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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7: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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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한태완 목사 |
참고 : |
대홍수와 구원받은 가정
본문: 창세기 7장 1 - 24절
노아 시대에 온 세상이 죄악과 더러움으로 가득 찼을 때 하나님은 홍수 심판을 통하여 노아 식구들을 구별해 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죄악이 가득함을 보고 진노하사 세상을 홍수로 멸망시키기 100년 전에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노아는 100년 동안이나 뚝딱거리며 방주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마른하늘에 홍수가 날거라며 배를 만드는 노아를 미친 노인 취급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세상에 죄악이 가득함을 보시고 진노하시사 이 세상을 불로 멸망시키려 하십니다. 우리는 지금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노아의 홍수가 나던 시기의 현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유전자공학은 슈퍼감자나 유전자변형 콩을 생산하고 있으며, 태양열을 이용하여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시험관에서 아기가 잉태되고 있으며, 환경파괴, 공해물질 배출로 인한 오존층 파괴로 앞으로 50년 후면 북극과 남극의 빙하가 녹아 바닷가에 있는 대부분의 도시가 사라질 것이며, 성적인 문란함과 인간성 파괴로 인한 인간존엄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전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마지막 때의 징조인 거짓 선생들의 패역과 민족분쟁과 지진, 해일, 기근 등 수많은 사건과 문제가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마24:6- 7, 막13:6- 8)노아는 10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그보다 훨씬 짧은 기간 안에 방주 만들기를 끝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노아처럼 방주를 만드시렵니까 아니면 많은 사람들처럼 '헛소리 말라'며 비웃으시렵니까?
오늘날은 홍수가 나서 온 세상이 물로 뒤덮여도 정작 마실 물을 찾기가 가뭄에 물 얻기보다 어려움을 보게 됩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홍수시대입니다. 지식과 문화의 홍수, 정보와 첨단기술의 홍수, 주의 나 사상의 홍수,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어서 손만 뻗으면 무엇이든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현대인들은 목말라 합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그 어느 것으로도 풀 수 없는 이 갈증은 참 진리 되시는 예수님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니라" (요한복음 4 : 14)
삶의 목표와 가치관이 흔들리는 이 시대에 무엇으로도 해갈되지 않은 당신 영혼의 목마름을 예수그리스도께 나와 해결하십시오. 주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 38, 39)
노아시대 사람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들과 자유연애를 즐기고 시집가고 장가가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자신의 육신의 소원과 욕심을 좇아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사람들을 사랑하심으로 오래 참으셨지만 인류의 죄악은 정말로 물이 오를대로 올라 죄가 온 땅에 가득 차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경외심으로 살아가기는커녕 하나님의 말씀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죄가 주는 즐거움으로 날이 갈수록 더 타락하고 육체적, 찰나적 쾌락과 죄의 세력에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제는 더 이상 참으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육체가 되어버린 사람들과 도저히 함께 하실수가 없으셔서 그들에 대한 소망을 끊으셨습니다. 그리고 모두 다 쓸어버리겠노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실제로 홍수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이 심판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분노가 실감나게 묻어나는 무섭고 철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정말 미워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의로웠던 노아와 그 가족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노아의 경외심을 배우고 또한 복음에 대해 더욱 알아가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홍수 직전에 노아로 하여금 방주로 들어가라고 명하셨습니다. 노아의 일가족과 각양의 동물들이 이 명령에 순종함으로 멸망을 면했습니다. 홍수의 시작일로부터 그것의 진행과정을 상술함은 심판의 엄정성을 보여 줌과 동시에 노아 홍수가 국지적, 허구적인 사건이라는 주장을 일축시키고 그 역사적 사실성을 보증해 주는 데 있습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대기업을 일으킨 뒤 고향에 조그마한 집을 한 채 지었습니다. 그 집은 대기업 총수가 살기에는 매우 작고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이건 너무 초라하지 않나요.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생활에 불편하지는 않아야지요.”
주위 사람들은 걱정스럽게 포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대답했습니다.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이 넘친다면 그곳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집이지요.”
지금도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의 기념관에 가면 우리는 이런 글을 볼 수 있습니다.
“헨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헨리 포드의 성공의 이면에는 꿈꾸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이 함께 이룬 아름다운 가정이 있었습니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딤전3: 12)
가정은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선물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육신과 정신의 안식처입니다. 세상의 보이는 어떤 조건과 환경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가정이 행복할 때에만 그것이 축복 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단위입니다. 가정이 건전할 때 사회가 건전하게 되고 가정이 파괴될 때 사회는 그만큼 불안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불화한 가정에서 나간 사람 이 자기가 일하는 데서 바로 책임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대개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입니다. 옛 글에 가화만사성(家和万事成)이란 말은 퍽 의미 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안이 화평해야 무엇이든지 잘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잠언에도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5: 17)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7:1)가정은 화목의 상징입니다. 이 화목이 깨어질 때 가정에서 뜻하지 않은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억하시는 대로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여 에덴 동산 낙원에서 쫓겨난 후 제일 먼저 당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아들 가인과 아벨 사이가 좋지 않아서 구체 적으로 말하면 가인이 동생 아벨을 미워하여 쳐죽였습니다. 부모로서 가슴에 못을 박는 쓰라림은 자식이 부모보다 세상을 떠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오래 사는 수(壽)가 오복(五福) 가운데 첫째 복에 들지마는 수즉다욕(壽卽多辱)이란 말이 있는 것이 사람이 오래 살다 보면 자식을 앞세우는 욕을 당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식이 병들어 세상을 떠나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인데 하물며 미워하여 형이 동생을 쳐 죽였으니 그 부모의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여기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셨는데 여러분이 부모에 게 효를 다하는 것은 잘 대접하고 공경하는 것도 필요하지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님 앞에 서 형제지간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 창세기에 나오는 모범적인 가정, 구원받은 가정, 노아의 가정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을 만드신 세상이 처음 만드실 때에는 아주 좋았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점점 나빠졌습니다. 처음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였고 만물을 다 지으시고 나중에 인간을 지으신 다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인간이 그만 타락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반역하게 되 어 세상은 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고 자기의 본분을 다할 때는 아름답고 좋으나 그 본분을 다하지 못할 때 더러워지고 마는 것입니다. 꽃이 아름다우나 꽃이 피어 아름답고 향기를 발할 때 좋은 것이지 꽃이 지면 썩어지고 냄새를 내는 것입니다. 짐승도 살아서 움직일 때 요긴하고 귀엽지 병들고 죽어지면 썩은 냄새 밖에 날 것이 없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더욱 그러합니다. 살았을 때 아름답지 병들고 죽으면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이 사람입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 시체입 니다. 그래서 멀리 묘지에 깊이깊이 묻어버리고 맙니다. 짐승이 죽은 것은 거름이라도 하지만 사람이 죽은 것은 아무데도 못씁니다. 육체뿐만 아닙니다. 영혼이 있기에 사람은 귀한 것인데 이 심령이 살아 있을 때에야 사람답게 살고 사람으로서의 고귀한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데 그 심령이 죽어 놓으면 세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 인간의 심령이 타락해 놓으니까 만물이 탄식할 정도로 악해졌습니다. 창세기 6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할 때 그때에는 하나님에게 큰 근심이 되고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가는 길이란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그 지혜가 비상하고 문화를 발전시킨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길로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 위에서 모든 인간과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새들까지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이 소위 물의 심판이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아 때 홍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이 악해서 하나님에게 근심이 될 지경이요,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 할 지경에 이르렀지마는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세상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였습니다. 악인들이 세상을 잡고 흔드는 세상이었지만 의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거역하는 사람이 땅에 가득 했으나 그래도 그런 중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노아였습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대로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시면서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는 칸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하시고 그 방주의 규격까지 그 모양을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노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의 믿음이 아닙니까?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처럼 믿었습니다. 노아가 500살이 되었을 때인데 이제 이 땅을 홍수로 멸하시겠다고 하시니 생각해보면 과거 수천 년 동안 이런 일이 없었는데, 더구나 내가 500년을 살 때까지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하며 이치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믿은 것뿐입니다. 믿을 뿐만 아닙니다. 그대로 행했습니다. 큰 배를 지었습니다. 산에서 잣나무를 가져다가 짓는 큰 공사였습니다. 그것도 1년, 2년 정도의 공사가 아니었습니다. 120년이란 기간이 걸렸습니다. 더구나 그렇게 큰 방주를 바닷가에서 짓는다면 몰라도 바다와는 먼 육지에 배를 짓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노아가 하는 일에 함께 시키는 대로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것 은 하루에 얼마씩 품값을 받기 위해서 일한 것뿐이고 그들에게 믿음이 있어서 노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우리 짐작이지만 노아의 지시에 의해서 품삯을 받고 일을 하면서도 노아가 잠시 떠나기만 하면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 노아를 흉보았을 것입니다. 흔히 젊은 사람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 영감님 망령이셔, 저 할머니 노망이셔 합니다. 아마 노아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만 앉으면 노아는 듣지 못하게 저희들끼리 저 영감 이 아마 이젠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 같아 그까짓 것 우리는 일하는 자리가 생겼으니 상관할 것 없지마는 아니 이런 큰 배는 무엇하러 이렇게 만들지? 더구나 이런 배를 어떻게 바다에 끌고 가지? 뭐 이제 얼마 있으면 그 영감님 말대로 하면 큰 홍수가 난다고 하는데 홍수나면 산으로 올라가면 될테지 무엇 때문에 이런 물질과 시간의 낭비를 하는가 말이야. 아 그러기에 망령이라잖아. 우리야 굿이나 보다 떡이나 먹으면 될 것 아니야, 글쎄 그건 그렇고, 저 노아 영감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으라 하는데 우리가 어쨌다는 거야. 아 그러면 우리도 자기처럼 이런 미친 노릇하며 살라는 건가? 이런 대화 끊이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왜요? 이건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에 보면 노아의 날에, 노아가 방주를 예비 하는 날에 오래 참고 기다렸으나 순종치 아니하다가 멸망하였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그들에게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망령으로만 여겼습니다. 노아와 그 당시의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노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노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이는 분처럼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이는 것만 위해 살았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을 애써서 하나님 을 위해 일했으나 그의 여덟 가족 외에는 모두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 나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작은 무리입니다. 노아는 그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 장차 멸망당할 것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불쌍히 여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노아의 가정을 동정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헛소리로 들었습니다. 그저 늙은이의 망령으로 여겼습니다. 악한 세대의 특징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귓등으로 듣습니다. 왜요? 이치에 맞지 않으니까요, 비과학적이니까요. 전에 소돔성에 있던 롯의 가정을 하나님의 사자가 건져낼 때 네 식구 그러니까 롯의 처와 두 딸 그리고 정혼한 두 사위를 빨리 데리고 소알까지 피하라고 하였으며 이제 곧 하늘에서 불이 내려 이 소돔성이 망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이 사실을 롯이 자기 사위감될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그 사위들의 반응이 무엇이었어요? 창세기 19장 14절에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 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말하나 농담으로 여기는 세대는 악한 세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않습니까? 롯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던 두 사위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의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교역자들이 생활비를 받아가며 농담이나 하고 쓸데없는 공갈이나 하는 것입니까? 그것을 위해 있습니까? 롯의 말이 농담이었습니까? 노아의 말이 공갈이었습니다. 더구나 롯의 아내를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의 사자가 소돔성을 떠나갈 때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는데 돌아보다가 어떻게 되었어요? 소금기둥이 되었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하라면 하고, 가라면 가고, 하지 말라면 하지 않고, 서라면 서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행복한 가정, 축복받은 가정의 모습을 봅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받은 가정입니다.
본문 7절에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600세라 노아가 아들들과 아내와 자부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하였습니다.
성도여러분! 이 노아의 가정이 홍수가 나서 집에 물이 들어 올 때 방주에 들어갔습니까? 아닙니다. 비도 오기 전에 날이 흐리지도 않을 때 그저 하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시므로 들어갔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비웃었을 것입니다. 저거 미친 것들 좀 보게. 저 큰 배 속에 들어가는 것 좀 보게나. 무엇하러 저러지, 늙은이는 망령이라 하더라도 그 자식들은 왜 저러지? 젊은 것들이 이성(理性)도 없나? 그것도 부전자전(父傳子傳)인가? 아마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어떤 사람은 말했을는지 모릅니다. 아 이게 정말 노아 영감님이 말하던 홍수인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니, 사람이 살다보면 맑은 날도 있고 비오는 날도 있지, 오늘이 처음인가? 사흘, 나흘 계속되니, 이거 정말 장마가 오나 하고 말했습니다. 물이 점점 불어 나서 집에까지 들어오니까 이번엔 큰 장마라고 하면서 언덕에 피했습니다. 물이 언덕을 넘으니까 큰 홍수라고 하면서 산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면서도 노아의 경고를 무시해 버렸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비극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노아의 가정은 어떠하였습니까? 온 가족이 믿었습니다. 말씀대로 따라 순종했습니다.
노아와 그의 온 집이 구원 받게 된 이유는 하나님 앞에 노아는 의로운 자였습니다. 노아의 아내나 아들들이 의로웠는지는 성경이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습니다. 어쨌든 한 사람 노아의 의로움 때문에 나머지 가족이 구원받았다고 해도 틀리진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아의 가족들이 세상 사람들처럼 악한 사람들은 더더욱 아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의롭다’(righteous)는 것은 ‘도덕적’인 의미에서의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칭찬받을 만한’ ‘세상 사람과 다른’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즉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의로운 영향력이 그의 가족들에게 흘러갔을 것입니다. 나의 선한 영향력이 옆으로 흘러넘치게 하십시오.
노아는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6:22, 7:5, 7:9, 7:16에 보면 노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가족들은 어땠을까요? 100년 이상 걸렸을 방주제작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족들이 불만을 드러낸 것 같지는 않고, 결국 방주가 완성된 것을 보면 아마도 그의 아내와 아들들까지도 남편과 아버지에게, 결국 하나님께 순종적이었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온 식구가 주님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 이상 큰 기쁨은 없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아직 그리스도 밖에 살며 구원이 무엇인지 모르는 분은 안계십니까? 이것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어떤 자매님은 믿음으로 살면서 그의 자녀를 주님께로 인도합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남편이 아직 주님의 약속에 대하여 외인이므로 가슴 아파합니다. 어떤 형제는 그 부모님이 아직 하나님 없이 그리스도도 모르고 살므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낙심하지 말고 계속 기도합시다. 반드시 여러분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 주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기도할 제목이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긴급한 것이 무엇입니까? 내 가정이 먼저 다 함께 구원의 반열에 참여하기 위해서 기도해야겠습니다. 노아의 가정은 축복받은 가정이었습니다. 온 식구가 다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정이 노아의 가정처럼 되기 위해서 기도하십시다.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사는 내 남편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내 자녀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내 부모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노아의 경외심과 그리고 때가 늦기 전에 구원의 방주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가 오직 하나님한분만을 두려워하고 한 말씀이라도 그대로 믿고 순종하고자 결단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과거의 죄악된 나는 모두 죽고 이제 새롭게 예수님과 함께 부활할 나만 살아있음을 절대적으로 믿는 믿음을 날마다 소유하길 기도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통해 구원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은 그 말씀에 불순종하는 악인들에게 분명히 임합니다. 물의 심판이 우연한 천재지변이나 옛날 원시인들이 전한 신화나 전설이 아니듯, 앞으로 있을 불의 심판도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멸망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불의 심판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졸지에 임하십니다.(살전5: 2, 3) 우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습니까? 선악 간에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날이 오기까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이 임하기를 사모합시다.
* 기도: 이 땅의 가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그리스도인의 가정에 불행의 가시덤불을 제거하시고 행복의 꽃이 피어나는 은혜를 베풀어 주소서. 특별히 말씀 안에서 튼튼한 기초를 세워가는 가정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고 용납하는 가정이 되게 하소서. 남편과 아내가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부모와 자녀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섬기는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어가게 하소서. 참된 사랑으로 섬기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고 그로 인한 상처를 성령으로 치유해 주소서.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들을 양육하기에 소홀했던 부모들을 용서하소서. 우리 가정이 오직 말씀 위에 세워져 하나님 나라의 복을 드러내고 세상에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소서. 우리 가정의 주인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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