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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

요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3468 추천 수 0 2011.03.07 23: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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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9:17-27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8·10·25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을 그토록 악랄하게 고문하고 죽인 기록이나 사진들을 보고 몸서리치도록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우리 한국 사람들도 그에 못지않게 잔인한 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독재정권 시절에 무서운 고문을 당하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토록 잔인할 수가 있을까요?
  그런데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은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그토록 칭찬한 로마인들도 사실은 가장 잔인한 민족들 중의 하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인 이야기에 보면 만 명이 넘는 군대를 모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일도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모든 죽음과 고통을 감수하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가장 무섭고 잔인한 사형방법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인 키케로는 십자가를 가리켜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죽음’이라고 불렀습니다.
  십자가에서 죽는 사람은 천 번의 죽음을 죽는다고 알려져 있었습니다. 큰 못이 손과 발에 박힙니다. 나무에 달려 있는 동안 심한 염증이 생기고, 못이 박힌 상처 부분이 부어오르며, 근육이 찢겨짐으로 인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합니다. 그리고 깨지는 것 같은 두통과 타는 듯한 목마름을 느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 바로 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그토록 잔인하고 참혹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을까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감정의 개입 없이 담담하고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확인한 것은 예수님에게는 사형에 처해질 만한 아무런 죄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여 로마 총독에게 끌고 가서 죽여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로마 총독은 예수님에게 아무 죄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십자가형을 언도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처형당하실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으로 가셨습니다. 참혹한 채찍질을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실 수가 없어서 쓰러지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은 옆에 서 있던 구레네 지방에서 온 시몬이라는 청년을 붙잡아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두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죄패를 써 붙였습니다.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유대인의 왕’이라 하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요구했지만, 빌라도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집행한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그리고 속옷은 제비 뽑아 한 사람이 그것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곁에는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두 명의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요한도 거기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에게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고, 요한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망과 두려움에 빠져 있던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셨던 것입니다. 그 때부터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의 어머니로 알고 모시고 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몇 마디 말씀을 더 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의미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죽으셔야 했을까요? 그것도 왜 하필이면 가장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셔야만 하셨을까요? 성경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저주 받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3하)   왜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으셔야 했을까요? 그것은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담이 타락한 이후 그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죄를 짓습니다. 역사 이래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그런데 이 죄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결코 용납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의 대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이 말씀은 오늘 우리 모두가 죄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을 당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율법과 죄의 저주에서 건져주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 달려 이 모든 저주를 당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진 고난을 당하시고 수치스럽고 참혹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바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3:13)

예언의 성취
  

복음서를 기록한 저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구약에 예언된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23-24절) 요한은 여기서 시22:18절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두 명의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역시 구약에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사53:9)
  이 외에도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과 고난당하실 것과 죽으실 것, 그리고 부활하실 것이 모두 구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우연히 된 일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빠져 영원히 죽게 될 소망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처음부터 이 모든 일을 계획해 놓으셨으며, 마침내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모든 일을 이루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실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유대인의 왕 예수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들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19-20절) 그런데 대제사장들이 이 패에 대해서 빌라도에게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21절)
  빌라도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패를 붙임으로써 유대인들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이렇게 처형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동시에 ‘너희들의 왕이 이렇게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을 당한다.’라고 조롱하는 마음으로 이 패를 붙였던 것입니다.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은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말이 눈에 거슬렸으며, 빌라도가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을 조롱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칭 유대인의 왕 예수’라고 고쳐줄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빌라도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붙인 죄패의 내용은 진리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왕으로써 모든 백성을 대표하여 죽으신 죽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받고 죽으심으로 우리는 모든 죄와 저주에서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이제 더 이상 저주와 심판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던 것입니다.

로마 군병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집행한 사람들은 네 명의 로마 군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후 피를 흘리며 고통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가졌습니다. 군인들은 처형된 사람이 입고 있던 옷을 팁으로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분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찮은 옷가지를 얻었을지 모르나 영원한 구원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군인들의 모습은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며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고 고통당하시며 죽으신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배하는 시간에 여전히 자신의 생각과 욕심으로 머리가 복잡하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에 밑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로마 군병들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하늘의 신령한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얻고자 하는 것은 좋은 분위기와 친구들과 추억이 아닙니다. 인간의 위로와 관심이 아닙니다. 예배하고 기도함으로써 내 사업과 가정과 직장이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의 십자가 앞에서 얻어야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이며, 속사람이 깨끗하고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얻지 못한다면 우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아무 의미가 없게 되고 맙니다. 이 시간 오직 십자가만을 바라보십시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주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십시오. 겸손히 주님을 영접하시고 죄와 저주와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받는 축복을 받게 되기 바랍니다.

새로운 가족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다른 세 명의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중 유일하게 요한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들의 소망이었고 모든 것이었던 예수님께서 지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 이제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가족관계를 맺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에게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26-27절)
  물론 마리아에게는 또 다른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기셨습니다. 그 때부터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의 어머니로 모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새로운 가족,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가족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자기 가족 밖에 모르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주님의 뜻을 망각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는 모두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혈연관계 못지않게 실제적인 것입니다. 물론 기존의 가족관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족관계는 정말 소중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맺어진 새로운 공동체 역시 기존의 가족관계 못지않게 소중하고 귀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서로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면서 새로운 가족관계를 지켜나가야 합니다. 신앙이 얼마나 성숙되었느냐 하는 것은 이 새로운 가족들을 얼마나 사랑하느냐로 확인될 수 있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려운 형제는 마땅히 우리가 돌보아야 합니다. 고통당하고 있는 형제를 안 믿는 친척들에게만 맡기지 말고 우리가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요한에게 새로운 가족 관계를 맺어주신 것은 단순히 어머니를 걱정해서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성령께서 임하시면 그들이 완전히 한 가족으로서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이 없어서 늘 아쉬움을 느끼는 성도가 있습니까? 여기 이 교회 안에 있는 아들들이 모두 당신의 아들들이요, 특별히 도움이 필요한 아들이 당신의 아들인 것을 명심하십시오. 딸이 없어서 섭섭한 가정이 있습니까? 여기 교회 안에 있는 사랑스럽고 예쁜 딸들이 모두 당신의 딸들입니다. 그중에서도 당신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딸이 특별히 당신의 딸인 것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 이 교회 안에서 당신의 도움과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은 주님께서 당신에게 부탁하신 가족입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으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 죄가 없다는 사실은 예수님을 증오했던 유대인들뿐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심문했던 대제사장들과 헤롯과 빌라도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의롭고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죽으셔야 했을까요? 그것도 왜 그토록 잔인하고 참혹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셔야 했을까요?
  그것은 죄와 저주와 영원한 멸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실 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와 저주를 대신 담당하시고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믿는 우리는 모든 죄와 저주와 심판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마십시오. 날이 갈수록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가 더욱 깊이 깨달아지며, 그 사랑에 더욱 뜨겁게 감격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중에 있는 연약하고 어려운 형제를 특별히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서로 돌봄으로써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는 증거가 풍성하고 강력하게 나타나는 아름답고 복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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