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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힘과 방패이시니

시편 복음............... 조회 수 5376 추천 수 0 2011.02.12 06:5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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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28:1-9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여호와는 나의 힘과 방패이시니

본문: 시편 28장 1- 9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3.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4.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그들에게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그들에게 갚으소서

5.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8.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미국 애리조나 주 코호 산맥에 있는 붉은 화강암으로 된 높이 2500피트의 계곡에는 자생 종려나무들이 장엄하게 솟아 있습니다. 수년 간 식물학자들은 어떻게 열대 식물인 이 나무들이 어둡고 가파르고 경사진 좁은 협곡 뒤편에서 그것도 하루에 2시간 동안만 햇볕을 볼 수 있는 곳에서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마침내 학자들은 계곡의 암벽이 충분한 햇빛을 반사해주고 또한 암벽이 하루 동안의 뜨뜻한 열을 충분히 저장해주고 있음으로 인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이 나무들이 잘 자랄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종려나무처럼 하나님과 가깝게 친교하면서 살아가는 믿는 자들은 어두움의 압박과 열악한 환경을 잘 극복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믿는 사람들의 반석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영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위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겪은 그리스도인들 중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안에서 충만함을 발견하고 풍성한 간증의 잎들과 지극한 찬양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들은 번영이라는 햇빛이 거의 비치지 않는 고통이라는 좁은 틈바구니 속에서도 아름다운 '의의 나무들'이 됩니다. 우리의 힘이 되시고 구원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기초를 둘 때 우리는 코화 산맥의 종려나무들처럼 무성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오늘 시편은 다윗이 쓴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다윗은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떤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이 그를 지켜 주시는 사실을 체험하고 다윗은 하나님께 노래한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침착하고 평안 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뜻밖의 곤경에 부딪쳐도 당황하거나 겁내지 아니합니다.

다윗왕은 노년기에 생각지도 못했던 아픔을 겪게 됩니다. 아들 압살롬이 이스라엘 전체를 미혹하여 반역을 일으킨 것입니다. 다윗은 어느 날 갑자기 성을 버리고 도망해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들에 의해 자신이 살아오던 정든 궁전을 떠나 피난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나이 많은 다윗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일어나 도망하자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 중 한 사람도 압살롬에게서 피하지 못하리라 빨리 가자 두렵건대 그가 우리를 급히 따라와 우리를 해하고 칼날로 성읍을 칠까 하노라”(삼하 15:14)

성을 떠나는 다윗의 마음은 찢어지듯 아팠습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당한 배반으로 패배의식 속에 깊이 파묻혀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음을 느낀 다윗. 이 모습은 뼈저린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닐까요? 갑자기 밀려온 인생의 충격, 뜻하지 않은 아픔, 도대체 하나님께서 내게 왜 이러시는지 이해하기 힘든 일들, 자포자기하고 싶은 일들, 너무 시린 외로움 등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의 위대함을 보게 됩니다. 그는 두 손을 모으고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고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시 28:1∼2)

다윗은 주님께 부르짖기 시작하였습니다. 미움이 가득한 통곡의 기도, 자신에 대한 슬픔의 기도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의 믿음 없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내가 무엇이 두려워 이곳으로 피난하여 있는가? 왜 나는 지금까지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을 잊고 있었는가?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내가 모시고 있는데 왜 내가 두려워하며 의심하며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것인가?’ 다윗은 기도 중 갑자기 자신의 속 깊은 곳에서 터져 올라오는 기쁨과 화평, 감사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두려움은 사라졌습니다. 긴장도 사라졌습니다. 의심도 사라졌습니다. 불안도 사라졌습니다. 목숨에 대한 걱정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다윗의 기도가 변하게 됩니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오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시 28:6∼8)

이제 다윗은 한탄하고 통곡하는 대신 찬송과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자신의 일생 중 가장 비참한 상황이었지만 주를 찬양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압살롬이 죽고 다시 자신의 궁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만나게 해 줍니다. 기도는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기도는 감사로 이어지고 감사는 찬양으로 바뀝니다. 그리고 찬양은 문제의 해결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더 넓은 세계, 더 큰일을 위해 오늘을 딛고 내일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어려움 속에서 기도와 찬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역사를 바꿉니다.

성도 여러분, 어려우십니까? 외로우십니까?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보십시오. 통곡의 기도라도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주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나는 그야말로 죽을 목숨이라는 사생 결단적 신앙이 엿보입니다.

 

 

본문 2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다윗은 자기의 안락한 궁전을 생각하기 전에 성소를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성소를 향해 기도한 다윗의 모습은 영적으로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본문 3- 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그들에게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그들에게 갚으소서 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에는 악인들을 향한 저주의 선포가 많이 나오는데 이는 결코 개인적 감정의 표출이 아니라 여호와의 공의에 준거하여 여호와께서 직접 심판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본문 6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하이든은 독실한 신앙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며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한번은 저명한 예술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고민'과 '고통'의 문제가 화제로 올랐습니다. 경제적 고통이나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 때의 고민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화제의 촛점이였습니다. 저마다 한 마디씩들 하는 가운데 하이든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때 하이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작은 골방을 기도실로 정했습니다. 일에 지쳤을 때나 고민이 시작되면 나는 그 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방에서 나올 때는 작은 빛을 발견하고 나옵니다" 힘들고 지칠 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환경에서도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생각하며 골방으로 들어가십니까? 가장 소극적인 방법처럼 보이는 골방기도가 가장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우리의 모든 고민과 고통의 문제를 하나님은 가장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으므로 어느 누구보다 잘 아시고 잘 도와 주실 수 있습니다. 어려울 때 골방에서 들어가는 것은 매일 매일의 훈련이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행동으로 가장 잘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시편102:2)

 

  본문 7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사반 즉 오소리는 어떤 동물일까요? 많은 학자들은 그것이 시리아에 사는 하리락스(바위너구리)라는 동물이라고 합니다. 하리락스는 기니아의 돼지만하며 겉모양은 쥐와 비슷합니다. 하리락스의 적들로는 뱀, 독수리, 표범 그리고 몽구스와 같은 맹수들이 있는데 하리락스는 이들의 공격에 대해거의 무방비 태세로 대응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이 작은 동물은 어떻게 생명을 유지해나갈까요? 그 해답은 가파른 절벽의 바위틈이나 구멍에 집을 짓고 사는 것입니다. 하리락스는 그렇게 해서 위험으로부터 벗어납니다.

우리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질병, 불경기, 전쟁, 사고 등이 항상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작은 동물처럼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도 숨을 수 있는 바위를 찾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생 속의 환난을 다 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안전하게 보호해주십니다.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을 수 있는 현명함이 있다면 연약한 것이 나쁘거나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시편62:5-6)

여기서 우리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표현을 볼 수가 있습니다. 가령, 여호와는 나의 힘 이라는 말은 내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방패시니’ 라고 하는 말은 외적인 것입니다.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란 말은 내적인 것이고, ‘내가 도움을 얻었도다’ 한 것은 외적인 것입니다. 내 마음 이 크게 기뻐하여 란 말은 내적인 표현이고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한 것은 외적인 표현입니다. 아주 아름다운 시적인 표현입니다. 먼저 부분의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니 라고 한 말씀은 다윗의 확신을 표현한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을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두 손으로 구원의 하나님을 받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대로 열두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은 예수님의 옷자락만 살짝 잡았는데도 그 무섭고 고생스럽던 병에서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옷자락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붙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그의 힘으로 그의 방패로 붙잡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오늘 이 아침 다윗처럼 우리의 두 손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붙잡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야곱이 얍복강 가에서 밤을 맞도록 하나님의 사자를 붙들고 씨름하며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않겠습니다’ 한 것처럼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이 얼마나 확신에 찬 말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니’ 했습니다. 오늘 주신 시편 속의 ‘나의’ 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을 주의 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여기 ‘나의’ 라는 말이 얼마나 힘과 확신과 용기를 더해 줍니까! ‘여호와는 힘과 방패시니’ 라고 말해도 됩니다. 진리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다윗의 유명한 시편 중에 23편을 우리가 잘 압니다. 거기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남의 목자가 아닙니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로 나와 상관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목자가 될 때에야 만 부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실 때에 내게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경험으로 성숙해지고, 약속에 의해서 힘을 얻게 되며 성령에 의해서 생기를 되찾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의 믿음을 주관하심과 동시에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십니다. 따라서 매사에 열심을 내게 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게 합니다. 그래서 아무런 주저함이 없이 여호와는 나의 힘과 방패시니 라는 고백을 할 수 있게 하십니다. 이 말씀을 끝까지 지킬 수 있도록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꼭 받아야 합니다. 사실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은 나에게 다시 말해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므로 나의 힘과 나의 방패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의 눈을 빛나게 하며, 새롭게 하며, 영혼을 소생시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나에게 힘과 방패가 되는 것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존하였을 때 우리는 담대하게 ‘여호와는 나의 힘과 방패시라’ 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인류의 적인 죽음도 두렵지 아니합니다. 더구나 영원한 나라의 기업을 바라보며 대담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진 것이 없을는지는 몰라도 그가 받을 영원한 기업은 지극히 큰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아주 약해 보일는지 몰라도 그 사람이야말로 지극히 강한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이 아무 것도 갖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사실 그 사람은 모든 것을 풍성하게 소유 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6장 7절 이하에 이런 말씀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서 ...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 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힘과 방패로 삼고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실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다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특권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지십니다. 여기 어떤 사람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것이다 고 말합니까? 그 세상 불타 버릴 때 그것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우리가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다 고 말할 수 있을 때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이 나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우리에게는 무한한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때 그 이상 나에게 만족을 줄 수 있는 분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서 다윗은 상징적인 내용으로 자신의 경험을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본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게 했습니다. 여러분,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부를 수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이겠습니까? 좋으신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니 내면적으로 하나님은 나의 힘이 되십니다.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힘이 있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강합니까? 사실 우리는 모두가 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문제 하나를 해결하지 못해서 고민하는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철학자 럿셀이 말한 대로 사람은 우주를 정복한다고 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하나도 조정하지 못하는 미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고 말할 수 있다면 우리는 지극히 강한 사람입니다. 무엇과 싸워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대로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입니다. 우리가 이기는 것은 우리의 힘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질상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일과 그것을 자백하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을 때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모두가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착각하지 맙시다. 우리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바울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고백했는데 바꿔 말하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밖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니’ 라는 말을 하게 될 때 나약한 자신은 간 곳 없고 강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큰 용기를 가져다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실 때 우리는 모든 어려움을 참을 수 있는 인내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그처럼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어떻게 그처럼 잘 감당해 나갈 수가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저희의 힘이 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힘을 얻어 강하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우리 앞에 닥친다 하여도 우리는 능히 견딜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시면 삼손과 같이 사자를 죽일 수가 있고 그 안에서 꿀을 찾아 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특수한 일을 부여하실 때 그 일을 행할 수 있는 능력도 부여하여 주십니다. 자갈길을 걸어가라 명하시는 주님께서는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신발까지 주신다는 말은 의미 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어려운 환경에 처할 때 위축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답변은 완전히 다릅니다. ‘내가 네 입과 같이 있고 너의 힘이 되리라’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강하게 하시면 우리가 감당치 못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절대로 우리 자신의 힘을 자랑하지 맙시다. 육신의 힘, 권세의 힘, 지식의 힘, 돈의 힘을 자랑하지 맙시다.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삼손을 기억하시지요? 하나님이 힘을 주실 때 세상의 그 어느 누구도 당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힘을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떠나실 때 그에게 비극이 닥쳐왔습니다. 눈이 뽑혔습니다. 지혜를 잃었습니다. 근육에 힘이 없고 마음에 맥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능력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힘을 얻어야 그 힘이 강해지고 강한 지혜가 됩니다. 그리고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방패시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나의 방패로 삼을 때 순간 순간 우리에게 날라오는 시험의 화살에서 지켜 주시고 두려움을 주는 공포의 화살도 막아 주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나의 방패가 되실 때 모든 환난에서부터 내가 보호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나의 방패로 삼을 때 절대로 안전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방패시라. 이 말씀은 참으로 우리에게 용기와 담력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우리를 강하게 하시는 분 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 때 큰 위로가 됩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다고 해도, 택한 자라고 하더라도 될 수 있는 대로 미혹하려는 공격의 화살을 퍼붓는다고 해도 하나님이 나의 방패시므로 그러한 공격에서부터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 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 하리오. 인생의 순례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걸어가고, 주님의 방패로 원수의 도전을 막으며, 승리적인 인생길을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윗은,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만 신뢰한다는 사실에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라는 말은 입술만의 고백이 아니라 강한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은 단호한 결심입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지극히 어려운 환경,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도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합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당황하거나 초조해 하지 아니하고 침착하게 감당해 나아가게 됩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뢰할 때 영적으로 불안해지고 전혀 아무런 힘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118편 8절에,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낫다.’ 고 했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다가는 실망할 때가 생기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면 우리의 기대하는 것 이상의 확신과 풍성함을 가지게 해줍니다.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고 했습니다. 도움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도움을 얻었도다’ 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기도했으면 받은 줄로 믿으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기 전에는 내 자신이 약한 자와 같이 보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고 그를 의지하므로 내가 도움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다람쥐는 작고 연약한 짐승이지만 결코 맹수에게 잡히지 않습니다. 다람쥐는 기발한 호신책을 갖고 있습니다. 사나운 짐승이나 몸집이 큰 동물이 습격해오면 다람쥐는 큰 바위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아무리 사납고 강한 동물이라도 바위틈에 몸을 숨긴 다람쥐를 잡아낼 도리가 없습니다. 작고 나약한 다람쥐에게는 거대한 바위산이 천연의 요세인 셈입니다.

세파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는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거대한 바위산을 찾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품안'이 아닐까요?

성경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시95:1)하였고,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10:4)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시46: 1- 3)

 

  성도 여러분, 모든 일은 약속에 따라서 이루어지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는 어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모두 축복하셔서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모든 분들이 다 ‘내 마음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하는 놀라운 경험을 하시고 이런 고백을 하시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기뻐하는 것은 내적인 감정이요, 노래로 저를 찬송하는 것은 내적 감정에 대한 외부적 인 표현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쁨이란 피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기쁨이 아닙니다. 참 신앙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 아홉 가지 중에 두 번째가 기쁨입니다.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오는 기쁨입니다. 참된 기쁨은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 고 했습니다. 슬퍼하는 마음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사람을 피곤하게 합니다. 그러나 기쁜 마음은 우리에게 새로운 힘을 줍니다. 기뻐하는 생활이야말로 능력 있는 생활의 비결이 됩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든지 기쁜 마음으로 하면 힘든 것을 모릅니다. 우리가 이처럼 어려움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마음에 기쁨이 있어야 이 모든 역경을 극복 하고 곤란을 이기며 어려움을 참아 어두움이 변하여 밝은 날이 되게 할 것입니다.

전에 영국에 재치와 농담으로 유명했던 카리니라는 코미디언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많은 청중에게 웃음을 선사하곤 했었습니다. 그가 나서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무리 성격이 무뚝뚝해 서 웃음을 모르던 사람도 웃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엔 기쁨이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웃기면서도 자신은 심각한 병이 들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서 진찰을 받았습니다. 긴 시간 환자와 상담을 한 의사는 환자인 카리니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의 병은 마음속으로부터 우울한 것이 축적이 되어서 그럽니다. 그러니까 한번 정말 기쁜 마음으로 웃을 수 있다면 그 병은 낫겠는데요.”

“아, 그렇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이 병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예, 요사이 우리나라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해서 남을 웃기는 그 유명한 카리니를 아시지요?”

“예! 그분의 코미디를 한번 들어보세요. 그분이 못하면 누구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때 카리니가 의사에게 ‘선생님, 제가 바로 카리니인데요’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우울한 사람이면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다웟은 ‘내 마음이 기쁩니다’ 고 고백했습니다.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출 정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누리는 축복 입니다. 아무리 주위 환경이 어둡다고 해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하여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했습니다. 그가 어디서 이런 글을 썼어요? 감옥 안에서였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주님을 의지할 때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기쁨이 있을 때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송합시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도 그런 말을 했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는 영감 있게 그리고 열심 히 부르라. 그래야 합니다. 큰 소리로 찬송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은 영감 있는 찬송이기 때문에 더욱 담대하게 불러야 합니다. 일할 때 찬송을 부르면 힘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우울 할 때 찬송을 부르면 우울증이 도망갑니다. 찬송 부르는 것처럼 좋은 것이 없습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마음속에 주님께로부터 임하는 기쁨이 충만해서 주님을 향한 찬송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주를 찬송하리로다.”

폭풍이 심할 때는 배를 어느 한 곳에 단단히 붙들어 매두어야 합니다. 간단한 말이지만 이 말 속에는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걷잡을 수 없는 폭풍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 단단히 묶여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묶여 있는 한 그 어떤 폭풍도 당신을 넘어뜨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요새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입니다.(시91:2-3) 여러분은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마음을 주님께 집중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께 도움을 청하고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 기도: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하나님은 나의 반석이시며, 나의 구원이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죄악으로 피곤해진 나를 피난처 되신 하나님 안에 숨겨주소서. 오늘 이 시간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에게 지혜로운 자가 되어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반석위에만 집을 건축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할 때는 괴로움과 고통이나, 나올 때는 하나님의 빛을 보며 기뻐하게 하소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이 시간도 주님께 나아갑니다. 우리의 목자가 되시고, 피난처가 되시고, 공급자가 되셔서 부족함이 없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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