.
세자오는 자신의 침대로 다가간다.
자신의 침대에는, 자신이 지난밤 밤새도록 만든 세 켤레의 신발이 있다.
신발을 하나씩 하나씩, 소중하게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 67 >
고수머리에, 눈이 큰 첯째 여자아이신발.
헝크러진 머리카락에 고집 센, 입술의 둘째 사내아이신발.
아주,아주..작고 손이 빨갛게 얼어 있었던 막내아이 신발.
세자오는 흐뭇하다.
세자오는 다시 잠이 든다.
< 68 >
식탁에는 세 아이의 신발과, 따듯하고 먹음직한 둥근 빵이 가득 든 바구니, 빛깔이 아주 아름답고 달콤해 보이는 포도주가 가득 든 포도주병, 매우 보드랍고 따뜻해 보이는 털이 잔뜩 달린 목도리가 있다.
어제보다 더욱 가득히 식탁을 채우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 69 >
정오를 지나 한낮 이다.
그들이 조금 늦는다.
세자오는 걱정이 된다.
"오늘은 무척 추우니, 좀 늦으려나?"
드디어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윙윙 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세자오의 귀에, 눈을 밟는 여자와 세 아이의 발자국소리가 들린다.
"자박. 자박"
한 아이는 걷다가, 조금 쉰다.
이런 추운 날을 걷기에는, 아무래도 너무 어린 나이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달랜다.
첫째 아이가, 막내아이를 등에 엎고 다시 걷는다.
"자박. 자박"
세자오는 기다린다.
< 70 >
드디어 어머니와 세 아이가, 세자오의 집에 들어선다.
세자오는 얼른 문쪽으로 걸어간다.
어쩐지, 등도 아프지 않다.
"저..혹시 남는 신발 한 개라도 얻을 수 있을까요?
제 아이에게 주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조심스럽고, 공손하게 말을 한다.
세자오는 대답 대신, 가장 작은 아이의 손을 잡고 자신의 식탁으로 데려간다.
여자와 아이들은, 영문을 모른 채 세자오를 따라간다.
< 71 >
식탁에는 아주 잘 만들어진 세 아이의 신발, 따듯하고 먹음직한 둥근 빵이 가득 든 바구니,빛깔이 아주 아름답고 달콤해 보이는 포도주가 가득 든 포도주 한 병, 매우 보드랍고 따뜻해 보이는 털이 잔뜩 달린 목도리, 두꺼운 담요가 여러장 있다.
식탁 옆 난로에는, 따뜻한 주홍색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 72 >
여자와 아이들은,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다.
아이들은 신발을 신고, 이리저리 걸어 다녀본다.
여자는, 자신의 털 장화가 무척 맘에 든다.
세자오와 여자와 아이들은 한껏 즐겁다.
< 73 >
여자와 아이들은 배불리 먹고 마신다.
세자오는 빙그레 웃는다.
여자와 아이들은 양손에, 한 가득 먹을 것과 입을 것들을 들었다.
둘째 사내아이는, 등에 땔감을 가득 지었다.
이제는, 그들이 세자오의 집을 나설 참이다.
세자오는, 공손히 그들을 배웅한다.
< 74 >
세자오는 그들의 행복한 걸음들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입가에 만족한 미소가 번진다.
막내아이 하나가 뒤돌아 본다.
둘째 아이도 뒤돌아 본다.
그리고 첫째 아이, 그 어머니가 뒤돌아 본다.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러서도 그들은 뒤돌아 보고, 뒤돌아 보고, 세자오에게 수없이 많은 상냥한 감사인사를 한다.
< 75 >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갔다.
갑자기 모든 피로가 한꺼번에 세자오의 눈, 어깨, 손가락,그리고 등, 무릎에 내려앉는다.
하지만, 이제 세자오는 정말로 잠을 잘 수 있다.
세자오는 잠이 든다.
< 76 >
저녁이다.
성아우구스트님 생일의 저녁이다.
교회에서는 미사를 이미 끝냈을 것이다.
부모들은 사랑스런 아이들의 손을 잡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맛있는 저녁을 먹고 있을 것이다.
< 77 >
세자오가 갑자기 눈을 뜬다.
안절부절못한다.
"파티...파티..."
중얼거린다.
완전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관대한 그분은, 지난 저녁 세자오를 초대했었다.
관대한 그분은 빵도 먹지 않고... 잠도 자지 않고, 달콤한 케익이나..... 심지어, ...따뜻한 차 한잔 조차도 마시지 못하고, 세자오를 기다리고 있다.
이젠 정말 가야 한다.
이젠 정말 갈수 있다.
파티는 이미 끝나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가더라도 관대한 그분은 세자오를 너무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 78 >
길을 나설 준비를 한다.
그런데, 세자오는 난처하다.
관대한 그분은 고맙게도 파티에 초대 해 주셨는데, 못난 세자오는 들고 갈 선물 하나 없다.
"어쩌겠어...아무것도 없는걸...하지만....하지만... 혹, 그분도 고쳐야 할 신발이 있을지도 모르지.. 혹, 신발을 만들 좋은 가죽은 있는데.. 신발을 만들 사람은 구하지 못한지도 모르지... 그런 경우라면, 신발을 만들 사람이 필요한 거야….."
세자오는 평생을 분신처럼 여기던 신발 만드는 도구들을, 낡은 가방에 주섬주섬 챙긴다.
이제 갈 준비가 다 되었다.
< 79 >
지금 문을 나설 참이다.
그런데, 이제는 등이 너무너무 무겁다.
등이 너무너무 무거워서, 걷기는커녕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을 정도다.
"파티에 가는 거야.. 파티...
벌써 너무 많이 기다리게 해드렸는걸....
이제는 가야지..."
세자오는 드디어 문밖으로 한발을 내디뎠다.
< 80 >
< 세자오가 쓰러짐...
세자오의 몸 위로 눈이 쌓임
세자오의 집안으로 눈이 들어 옴
세자오의 집안이 눈으로 가득 참
세자오의 집이 사라짐 >
< 81 >
세자오는 잠에서 깼다.
'파닥…파닥'소리가 희미하게 난다.
오늘은, 몹시도 몹시도 추운 날이다.
눈도 많이 내리고, 바람도 힘차게 분다.
그러나, 더 이상 춥지 않다.
< 82 >
"파다닥, 파다닥"
이것은, 날개 소리다.
엄청나게 큰 날개다.
엄청나게 큰 날개가, 세자오를 덮고 있다.
작은 소리가 들린다.
세자오는, 집중해서 그 소리를 듣는다.
"세자오야....세자오야....."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아.... 혹시 관대하신 그분인가?.."
< 83 >
"세자오야....세자오야....."
이제는, 좀더 가까이서 소리가 들린다.
"아아.... 맞다. 이목소리는 …관대하신 그 분이시구나...."
세자오는 빙그레 웃는다.
세자오가 일어선다.
등이 더 이상 아프지 않다.
두 다리로, 똑바로 서서 하늘을 본다.
< 84 >
세자오가 가쁜하게, 훌쩍 구름을 향해 뛰어오른다.
날개가 '퍼드덕', '퍼드덕' 힘차게 날개 짓을 한다.
그의 등에서 자라나던 날개다.
그의 등에서 매일 조금씩 조금씩 자라던 날개가, 이제는 드디어 그의 등을 뚫고 나와 힘차게 퍼덕인다.
< 85 >
이제는 다정한 그 목소리가, 세자오의 귀 바로 옆에서 속삭인다.
"세자오야....세자오야....네가 오지 않아, 내가 발이 몹시 시렵구나.....
세자오야....세자오야....어서 집으로 돌아오너라..."
< 86 >
빵집 하는 뚱뚱이 한스의 집이다.
빨간벽돌로 지어진, 따뜻한 집이다.
뚱뚱이 한스가 아이들과 저녁을 먹고 있다.
오늘 저녁식사는 아주 맛있어 보이는 빵과 커다란 케익, 잘 구워진 통닭이다.
오늘 한스는 무리를 했다.
아무래도, 오늘은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인 것이다.
이날만큼은, 아이들에게 맛난 걸 많이 먹게 하고 싶다.
볼이 통통한 한스의 두 아이들은, 커다란 케익 앞에 서로 욕심을 부린다.
욕심을 부리고 있는 아이들이지만, 그래도 귀여운 아이들이다.
집 한 구석에는, 한스가 잘 벗어놓은 장화가 보인다.
장화는, 언제라도 신을 수 있도록 잘 손질되어 있다.
< 87 >
대장장이 둘째 딸 마틸다가 보인다.
마틸다는 무도회가 열리고 있는, 제니의 집의 안마당에 있는 커다란 나무에 기대어 서있다.
기대고 있는 나무의 반대쪽에는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키만 큰 한 청년이 있다.
이 청년은 슬며시 마틸다의 손을 잡는다.
마틸다는 뿌리치지 않는다.
마틸다는 이 청년이 조간만 자신에게 청혼하는 상상을 수줍게 해본다.
사실, 마틸다에게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일 같은 건 별 관심사가 아니다.
이렇게도 부끄러운 마틸다에게 잘 어울리는 구두를 신고 있다.
구두에는 먼지 하나 묻은 데가 없다.
< 88 >
교회의 엄숙한 사제, 미카엘이 보인다.
교회에서 성 아우구스티누스님의 생일 축하 저녁미사를 주관하고 있다.
미카엘은 항상 걱정이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어리석고, 신을 항상 두려워하는 것 같지도 않다.
오늘 주관한 미사로 이제 제발 이 마을 주민들이 좀 더 너그럽고 겸손하며, 신의 신부름꾼인 사제를 좀 더 존경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마을주민들이 지금만큼이라도 정직한 것은, 미카엘이 헌신적으로 노력한 결과이다..
그래서 그나마 미카엘은 보람을 느낀다.
미카엘은 뿌듯하게 자신의 목에 걸려있는 목도리를 쓰다듬는다.
미카엘을 자기 전에, 주님께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일 미사를 주관한 자신에게 주신 선물에 대해 잊지 않고 감사기도를 드릴 것이다.
< 89 >
한 여자와 세 아이가 보인다.
누추하고 추운 집이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따뜻한 기운이 흐른다.
어머니는 사랑하는 세 아이에게 따뜻한 담요를 덥게 하고, 난로에는 장작을 넉넉히 집어 넣었다.
난로의 불빛은 다정한 주홍빛이다.
난로 옆 식탁에는 따듯한 빵과 달콤한 포도주가 놓여있다.
< 90 >
이제는 기도 할 차례다.
어머니는 기도한다.
"주님. 배고픈 우리에게 빵을 나눠 주신 분이, 항상 배불리 먹게 보살펴주십시오"
첫째 아이가 기도한다.
"주님. 목마른 우리에게 포도주를 나눠 주신 분이, 항상 목마르지 않게 보살펴주십시오"
둘째 아이가 기도한다.
"주님. 추운 우리에게 땔감과 목도리, 담요를 나눠 주신 분이 항상 춥지 않게 보살펴주십시오"
< 91 >
막내아이가 기도할 차례다.
한참 만에 조심스레 입술을 뗀다.
들릴락말락 한 소리로 진지하게 기도한다.
"주님 .... 주님.... 좋은 신발을 주신 천사님이, 주님의 신발도 만들게 허락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아주 작은 아이의 발에는, 누군가가 오랜 시간 아주 정성스레 만들었을 작은 신이 곱게 신겨져 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태복음 : 5장1절 )
[당선소감] / 강미진
이제까지 살아온 모든 겨울이 그러했듯이, 올 겨울의 추위도 당연하긴 하지만, 어쩐지 올 겨울 거리의 찬바람은 더 많은 사람들을 시리게 하는 것 같습니다.
작년 한해,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는데 새해가 되어 좋은 소식을 듣게 되니 기쁩니다.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여러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좀 더 용기 있게 노력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 (사)녹색문단, 창조문학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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