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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미술 5 천년 전"이 미국에서 꽤 장기간 열렸을 때 전시가 끝나갈 무렵 영국, 프랑스, 서독, 네델란드 등 유럽 쪽에서도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쇄도했다고 합니다. 그 때 국립중앙 박물관장은 "물건도, 거기 딸린 사람도 쉬어야 하니까요."라고 정중하게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물건도 쉬어야 합니다. 생명이 없는 것 같은 물건도 수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이나 물건이나 휴식이 필요합니다. 인간은 더욱 말할 것이 없습니다. 휴식이 없는 인간 사회란 상상하기 힘들 것입니다. 휴식은 인간의 삶에 활력과 윤택함을 선사할 것입니다. 본격적으로 휴가철이 되었습니다. 경제난으로 움추러 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휴가 계획을 가지고 계신 분이 많을 것입니다.

 

바캉스의 종주국인 프랑스 사람들은 장장 5주 동안 바캉스를 즐기는데 정열적이라고 합니다. 1년 전부터 바캉스 계획을 세우고 검소하다는 독일인 보다 더 절약했다가 모두가 휴가를 떠나 휴가에서 몽땅 써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캉스 계절이 되면 집도, 도시도 온통 텅텅 비는 공동화(空洞化)현상이 빚어지고 교회도 한달 동안 문을 닫는 데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안되지만 여름 휴가를 필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긴 것 같습니다. 옛날 우리의 선인들은 더위를 피하기보다는 내서를 했고, 더위를 씻어내는 척서의 슬기를 보였으며, 나아가서는 더위를 즐기는 완서의 경지에까지 이르렀다는 말을 듣지만 오늘 현대인들은 여름철 시원한 바다나 깊은 산에 들어가 자연을 벗삼아 며칠이나마 더위를 피하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휴가가 산업 현장 속에서의 긴장과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돼 심신을 재충전하는 좋은 기회가 되기보다는 심신의 피로를 더 가중시키는 기간이라면 그 휴가는 차라리 없는 것이 좋을 지도 모릅니다. 바캉스는 글자 그대로 일상 생활의 잡다한 상념과 스트레스를 비워버리고 생활에 새활력소를 충전하자는 데 있습니다.

 

휴가 길이 귀중한 시간과 돈 그리고 체력까지 낭비해 가며 짜증과 스트레스가 쌓이는 지옥길이 된다면 휴가는 삶의 윤택함보다는 삶의 리듬을 파괴하는 것에 불과 할 것입니다. 교통란, 숙박난과 바가지 요금, 각종 무질서의 횡포, 쓰레기와 오물천지로 인한 자연 환경 파괴, 편싸움과 성폭행, 청소년 탈선, 각종 범죄의 범람, 물놀이와 교통 사고 등으로 얼룩진 휴가라면 그 후휴증은 두고 두고 삶을 괴롭힐 것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습관적, 반복적, 기계적으로 일만 해야 하는 샐러리맨들에게 여름 휴가가 주는 맛은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휴가가 참된 휴식 재충전의 기회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신앙인은 어떻게 휴가를 보내야 하겠습니까? 먼저 계획이 필요합니다. 많은 신앙인이 가족끼리 친구끼리 비 신앙인과 별다른 차이 없이 산으로 바다로 피서를 떠납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 편안히 쉴만한 건전한 휴식 공간이 부재한 현실 속에서 믿는 이들은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상처로 안고 돌아오는 것이 태반입니다. 휴식을 통하여 삶을 즐기고 신앙의 재충전을 받기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오늘의 피서지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철저히 장소와 계획을 준비한 상태에서 휴가를 떠나는 것이 좋습니다. 년마다 달리하여 가족이 봉사 휴가, 선교 휴가, 기도원 휴가, 여가 휴가 등과 같이 가족이 합의한 가운데 특징을 살려 휴가를 떠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다음은 심신의 피로를 씻고 신앙적 삶을 재충전하는 휴가가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보다는 한 식구가 따뜻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심신의 피로를 씻고 가족의 사랑을 더 돈독히 해야 할 것입니다. 쾌락 지향적인 휴가보다는 지나온 자신의 삶을 살펴보고, 미래를 계획하며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자기 성찰을 하여 삶의 활력을 얻는다면 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휴가이겠습니까? 자연의 생태계는 여지없이 파괴되고 인간생존권 마저 위협을 당할 정도로 우리들 주변의 공기와 물, 흙의 오염도가 위험수위에 오른 도시 산업사회에서 신앙마저 오염되어 몰살을 앓고 있는데 휴가 가서까지도 신앙이 심각한 손상을 입는다면 신앙인은 어디에서 재도약의 도화선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조용한 기도원에 온 가족이 가서 휴가를 보내는 것도 좋고 교회에 건전한 기독교 단체에서 행하는 가족 캠프에 온 가족이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고백처럼 "주님 안에서 내가 안식을 얻기까지는 어디에서도 안식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은 오늘도 신앙인에게 있어서는 진리입니다.

 

휴가 가야할 이유가 있는 우리 가족만의 독특한 휴가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할 것입니다. 메스컴에 나오는 선진국의 바캉스 문화를 흉내냈다가는 뱁새가 황새 걸음을 따라 가려는 꼴이 될 것입니다. 남들이 간다고 덩달아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아무 생각 없이 휴가를 떠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신앙인의 피서 문화가 필요합니다. 시골 고향에 온 가족이 가서 봉사하는 것도 좋고 조금 여유가 있다면 교회 선교지를 찾아가 교회에서 파송한 선교 체험을 해 보는 것도 영원히 잊지 못할 귀중한 휴가가 될 것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어려운 사람들을 찾아가 봉사하는 봉사 휴가도 참으로 귀중한 재충전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진정한 휴식, 진정한 안식이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고백하는 신앙인들은 매년 휴가마다 휴가지의 추억이 자신들의 가슴속에 두고두고 고귀한 보화로 남아 참된 안식의 향기가 되어 삶의 현장 구석구석까지 스며들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휴가라고 해서 복음의 레일을 떠나 자유가 넘실거리는 향락의 바다에 몸과 마음을 던져서는 안됩니다. 휴가를 통하여 삶이 더 풍요로워지고 신앙 생활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

980802 김필곤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