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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무덤 .....

요한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501 추천 수 0 2011.03.07 23: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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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0:1-10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8·11·28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부활이야말로 우리가 믿는 신앙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은 그분을 믿는 우리도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의 전도도 헛되며, 우리는 사기꾼과 거짓말쟁이들이 되며,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게 되고 구원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더 불쌍한 자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부활하셨으며, 오늘도 그분을 믿는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당신은 매일 순간마다 부활하사 살아계신 주님과 동행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을 것입니다. 날마다 부활하신 주님을 섬기며 그분과 친밀하게 교제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는 주님의 부활에 대한 산 증인들입니다.

예수님을 부활을 부인하려는 시도들
  

그런데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부인하며, 부활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내린 결론을 살펴봅시다. 다음은 옥한흠 목사가 정리해놓은 내용을 옮겨온 것입니다. “약간 히스테릭하고 다혈질적인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처형되는 것을 보고 절망하고 있다가 안식일 후 첫날에 시체라도 보고 싶어서 무덤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예수님이 묻힌 무덤을 아무리 찾아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날은 아직 어두운데 며칠째 잠을 자지 못한 이 여자는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 한참 헤매고 다니다가 어떤 남자를 만났다. 그에게 예수를 묻은 무덤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가 가르쳐준 곳에 가서 찾아보았지만 시체는 보이지 않고 빈 무덤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결국 시체를 찾지 못한 마리아는 절망하고 집에 내려와 혼자 곰곰이 생각하다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에 사로잡힌다. 이처럼 가벼운 정신착란증세를 보인 마리아는 그만 자기도 모르게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예수가 부활했다는 기독교 신앙이 생겨난 것이다.”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꿈이요 소망이라고 믿었던 예수가 십자가에서 맥없이 처형되어 처참하게 죽는 모습을 보고 집에 돌아와 밤낮으로 울면서 탄식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너무나 보고 싶었는데 이제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되어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절망을 안게 되었다. 어느 정도 진정이 되자 예수님이 너무도 보고 싶었던 그들의 간절함은 예수님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그러다가 그들은 예수님이 비록 십자가에 처형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그들 곁에 살아 계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나중에는 말로 옮겨져서 예수님이 실제로 부활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처럼 믿도록 하는 기독교 신앙이 생겨났다.”
  그런데 예수님를 믿지 않는 유대인 학자 요셉 클라우스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한 논리로 예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떻게 미친 여자가 만들어 낸 말 한 마디에 넘어가서, 어떻게 예수님을 그리워하던 제자들이 착각을 일으켜서 예수님이 살아난 것처럼 조작한 그 이야기에 속아서, 지난 19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백만 수천만 수억의 사람들이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정신 나간 사람들의 소문에 뿌리를 두고 기독교가 종교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예수 부활을 부정하면서 만들어낸 이야기는 오히려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다.”
  이 말은 기독교 신학자가 한 말이 아니라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 랍비가 한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롯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부활신앙을 지키고 전하면서 순교했습니다. 어떻게 단순한 신념이나 조작된 거짓말, 그리고 착각에다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 수 있었겠습니까? 기독교의 역사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대한 증인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증인들입니다. 우리는 단지 듣고 배웠기 때문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을 만났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입니다.

무덤으로 가는 여인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장사한 것은 안식일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오후 늦은 때였습니다. 다음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서둘러서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고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장사했습니다. 이때 몇 명의 여인들이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장사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눅23:55-56)
  이 여인들은 시간이 급해서 예수님의 장사가 미흡했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돌아가서 향품을 준비해두었다가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새벽에 무덤으로 갔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눅24:1하) 마가는 이날 새벽에 무덤으로 갔던 여인들을 좀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막16:1-2) 본문에서 요한은 이 여인들 중 막달라 마리아 한 사람의 이름만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여인들 중에서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특별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누가는 이 여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여 자기들의 소유로 그들을 섬기더라”(눅8:2-3)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던 소망 없는 여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자를 고쳐주시자, 마리아는 자기의 소유를 드려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는 고침을 받은 이후 자기의 소유를 드려 주님을 섬겼고 늘 주님을 따랐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도, 제자들은 다 도망쳐버렸는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19:25) 막달라 마리아는 마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장사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향품을 준비해두었다가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 새벽에 이렇게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이 막달라 마리아는 자신을 고쳐주신 주님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었고,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따랐던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도 주님을 향한 그녀의 감사와 사랑을 시들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안식 후 첫날 날이 밝자마자 예수님의 무덤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만나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막달라 마리아에게서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간절한 마음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도 나를 구원해주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항상 감격하며, 식을 줄 모르는 열심과 충성된 마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주님을 섬겨야겠습니다.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시며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께서는 이러한 성도를 특별히 사랑하시고 더 풍성한 은혜를 부어주십니다.

빈 무덤
  

이렇게 막달라 마리아와 몇 명의 여인들은 안식일이 지난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장사되신 무덤은 바위 속을 파서 만든 것이었으며, 입구는 큰 돌로 막아두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은 무덤 문을 누가 열어줄 것인지를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녀들이 무덤에 도착했을 때는 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려져 있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1절) 깜짝 놀란 여인들은 즉시 베드로와 요한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2절)
  여자들의 말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은 즉시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부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는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3-7절)
  무덤은 비어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무덤 안에는 예수님의 시신을 쌌던 세마포가 그대로 놓여 있었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예수님의 머리가 놓여 있던 그 자리에 놓여 있었습니다. 쌌던 대로 놓여 있었다는 말은 수건을 풀거나 다시 개켜 놓은 것이 아니라 머리를 쌌던 그 상태로, 그러니까 머리만 빠져나가고 남을 상태로 놓여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무덤 안의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누군가가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간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덤 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우리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수의와 머리를 쌌던 수건을 그대로 두시고 신비롭게 빠져나오셨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빈 무덤을 보고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 8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이 말씀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9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그들이 믿었다는 것은 무덤이 비어 있고 예수님의 시신이 거기 없다는 사실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믿음 없는 제자들
  

제자들은 무덤에 직접 가서 보고 무덤이 비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제자들은 무덤이 비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충격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허탈감에 빠졌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이제 그 시신마저 온전히 보전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빈 무덤을 확인한 제자들은 더욱 더 심한 절망과 좌절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만일 제자들이 빈 무덤을 확인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기억했더라면 크게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년 이상 그들을 훈련하셨고, 죽으시기 전에 몇 차례나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후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가라사대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눅9:22) 그러므로 그들은 빈 무덤을 보았을 때 믿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불신앙에 빠져 있었고, 부활의 기쁨과 승리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믿음 없는 제자들은 기뻐하기는커녕 더욱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장사되셨는데, 무덤에 와 보니 예수님의 시신은 없고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것은 틀림없이 예수님을 대적하던 자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이렇게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간 자들이 이제는 예수님의 제자인 자신들까지 붙잡아 죽이려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되자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견딜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모여서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숨어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입니까? 만일 제자들이 빈 무덤을 보았을 때 믿음으로 말씀을 기억했더라면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믿음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헤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말씀에 비추어 본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중요한지 모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특히 어렵고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말씀에 비추어 보고 있습니까? 요즘처럼 온 세상이 경제적인 쓰나미를 만나 요동칠 때도 불안해하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이 모든 일들을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면 우리 역시 한 순간도 맘이 편하지 못할 것입니다. 늘 불안과 두려움에 떨면서 어쩔 줄을 몰라 하게 될 것입니다. 간혹 성도들 중에서 이런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몰아치는 파도를 보면서 두려워하며 낙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육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히 변치 않는 진리의 말씀을 주셨으며, 그 말씀을 사용할 수 있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세상의 풍파가 몰아치는 한 복판에 서 있다 해도 말씀을 굳게 붙잡고 믿음으로 판단할 때, 우리는 그 모든 것이 결국 우리가 예측한 대로, 믿음으로 판단한 대로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관건은 믿음으로 말씀을 굳게 붙들고 모든 일들을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묵상한다고 해서 언제나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답을 찾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새롭게 발견하며 다시금 확인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던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새롭게 나에게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신실하시며 나를 사랑하셔서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통해 이 하나님을 다시 한 번 뜨겁게 만나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안심하고 평안하며 담대해지는 것입니다. 염려와 두려움이 사라지고 비로소 내가 나가야 할 길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눈으로 말씀을 통해 모든 일들을 바라보며 판단하십시오. 특별히 그 모든 일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붙잡도록 하십시오. 무슨 일을 만나도 얼마든지 이기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제는 죽음이 정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로 죽음이라는 한계는 깨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죽어도 주님처럼 다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지극한 영광중에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살아나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살아계시며 영원히 살아계셔서 온 우주만물을 홀로 다스리십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부활하셔서 영원히 살아계시며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의 왕이시며 구주시며 보혜사이십니다. 주님께서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면서 나를 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빈 무덤만 보지 마십시오. 믿음의 눈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살아계셔서 만물을 통치하시는 주님과 함께 능히 승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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