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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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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
2008·12·26
당신은 예수 믿은 후 삶이 달라졌습니까? 주일마다 교회에 나온다는 것과 몇 가지 금기사항을 지키는 것 외에 또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예수 믿는 것이 당신의 인생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예수 믿는 것이 사회생활에 많은 부담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도대체 신앙은 우리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께서는 사흘 만에 부활하셨으며, 지금도 살아계셔서 온 우주만물과 우리의 모든 삶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나의 삶은 어떻습니까? 주님의 부활을 믿지만 현실은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때로 실패하고 지치며 무기력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다는 것과 나의 현실은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
고기 잡으러 간 제자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세 번째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14절) 첫 번째는 열 제자가 함께 모였을 때였고, 두 번째는 그로부터 일주일 후 도마도 함께 있을 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은 이제 다시 갈릴리로 돌아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두 번씩이나 만났지만, 갈릴리로 돌아온 제자들에게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없이 무료하게 며칠을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드로가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하자, 함께 있던 제자들도 함께 따라나서게 되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3상) 2절을 보면 이렇게 물고기 잡으러 간 제자가 일곱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문제는 그들이 그날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밤새도록 허탕을 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숯불을 피워 떡과 고기를 구워놓고 제자들을 기다리셨습니다. 얼마나 친근하고 따뜻하며 아름다운 장면입니까?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렇게 지치고 실패한 제자들을 찾아와 따뜻하게 위로하시고 어루만져주시는 분이시기도 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 살아계시며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분은 전능하시고 위대하신 창조주이시며,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분이시고, 장차 만유를 심판하실 분이십니다. 동시에 주님은 우리에게 한없이 다정하시고 친밀하게 찾아와 만나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을 반드시 만나야 하며, 날마다 이 주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현실적인 문제
부활하신 주님을 두 번이나 만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왜 물고기를 잡으러 갔을까요?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으나 제자들의 현실적인 문제는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가난한 동네에서 멀쩡한 장정들이 허구한 날 빈둥거리면서 놀고먹기만 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일단은 먹고 살아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제자들은 고기를 잡으러 갔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참으로 오랜만에 고기를 잡으러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고기를 잡아본지가 3년 이상 지났습니다. 그러나 평생 갈릴리의 어부로 살았던 베드로에게 고기잡이는 전혀 낯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밤 갈릴리의 고기들은 베드로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7명의 어부들이 밤새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것입니다. 해도 너무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당장 먹고 살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기라도 잡으러 갔는데 밤새도록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과 제자들의 현실적인 문제는 이렇게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 이것은 비단 베드로와 제자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심각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예수 믿은 이후 신앙이 아름답게 자라고 기쁨과 감사가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며 봉사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취업이 되지 않습니다. 자녀가 대학입시에 실패합니다. 사업이 나아지질 않습니다. 이제 신앙도 시들해지고 침체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로 이 순간 갈릴리 바다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놀라우신 주님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없이 전능하신 분이심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처음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4절)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을 부르시며 고기를 좀 잡았는지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애들아 고기가 있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대답합니다. “없나이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지라” 아직도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심코 그 말씀대로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랬더니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 쉰 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11절) 낚시 가서 월척을 낚아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고기가 153마리라면 얼마나 많은 고기가 잡혔는지 상상해보십시오.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기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7절) 이제 베드로에게는 더 이상 물고기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웃통을 벗고 있다가 얼른 겉옷을 입고 물로 뛰어들어 주님께로 갔습니다.
주님께서는 숯불을 피워 떡과 고기를 구워놓고 제자들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여 있고 떡도 있더라”(9절) 예수님께서는 지금 잡은 생선을 더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떡과 생선을 제자들에게 일일이 나누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제자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13절) 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운 모습입니까?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
베드로와 제자들은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고기를 잡으러 간 것이 잘못된 것이었을까요? 그 자체만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주님께서 안 계시자 먹고 사는 문제가 다른 무엇보다 더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것이 전부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 없이, 주님과 상관없이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에게도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입니까? 당신의 일과 공부와 계획은 주님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세상은 먹고 사는 것이 전부라고 떠들어대고 있습니다. 경제가 최우선이라고 합니다. 돈을 못 벌면 인생이 실패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경제가 어려우면 정부도 실패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경제만 살린다면 무조건 찬성하고 지지하겠다고 합니다. 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들 말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요? 당신도 정말 그렇게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속은 것입니다. 어떻게 경제가 가장 중요합니까? 신앙의 자리는 어디이며, 사랑과 정의와 윤리는 어디쯤 두어야 합니까? 그리고 돌보아야 할 나의 어려운 이웃은 어디 있습니까? 세상이 타락해도 너무 타락한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것이 가장 크고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의 잘못은 먹고 사는 문제를 그 어떤 것보다 더 크고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더 본질적으로 말한다면 그들이 주님과 상관없이 살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밤새도록 허탕을 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주님과 상관없이 고기를 많이 잡았더라면 그들은 주님의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제자는 주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주님 없이 그들이 밤새도록 허탕을 친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제자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당신도 주님 없이 밤새워 그물을 던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럴수록 우리의 삶은 곤고해질 뿐입니다.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불안하고 분노와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물고기 잡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이나 공부 자체가 나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님 없이, 주님과 상관없이 물고기 잡고 일하고 공부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제자들은 주님 없이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허탕을 쳤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님 없이 하는 모든 것이 이처럼 헛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내 마음대로, 세상 방식대로 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까? 처음 주님 만났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고백하십시오. 주님 없이 힘을 다해 노력했지만 얻은 것이 없었나이다.
그리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불안한 마음과 조급함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평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최선을 다하십시오. 일이 어떻게 되든지 오직 주님의 마음으로 일하며 살아가십시오. 결국 주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나를 향하신 주님의 선하신 뜻과 계획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빈 그물을 채우시는 주님
밤새도록 수고했으나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제자들에게 찾아오신 주님께서는 배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큰 고기가 153마리나 잡혔습니다. 이 엄청난 기록은 오늘까지도 깨지지 않았을 것이 확실합니다. 부활하셔서 오늘도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주님은 우리의 빈 그물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을 만날 때 밤새 허탕을 친 것도, 우리의 실패도 축복으로 바뀝니다.
극작가 오혜령씨는 모교인 이화여고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병치레를 많이 한 그녀는 어느 날 위암과 임파선 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3개월 밖에 살 수 없다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24시간 계속되는 통증으로 너무 고통스러워 차라리 죽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달력의 숫자에 빨간 색연필로 빗금을 쳐 나갔습니다. 예정된 죽음의 날짜인 6월26일에 빗금이 쳐 진지 며칠이 더 지나고 있었습니다. 물만 먹어도 토하고 혈변을 보는 고통이 계속되었습니다. 그 때 어디선가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채는 강한 손길을 느껴졌고, 순간 방바닥에 나동그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의 삶과 죽음에 깊이 개입하신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동안 살아 계신 하나님께 도전해온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어디서부터 회개해야 할지 몰라 눈물만 쏟으며 기도했습니다. “당신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이 병도 저를 구원하기 위해 사용하신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지난날의 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며칠 동안 화선지에 붓글씨로 죄를 회개했습니다. 육체적인 암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정신적인 암이 치료받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는 절실함으로 죄를 적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그날도 기도와 찬양을 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온 몸에 오한이 덮쳐 왔습니다. 그녀는 죽음을 예감했습니다. 그러나 추워서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겨드랑이에 잡히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았습니다. 어깨에 복숭아씨 만하던 멍울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또 복수로 차올랐던 배는 꺼져 있었습니다. 두 번째 절대자의 개입이었습니다.
이후 그녀의 삶은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변했습니다. 덤으로 얻은 인생을 소외된 자들을 위해 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87년 7월17일. 남편 권오정 목사와 무의탁노인을 돌보는 `평화의 집'을 개원하고 헌신적인 사역을 펼쳐 오고 있습니다. 그녀는 지금도 하루 9시간동안 기도하며 평화의 집을 이끌고 있습니다. 다음은 그녀의 고백이 담긴 시입니다.
당신 없는 생의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물고기가 잡히기를 바랐던 지난 나날들은
죽은 시간이었습니다
오, 주님! 이제 당신께서 그물을 채워주소서
그러면 저는 비로소 살 것입니다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부활의 주님,
당신 없이 한평생 수고해 보아야
우리 인생은 빈 그물이옵니다
비록 저희 인생의 가장자리에 서 계신 당신을
지금 당장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희의 계획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당신께 대한 신뢰 속에서 새로 시작하려는 각오가 설 때
저희 행위에 방향과 성취가 부여됩니다
당신은 가장자리에 계시지만 늘 저희에게
그물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던지라고
분부하고 계시기 때문이옵니다.
날마다 호숫가에서 저희를 기다리시는
당신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만나주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찾아오셔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주님은 특별히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모일 때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밤새도록 허탕을 치고 주님을 바라볼 때 찾아와 만나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형제들의 모습 속에서 그를 찾아오신 주님을 볼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모습 속에도 주님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까? 삶이 곤고합니까? 실패했습니까? 지쳤습니까? 이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이제 당신도 주님을 만나시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먹고 사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십시오. 당신을 향하신 주님의 뜻을 깨닫게 될 것이며, 빈 그물을 채우시는 주님의 능력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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