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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 광장에서
【용포리일기 221】잔소리GPS
대전 천안간 1번국도를 타고 올라가다가 조치원 입구에서 우회전하여 청주 가는 상리길은 참 재미있는 길입니다. 50미터 간격으로 신호등이 5개가 주루룩 있는가 하면 언덕을 신나게 내려가는 차가 채 속도를 줄이기도 전에 내리막길 끝나는 부분에 속도탐지 카메라가 숨어 있습니다. 이 길을 자주 다니며 조심한다고 애를 썼는데도 그만 카메라에 덜컥 찍혀 벌금 3만원 냈습니다.
그 뒤로부터 제 차에는 갑자기 GPS가 두 대가 되었습니다. 한 대는 할 줄 아는 말이 다섯 마디도 안 되는 기계이고, 또 한 대는 인공지능 전천후 고성능 인간 잔소리GPS 한 대가 급히 생겼습니다.
잔소리GPS는 징글징글. 때로는 "이야...복사꽃이 이쁘다..."하고 운전과는 별 상관없는 맨트도 하지만 곧이어 "운전자는 고개를 돌려 쳐다보지 말고 운전이나 똑바로 하세요" 그럽니다. ㅠㅠ
잔소리GPS는 운전을 안 할때도 작동을 합니다. 지난주 토요일 청양 칠갑산 등산을 하였습니다. 아침에 집에서 출발할 때 안개가 잔뜩 끼어 당연 안개등을 켜고 운전을 하였습니다. 장곡사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버스를 타고 칠갑산장쪽으로 돌아와 모두 모여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막 등산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여보, 차에 안개등 껐어요?"하고 아내가 점검을 합니다.
"안개등? 맞아. 안개등... 가만있자. 내가 안개등을 껐나? 기억이 없네. 안개등은 시동을 끄면 저절로 꺼지지 않나? 잘 모르겠어"
그로부터 진달래 벚꽃이 어울어진 칠갑산 등산 3시간 내내 제 머릿속에서는 안개등 생각이 떠나가질 않았습니다.
끈 것 같기도 하고... 안 끈 것 같기도 하고, 차의 밧데리가 방전되어 고생한 경험이 몇 번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신경이 쓰였습니다.
정상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안개등.. 오솔길을 걸으면서도 안개등... 잠시 쉬며 물을 마시면서도 안개등 아흐 ~ 끼야야아악~ 흐미 죽것네. 내가 안개등을 껐냐 안 껐냐... 이거 정말 미치고 환장허것네. 내가 안개등을 껐는지 안 껏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나. 분명히 안 끈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차장이 가까워지자 막 달려가서 안개등부터 확인하였습니다.
"뭐야 이거 안개등 껐쟎아" 다리에 힘이 탁 풀렸습니다.
등산 내내 괜한 고민으로 해골속의 세포만 죽게했잖나! 내 해골 속에 '안개등'바이러스를 집어넣었던 아내는 약을 올리며 낄낄댑니다. 아이고 내참~ 억울해. 엉엉 2007.4.14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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