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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18:33-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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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요한복음(104) 진리에 속한 사람
1. 성령 충만한 사람
본문을 보면 주님은 빌라도 앞에서 심문 받으면서 전혀 흔들리지 않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자 예수님은 “내 나라는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나는 세상 왕이 아니라 진리에 대해서 증거하러 세상에 온 왕이고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는다.”고 말씀했습니다. 누가 진리에 속한 사람입니까?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오늘날 성령충만에 대한 오해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배 중에 잘 넘어지는 것이 성령 충만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설교자가 기합을 넣은 목소리와 함께 성도들을 밀 때 넘어지지 않으면 아직 자기 의지가 살아서 넘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성령의 역사는 다양하기에 넘어지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런 식으로 성령을 받은 후에 마음과 삶에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넘어지는 모습으로 성령 받은 사람에게 기대할 것입니다. “야! 저분 넘어지는 성령을 받았어! 이제 무언가 달라질 거야.” 그런데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이 여전히 전도할 생각을 안 하고, 여전히 이기주의고, 여전히 걱정이 많고, 여전히 수시로 우울해지고,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이 만연하고, 여전히 십자가를 질 생각을 안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저 사람은 자기 혼자 성령 다 받은 것처럼 했으면서 왜 저래!”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모습은 오히려 성령을 심히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요새는 능력에 대한 오해도 많아서 어떤 능력추구 세미나에서는 참석자들이 넘어뜨리는 법을 배웁니다. 서로 안수하면서 넘어뜨리는 임상실험을 합니다. 그처럼 신기한 마술적인 것을 능력으로 오해하니까 요새는 최면술까지 배우는 종교리더가 있습니다. 어떤 최면술 학원 원장의 말에 의하면 자기 수강생 중에서 종교리더가 절반이라고 합니다.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참된 은혜와 능력은 실험 도구가 아닙니다.
2. 십자가를 지는 사람
본문에서 주님이 말하는 진리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죽음으로 남을 살려주는 것입니다. 결국 '살림'이 진리입니다. 주님은 사람을 살리려고 오셨고, 그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가장 살림을 잘하신 분은 바로 주님이셨습니다. 십자가 안에서 죽고 자신 안에 오직 예수가 나타날 때 능력도 나타나고 문제 해결의 역사도 시작됩니다.
한 장로님 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불신자와 결혼했는데 결혼하면서 시댁의 반대로 교회에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지 못해서 시댁의 핍박이 심했습니다. 너무 핍박을 해서 어느 날 한 목사님을 찾아 자기 사정을 다 말하고 부탁했습니다. “목사님! 신학교에 들어가 전도사나 해보려고 합니다. 학교 좀 소개해 주세요.”
목사님이 가정 살림도 실패한 사람이 영혼 살리는 일을 하겠다고 “전도사나 하겠다.”는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좋게 잘 말해주었습니다. “전도사보다는 가정을 잘 살려보세요.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내 안에 주님이 산다는 믿음으로 살아 보세요.” 그리고 40일 새벽기도를 권하면서 그때는 “하나님! 남편과 시어머니가 믿게 하소서!”라는 기도보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저를 죽여주소서!”라는 기도만 중점적으로 하라고 했습니다.
그 뒤로 그녀는 자기를 죽이고 “내 안에 예수가 산다.”는 마음으로 말없이 인내와 사랑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자 꼭 1년 만에 남편이 주님 앞으로 돌아왔고, 다시 얼마 후에는 시부모도 주님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 안에서 죽자 최고의 살림꾼이 된 것입니다. 최고의 살림 밑천은 ‘자기가 죽는 것’입니다.
그녀의 남편의 고백에 의하면 어느 날 저녁 목사님을 만나고 온 뒤부터 아내가 자기주장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십자가에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안 죽었으니까 말이 많은 것입니다. 대개 보면 일꾼은 말이 없고 구경꾼이 말이 많습니다. 인간사회에서 구경꾼도 필요하지만 구경꾼에게는 축복과 보람이 없음을 생각할 때 구경꾼 대열에 속하지 말고 십자가를 지는 일꾼 대열에 서십시오. 십자가를 지면 어디에 가든지 최고의 살림꾼이 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과 만족과 여유를 빼앗기지 않습니다.
<평화를 추구하십시오 >
주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아서 제자들이 싸우지 않았다!”고 하십니다(36-37절). 그 말은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그럴듯한 논리를 내세워도, 싸움을 일으키고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결코 진리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외로워합니까? 그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주는 평화의 사자들이 되십시오.
어떤 사람은 후크 선장이 피터 팬을 괴롭히고 못살게 군 것은 피터 팬이 싫어서가 아니라 외로웠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피터 팬과 친해지고 싶은데 해적 두목이라는 위신도 있고 주위 여건상 대놓고 친해질 수 없어서 괜히 싸우는 척 하고 당하는 척 하면서 피터 팬과 어울렸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선천적으로 악마적인 사람은 없습니다. 사단 마귀에 농락당해 지치고 외로운 사람들만 있을 뿐입니다. 그들에게 ‘따뜻한 선물’이 되어 사십시오. 외로운 세상에 선물로 줄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따뜻한 미소, “고맙다!”는 말 한 마디, 어려울 때 내는 찬송과 휘파람 소리, 전화 한 통화 해주는 것, 대신 설거지 해주고 쓰레기를 버려주는 것, 식사 대접하는 것, 허물은 감추고 장점은 칭찬해주는 것, 흉보지 않는 것, 충고 대신에 함께 있어주는 것, 썰렁한 농담에도 웃어주는 것, 자신감 잃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 어떤 일을 친절히 설명해주면서 “답답해!”라고 말하지 않는 것, 조용한 친절,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 열심히 들어주는 것, 예고 없는 외출과 여행 등 얼마나 줄 선물이 많은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예수 복음을 전하고, 예수 사랑을 전하고, 예수님처럼 자신을 선물로 주십시오. 그처럼 어둔 세상의 선물이 되어 살면서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이 바로 진리에 속한 사람입니다. 평화를 깨고 누군가에 상처를 주고 그 영혼을 울리면 그 울음소리가 칼이 되어 자신의 영혼의 동맥을 끊고 자신은 더 소외됩니다. 반면에 평화가 사자가 되기를 힘쓰면 친구도 얻고 행복도 얻고 사랑도 얻을 것입니다.
< 더불어 살려고 하십시오 >
어떤 연못에 황금색 비늘을 가진 ‘장금이’란 미모의 물고기가 살았습니다. 다른 물고기들은 장금이를 부러워했지만 너무 자세가 도도해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장금이는 혹 자신의 비늘이 다칠까봐 다른 물고기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다녔고 마을의 축제 때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장금이는 늘 혼자였고, 아무도 그녀의 외로움을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다른 연못에서 ‘혜은이’란 물고기가 이사 와서 장금이의 미모에 반해 말을 걸어왔습니다. 외로움에 지친 장금이는 그녀를 반갑게 맞았고, 장금이와 혜은이는 곧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정이 깊어갈 즈음에 혜은이가 장금이에게 부탁했습니다. “예쁜아! 너의 아름다운 비늘을 하나만 내게 주지 않을래. 나도 갖고 싶어.” 그러자 장금이는 선뜻 자신의 황금 비늘하나를 빼서 혜은이 가슴에 꽂아주었고, 둘은 흐뭇한 미소로 서로 바라보면서 기뻐했습니다.
다음 날 혜은이의 가슴에 꽂힌 황금 비늘을 본 연못의 다른 물고기들은 너도나도 장금이를 찾아와 비늘 하나만 달라고 졸랐습니다. 자기 것을 나눌 때 사랑을 얻고 행복을 얻는다는 것을 경험한 장금이는 그들에게 비늘을 하나씩 나눠주었습니다. 모든 비늘을 다 나눠주자 장금이는 자기 몸을 덮은 금장식이 다 사라져서 보통 물고기처럼 되었지만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생겨 더 이상 외롭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에 그 연못을 지나던 사람이 연못 전체가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알고 보니까 연못 속 물고기들이 하나씩 지니고 있는 황금 비늘이 저마다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혼자 살려고 하지 말고 더불어 살려고 하십시오. 최대한 이웃과 평화를 누리며 사십시오. 힘써 어려운 자를 돕고, 예수 복음을 전하는 데 힘쓰고, 복음을 위해 최전방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을 위해서도 비늘을 하나씩 뽑아주십시오. 가끔 선교사들이 선교편지를 보낼 때는 무엇인가 필요한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선교편지를 읽을 때는 그 행간에 숨을 뜻을 잘 살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으십시오. 그처럼 기도 중에 자신의 소중한 비늘 하나를 뽑아줄 때 진리와 평화가 그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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