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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노래로 즐겁게 찬양하며 예배드리자

시편 복음............... 조회 수 2848 추천 수 0 2011.02.20 23: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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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98:1-9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새 노래로 즐겁게 찬양하며 예배드리자

본문: 98편 1- 9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2.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3.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4.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5. 수금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노래할지어다

6.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7.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주하는 자는 다 외칠지어다

8. 여호와 앞에서 큰 물은 박수할지어다 산악이 함께 즐겁게 노래할지어다

9.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가는 것이 늘 기쁘십니까? 이삭 목사의 간증을 들어 보면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얼마나 복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1980년대 말경 구 소련의 어느 도시에서 이삭 목사는 한 비밀 예배처를 탐방할 기회를 얻었다고 합니다. 예배처에 가보니 예배를 드리기 전부터 성경 통독을 하면서 울던 성도들은 예배가 시작되어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낡은 풍금으로 반주를 하는 단 몇 명뿐인 성가대의 송영도 울음 때문에 제대로 나오지 않고 회중의 찬송 소리에도 울음이 섞였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나 성찬을 나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그렇게 울면서 예배를 드린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그것이 이 세상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사람이 대답을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어느 날 갑자기 KGB에 잡혀가서 20년 혹은 3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우리는 고난 속에서 목숨을 걸고 감격적으로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집니까?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122:1)

 

  본 시편 또한 여호와의 공의로운 통치를 찬양한 시입니다. 시인은 먼저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회중에게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찬양하도록 요청하고(1- 3절), 세상의 모든 사람(4- 6절)과 전 피조물(7- 9절)에게 이 찬양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있습니다.

본 시편 기자는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새 노래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동행하면 동행할수록 그의 사랑과 그의 긍휼이 얼마나 깊은지 감격하여 전에 내가 알았던 노래로는 하나님을 다 찬양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구원해 주심에 감격했을 것입니다. 이런 감격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가 주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지면 성숙해질수록 그 사랑이 더 깊어지고, 그 은혜를 더 깊이 깨닫게 될수록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지식과 감정과 찬양이 옛 노래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성경말씀 특히 로마서 말씀을 통해, 알면 알수록 더욱 그분의 사랑에 놀라고 감격했습니다. 말씀에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죄를 덮어주시고 죄로 여기지도 아니 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못 본체 하거나 한 번 정도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너의 죄를 사하여 준다 깨끗하게 씻어 준다고 하십니다. 또 내 피를 흘려 너의 수치를 덮어준다고 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죄로 여기지도 아니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의롭다고 칭하여 주시기까지 하셨습니다(롬8:30). 가장 높은 법원에서 가장 높은 재판장이 우리를 향하여 죄가 없으며 의롭다고 판결을 내려 주시는데 누가 우리를 송사하겠습니까? 더 놀라운 것은 우리의 옛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 지낸 바 되고 다시 새 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태어났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아직도 더럽고 비참한 모습으로 보이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태어났음을 인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그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습니다. 온전한 자의 모습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율법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이룬 것으로 선언해 주신 것입니다. 영원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언젠가 우리가 영화롭게 변화될 모습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조상 때부터,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의 덩어리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영적인 때를 밀어 주실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향수를 뿌려 주시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옷으로 입혀 주셨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처음 예수님 믿었을 때 바로 아셨습니까? 아니지요. 처음은 구원해 주심에 감격하여 참 사랑에 빠졌지만, 말씀을 알면 알수록 이러한 숨은 비밀을 깨달아 가기 때문에 새 노래가 필요한 것입니다. 옛날에 알았던 노래로, 그러한 가사로, 그러한 감격으로 예배드린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지금 더 화끈하게 예배 드려야지요. 이러한 진리를 알았다면 모두 나와서 새 노래로 즐겁게 찬양하며 예배 드려야겠지요.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나를 구원해주신 그 은혜 때문에 새 노래로 예배 드려야 하는 이유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나를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여 새 노래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본문 1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의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음이로다”

찬송가 작사자 중에 토마스 헤이스팅스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지 않은 분인데, 40년 동안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로 헌신하면서 많은 찬송을 지었는데 600곡 이상의 찬송 가사와 1,000곡 이상의 찬송곡을 썼습니다. 이 분이 지은 찬송가를 부르다 보면 공통점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분의 평생 소원처럼 영광스런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찬송가에 나오는 모든 찬양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찬양하는 것이지만, 헤이스팅스의 찬양곡을 보면 이러한 면이 특별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 분이 지은 찬양곡을 불러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뜨거워지고 하나님이 바로 옆에 계신 것 같은 느낌을 갖습니다. 그래서 참 좋습니다.

시편은 150편 전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시이며 찬양기도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98편에서는 왕이신 여호와 앞에서 즐겁게 찬양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 동안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서 수난을 당해왔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돌봐주셔서 결국은 돌아와 승리하였기 때문에 온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는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고 합니다. 새 노래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는 노래와는 구별됩니다. 새 노래는 날마다 새로운 곡을 지어서 부르라는 말이 아닙니다. 단순한 교리나 교회에서 습관적으로 부르는 노래도 아닙니다. 새 노래는 하나님과의 새로운 만남과 체험을 가진 사람들이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노래의 형식이나 내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찬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새 마음을 가지고 노래를 해야 하는데 오늘 성경에는 새로운 마음을 갖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4절)

찬송을 어떻게 부르라는 거지요? 즐겁게 부르라는 것입니다. 기쁘게 부르라는 것입니다.. 찬송은 즐겁고 기쁘게 불러야지 슬프게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환한 얼굴을 가지고 기쁜 마음을 가지고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격하여 기쁘게 찬양하는 것이 새 노래로 부르는 것인 줄로 믿습니다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독생자를 희생시켜서 나를 구하신 큰 은혜에 감격하여 즐겁게 찬양하며 예배드려야 합니다. 나의 공로 없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 공로 의지하고 내가 하나님의 은혜 주님 앞에 나올 때 다 죄를 씻어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옷으로 입혀 주시는 그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이 구원하심으로 새 노래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온 누리에 보여지고 있는 구원의 역사로 인해 새 노래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2-3절에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온 땅이 알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모든 족속과 방언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모습이 하늘에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7:9)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온 세계에 퍼지는 구원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고 새 노래로 주님을 찬양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 2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의 공의를 뭇 나라(열방)의 목전에서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1928년 독일의 한 물리 실험실에서 우연한 관찰을 통해 중대한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방사선을 발견한 것입니다. 독일 과학자 빌헬름 뢴트겐은 이를 ‘미지의 광선’이라는 뜻으로 ‘엑스선’(X-Ray)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방사선은 물체를 투과하여 볼 수 있게 하는 매우 놀라운 특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덕택에 우리는 방사선실에 들어가 큰 기계 앞에 서면 자기 가슴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갈비뼈, 폐, 심장 등을 초현대식 기계를 통해 자세히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술이 발달했다 할지라도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계는 아직 이 세상에 없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의 눈앞에 하나님의 구원이 명백하게 나타났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알게 하시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비추시는 X-Ray가 우리의 마음에 비춰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알 수 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하나님의 X-Ray를 만난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당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몸소 십자가에 매달리신 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며 살고 있습니까?

 

  본문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이스라엘의 집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을 기억하셨으므로 땅 끝까지 이르는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

조지아 주의 한 시골학교 교사인 마사 베리(Martha Berry)는 부호인 헨리 포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학교를 위하여 천 달러를 기증해 주시면 좋은 피아노를 구입하여 어린이들을 교육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간곡한 사연이었습니다. 그런데 회답 속에는 한 개의 다임(10센트)이 들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베리 선생은 그 회답을 보고도 모욕감을 느끼거나 절망하지 않고 10센트를 가지고 땅콩을 사서 땅콩 농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녀는 해마다 작은 수확이 있으면 잊지 않고 포드에게 수확의 일부를 보냈습니다. 그리하여 5년 후에는 피아노를 구입하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감동한 포드는 처음에 부탁한 금액의 열 배인 만 달러를 보내 주었습니다.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게 됩니다. 성실한 삶에는 열매가 있기 때문입니다. 5년이란 세월을 성실하게 살았던 베리 선생의 삶을 포드가 기억함으로 열 배의 축복이 주어졌고 모든 사람이 그녀의 성실함의 결과를 기뻐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면 그보다 훨씬 더 큰 축복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본문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소리칠지어다 소리 내어 즐겁게 노래하며 찬송할지어다”

세상에는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새들이 있습니다. 각종 새마다 독특한 특징들이 있지만 덩치가 큰 새와 몸집이 작은 새의 차이점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작은 새일수록 날아다니는 것이 자유롭고 작은 새들만이 즐겁게 지저귀며 노래한다는 사실입니다. 독수리나 타조 등, 큰 새일수록 그 목소리를 듣기 힘듭니다. 심지어 백조 같은 새는 죽을 때 한 번 운다고 합니다. 작고 힘이 없으며 연약해 보이는 작은 새들이 참 자유를 누리며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며 살듯이 세상에서 비록 힘이 없을 지라도, 자신의 크기나 능력을 자랑하지 않는 겸손한 자만이 참 자유와 참된 찬양을 부를 수 있습니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시100:1)

“그의 백성이 즐겁게 나오게 하시며 그의 택한 자는 노래하며 나오게 하시고”(시105:43)

 

  본문 5,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수금으로 여호와를 노래하라 수금과 음성으로 노래할지어다 나팔과 호각 소리로 왕이신 여호와 앞에 즐겁게 소리칠지어다”

본 절에서 하나님께 찬양하는데 수금과 음성으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수금은 현악기인데 오늘날의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같은 악기로 반주하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사용하는 악기를 보면 너무나 다양하고 또 예배 음악의 근본에서 벗어난 것들이 많이 있어 새로운 정비가 요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는 찬양의 악기에 대해서 보다 깊은 연구를 하여야 합니다. 또 ‘음성’으로 찬양하라고 하였습니다. 음성은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악기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도 하나님이 주신 신비의 음성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일부 교파에서는 ‘무악기파’라고 하여 교회의 찬양에서 일체의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음성으로만 하는 ‘아카펠라’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5절을 보면 ‘수금과 음성’으로 찬양하라고 하였으니 악기도 사용하고 음성으로도 하라는 구체적인 교훈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치지 말고 우리의 진정을 담아 찬양해야 합니다. 찬양에서 음악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마음의 자세가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과 감사가 함께 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온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는 태도입니다.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15)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엡 5:19)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 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 3:16)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약 5:13)

우리의 삶이 찬양으로 연속되어지기를 열망합니다. 입술로만의 찬양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6절에서 “나팔과 호각으로 왕 여호와 앞에 즐거이 소리할찌어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다른 악기가 나오는데 ‘나팔과 호각’입니다. 이것은 ‘나팔과 뿔나팔’이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또 ‘은나팔과 뿔나팔’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두 가지의 나팔이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것으로 신년 축제 때에 어울리는 악기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나팔은 우렁찬 소리를 내는 악기로서 장엄한 개선가를 부를 때에 사용됩니다. 호각은 뿔로 만든 나팔로서 주로 신호를 보내는데 사용됩니다. 이러한 악기들을 통하여 찬양합니다. 여기서 찬양받으시는 대상이 나와 있습니다. ‘왕 여호와 앞에’ 찬양해야 합니다. 음성과 모든 악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찬양해야 합니다. 왕이신 여호와는 영원히 찬양을 받으실 분입니다. 우리는 왕 되신 하나님께 찬양을 해야 하는데 예배 음악에 대한 보다 깊은 관심과 연구를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음악이 변질되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기호에 맞춘다고 찬송가를 째즈화하여 부르는 사람도 있고, 복음성가에서 가사나 곡이 교회에서 사용되기 어려운 것들이 있음을 봅니다. 찬양이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느 연령층이나 어떤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찬양하는 바른 자세가 있어야 받으시기에 합당한 찬양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찬양하는 것은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너무도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악기와 음성으로 찬양하고,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하여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는 백성의 삶이요 고백입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여성 가수의 간증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먹고 살기 위하여 노래를 불렀고, 그 다음 인기가 올라가자 노래를 위해 노래를 불렀으며, 후에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주님을 위해 노래한다고 하였습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어떤 자세로 노래하느냐에 따라 전체적 변화가 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노래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그런즉 너희는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자세가 있어야합니다. 음성으로 하든 악기로 하든 하나님을 진정으로 찬양하는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내 속의 모든 것을 드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왕 되신 하나님께 음성과 악기로 정성으로 찬양하여 우리의 생활에서 감사와 감격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찬양 할 수 있음이 축복임을 늘 깨닫고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8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큰물은 박수할지어다 산악이 함께 즐겁게 노래할지어다”

앙리 트로야트(Henri Troyat)는 톨스토이의 전기에서 톨스토이가 경험한 신생(新生)의 체험을 이렇게 소개하였습니다. 어느 날 톨스토이가 숲속을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지저귀는 새와 싱싱한 나뭇잎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톨스토이는 온몸에 힘이 솟고 모든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수목과 새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하나님의 생명에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토록 만족스럽고 평화로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던 것입니다. 톨스토이는 ‘자연과 내가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할 때 사는 보람을 느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세계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넓은 바다, 높고 깊은 산, 푸른 하늘과 빛나는 구름 속에서 이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본다면 찬양이 절로 우러날 것입니다. 굽이치는 파도 소리와 우뚝 솟은 산에서 울리는 메아리를 들으며 자연만물이 하나님을 즐거이 찬양한다고 상상하는 사람은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처럼 우주만물과 인간이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음을 보고 새 힘을 얻는 삶을 삽시다.

 

  셋째는 다시 오실 왕을 바라보기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9절을 보겠습니다.

“그가 땅을 심판하러 임하실 것임이로다 그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공평으로 그의 백성을 심판하시리로다”

반드시 다시 오셔서 죄로 병든 이 땅을 고쳐주셔서 이 땅에 공평과 평화를 이루시기 위하여 다시 오실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내가 새 노래로 주님을 찬양 드린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아닙니까? 병과 죄악과 싸움과 시기와 질투와 미움으로 무너지고 있는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 아닙니까. 주님이 다시 오셔서 모든 것을 고쳐 주시는 것 입니다. 성경의 마지막 구절에도 이 소망으로 모든 것을 결론짓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이것이 우리의 큰 소망인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지극히 존귀하시니 그는 높은 곳에 거하심이요 정의와 공의를 시온에 충만하게 하심이라”(사33:5)

 

  성도 여러분, 백성들의 능력은 어떠한 왕을 모시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1930년부터 1950까지 소련에서는 수천 만 명이 죽었고, 1970년 캄보디아에서는 독재자 때문에 200만 명이 죽었습니다. 1990년대 북한에서는 기근으로, 보고 되지 않은 통계로 200 만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독재자는 잘 먹고 배부르고 있는데 백성은 굶어 죽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왕으로 섬기느냐에 따라 백성의 운명이 좌우됩니다. 누구를 왕으로 섬기고 계십니까? 우리의 왕 되신 주님은 백성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분이십니다.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고 섬기러 오신 분이십니다. 선한 목자로 오신 그분이 다시 오시어서 병든 이 땅과 우리의 심령을 고쳐주시고 새롭게 하실 분이 아닙니까. 이런 왕을 우리가 섬기고 있는데, 이러한 왕이 다시 오실 것인데,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역사를 주관하시고 계신데, 어찌 우리가 자연과 함께 새 노래로 찬양을 안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주님 앞에 모두 나와 찬양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주님을 찬양하고 우리가 예배 드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러한 하나님이 오늘도 살아 계시기 때문에, 이러한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로 새 생명을 받게 되었고 내가 인생을 하나님께 드리므로 인생을 우왕좌왕 하면서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내 몸을 드리며 바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예배란 것을 잊지 마시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참된 예배자로서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백성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 기도: 진리와 생명되신 주님, 이 몸과 마음을 다 바칩니다.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크신 사랑을 온 땅에 전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게 하소서.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과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를 새 노래로 즐겁게 찬양하며 예배드리게 하소서. 구원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자랑하며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바라보며 그 성품 따라 우리도 성실하게 하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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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6 시편 새 노래로 영광을 돌리자 시96:1-13  한태완 목사  2011-02-18 2997
4755 시편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시95:1-11  한태완 목사  2011-02-17 2482
4754 시편 절대적인 하나님의 왕권과 권위 시93:1-5  한태완 목사  2011-02-17 2152
4753 시편 악인의 멸망과 의인의 형통 시92:1-15  한태완 목사  2011-02-16 3336
4752 고린도전 예수는 하나님의 지혜다 고전2:1-12  정용섭 목사  2011-02-16 2449
4751 마태복음 예수는 빛이다 마4:12-22  정용섭 목사  2011-02-16 2423
4750 이사야 하나님의 ‘선택의 신비’ 사49:1-7  정용섭 목사  2011-02-16 2228
4749 마태복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마3:13-17  정용섭 목사  2011-02-16 2515
4748 에배소서 그리스도 찬양 엡1:3-14  정용섭 목사  2011-02-16 2330
4747 이사야 은총의 깊이로 사63:7-14  정용섭 목사  2011-02-16 2349
4746 누가복음 영광과 평화의 노래 눅2:1-14  정용섭 목사  2011-02-16 2889
4745 로마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롬1:1-7  정용섭 목사  2011-02-16 2603
4744 마태복음 당신은 메시아인가? 마11:2-11  정용섭 목사  2011-02-16 2585
4743 로마서 소망의 하나님, 우리의 소망 롬15:4-13  정용섭 목사  2011-02-16 2506
4742 마태복음 인자가 오리라! 마24:36-44  정용섭 목사  2011-02-16 2269
4741 시편 거룩하신 하나님 시99:1-9  한태완 목사  2011-02-15 2248
4740 시편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는 하나님 시104:1-35  한태완 목사  2011-02-14 4853
4739 시편 하나님의 긍휼과 도우심을 간구 시102:1-28  한태완 목사  2011-02-14 2362
4738 신명기 종 되었던 때를 기억하라 신24:17~22  이필재 목사  2011-02-13 2492
4737 시편 청년의 삶과 신앙 시119:9~16  이필재 목사  2011-02-13 2099
4736 히브리서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3:1  한태완 목사  2011-02-13 4172
4735 시편 지도자의 바른 마음자세 시101:1-8  한태완 목사  2011-02-13 2282
4734 사무엘상 교회 마당에서 들려오는 소리 삼상15:10-16  하원양 목사  2011-02-13 2027
4733 요한일서 사랑을 알면 목숨을 내놓는다 요일3:16  강종수 목사  2011-02-13 2218
4732 시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시23:1-6  한태완 목사  2011-02-13 2370
4731 시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시25:1-22  한태완 목사  2011-02-13 4847
4730 시편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시24:1-10  한태완 목사  2011-02-12 5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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