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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에 맞으신 예수님.....

요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1981 추천 수 0 2011.03.07 23: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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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9:1-6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그날 오후 우리 교실은 여느 때처럼 왁자지껄했습니다. 어찌나 시끄럽고 요란했던지 담임선생님이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체로 벌을 받았고, 몇 사람은 매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매를 때리던 선생님이 갑자기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우시다가 결국은 수업을 계속하지 못하고 우리를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지금은 그 때 선생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사랑하고 귀여워하시던 아이들을 때리다가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서 선생님은 울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야 물론 벌을 받고 매를 맞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마음이 쓰리고 아파서 더 이상 매를 때릴 수도 없었고, 수업조차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선생님에게 받은 사랑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도 한 때는 그런 선생님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때려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의 심정은 어땠습니까? 또 누군가에게 맞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 때의 심정은 또 어땠습니까? 자녀들을 기르면서 간혹 매를 때린 적이 있습니다. 성경은 자녀들을 매로 징계할 때는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13:24) 그런데 아이들에게 매를 때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매를 맞고 아파하거나 우는 것을 보면 얼마나 가슴이 아픕니까? 부모들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자녀들에게 매를 대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누군가를 때린다는 것이 얼마나 못할 짓인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때리거나 반대로 누군가에게 매를 맞을 때는 그 사람의 인격이 무시되고 인간성이 파괴됩니다. 매를 맞는 사람은 매우 비참해집니다. 매를 때리는 사람도 자신의 파괴된 인간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매를 맞는 것 못지않게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파괴하는 것이 모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인간성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매우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인간성을 파괴하는 일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무시하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진노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분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잔인하고 처절하게 맞으시고 모욕을 당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아무 죄도 없으신 주님께서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관을 쓰셨으며, 침 뱉음을 당하시고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철저하게 인격이 무시를 당하셨습니다. 얼마나 이상하고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맞으시고 모욕을 당하셨을까요?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십자가형에 처해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심문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아무 죄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석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선동을 받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아무 죄도 없음을 거듭 확인한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선언하고, 유월절 특사로 석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댔습니다. 군중의 소리에 위협과 공포를 느낀 빌라도는 적당한 방법을 궁리한 끝에 한 가지 절충안을 생각해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에게 채찍질을 한 후에 유대인들의 동정심을 유발하여 석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는 군인들에게 예수님을 데려다가 채찍질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채찍질은 소름끼치는 잔인한 고문이었습니다. 이 채찍질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로마의 채찍은 짧은 나무 손잡이에 몇 개의 가시가 있고, 그 끝에는 납이나 혹은 놋쇠, 그리고 날카로운 뼈가 달려 있었습니다. 죄수를 발가벗겨 허리를 굽히게 하고 이 채찍으로 내리쳤습니다. 이 채찍에 맞는 사람은 매를 맞는 부분이 찢겨지고 깊이 패여 정맥과 동맥까지 파열되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는 내장과 내부 기관까지 밖으로 노출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매를 맞다가 종종 죽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 채찍질은 너무나도 끔찍하고 잔인한 형벌이었기 때문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 형벌이 면제되었습니다. 우리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통해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셨습니다. 
  
조롱당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당하신 채찍질은 재판에 의해서 결정된 형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불법이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채찍질을 한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힌 후 조롱하며 때렸습니다.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을 옷을 입히고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2-3절) 마태는 이 부분을 더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마27:27-30) 이 모든 일들 역시 재판에 의한 형벌이 아니라 군인들의 심심풀이와 장난거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법적이고 부당하게 고난과 수치를 당하셨던 것입니다.
  군인들이 가시로 관을 만들어 예수님의 머리에 짓눌러 씌웠을 때 머리에서 붉은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아직 채찍질로 인한 고통이 극심한 상태에서 예수님은 또 다른 고통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본래 이 가시는 인류 범죄의 결과로 생겨났습니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3:18상)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시관을 쓰신 것은 인류의 죄 값을 대신 받으신 것을 나타냅니다.
  군인들이 예수님께 가시관을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며 갈대를 손에 들려준 것은 예수님의 왕 되심을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조롱은 매로 때리는 것 이상으로 사람을 무시하고 인격을 짓밟는 행위입니다. 군병들은 예수님을 이렇게 조롱한 후 얼굴에 침을 뱉고 손으로 때렸습니다. 진정한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가짜 왕 취급을 당하시며 이렇게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조물주이신 그분이 자신의 피조물에게 이렇게 멸시와 수욕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완전히 무시를 당하시고 짓밟히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고통과 조롱을 말없이 다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때린 사람들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 의해 잡히시고 심문 당하시고 정죄를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에게 넘겨져서 심문을 당하시고 로마 군인들에게 채찍질과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베드로는 오순절에 예루살렘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설교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바로 너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잡아다가 심문하고 채찍질하고 조롱하고 십자가에 죽인 것은 바로 우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과 수치를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간섭과 통치를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이 세상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사람들에게 죄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 나오도록 촉구하셨습니다. 특히 당시 아무에게도 재제를 받지 않고 모든 특권과 권력을 누리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죄를 지적하시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미워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통치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날마다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감화하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복종하기를 촉구하십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당시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처럼 노골적으로 대적하며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어느 부분까지는 순종하지만, 그 이상은 절대로 복종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온전한 복종을 요구하십니다. 우리가 온전히 복종하기 전에는 우리 마음에 진정한 평안이 오지 않습니다. 늘 갈등과 불안과 심지어는 불만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에 복종하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죄와 다르지 않습니다.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헌금을 드리고 봉사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에 철저하고 온전히 복종하기를 거부한다면 오늘 우리는 여전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셈입니다. 이제 자신의 고집과 주장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여 살아가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예수님만 나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다스리시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불순종과 거역하는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모든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성도는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에 온전히 복종하여 살아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주님께서 왜 고난을 당하셨는가?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채찍질을 하고 군중의 동정을 사서 석방해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채찍에 맞아 상처투성이가 되신 예수님을 군중 앞에 끌고 나와 세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시고 만신창이가 되신 모습으로 군중 앞에 세워지셨습니다. 예수님을 때리고 조롱한 것도 심한 모욕인데,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군중들 앞에 세워 구경거리가 되게 한 것은 더한 모욕이었습니다. 빌라도는 군중들이 처참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동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빌라도는 죄도 없으신 예수님에게 이 정도로 고통을 가했으면 이제 되지 않았느냐는 의미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시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5절)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사주를 받은 군중들은 그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동정하기는커녕 더 흥분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6상) 빌라도는 자신의 시도가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을 보고 군중의 압력에 굴복하여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의로우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허용하셨을까요? 왜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이렇게 채찍에 맞으시고 조롱을 당하셨을까요? 성경은 이 문제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24)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십자가에 대한 성경의 이 해석은 오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때 더욱 확실해집니다. 오늘 당신은 자신을 어떻게 보십니까? 우리는 겉보기에는 모두 선량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우리 내면의 죄가 다 드러난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얼굴에 침을 뱉고 조롱을 한다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태연하지만 자신의 죄를 떠올릴 때마다 부끄럽고 두려운 마음이 드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주님께서 당하신 채찍질과 조롱은 내가 당해야 마땅한 것이었음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위해서 대신 채찍에 맞으시고 조롱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부끄럽고 추한 모든 죄를 가지고 채찍에 맞아 쓰러지신 주님, 가시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신 주님,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신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짐을 벗겨 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고통과 치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에게는 더 이상 채찍에 맞는 것과 조롱과 치욕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이미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주님을 온전히 믿고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오직 칭찬과 영광과 축복이 있을 뿐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 이 믿음 위에 굳게 서기 바랍니다. 더 이상 죄책감으로 시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우리를 정죄하는 사탄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이미 고통과 수치를 당하시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참 자유와  평안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더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죄 가운데서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6:6)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라”(롬6:12-14) 이제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여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채찍에 맞으시고 조롱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통과 수치와 죽음을 통하여 죄와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벗어났습니다. 이제 주님 앞에 나아가 모든 죄짐을 벗어버리고 참 자유와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 은혜와 사랑을 평생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는 죄를 버리고 주님께 온전히 복종하며, 주님을 위해 생명을 바쳐서 충성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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