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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을 보여라

고린도전 한태완 목사............... 조회 수 2116 추천 수 0 2011.03.26 16:3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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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전4:16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모범을 보여라

본문: 고전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

세계적으로 그 이름을 크게 날린 아메리카의 잡지 편집자보크는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할아버지의 손에서 자라다가 어린 몸으로 미국에 건너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와 작별하려는 때, 교훈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주었습니다.
"나는 네게 일러주고 싶은 말 한마디가 있다. 이제부터 너는 어디로 가든지 네가 그 곳에 있기 때문에 그곳이 무슨 모양으로라도 보다 더 나아지게 하기를 힘써라"
그는 아메리카에 상륙하여 보스톤 시 한 모퉁이에서 신문을 팔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중 그는 그 길가를 좋게 하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리하여 종이 조각, 담배꽁초 등을 줍고, 깨끗이 청소를 하곤 했습니다. 모든 신문을 제시간에 가져 다 가는 우선 누구나 원하는 신문을 살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는 친절하고 믿음성 있는 소년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커티스 출판사 소제부로 취직하여, 신임을 얻게 된 후, 사원, 판매 부장, 경리 부장, 편집국장, 지배인, 사장 사위 마침내는 사장이 되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유훈을 따름으로써, 자기의 있는 곳이 좋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도 영달하게 된 것입니다. 실로 이것은 신자에게 있어서 좋은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자는 어느 곳을 가든지 본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날 한 어머니가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제 아이가 사탕을 너무 많이 먹어 이빨이 다 썩었어요. 사탕을 먹지 말라고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안 듣습니다. 제 아들은 선생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잘 들어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말씀 좀 해주세요.”
그런데 뜻밖에도 간디는 “한 달 후에 데리고 오십시오.그때 말하지요” 라고 했습니다. 아이 어머니는 놀랍고도 이상했으나 한 달을 기다렸다가 다시 간디에게 갔습니다.“한 달만 더 있다가 오십시오.” “한 달씩이나 또 기다려야 하나요?”“글쎄 한 달만 더 있다가 오십시오.”아이 어머니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참고 있다가 한달 후에 또 갔습니다.
“얘야, 지금부터는 사탕을 먹지 말아라.”“예! 절대로 사탕을 먹지 않을래요.” 소년의 어머니가 간디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말씀 한 마디 하시는 데 왜 두 달씩이나 걸려야 했나요?”
“실은 나도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사탕을 먹고 있었어요. 그런 내가 어떻게 아이보고 사탕을 먹지 말라고 할 수 있나요? 내가 사탕을 끊는 데 두 달이 걸렸답니다.” 희생의 모범이 가장 좋은 교육입니다. 교육이란 끝없이 지속되는 희생의 과정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길을 가다가 그 근처에 사는 교인댁 한 곳이 생각났습니다. 그 목사님은 내가 여기까지 왔으니 그 댁을 심방하고 가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예고도 없이 목사님의 방문을 받으니 심방 받는 집에서는 반갑게 목사님을 맞이했습니다. 목사님은 자리에 앉자 말했습니다. “생각나는 구절이 있어서 한 말씀 드리고 가겠습니다. 성경책을 좀 가져오십시오” 그때에 그 교인은 생각했습니다.
‘이 기회에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잘 믿는지 목사님께 보여드려야지’ 그래서 아이를 불러 말했습니다. “얘, 너 안방에 가서 엄마가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는 책을 가져다주겠니 ?”
목사님 들으시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꼬마가 쏜살같이 달려가서 들고 나오는 책은 성경이 아니라 백화점 물품 구입 목록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망신입니까 ? 여러분, 잘 믿는다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까 ? 여러분 가정의 어린아이에게 물어보십시오. 아이의 눈에 내가 어떻게 비추어졌는가를 보십시오. 그 맑은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이야기하십시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 박사에게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 3가지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인즉 첫째도 본보기, 둘째도 본보기, 셋째도 본보기라고 했습니다. 자녀가 공부에 흥미를 나타내기를 원하면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부모가 시간을 내서 책을 읽는 것입니다. 자녀가 몸이 튼튼하기를 원하면 부모가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엘리트보다는 사람이 되어라’란 책을 쓴 전혜성 씨는 말합니다. “남편과 나는 집안에서는 영어를 쓰지 않았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께 부탁해서 한글로 된 우리 책을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또 ‘작은 천사들’이라는 노래 테이프를 사다가 틀어주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그 노래를 모두 외우고 곧잘 따라 불렀습니다. 아이들은 한국어를 잘하는 것은 물론 읽고 쓰는 데도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초등학교 수준의 말과 글은 익힐 수 있었습니다”
칸트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와 똑같이 행하라고 말할 수 있게 행동하라”고 말했습니다. 생각은 쉽고 행동은 어려운데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부모가 말로 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데 어떻게 자녀가 부모를 존경하고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바닷게가 자기는 옆으로 걸어다니면서 새끼들에게 앞으로 걷는 훈련을 시킨다면 새끼 게들이 바로 걸을 수 있을까요?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부모가 바른 본을 보여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부모의 잔소리는 자식을 망치기에 가장 적합한 교육방법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잔소리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등뒤에서 부모의 삶을 보고자랍니다.
세 자녀를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일상은 늘 분주했습니다. 아이들이 어지럽힌 방을 청소하고, 식사 준비하고, 빨래를 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대청소를 하기로 마음 먹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막내가 그녀를 졸졸 따라 다니며 일을 방해했습니다. 아이의 발에 걸려 넘어지게 되자 그녀는 참고 있던 화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형들과 같이 가서 놀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따라다니며 방해하는 거야?” 어머니의 꾸중을 들은 막내는 눈에 눈물방울을 매단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엄마, 교회학교 선생님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이 보이지 않아서 엄마의 발자국을 따라다니는 거예요.”
자녀들은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보이는 부모에게서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가듯 부모의 삶의 발자취를 따르려 합니다. 부모의 삶은 자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모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 앞에 그리스도의 삶을 좇아 사는 경건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성경 66권의 어느 한 말씀도 소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 말씀이 없을까마는 나는 베드로전서 5장 3절의 말씀을 너무 사랑합니다. 그러기에 나의 신앙의 스승이시며 삶의 본을 보이신 나의 어머니를 잊을 수 없습니다. 조석을 준비하시면 서도 틈만 있으면 부뚜막 위에 성경을 펼쳐놓고 쭈그리고 앉아서 소리내어 읽으시고 흥얼흥얼 찬송을 부르시며 언제나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산 분이셨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비롯하여 모든 공 예배에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고 사셨던 분입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구역예배에 끌고 다니시면서 성경 읽는 생활을 심어주셨고 중학교에 입학하자 자신이 가시는 예배에 모조리 데리고 다니시면서 나를 여기까지 양육하신 분. 소천하시기 전까지도 자식들(5남매)의 가정을 위하여 수시로 철야기도를 연속으로 하셨던 분이셨으며 마늘 살 돈이 없으면 마늘을 넣지 않은 반찬을 만들지언정 절대로 외상거래를 하지 않으신, 그야말로 고지식하셨던 분입니다.
온유와 겸손 그 자체이었기에 섬기시는 교회로부터는 ‘진짜 권사’라고 불렸던 분이셨습니다. 이런 분을 어머니로 하여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께 나는 너무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베드로 사도의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하신 말씀이 나를 채찍질하곤 합니다. 끊임없이 나를 돌아보아 진정 모든 이에게 본이 될 수 있도록 먼저 내 안에 조용한 개혁의 파장을 일으켜 봅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어느 주간지에서 합성세제 사용으로 인한 수질 오염의 심각성에 대한 내용을 읽었습니다. 원래 합성세제를 잘 쓰지 않았지만 그 기사를 읽은 후로는 ‘나부터라도’라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거의 쓰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목욕실 하수구가 꽉 막혀버렸습니다. 관리실에 연락하면 되겠지만 이번에 이사한 집은 욕실이 깨끗하지 못하여 ‘한번쯤이야’라는 얄팍한 생각으로 약품을 사용하여 시원스럽게 뚫어놓았습니다. 온 지구가 오염되어 몸살을 앓고 있다는데 말입니다. 그야말로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부족한 한 사람의 하찮은 자존심이 수질오염의 범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날 어머님을 생각하며 많이 반성했습니다.
목사이기에 모든 성도에게 본이 되려고 무척이나 채찍질하며 살아왔지만 그 날의 일은 다시 한번 나를 살피는 조용한 개혁의 파장이 되어 오늘도 경건 연습을 하게 합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헌옷가게에 들러 외투 하나를 샀습니다. 오면서 외투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보석 하나가 있었습니다. 보석을 보는 순간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산 옷이니 보석은 내 것이야! 내 소유야!’ ‘아니야!’ 원래 주인이 넣어놓은 것을 모르고 헌옷가게에서 판 것이 아닐까? 그러면 보석은 주인 것이지 않은가?’ 그래서 랍비에게 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랍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옷을 산 것이지 보석을 산 것은 아니지 않느냐? 보석을 돌려주러 갈 때 네 자녀를 데리고 가라. 보석보다 더 귀한 것을 자녀에게 가르치게 될 것이다.”
보석보다 더 귀한 것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정직을 가르치는 일이며 정직보다 더 귀한, 정직할 수 있는 신앙인 것입니다. 이 고귀한 신앙을 자녀에게 보여주며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은 보화를 얻는 것보다 귀한 것입니다.
부모님들의 믿음과 헌신된 삶을 통해 자녀에게 축복을 끼친 사례로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이삭에게 주신 축복의 조건은 그의 부친 아브라함의 믿음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명령 계명 율례 법도를 지켰기 때문입니다(창26:5).
다윗의 믿음으로 그 아들 솔로몬이 복을 누리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나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왕상 11:11∼12) 이와 같은 말씀을 보면 부모님의 신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녀들과 함께 어디를 가든지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던 것처럼 부모님이 예배하는 모습으로 자녀에게 본을 보여야 합니다. 가정을 위해, 자녀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은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가르치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는 자동적으로 예배하는 사람이 될 것이며 기도의 자리에 있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담장 밑에 채소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옆집 나뭇가지가 담장을 넘어와서 그늘을 만들어 채소가 잘 자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담장을 넘어온 가지를 잘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옆집 주인은 나뭇가지를 자르면 볼품이 없기 때문에 자를 수 없다고 버텼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 재판장 앞에 섰습니다. 재판장은 두 사람 말을 듣더니 재판을 하루 늦추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재판정에서 나뭇가지를 자르라고 판결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재판장에게 왜 판결을 하루 늦췄느냐고 물었습니다. 재판장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나뭇가지를 자르도록 판결하려고 했는데 우리 집 나뭇가지가 옆집에 넘어가 있는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어제 집에 가서 가지를 자르고 와서 오늘 판결을 한 것입니다.”
남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면 나부터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지도자입니다.
지도자가 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으면 물러나야 합니다.
목회자나 장로는 예수님과 사도 바울처럼 양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에게 기도하라고 설교하면서 자신은 기도에 힘쓰지 않고, 겸손하라고 가르치면서 자신은 권위적인 태도와 교만한 모습을 보이고 탐욕을 버리라고 권고하면서 자신은 돈을 밝힌 다면 이는 거짓 교사요, 현대판 바리새인과 서기관입니다.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차이점은 많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언행의 일치와 불일치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무척 경건해 보였지만 속은 썩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의 가르친 교훈과 100% 일치되는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에서 그분의 가르침과 동떨어진 죄악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당연히 권위가 있습니다. 권위 있는 가르침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행동으로 본을 보이며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5)
처칠이 어쩌다 운전사에게 차를 급히 몰게 했습니다. 그런데 교통 경찰관이 수상을 태운 자동차가 과속으로 달리는 것을 보고 재빨리 차를 세우도록 했습니다. "수상께서 타셨소." 면허증 제시를 요구하는 경찰관에게 운전사가 말했습니다. "알고 있소. 그러나 과속은 과속이오. 딱지를 떼겠으니 벌금을 물도록 하시오." 경찰관이 끄떡도 하지 않자 이번에는 처칠이 직접 나섰습니다. "이봐! 내가 누군 줄 알아?" 처칠이 그 특유의 여송연을 입에 문 채 언성을 높였습니다. "예, 얼굴은 우리 수상 각하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법을 지키는 것은 비슷하질 않습니다." 그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결국 처칠은 딱지를 떼였습니다. 처칠은 의회에서 업무를 마치고 올라와 경시총감을 불렀습니다. 그 딱지뗀 경찰관을 격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그 경찰을 찾아 특진시킬 것을 명했습니다. 그러나 경시총감은 과속차를 적발했다고 특진시키라는 규정은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규정을 준수하는 본을 지도자가 보여주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끄시는 사역"이란 책에 나온 글입니다.
처음 사역을 시작했을 무렵, 나는 나이든 복음 전도자 새뮤얼 멘디스와 함께 스리랑카의 몇몇 마을을 돌아다니며 전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서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학교 교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두세 개의 나무 의자를 붙여 놓고 그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이른 새벽에 눈을 떠보니, 그는 이미 잠에서 깨어나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의 모습은 내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지도자는 사람들 앞에서 삶의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나도 어렸을 때 장로님들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배웠습니다. 또한 부모도 자녀에게 신앙 생활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자녀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에게 복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어렸을 때 나는 가족과 함께 성경 캠프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주 강사는 ‘방송 선교회’의 설립자인 시어도어 엡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말 가운데 기도 생활에 관한 말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매일 규칙적인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는데, 그 시간에는 그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방에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자녀들은 틀림없이 그런 금지 조항을 통해 하나님을 공경하는 태도를 배웠을 것입니다.

옛날 북서 아메리카에 한 인디언 추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백인이 그와 하룻밤을 함께 보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오두막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추장은 그 다음날 아침에 방문객을 오두막집에서 나오게 한 후 물었습니다. "당신은 지난밤에 이 오두막집을 통과한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 방문객은 눈길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선명하게 한 사람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른 발자국은 찾아볼 수 없었으므로 그는 추장에게 "한 사람밖에 지나간 적이 없군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추장은 그에게 그 날 밤 그 오두막집을 수백 명의 인디언들이, 다시 말해서 한 부족 전체가 지나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다음 추장은 그에게 이렇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인디언들은 그들이 어떤 방향으로 갔는지를 알리고 싶지 않을 때는 추장이 제일 선두에 걷고 나머지 모든 부족이 일렬로 그들을 따라가면서 추장이 밟았던 발자국을 정확히 밟고 지나감으로써 하나의 발자국만을 남깁니다. 따라서 수백 명이 아니라 단 한 사람만 지나간 처럼 보입니다. 이와 같은 지혜로운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 부족의 적들은 그들이 간 길을 발견할 수 없으며, 따라서 그들을 따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대장이십니다. 그는 생명의 길을 따라 제일 먼저 가시면서 우리에게 그의 발자국, 즉 그의 모범을 남겨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남겨 놓으신 이 발자국을 따라야만 합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오늘날과 같은 기술사회에서 의사 소통하는 방식은 종종 나를 매우 놀라게 합니다. 한 예로, 팩스 기계는 나의 흥미를 돋구는 것들 중에 하나입니다. 여러분은 팩스로 세계 어느 곳이든지 어떤 서류의 정확한 복사물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것을 받는 사람은 원본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원본에 가까운 복사물을 얻게 됩니다. 나는 우리의 삶이 하나의 카피된 팩스 서류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하게 될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그분의 복사물로서 보게 됩니다. 그들은 예수님(원본)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복사물)를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디에 있든지 예수님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모습이 우리 교인들과 우리 자녀들의 삶 속에 귀한 열매로 맺어지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신 주님, 오늘 내 모습이 교인들과 자녀에게 본이 되게 하시고 진정한 신앙이 자녀의 삶 속에 심겨지게 하옵소서. 거짓 없는 온전한 믿음을 갖게 하소서. 주님께서 허락하신 이 믿음이 저희들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되게 하소서. 믿음의 선진들이 남긴 발자취를 우리도 남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 2부 성경공부

1. 말씀: 1907년 한국의 대부흥운동은 1903년 원산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에서 출발했다. 이 원산부흥운동의 주역은 남감리교 선교사인 하디 박사였다. 그는 원래 캐나다 출신의 의료선교사로 1892년부터 함남 원산에 와서 의술을 베풀며 복음을 전했다. 하디는 한국 교인들에게서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보기 원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하고, 지속적인 회개의 구체적인 예’를 보지 못했다. 하디는 이 모든 원인이 성령의 결핍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악한 세력이 자신을 넘어뜨리려고 궤계를 부리는데 자신은 그것을 이길 힘이 없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성령의 능력을 간구했다. 1903년 여름에 하디는 남감리교 여선교사 모임의 성경공부를 인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하디가 성경공부를 준비하면서 자신이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디는 이렇게 고백했다. “성령이 내게 오셨을 때 성령의 첫 번째 요구는 내 교인들 앞에서 내 과거의 실패와 그 원인을 자백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경험이었다.”
하디는 이 성령의 음성에 순종했다. 그는 수치와 체면 손상을 무릅 쓰고 자신의 교만, 강퍅한 마음, 신앙 결핍, 그리고 이런 것들이 가져오는 수많은 죄악을 고백했다. 그러자 하디의 마음에는 놀라운 평화가 임했고 사역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했다. 이 사건 이후의 하디의 삶은 놀랍게 달라졌다. 더 이상 이전의 하디가 아니었다. 하디는 한국 교인들에게 진정한 회개의 모델을 제시한 것이다. 과거에 그는 회개에 대해서 설교했다. 하지만 그 실례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제 그는 회개의 설교와 더불어 회개의 실례를 제공한 것이다. 하디는 자신의 회개로 “사람들은 처음으로 죄의 자각과 회개가 실제적인 경험 가운데 무엇을 뜻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지금 한국 교회는 회개에 대해서 많이 말한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구체적인 실례이다.

2. 묵상 및 토의
0 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모범을 보이고 있는가?
0 나는 현재 죄악된 세상에서 의의 본체이신 하나님을 본받는 삶을 살고 있는가?
0 나는 주의 의로우심을 본받아 내 생활도 의롭게 되기를 원하는가?
0 바울처럼 내가 본받을 만한 신앙인이 주위에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나는 본받을 만한 신앙인입니까?
0 내가 하늘의 시민권자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 주는 삶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0 언행과 삶 전체를 통해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드러내고 있습니까? 혹시 주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진 않습니까?

3. 예화(1): 모범을 보여라

영국과 포클랜드가 전쟁을 할 때였습니다. 영국 BBC방송의 뉴스 시간에 두 가지 감명 깊은 내용이 방송되었습니다.
첫째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의 둘째 아들인 앤드류가 공군 조종사로 전쟁터로 출 발하는 장면이었고,
둘째는, 당시 영국 수상인 대처수상의 아들이 육군 사병으로 배를 타고 출발할 때, 대처수상이 어머니로서 자랑스럽게 손수건을 흔들며 아들을 환송하는 장면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한 번은 열대지방으로 원정을 갔습니다. 사막의 더위에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습니다. 환자들이 속출하고, 사기도 말할 수 없이 떨어졌습니다. 이 때 나폴레옹이 명령을 내립니다.
“모두 말에서 내려라. 지금부터는 환자만 말에 태우고 나머지는 모두 걷는다. ”부관이 와서 묻습니다.
“장군님의 말은 어떻게 할까요?”
“내 말뜻을 잘 못 알아 듣는군. 나도 대열의 맨 앞에서 걷겠네.”그 소리에 병사들은 다시 한번 사기를 얻었답니다

* 예화(2) : 예수님의 발자취

세 자녀를 둔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녀의 일상은 늘 분주했습니다. 아이들이 어지럽힌 방을 청소하고,식사 준비하고,빨래를 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대청소를 하기로 마음 먹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린 막내가 그녀를 졸졸 따라 다니며 일을 방해했습니다. 아이의 발에 걸려 넘어지게 되자 그녀는 참고 있던 화를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형들과 같이 가서 놀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따라다니며 방해하는 거야?” 어머니의 꾸중을 들은 막내는 눈에 눈물방울을 매단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엄마,교회학교 선생님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야 한다고 하셨는데 예수님이 보이지 않아서 엄마의 발자국을 따라다니는 거예요.”
자녀들은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보이는 부모에게서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 가듯 부모의 삶의 발자취를 따르려 합니다. 부모의 삶은 자녀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모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자녀 앞에 그리스도의 삶을 좇아 사는 경건함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4. 성경연구: 선한 모범을 보인 자
1) 순종의 본을 보인 노아(창6:22)
2) 순종과 양보의 본을 보인 아브라함(창13:9)
3) 절제(순결)의 본을 보인 요셉(창39:7- 12)
4) 기도의 본을 보인 사무엘(삼상12: 23)
5) 용기의 본을 보인 다윗(삼상17: 32- 37)
6) 참된 우정의 본을 보인 요나단(삼상18:1-4)
7) 애국의 본을 보인 예레미야(렘40:1-6)
8) 거룩한 삶의 본을 보인 다니엘(단1:8)
9) 섬김의 본을 보인 그리스도(요13:13,14)
10) 회개의 본을 보인 베드로(요21:15-18)
11) 선교의 본을 보인 바울(딤후4:17)
12) 인내의 본을 보인 욥(약5: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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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4971 전도서 올바르고 행복하게 사는 길 전6:1-12  한태완 목사  2011-04-03 1827
4970 마가복음 의사를 잘 만나야 해 막2:17  강종수 목사  2011-04-03 2081
4969 고린도전 위대한 발견 고전2:6-14  조용기 목사  2011-04-02 1649
4968 고린도후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후12:7-10  조용기 목사  2011-04-02 2420
4967 고린도전 예비하시는 하나님 고전2:9  조용기 목사  2011-04-02 1729
4966 고린도후 이유 없는 고난 고후4:11  조용기 목사  2011-04-02 2400
4965 마태복음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마6:24-34  조용기 목사  2011-04-02 2206
4964 요한복음 사순절에 읽는 공짜 복음 요3:16-18  하원양 목사  2011-04-02 7656
4963 창세기 믿음의 선택 창13:1-18  한태완 목사  2011-04-02 5245
4962 시편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영혼 시42:1-11  한태완 목사  2011-04-01 3555
4961 창세기 행복한 부부 창2:18-25  한태완 목사  2011-03-31 4985
4960 마가복음 간절한 믿음 막5:22-34  연규홍 목사  2011-03-31 2229
4959 욥기 고난의 배후에 있는 것 욥1:6-12  한태완 목사  2011-03-31 2611
4958 마태복음 네 이웃을 사랑하라 마22:39  한태완 목사  2011-03-31 3118
4957 시편 희망은 사람을 살리는 힘 시146:5  한태완 목사  2011-03-31 2331
4956 창세기 아브라함의 소명과 복 창12:1-20  한태완 목사  2011-03-31 2811
4955 고린도전 영성 목회로 성숙되는 교회 고전3:12-18  김영봉 목사  2011-03-30 2318
4954 빌립보서 우리를 깨우는 나팔소리 빌2:6-11  김영봉 목사  2011-03-30 2480
4953 골로새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비" (Mystery That We Should Seek) 골2:1-5  김영봉 목사  2011-03-30 2531
4952 디모데전 저속하고 헛된 꾸며낸 이야기들"(Godless and Silly Stories) 딤전4:6-10  김영봉 목사  2011-03-30 2267
4951 요한복음 진리를 위해, 진리를 따라"(For Truth and By Truth) 요8:31-38  김영봉 목사  2011-03-30 2661
4950 에스겔 시간이 없다!"(Time Is Short) 겔7:1-7  김영봉 목사  2011-03-30 2312
4949 에스겔 내 하나님은 나보다 작다!" (My God Is Smaller Than I Am!) 겔6:1-7  김영봉 목사  2011-03-30 2997
4948 에스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몽당연필"(A Worn-out Pensil Held by God) 겔5:5-7  김영봉 목사  2011-03-30 3464
4947 에스겔 우리를 부르신 이유"(Why He Called Us) 겔4:1-6  김영봉 목사  2011-03-30 3939
4946 에스겔 내 안에 있는 것이 나를 움직인다"(Driven By What's Inside) 겔3:1-3  김영봉 목사  2011-03-30 4799
4945 시편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지심 시40:1-17  한태완 목사  2011-03-30 3236
4944 시편 눈물 양식 시80:5  한태완 목사  2011-03-29 2070
4943 사무엘상 때를 기다리는 사람 삼상26:21-25  한태완 목사  2011-03-29 2544
4942 누가복음 예수님과 강도 눅23:39-42  이원준 목사  2011-03-29 2683
4941 고린도후 참된 소망 고후4:16-18  강종수 목사  2011-03-27 2610
» 고린도전 모범을 보여라 고전4:16  한태완 목사  2011-03-26 2116
4939 야고보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약1:12-18  황광민 목사  2011-03-26 2753
4938 고린도전 약한 자여 기뻐하라 고전1:26-31  김삼환 목사  2011-03-26 2584
4937 이사야 쉬운 일, 어려운 일 사42:1-9  하원양 목사  2011-03-26 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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