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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홍수심판 예고와 노아의 방주 건조

창세기 복음............... 조회 수 2652 추천 수 0 2011.03.18 1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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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6:1-22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하나님의 홍수심판 예고와 노아의 방주 건조

창세기 6장 1- 22

 

  요한계시록을 보면, 바다의 1/3이 죽고, 인류의 1/3이 큰 재앙을 맞는 말씀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이 이러한 전 지구적인 재앙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노아의 홍수도 지구적인 재앙이 아니라 지역적인 홍수에 불과하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남아시아 지진을 통해서 한 곳의 지진이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 인도, 스리랑카, 심지어 아프리카의 소말리아까지 영향을 미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 여진으로 일본이나 미국 서부에서 지진을 맞게 된다면, 이것은 분명 전 지구적인 재앙이 될 것입니다. 처처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민족과 민족이 대항하는 일들, 그리고 전쟁의 소문이 그치지 않는 것 등의 사실들은 성경에서 말한 말세의 징조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노아 시대에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죄가 가득 차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지만 죄가 가득 차면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오늘 세상에 죄가 얼마나 가득 찼습니까?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곧 최후의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준비되어 있습니까?

오늘 세상은 죄가 관영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는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구원의 날이요 은혜 받을 만한 때입니다. 지금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지금 주님을 위해서 충성해야 합니다. 기회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제 심판이 임박해왔습니다. 우리는 아슬아슬한 시점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회 주셨을 때 회개하고 헌신하며 봉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심판의 때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한없이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 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들에게 무한하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실 때 그들에게 구원을 약속해주셨으며,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는 표를 주셔서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갈수록 죄가 심해졌으나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려 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5절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들의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죄가 가득 차면 심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도 가나안 족속들의 죄악이 관영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들을 심판하시고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고 자비를 베푸십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그 죄가 쌓이고 결국에는 가득 차서 마침내 심판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개인적으로나 인류 전체로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신다고 해서 마음이 담대하여 계속해서 범죄하는 것은 너무나도 미련하고 두려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쌓여 가는 죄를 헤아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마침내 죄가 가득 차게 되면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만일 당신이 범죄하고 있다면 이 사실을 기억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죄를 버리십시오. 하나님께서 아직 은혜를 베풀고 계실 때 회개해야 심판을 면할 수 있습니다. 노아 시대는 세상에 죄악이 가득 찼던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습니다.

오늘은 어떠합니까? 이 시대는 노아의 때보다 죄악이 더 심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은혜를 베풀고 계시기 때문에 사람들의 마음이 범죄하는 데 더욱 담대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대담하게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까? 특별히 악한 일부의 사람들만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죄를 죄로 생각하지 않고 태연하게 부끄러운 일들을 행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제 죄로 가득 찼습니다. 이제 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노아 시대에 어떻게 해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셔야 할 정도로 죄가 세상에 가득 차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 백성들의 타락 때문이었습니다(1-2절). 여기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를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여자들과 결혼을 하여 영웅들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로 보는 것은 비성경적이고 이교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같은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창세기 4:26에 나타난 대로 하나님을 공적으로 경배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5장에 언급된 셋 계통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사람의 딸들'은 4장에 언급된 가인 계통의 여자들을 가리킵니다. 이 두 종류의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현저하게 달랐으므로 아주 엄격히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두 계통의 사람들이 섞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함으로써 이 둘 사이의 구분이 없어지게 되어버렸습니다. 그것은 곧 거룩한 하나님 백성이 타락하여 다함께 죄 가운데 빠지게 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해서 거룩한 하나님 백성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은 죄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심판이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2절). 그 여자들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몸매는 늘씬하고 피부는 눈부시게 고왔으며, 속살이 드러나는 옷을 입었습니다. 처음에는 경건하고 정숙한 것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섹시한 모습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앞을 다투어 그녀들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무슨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불경건한 여자들이 들어와서 가정을 이루게 되자 가정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버렸습니다. 먼저 남편이 아내의 영향을 받아 경건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처럼 훌륭한 왕도 이방 여인들 때문에 타락했습니다.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왕상11:4) 자녀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자녀들 역시 불신앙의 분위기에서 양육되어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믿음 좋았던 유다 왕 여호사밧은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이 여자는 남편과 아들을 꾀어 하나님을 떠난 악한 왕이 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죽자 손자들을 다 죽이고 스스로 여왕이 되었습니다. 하마터면 유다 왕국이 우습게 무너질 뻔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결과 세상이 어떻게 되었겠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죄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입니다(5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함으로써 구별된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신이 그들을 떠나셨고 마침내 세상에는 심판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120년 후에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3절). 하나님 백성들이 타락하자 심판이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예배하는 자가 끊어지고 교회가 타락하면 멸망이 오는 것입니다. 오늘 수많은 위협과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이렇게 서있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교회, 즉 하나님 백성이 타락하여 더 이상 예배가 드려지지 않고 기도가 끊어진다면 그 때 이 나라는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이 육체가 되었다는 말은 그들이 더 이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7-8) 우리는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죄와 유혹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우리 속에서는 끊임없이 죄악된 욕망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밖에서는 온갖 죄악된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이기게 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계속해서 거절하면 성령께서 우리를 떠나가시게 됩니다. 이렇게 성령이 떠난 사람을 육체가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떠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죄 가운데 내버려두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양심에 거리끼는 것도 없이 죄를 짓게 됩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그것이 옳다고 주장합니다. 마음이 강퍅해진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일입니다. 마음이 강퍅해지면 죄에서 돌이키지 않게 되고 그 결과 심판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은 혹시라도 성령을 거역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성령이 떠나시고 육신의 사람이 되면 더 이상 소망이 없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이 떠나십니다.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으면 성령이 떠나십니다. 성령이 떠나시면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는 아무 소망이 없게 되어 버립니다. 오늘 당신에게서 성령이 떠나가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 가정에 성령이 떠나가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언제나 성령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음으로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타협과 혼합은 언제나 이러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신앙에 있어서만큼은 타협하는 것과 폭넓게 수용하는 것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합니다. 신앙과 진리는 사수해야 하는 것이지 타협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요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무력하게 된 것은 세상과 너무 많이 타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십시오. 5절은 세상에 죄악이 가득 찼으며, 사람들이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습니다(6절).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것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는 뜻일까요?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처럼 일이 잘못되어 후회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세상을 향하여 안타까워하시는 심정을 사람의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 보시기에 어떻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고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한탄하시겠습니까? 성도들을 위해 기도할 때 감사가 나오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너무나도 안타까워서 탄식이 나오는 성도도 있습니다. 당신은 어느 편에 속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때 한탄하시는 성도가 아니라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심판이 작정됨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죄악이 가득 찬 것을 보시고 세상을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7절). 사람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실 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까지 함께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120년 후면 세상에는 홍수심판이 임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죄악이 가득 차고 심판이 임박했으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돌이키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때도 이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요즘은 안 믿는 사람들까지도 말세라고 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이 얼마나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무엇보다 분명한 말세의 징조는 이 세상에 죄악이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3:6-7) 이제 다가올 심판은 너무나도 두려운 철저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3:12-13) 당신은 지금 준비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고 있습니까?

노아 당시에 왜 심판이 임했습니까? 세상에 죄악이 가득 찼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세상에 죄악이 가득 차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 예배하는 경건한 백성은 사라지고 죄악이 관영하여 심판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나라를 지키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배하는 성도들, 기도하는 성도들, 경건하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것은 나에게 큰 축복임과 동시에 이 나라와 사회를 지키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경건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이 사회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성도는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믿음과 예배와 경건을 사수해야 합니다. 믿음 없이는 결혼도 할 수 없고, 직장도 다닐 수 없고, 공부도 할 수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어야 합니다. 믿음을 지키고 경건하게 살아가며 예배하는 성도는 세상을 구원하는 데 쓰임 받게 되며, 더 나아가서 하늘에서 영광스러운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죄악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믿음과 예배를 지키며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의 각기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겔33:20)

 

  3. 심판과 구원

본문 5- 7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한때 미국 교회에는 신앙 부흥과 함께 교회당 건축 붐이 일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뉴욕에 있는 한 교회는 그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인해 교인은 물론 여행자들까지도 압도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의 규모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일 아침 교회로 향하는 교인들의 대화 속에는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여보!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볼링 한 게임 치는 게 어떨까? 좋지. 먼저 즐기고 보는 거야.” 이뿐이 아닙니다.

“오랜 만일세 이따가 성경공부 마치거든 오락실에서 만나세 좋은 생각일세 오늘 전도한 친구와 함께 가지. 바로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그 교회는 교회 건축 당시 교회로 성도들을 모을 궁리를 하다가, 여러 오락 시설, 운동 시설 취미 시설을 갖추어 놓기로 하고서 이로써 청년들을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분명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일로서, 하나님의 성전이 믿음이 아닌 세상 쾌락으로 덮일 때 다시 한 번 노아의 대홍수와 같은 심판이 임할 것임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3:19)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운동장보다 더 큰 방주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동시대 사람들은 그와 같은 노아를 비웃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본능이 명령하는 대로 욕구를 따라 살았을 뿐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홍수가 시작된 것입니다. 방주를 지었던 노아 가족은 그 심판을 통해 인류의 두 번째 시조가 되는 영광을 얻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심판 역시 어느 한 시점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짓기 시작하던 순간부터, 나머지 사람들이 노아에게 콧방귀를 끼면서 자기 쾌락만 탐닉하던 그때부터, 하나님의 심판은 현재 진행형으로 그들의 삶 속에서 시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대가 하나님의 셈하심의 심판대에 직접 서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셈하심은 그날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대 삶 속에서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 심판의 원칙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을 좇아 울더라도 말씀의 씨앗을 뿌리면, 그대의 삶 속에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의 열매가 영원한 현재 진행형으로 결실될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욕망을 좇아 욕망의 씨앗만을 뿌리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 그대의 삶-외형적으로 아무리 거창하게 보여도 속엔 실은 허망한 물거품만 현재 진행형으로 명멸하고 있을 것입니다.

노아 시대에 세상에 죄악이 가득 찼고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완전히 멸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완전히 멸하시고 다른 세상을 창조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구주를 보내어 세상을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이 없었더라면 홍수 심판과 함께 인류의 운명은 완전히 끝이 나고 말았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홍수가 나기 전에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만들게 하셨습니다. 이 방주를 통하여 노아와 그 가족이 구원을 얻게 되었고, 세상은 보존되었습니다.

 

  4. 노아

본문 9, 10절을 보겠습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성경은 노아의 사적을 말씀할 때 그의 신앙, 인격과 함께 세 아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위대한 사업을 가족이 같은 마음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전적으로 합력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홍수 심판을 대비하기 위해 120여년간 거대한 방주를 건조하고 코로 숨쉬는 생물들을 수집해 방주 안에 입주시키는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는 가족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함은 평소 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것 같으나 구원 사업만은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명령으로 하는 사업이라 할지라도 아들들이 한 마음으로 따라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업은 성공했으나 자녀 교육은 실패한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노아의 모범적인 신앙교육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창 6:12)라며 당시 타락한 사회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에서도 잘못된 세속에 물들지 않고 거룩한 가족으로 거룩함을 지켰습니다. 또 방주 건조와 생물 수집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었을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윤 없는 사업에 투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노아의 가족들은 이에 대해 모두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힘에 부치도록 헌금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본인의 신앙도 위대하지만 가족들도 귀합니다. 노아는 장기간 변함없는 신앙심을 보였습니다. 방주를 건조하는 데만 적어도 100년 이상 걸렸을 것입니다. 아무리 의미있는 일이라도 시간이 길어지면 부작용이 생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이 모든 일을 끝까지 다 했습니다. 주변의 비난과 방해는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그럼에도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큰 사업을 완벽하게 해낼 수 있었습니다. 가장의 온전한 신앙과 모범적인 생활을 통해 이뤄낸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입니다. 노아와 같이 주안에서 하나 되는 가정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본 절은 그처럼 죄악된 세상에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노아가 당시의 무서운 죄악에 빠지지 않았으며,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노아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그처럼 죄에 빠지지 않고 믿음을 지킬 수가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8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 연약하여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죄를 짓게 되고, 또 죄악된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십니다. 죄를 지으려고 하면 이상하게 어떤 일로 방해를 받게 하셔서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십니다. 혹시 죄를 지었을 때는 견딜 수 없는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며, 심지어는 육신적인 고통이나 가정과 사업상 곤란한 일을 당하게 만들기도 하십니다. 또 견딜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고 후회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죄를 짓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노아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죄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죄악된 세상에서 죄를 이기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는 것밖에 없습니다. 죄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가 당신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노아가 죄를 이길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중요한 비결은 예배였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나가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내놓고 회개하게 되는데, 이때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노아는 예배를 통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받고 회복됨으로써 죄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예배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참된 예배를 드리는 성도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도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항상 신령한 예배를 드림으로 죄를 이기게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노아에 대해서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더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노아가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입니다(9절).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원하는 열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나는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사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메리카 인디안들은 소년들의 용기를 훈련하는 독특한 방법을 썼습니다. 이들은 소년들에게 숲 속에서 야생동물들과 함께 밤을 지내게 만들면서 소년들의 담력을 키웠습니다. 시험을 받는 날 밤, 소년은 얼마나 무서움을 느꼈겠습니까? 그러나 날이 밝아오면서 소년은 그의 아버지가 가까운 나무 뒤에서 화살을 당긴 채 지키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들 몰래 아버지는 아들에게 위험이 닥치지 않게 하기 위해 밤새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 백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13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노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심판계획을 알려주십니다. 후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도 소돔, 고모라의 심판계획을 아브라함 알려주셨습니다.(창18: 17- 21)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경건한 자에게 하늘 비밀을 알리십니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시25: 14)

이렇게 심판계획을 알려주시는 것은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지만 또한 자비하셔서 인간을 심판하실 때 주저하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인간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3:7)

 

  5. 노아의 믿음과 순종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을 심판하실 작정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사람과 짐승들까지 전부 멸하시는 엄청난 심판이 작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심판에서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찌니라"(창6:14-16)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그의 믿음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히11:7)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심판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120년 동안이나 방주를 만드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즐기며 살았습니다. 불법과 폭력을 서슴지 않고 자기들 맘대로 범죄했습니다. 심판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무도 노아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노아는 많은 조롱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노아는 120년 동안이나 심판을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그의 가정을 구원했으며,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차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모두 먹고 마시고 즐기면서 죄악된 삶에 여념이 없을지라도 우리는 노아처럼 심판을 대비해야 합니다. 노아 때 사람들은 심판이 임박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살다가 다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마지막 심판 때도 그와 같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세상 죄악에 빠지지 말고 믿음에 굳게 서서 심판을 대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니라”(히9:27)

 

  본문 2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노아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명하신 대로 순종하여 다 준행하였습니다. 120년간의 긴 세월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 하나로 버티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까? 우리도 노아처럼 주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갑시다. 환난가운데 놓여있습니까? 주님의 말씀을 붙드십시오. 믿음으로 버티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6. 하나님의 눈

옛날 어느 수도원에 훌륭한 원장이 있었습니다. 그는 많은 제자들 중에 특히 한 아이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볼품없고, 지능이 뛰어나지도 않은 아이였습니다. 그러니 다른 제자들의 불만은 대단했습니다. 이에 수도원장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면 그 아이를 사랑하는 이유를 말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원장은 제자들에게 작은 새 한 마리씩을 주고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해질 때까지 그 새를 죽여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해질 녘이 되자 제자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여 수도원 마당에는 죽은 새의 시체가 쌓였습니다. 그런데 원장이 특별히 사랑하는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 돌아온 아이의 손에는 작은 새가 산 채로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새를 죽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아무리 조용하고 으슥한 곳을 찾아보아도 하나님은 보고 계셨어요. 그래서 새를 죽일 수 없었어요."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의 등불이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혼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환히 보고 아십니다.(잠20:27)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고 우리의 생각을 낱낱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으며, 하나님께는 아무것도 감출 수 없는 것입니다.

잠언 5장 21절에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리라' 또 욥기 34장 21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 만한 흑 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 시편 94편 9절에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눈은 우리 인간을 보십니다. 살피십니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십니다.(잠15:3) 노아 당시 세상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보고 계셨습니까?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11-12절) 노아 당시의 사람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복종치 않고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로 살고 있었습니다. 본문은 그러한 상태를 '패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영리하게 자신의 쾌락과 이익을 추구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들은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노아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였습니다(8-9절).

오늘도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하는 일들이 옳다고 주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후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여러분은 어떠하겠습니까? 세상에 죄악이 가득하고, 많은 사람들이 죄 가운데서 자기 맘대로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맘껏 재미있게 살고 있습니다. 반면에 믿음으로 살려는 사람들은 고생하며 힘들게 살아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맘껏 누리고 즐기며 살았다 해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다면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그 성전에 계시니 여호와의 보좌는 하늘에 있음이여 그 눈이 인생을 통촉하시고 그 안목이 저희를 감찰하시도다"(시11:4)

 

  7. 노아의 방주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시고 방주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을 지시해주셨습니다(14-16절). 방주는 잣나무로 만들어 방수처리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방주 안에 칸막이를 했는데, 이것은 방주가 바람과 물결에 흔들릴 때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과 짐승들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 3층으로 만들어 문을 하나 내고, 위에서 일 규빗 되는 지점에 창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창은 밖을 내다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환기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규모는 길이가 약 135m, 넓이가 약 22.5m, 높이가 약 13.5m쯤 되었습니다. 길이는 축구장의 약 1.4배, 넓이는 약 1/3 정도이며, 면적은 축구장의 절반 정도가 됩니다. 3층이니까 축구장의 1.5배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층으로 된 이 방주에는 지구상의 모든 동물들이 한 쌍씩 들어앉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1993년에 창조과학회에서 해군사관학교 기술연구소에 의뢰하여 실험해본 결과 노아 방주는 현대조선기술로 만들어진 어떤 선박보다 안전한 구조였다고 합니다. 노아 방주는 이렇게 거대하고 견고한 배였습니다.

그러나 노아 방주는 항해를 위한 배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선 노아 방주에는 동력이나 항해를 위한 장치가 전혀 없었습니다. 창이 3층 위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밖을 내다 볼 수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이 방주를 운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엔진도 필요 없고 키도 필요 없으며, 밖을 내다볼 창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처리하실 것이기 때문에 노아와 그 가족들은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 되었습니다. 아기 모세를 태운 갈대상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갈대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버려진 모세의 운명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의 공주가 모세를 발견하여 자기의 아들로 삼아 왕실에서 기르게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이제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책임을 져주십니다. 우리는 성난 파도와도 같은 세상에서 내일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서 불안해하며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가 탄 배를 운전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살면 됩니다.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치 방주 안에 있는 노아와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성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를 가장 안전하고 선하게 인도하신 후 이 세상에서의 항해가 끝나면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8. 하나님의 언약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 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창6:17-20) 하나님께서는 세상이 홍수로 다 멸망을 당할 때 방주 안에 있는 노아와 그 가족들, 그리고 짐승들이 다 그 생명을 보존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십니다.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과 짐승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 때문에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들 중에 하나라도 죽게 되면 하나님은 약속을 어기신 것이 될 것인데,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요3:16).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절대로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누구나 반드시 구원을 얻습니다. 이 진리가 오늘 우리에게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 됩니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오늘 세상이 얼마나 죄로 가득 차고 있습니까? 이제 심판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당신은 어떻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범죄한다 해도 그 죄에 빠지지 말도록 합시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으며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죄를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아무리 험하고 악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으면 절대로 안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천국에 이르기까지 당신을 온전히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며, 누가 뭐래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적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하심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비록 죄를 범하였다고 할지라도 회개의 기회를 주십니다.(롬9:22, 벧전 8: 20) 그러나 회개의 기회조차 범죄의 기회로 삼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엄정한 심판을 내리시는 것입니다.(시20:6, 계16:7)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의 기회가 주어진 지금 우리의 모든 잘못을 회개함은 물론 세상을 향해 죄의 회개를 외쳐야 합니다.

둘째,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이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당시 노아가 죄악된 자들과 함께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결코 중단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믿을 진대(시91: 16, 행16:31) 악한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죄에 대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롬8: 35, 37)

 

  * 기도: 심판주 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가까운 이때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죄악을 멀리하고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더욱 힘쓰고 서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항상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판단하실 날이 가까이 있음을 기억하며 나태해진 신앙생활을 돌이키게 하소서.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합니다. 저희의 의로는 그 심판을 결단코 넘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소서. 하나님의 저울의 분량에 합당한 믿음을 우리가 갖게 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만한 그릇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소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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