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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심을 딛고 일어서는 법

요한복음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471 추천 수 0 2011.03.10 17: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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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20:24-31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낙심을 딛고 일어서는 법 (요 20:24-31)

‘얄미운 여자 시리즈’란 유머가 있습니다. 10대에 얄미운 여자는 ‘얼굴이 예쁜데 공부도 잘하는 여자’이고 20대에 얄미운 여자는 ‘똑같이 성형했는데 티가 안 나는 여자’라고 합니다. 30대에 얄미운 여자는 ‘실컷 놀고도 시집은 잘 가는 여자’이고 40대에 얄미운 여자는 ‘잘 쏘다녀도 자녀들이 공부만 잘하는 여자’라고 합니다. 50대에 얄미운 여자는 ‘실컷 먹는데 배가 안 나오는 여자’이고 60대에 얄미운 여자는 ‘남편이 돈 많이 벌어놓고 죽은 여자’라고 합니다.

 요즘 세태를 잘 반영한 유머입니다. 요새 사람들은 남이 잘 되면 좋게 생각하기보다 얄밉게 생각합니다. 그만큼 칭찬에 인색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칭찬을 많이 해주십시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어느 날, 캔 블렌차드가 씨월드를 갔습니다. 그때 3톤이 넘는 사나운 대형 범고래가 조련사의 신호에 따라서 물 위로 뛰어오르는 멋진 쇼를 펼쳤습니다. 쇼가 끝난 후에 그는 조련사를 찾아가서 범고래를 어떻게 그렇게 잘 훈련시켰는지 묻자 조련사가 대답했습니다. “고래도 사람처럼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더 잘합니다.” 거기서 힌트를 얻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란 책을 썼습니다.

 그 책을 보면 ‘고래 반응’이란 말과 ‘뒤통수치기 반응’이란 말이 나옵니다. ‘고래 반응’이란 잘했을 때는 힘껏 칭찬해주고 잘못했을 때는 바로 질책하지 않고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게 유도해주는 것을 뜻합니다. 반대로 ‘뒤통수치기 반응’은 잘했을 때는 무관심하다가 잘못했을 때는 뒤통수를 치며 질책하는 것을 뜻합니다. 누군가의 실패와 실수는 그에게 사랑과 관용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입니다. 바로 그런 사랑과 관용이 영혼을 춤추게 하고, 가정도 춤추게 하고, 교회도 춤추게 합니다.

< 낙심을 딛고 일어서는 법 >

 본문을 보면 주님이 낙심한 제자의 영혼을 다시 주님 품으로 이끌어 춤추게 하는 감동적인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처럼 낙심한 사람을 일으키고 그 영혼이 거룩한 사명을 향해 나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다시 기회를 주십시오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낙심과 두려움으로 모인 다락방의 문을 꼭 잠갔습니다(19절). 그때 예수님이 신비하게 나타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며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고 부활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때 도마는 없었습니다. 왜 없었을까요? 그 이유를 알려면 도마의 성향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도마는 쌍둥이 중에 하나였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서는 그 이름이 한번만 기록되고 오직 요한복음에서만 그 이름이 많이 언급된 것을 보면 요한과 가까운 사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격도 비슷했을 것입니다. 변화받기 전의 청년 요한은 조급한 성격에 야심가였고 성격이 불 같아서 주님으로부터 ‘우레의 아들’이란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도마도 그런 불같은 성격을 가졌을 것입니다.

 또한 도마는 의심 많고 염세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머리가 비상했던 도마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혼자 떨어져서 세상을 미워하고 저주했을 것입니다. 대개 시련을 많이 당한 사람은 세상을 잘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도마는 셀롯당원이 되려고 제자들의 모임을 떠나 셀롯당원 입당 수속을 밟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당시 셀롯당은 가만히 있으면 선인이 손해 보니까 선을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겠다는 사람들의 결사모임이었습니다.

 또한 요한복음 11장에서 주님이 병든 나사로에게 가자고 할 때 제자들이 말했습니다. “방금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고 했는데 또 그곳으로 가시려고 합니까?” 그때 도마가 말했습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갑시다!” 그처럼 도마는 아주 열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처럼 열정은 필요하지만 때로는 그 열정이 극단으로 흐를 수 있기에 열정을 잘 제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끔 보면 엉뚱한 일에 열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이 생일을 한번 잊었다고 한 달 이상 말하지 않고 어떤 남편은 귀가했는데 아내가 자고 있다고 다시 집을 나가 버립니다. 도마도 속상하면 말없이 뛰쳐나가는 극단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뛰쳐나갔다가 나중에 뭐라고 합니까? “주님 손의 못 자국을 보고 그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고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26절).

 도마는 가까이서 만져봐야 믿음과 사랑이 생기는 줄 알고 있었지만 때로는 약간의 거리가 떨어진 것이 믿음과 사랑의 확인에 더 좋습니다. 가깝다는 이유로 무례하게 행동할 때도 얼마나 많습니까? ‘허물없는 것’과 ‘무례한 것’은 다릅니다. 거리 없는 사랑은 맹목입니다. 때로는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서로가 잘 보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사랑과 믿음에는 ‘가까운 친밀성’도 필요하지만 ‘거리를 둔 존경심’도 필요합니다.

 그처럼 도마는 의심이 많고 부정적이고 삶을 삐딱하게 보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송곳처럼 콕 찌르는 말을 하는 힘든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다시 그를 찾아오셔서 그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만약 그때 주님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면 도마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난 후 위대한 전도자가 되어 나중에는 인도에서 화살에 맞아 순교합니다.

 결국 본문 26절에 나오는 ‘다시’란 단어에는 엄청난 복음의 의미가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하고 허물을 드러내도 외면치 않고 또 다시 우리를 찾아와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는 일은 있어도 주님이 우리를 떠나는 일은 없습니다. 실패했을 때 사람들은 다 우리 곁을 떠나도 주님은 그때 더욱 가까이 찾아오십니다. 그 주님을 붙잡고 일어서면 실패조차 성공으로 나가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2. 감정 터치를 해주십시오

 본문은 실패한 사람을 일으킬 때 감정의 터치가 중요함을 잘 보여줍니다. 감정의 터치를 통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만날 때 그 만남의 의미가 깊어집니다. 예를 들어, 자녀들이 학교에서 매 맞고 돌아와 그 말을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매를 받아들이게 하면서도 자녀의 감정을 받아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이 자신들의 부끄러운 일을 굳이 부모에게 말하는 것은 자기감정을 알아달라는 뜻입니다. 그때 “네가 맞을 짓을 했겠지. 그것 가지고 뭘 그래?”라고 하지 말고 맞을 짓을 했어도 먼저 감정을 위로하십시오. “마음이 상했겠구나. 지금은 좀 풀렸니?” 그렇게 먼저 감정을 위로하고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교육이 됩니다. 그러면 이미 인정을 받았기에 자신의 잘못도 순순히 인정하게 됩니다.

 감정을 인정해주면 잘못도 인정하는 여유가 생기지만 감정을 인정해주지 않으면 잘못도 인정하는 여유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조급하게 자녀의 감정을 무시하고 어른 입장만 내세우지 마십시오. 자녀들은 꾸중 들었을 때 자신이 잘못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대개 압니다. 그 잘못을 확인시키려고 하기보다 감정을 먼저 위로한 후에 그 잘못을 깨우쳐주어야 합니다. 그처럼 항상 감정의 터치 후에 교육해야 참된 교육이 이뤄집니다.

 본문 27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의심하는 도마에게 그를 탓하기보다는 그의 철없는 요청대로 “내 손을 보고 내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자 도마는 자신의 감정을 이해해주신 주님의 크신 사랑에 감동해서 마침내 “주님은 나의 주님이고 나의 하나님입니다.”란 믿음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28절). 그처럼 실패한 사람의 감정을 터치해주면 실패를 딛고 일어설 가능성도 커집니다.

 주님처럼 감정 터치의 프로들이 되십시오. 성도는 남을 기쁘게 하는 사람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기독교인을 가리켜 ‘타자를 위한 존재’라고 했습니다. 물론 항상 남만 기쁘게 하며 살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남의 감정을 생각해 조금 더 남을 배려하며 살자!”고 다짐하는 마음이 진정한 성도의 마음입니다.

 물론 남에게 선을 베풀 때는 “내가 이렇게 선한 사람이지.”란 자부심까지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선행을 통해서도 틈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한 후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영광을 받으면 그때 사탄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처럼 칭찬을 기대하며 베푸는 선행은 ‘사랑’이 아니라 ‘자랑’입니다. 칭찬과 보답을 기대하지 않는 사랑과 배려가 진정한 기쁨과 행복과 보상을 줍니다.

 이제 서로의 감정을 만져주고 서로 받아주고 서로 살펴주십시오. 맘에 들지 않는 사람도 “그 사람 정말 재수 없어! 생각만 해도 짜증나!”라고 하지 말고 “그렇게 살면 얼마나 상처도 많고 외로울까?”하고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사람이 가장 사람다울 때는 연약하고 부족한 사람을 위해 조금이라도 마음을 더 써줄 때입니다. 그러면 점점 자기 마음에 기쁨과 행복과 사랑이 고이는 것을 체험할 것이고, 그와 동시에 하나님이 그 모습을 보시고 그의 사업과 가정과 자녀를 일으켜 세워주실 것입니다.

3. 믿음 회복을 도우십시오

 도마의 감정을 위로한 후 주님은 그의 마음이 열린 것을 보고 말씀했습니다. 본문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 말씀을 보면 주님이 도마에게 가장 원하신 것은 바로 믿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처럼 본 고로 믿지 말고 기적 때문에도 믿지 마십시오. 참된 믿음은 기적이 없고 어려움이 생길 때도 믿음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믿음을 더욱 기억해주실 것입니다.

 그때 다른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얼마나 귀가 닳도록 말했겠습니까? 그래도 도마는 무엇인가 보고 느끼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믿음보다 현상을 중시했고 자기이성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성이 아닌 믿음을 찾으셨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고 믿겠다고 하지만 그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믿는 자에게 아버지로서 만나주십니다.

 왜 오늘날 사람들이 불안감이 커집니까? 인간의 옅은 이성적인 지식 때문입니다. 호머의 오딧세이를 보면 영웅 유리시즈가 사일런트 섬을 지날 때 마녀의 소리를 듣고 그것이 마녀의 소리임을 알았기에 불안과 공포로 몸부림쳤습니다. 그 후 시인 오르페즈가 사일런트 섬을 지날 때는 마녀의 소리에도 그냥 노래하며 지나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식과 믿음의 차이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불안이 있고 믿음이 있으면 불안이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도마에게 주신 음성을 자신에게 주신 음성으로 듣고 기적적인 응답이 없어도 결코 주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마십시오. 사람은 마음이 있어도 다 돕지 못하고 돕더라도 때때로 잡은 손을 놓지만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를 도와줄 수 있습니다. 파스칼은 팡세 430편에서 말했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불행은 신으로부터 이탈하는데 있다. 사람에게서는 진리도 위안도 기대하지 말라.”

 인간의 사랑은 순간이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하나님은 창세전부터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염려하지 마십시오. 오늘까지 함께 해주신 하나님이 내일도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고통이 다가오면 그 고통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든지 아니면 그 고통을 감당할 힘을 주실 것입니다. 살다 보면 때로 막힌 문을 만날 때도 있지만 그때 포기하지 말고 계속 두드리고 밀쳐보면 언젠가 문은 열리고 바로 거기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길은 뜻밖에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서울 강남에 초등학교 3학년인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엄마에게 새벽기도를 같이 가자고 졸랐습니다. 어리다고 엄마가 새벽기도에 데리고 가지 않자 매일 새벽기도가 끝날 때까지 집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기도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성탄절 2주 전에 교회 가다가 트럭에 치어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그 아이는 강남으로 이사하기 전에 서교동에 살았는데, 그 교통사고 며칠 전에 서교동에서 다니던 학교 선생님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선생님! 저는 이곳에 전학 와서 잘 지내고 있어요. 선생님! 저는 사랑하는 선생님도 예수님을 마음에 모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선물로 보내는 성경을 꼭 보세요. 선생님! 사랑해요!” 그처럼 믿음이 좋은 아이가 교회에 가다가 트럭에 치어 죽었으니 얼마나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까?

 살다 보면 때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왜 내 곁을 떠나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고, 왜 잘 믿으려는 자신에게 큰 어려움이 닥치는지, 또한 교회를 사랑하고 선교와 구제의 소명을 가지고 사업하는 자신의 사업에 왜 어려움이 생기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믿음을 잃지 말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사람은 대개 어떤 일에 대해 납득될 만한 설명을 요구하지만 때로는 설명되지 않는 신비가 있음을 인정할 때 믿음의 축복은 시작될 것입니다.

 일전에 <덕이>란 SBS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덕이는 가족을 떠나면 충분히 잘살 수 있는데 끝까지 가족을 지킵니다. 그 모습이 현대의 삭막한 삶에 도전을 주었는데 그 드라마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다고 합니다. 오래 전, 그 드라마 작가가 어린 딸을 화상으로 잃었습니다. 그때 마음의 깊은 고통으로 신음하던 그에게 예수님이 찾아와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때의 사랑과 감격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다가 마침내 <덕이>란 인물을 통해 그 주님의 사랑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중요한 목적은 기적을 베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혼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삶에 풍랑이 다가오면 더욱 주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기도하는 계기로 삼으십시오. 그처럼 기적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찾고 기적이 없어도 예수님을 찾으십시오. 기적을 통해 예수님을 찾는 초보신앙에는 큰 보람과 보상이 없지만 기적이 없어도 예수님을 찾는 성숙한 신앙에는 큰 보람과 보상이 있습니다.

< 아름다운 면을 향하십시오 >

 믿음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원하는 대로 현실은 펼쳐지지 않아도 인생 역전과 최종 승리를 확신하며 예수님을 붙잡고 아름다움을 향해 돌아서는 능력이 바로 믿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상황과 사물에는 아름다운 면과 추한 면이 동시에 있습니다. 극한 고통을 가져다주는 기도제목이 나중에 축복의 원천이 될 때가 많고 반대로 “운이 좋았다!”라고 좋아하던 것 때문에 때로는 인생이 망칠 때도 많습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전혀 달리 보입니다. 어둔 밤에 보면 모든 사물이 검은 실루엣처럼 보이지만 밝은 아침에 보면 그 모든 사물이 저마다 아름다운 빛을 뽐냅니다. 그처럼 어둔 면만 보면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염려되지만 밝은 면으로 보면 그런 대로 희망과 길이 곳곳에 많이 펼쳐져 있음을 깨닫습니다. 또한 사물과 상황의 밝은 면만 주로 보면 삶도 밝아집니다. 그처럼 밝고 아름다운 면을 향해 돌아서는 믿음의 능력을 가지십시오.

 1980년대 초반 우리나라는 일인당 얼마씩의 빚을 진 나라라고 크게 염려했지만 88올림픽 전후에 있었던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그 어려움을 거뜬히 이겨냈습니다. 그 후 IMF를 겪었지만 또 다시 그 어려움을 멋지게 극복했습니다.

 1980년대 미국은 거의 망할 것 같았습니다. 무역 적자가 극심해 미국의 부가 다 일본으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본이 그 이상 유입되어 결국 미국은 1990년대부터 다시 세계경제를 호령했습니다. 지금 미국 경제가 어렵다지만 아직도 세계 경제는 미국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고 언제 또 반전의 역사가 생길지 모릅니다.

 인생도 그렇습니다. 다 망할 것 같지만 축복과 행복의 길은 여전히 많습니다. 행복은 ‘많이 가진 사람의 것’이 아니라 ‘많이 누릴 줄 아는 사람의 것’입니다. 채워져야 만족한다면 영원히 만족이 없습니다. 요새 자살 시도자가 많다지만 살면서 자살 충동과 이혼 충동이 한 번도 없었던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삶이 고단하면 스스로 망가지고 싶은 충동이 생기지만 그런 충동을 극복하고 인생을 속단하지 않고 참고 기다리면서 축복과 행복의 불씨를 되살려 가면 얼마든지 멋진 역전인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제 다 끝장났다!”고 하지만 이 세상에 다 끝장난 인생은 없습니다. 성도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성도에게는 아무리 큰 시련이 있어도 그 시련 중에 반드시 하나님의 선한 계획과 손길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손길이 너무 섬세해 덤벙덤벙한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필요합니다. 특히 경쟁사회에서 실패와 쓰라림과 상처를 많이 당하는 현대인에게는 더욱 믿음이 필요합니다.

 전도할 때도 “당신은 못난 죄인이요!”라고 윽박지르지 마십시오. 그 말을 안 해도 사람은 늘 죄책감에 시달리며 삽니다.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혼을 일으켜주시는 사랑의 주님’을 전하십시오. 사랑의 초청이 거절될 때도 많지만 그 거절은 영원한 거절이 아닙니다. 우리도 처음에는 그런 사랑의 초청을 얼마나 매몰차게 거절했었습니까? 거절을 거절로 보지 말고 더 큰 사랑을 보여 달라는 사랑의 요청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얼마 전에 <선한 목자장>인 요한복음 15장 강해를 하면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목회자가 성도들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이름을 한 명씩 불러가면서 해주는 기도다!” 그때부터 손가락으로 꼽으면서 현재 등록한 우리 성도들의 이름을 매일 새벽에 한 명도 빠짐없이 기도하고 있습니다. 운전할 때도 손가락으로 꼽고, 목욕할 때도 손가락으로 꼽고, 잠들 때도 손가락으로 꼽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복된 삶을 살려면 복된 말을 많이 해야 합니다. 사람은 축복한 말대로 됩니다. 그 축복의 말보다 더 귀한 것이 바로 축복기도입니다. 그래서 저도 성도들의 가정과 자녀와 사업의 축복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데 아직 주일성수에 기복이 있는 분들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런 기도를 먼저 합니다. “하나님! 그분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고 주일성수와 교회사랑을 통해 주님이 주는 축복을 생생하게 체험하게 하소서!”

 요새 사람들은 땅 집고 헤엄치는 쉬운 삶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땅 집고 헤엄치면 수영의 참맛과 기쁨을 모르게 됩니다. 진짜 수영의 참 맛을 알려면 깊은 바다 속으로 쑥 들어가야 합니다. 그처럼 진리의 바다에 자기를 쑥 던져야 진정한 축복을 소유합니다. 이제 교회생활을 할 때도 봉사의 장으로 쑥 들어오고 교제의 장으로 쑥 들어오십시오. 그러면 더욱 큰 축복의 길로 향하는 선한 변화가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요새 교회가 제 몫을 못한다는 탄식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그런 안타까운 마음을 가진 자신이 제 몫을 다하면 됩니다. 사회가 더럽다면 자신이 비를 들고 지구의 한 부분이라고 쓸려고 할 때 그 맑은 샘물을 통해 세상이 조금 더 맑아질 것입니다.

 요즘은 기독교인이 낀 술자리에서는 안주를 안 시켜도 된답니다. 기독교인들을 밀로 씹기만 해도 충분히 안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성도들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그래도 절망적인 한을 토하고 남의 흠집만 잡는 맹목적인 분노는 결국 자기도 해치고 사회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이제 어둡다고 원망만 하기보다는 작은 등불이라도 하나 들고 어둔 세상에서 희망의 빛으로 살면서 결국 예수 믿고 인물 되는 축복의 주인공들이 되십시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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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72 마태복음 부부의 날 - 둘이 하나 되는 비결 [1] 마19:3-6  이정수 목사  2011-03-11 3012
13271 민수기 축복하고 사십니까? 민6:22-27  이정수 목사  2011-03-11 2628
13270 욥기 대장부-여장부로 살라 욥38:3  이정수 목사  2011-03-11 2419
13269 예레애가 그래도 살아야 합니다! 애1:1-5:22  이정수 목사  2011-03-11 2010
13268 창세기 여호와 이레 창22:1-18  이정수 목사  2011-03-11 3773
13267 출애굽기 여호와 라파 출15:22-26  이정수 목사  2011-03-11 4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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