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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28: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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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하자
본문 시편28편 1- 9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2.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3.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4.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그들에게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그들에게 갚으소서
5.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6.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7.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8.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9.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9.11테러로 쌍둥이 빌딩이 붕괴된 다음에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는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비슷한 구조 작업을 하였습니다. 구조대원들이 잔해 속에서 생존자를 찾을 때 제일 먼저 소리를 찾습니다. 잔해 속에 만약에 생존자가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의식이 있다면 비록 다리가 부러졌을지라도, 몸이 상했을지라도 뭔가 소리를 낼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잔해 속에서 “똑 똑똑 똑똑” 뭔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면 그 잔해 속에 누군가가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실 때 내 환경이 지금 건물이 무너져서 내가 그 잔해 사이에 깔려 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누군가가 소리를 낼 수만 있다면, 기도하는 소리,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가 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거기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소리를 냈습니다. 사실 기도할 기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찬양할 기분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일수록 기분에 좌우되지 않고 믿음으로, 내가 기분이 어떠하던지, 우울하든지 괴롭든지 간에 더 힘써 찬양하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분위기라는 것은 우리가 만들어야지 내 기분에 좌우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울하더라도 그럴 때일수록 더 박수 치고 기뻐하고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비록 무너진 건물 속에 있는 우리의 삶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우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구조대원들은 소리를 찾아서 소리가 있는 곳부터 파기 시작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를 내는 사람, 누군가가 부르짖는 사람부터 하나님께서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을 찬양합시다.
본문 시펀 28편이 다윗의 시라는 내적인 증거는 표제에 다윗의 시라고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8절에 나오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내용 때문입니다. 이것은 왕의 신분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시인이었던 사람은 다윗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멸하고 자신을 고통에서 구하실 때 하나님께서 악인과 자신을 구별하실 것을 확신하며 노래하고 있습니다. 즉, 다윗은 하나님께서 공정한 심판을 내리시고, 그 백성을 구하시고 지키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 시는 26, 27편과 함께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에 쓰여졌던 시라고 보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다면 여기서의 원수들은 내부의 원수들입니다. 이제 그들에게서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을 구분해 보면
1-4절까지 하나님께 대한 공정한 심판과 구원을 간구하는 내용이고,
5-8절까지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분명하게 멸하실 것을 예언하면서 그에 대한 확신 있는 신앙을 노래하고, 마지막 9절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하고 첫 구절을 시작하고 있다.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내게 잠잠 하시면” 하고 말하면서 그러한 만일의 일이 일어나면 자신은 마치 무덤에 내려가는 것 같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무덤은 죽음과 같은 동의어입니다. 침묵은 무서운 것입니다. 특히 부모나 나를 보호해 주어야 할 존재가 자신의 말에 대해서 아무런 대꾸가 없다면 더욱 무섭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죽음과 같은 공포가 됩니다. 그래서 다윗은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더욱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본문 1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의 요구를 즉각 들어 주지 않을 때 실망합니다. 고속도로 상에서 일가족을 태운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막내 딸은 자기 아버지의 차가 다른 차들을 제치며 앞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면서 즐겁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야, 우리 아빠 차가 제일 좋다. 우리 아빠 차가 이 세상에서 제일 빠르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다른 차가 그 차 앞에 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빠, 빨리 저 차를 따라가요, 어서요!’ 하고 재촉했으나 아빠가 말을 듣지 않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가족은 얼마 후 충돌 사고가 난 차량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무리한 추월 경쟁을 하다가 사고가 난 것입니다. 만일 아빠가 딸의 요구를 들어 주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이것은 기도에도 적용될 수 있는 진리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나타나지 않을 때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가?’ 하는 의문에 휩싸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신앙을 더욱 성장시키기 위해 응답을 유보하시거나 침묵하실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요, 기도자에게 유익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한 부인이 식료품 가게에 와서 성탄절 만찬에 아이들을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식료품을 달라고 했습니다.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주인이 물으니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어서 기도 밖에는 정말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당신의 기도를 종이에 써주십시요. 그러면 그 무게만큼 식료품을 주겠소 놀랍게도 부인은 접혀진 노트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주인에게 건내주면서 '우리 어린애가 지난 밤에 아파서 옆에서 병간호를 하며 기도를 적어 두었지요'하고 대답했습니다. 읽어 보지도 않은 채 주인은 구식 저울의 추를 놓은 곳에 기도가 적힌 종이를 놓고는 '자 이 기도가 얼마치의 식료품무게가 되는지 달아봅시다'하고 중얼거렸습니다. 놀랍게도 빵 한덩어리를 놓았는데도 저울은 꼼짝을 않했습니다. 다른 식료품을 올려 놓았는 대도 저울은 움직이지 않자 주인은 더욱 당황했습니다. 드디어 저울에 더 이상 올려놓을 수 없으니 당신이 봉지에 담아가시요. 나는 바쁘니까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습니다. 눈물 흘리고 감사하며 그 부인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저울이 고장난 것을 얼마 후 주인은 알게되었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주인은 가끔 의아했습니다. 그 일이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왜 그 부인이 미리 기도를 써 가지고 왔을까? 왜 그 부인이 저울이 고장났을 때 왔을까? 그때 그 부인이 적은 기도문은 주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양식을 주시옵소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祈禱)하고 구(求)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11:24)
다윗은 도움과 긍휼을 간절히 부르짖을 때에 은혜를 베푸시며(2절), 위선적인 죄인들과 함께 그를 끌어내지 마시며(3절), 주님께서 악인을 엄밀히 벌하시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4절). 그러면서 악인들을 고소합니다. 악인들은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지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대로라면 다윗은 지금 예루살렘에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반란 때문에 왕궁에서 도망 나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 하고 있는 상황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지성소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그만큼 다윗은 지금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인들은 간절하게 기도할 때에 손을 들고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아말렉과 싸울 때에도 모세는 손을 들고 기도하였고, 지치자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손을 받쳐 도와주었습니다.
이제 다윗은 회중들에게 자신의 확신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악인은 영원히 멸망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인은 여호와의 행하신 일을 경시하기 때문에 멸망당할 것입니다. 여기서 악인은 단순한 악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기에 한계가 있는 극악한 악인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사함 받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떠한 죄든 용서가 가능하나,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본문 3절을 보겠습니다.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로버트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에는 충격적인 사건들이 계속 나옵니다. 어느 동네에 마음씨 착하고 선행을 많이 베푸는 지킬박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천사처럼 여기며 존경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는 거의 매일 밤 살인과 절도 유괴 등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범인의 단서가 잡혔습니다. 칼 경이라는 유명인사가 지팡이에 맞아 살해되었는데, 범행에 사용된 지팡이가 발견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팡이는 앤더슨이란 변호사가 지킬 박사에게 선물한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집니다. 경찰이 지킬 박사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지킬 박사의 옷을 입은 하이드가 자살한 것을 보게 됩니다. 천사 같던 지킬 박사와 끔찍한 연쇄 사건의 범인인 하이드는 같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이 소설이 보여 주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두 가지 성품의 '끼'가 잠재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선함'과 '악함'의 양면이 두드러지게 표출될 때, 인간은 '위선자'가 되고 '이중 인격자'로 전락합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이나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게서 위선의 뿌리를 발견합니다. 주님을 판 대가로 은 30냥을 받고서도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나입니까?" 하며 가증스런 태도를 보이던 유다에게서도 위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위선을 싫어하셨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자들아." 하며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타락한 오늘의 세태는 가증스런 위선이 더욱 판을 치고 있습니다. 웃음을 띤 얼굴 뒤로 온갖 추악함이 깃들어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오직 선한 양심을 가지고 생활함으로써 위선을 버려야 합니다. 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내면의 삶을 돌아보고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 결단해야 합니다.
본문 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의 행위가 악한 대로 갚으시며 그들의 손이 지은 대로 그들에게 갚아 그 마땅히 받을 것으로 그들에게 갚으소서”
시인은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은 오히려 번영하는 이 악한 세태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공의에 호소합니다.
어느 마을에 욕심쟁이 군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어떠한 위험 가운데서도 주인을 잘 지켜 주는 명마가 있었습니다. 주인은 이 명마를 잘 보살시고 맛있는 먹이도 구해다 주었습니다. 명마는 전쟁 때 빛을 발하여 수많은 위험에서 주인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주인은 이 명마가 귀찮아 졌습니다. 말이 먹는 먹이도 아까워졌습니다. 자연스럽게 말을 혹사하고 먹이도 잘 주지 않았습니다. 말을 병들었고 쇠약해 졌습니다. 또다시 전쟁이 났고 그 군인도 병들고 쇠약한 명마를 타고 전쟁이 나섰습니다. 그러나 명마는 예전과 달리 힘차게 달리지 못했고 결국 그 군인은 적군이 쏜 화살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도 행한 대로 보응하십니다. 우리는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심판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의 행위대로 그의 머리에 돌리시고 공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 의로운 대로 갚으시옵소서”(대하6:23)
본문 5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파괴하고 건설하지 아니하시리로다 ”
여기서 다윗은 악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음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모든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은 반드시 하나님이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지 아니하시고 침묵하실 수는 없음을 강조함으로써 역설적으로 더욱 기도 응답을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심에 대하여 감사의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라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확고한 신앙이 있는 사람은 침착하고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은 어떤 뜻밖의 곤경에 부딪쳐도 당황하거나 겁내지 아니합니다.
다윗은 6절 이하에서 자신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더욱 분명하게 밝힙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이 구절은 2절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힘과 방패가 되셔서 그로 하여금 안인의 계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심으로 주 안에서 즐거워 할 수 있게 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셋째, 여호와께서 주의 백성을 구하시며 산성처럼 그 왕을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오,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본문 7, 8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세계 2차대전 때에 프랑스가 독일 나치스 군대에게 패해 버리자, 영국에서 도와주려고 건너갔던 29만 대군이 자기들만으론 불가능한지라 영국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도버해협으로 도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히틀러는 베를린에서 도망하는 영국 군인들을 아주 전멸시켜 버릴 것을 명령하고는 태연히 있었습니다. 그 때에 영국왕 조오지 6세는 온 영국에 '어떻게 하든지 영국 군대를 건져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기도의 날'을 선포하여 전 국민이 그 날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 후 이상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날 독일군 편에는 큰 폭풍우가 일어서 비행기 한 대도 뜰 수가 없었고 너무 비가 많이 와서 탱크 한 대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영국군이 있는 도버해협은 어찌나 잔잔하고 고요한지 거울같이 맑아서 수많은 배가 29만의 영국 군대를 무사히 영국까지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영국군대를 비롯해서 온 영국국민이 하나님 앞에 감사의 기도를 드림으로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50:15).
이렇듯 하나님은 자기를 믿고 의뢰하는 자를 굳건히 지키시는데 우리는 힘과 방패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마음이 기뻐하는 것은 내적인 감정이요, 노래로 저를 찬송하는 것은 내적 감정에 대한 외적인 표현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기쁨이란 피상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기쁨이 아닙니다. 참 신앙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 아홉가지 중에 두 번째가 기쁨(희락)입니다.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처럼 마음의 기쁨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느8:10)고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속에 주께로부터 오는 기쁨으로 채워주시고 주님을 향한 찬송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본문 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이제 결론적으로 다윗은 9절에서 기도로 시를 마감합니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이 기도는 모든 시험과 고난 속에서 그들을 지켜 달라는 기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삶을 주관하시고 저들을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영원한 통치자가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말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전혀 두움을 힘입지 않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요15: 5) 그러기에 성도는 더욱 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온전히 행하며, 기쁨이 넘치는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시33:20) 세상의 도움을 찾고 의지하기 이전에 오직 하나님만을 절대적인 도움의 방패삼아 기도하고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은혜를 풍성히 누리게 됩니다. 이렇게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온 땅과 온 민족이여 찬송합시다.
* 기도: 진리와 생명되신 하나님,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저의 연약함을 도우시고 죄악을 씻기시는 하나님께 애통하는 심령으로 나아갑니다. 입술로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크고 비밀한 일을 깨닫는 은혜를 입게 하소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주님의 평화와 기쁨을 내려 주소서. 하나님의 응답을 믿고 기다리게 하소서. 우리의 마음을 여시어 말씀을 깨닫게 하옵소서. 우리가 주님의 큰 사랑을 온 세상에 전하고 우리 입술에 찬송이 그치지 않게 하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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