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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하나님은 나보다 작다!" (My God Is Smaller Than I Am!)

에스겔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997 추천 수 0 2011.03.30 17:08:26
.........
성경본문 : 겔6:1-7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06. 2. 19 김영봉 목사

신년 특별 5회 연속 설교: 새해에 받은 말씀(4) "내 하나님은 나보다 작다!" (My God Is Smaller Than I Am!)

에스겔 6:1-7; 마태복음 5:43-48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의 우상과 신전들을 파괴하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강조합니다. 차별 없이 모든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하심입니다.
1.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전과 우상들을 심판하심으로 이루고 싶어 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겔 6:7)

2.십계명의 첫 두 계명은 무엇입니까?(출 20:3-6)

3.'하나님의 온전하심'(마 5:48)은 하나님의 어떤 성품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본문 안에서 찾아 보십시오.

 

토의할 질문

1. 우상숭배의 세 가지 유형이 무엇인지 다시 정리해 보십시오. 나에게는 어떤 우상숭배가 있는지 서로 나누어 보십시오.
2. 하나님께서 '내가 섬기는 우상'을 파괴하도록 명령하셨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섬기는 우상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을 받드는 사람들은 다른 종교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3.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선교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설교에서 언급한 데이빗 쉥크의 말을 참고로 토론해 보십시오.

4.선교사들을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1.

얼마 전에 덴마크(Denmark)에서 일어났던 이슬람교 신성 모독(blasphemy) 사건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슬람교의 교주(founder)인 모하메드(Muhammad)가 심지에 불붙은 폭탄 모자를 쓰고 있는 사진이 문제의 원인이었습니다. 보도에 의하면, 이 만화는 지난 해 9월 30일에 '질란드스 포스텐'(Jyllands-Posten)이라는 신문에 실렸던 것인데, 올해 1월 초에 덴마크의 한 기독교 신문에 다시 실리면서 파장이 일어났습니다. 이 만화에 암시된 메시지는 이슬람교가 처음부터 테러의 종교였다는 것입니다. 그 만화를 보면, 모하메드는 영락없는 자살폭탄 테러리스트(suiside bomber)로 보입니다.

 

이 만화가 인터넷을 통해 이슬람 세계에 퍼져 나가자 세계의 기류가 다시금 뒤숭숭해졌습니다. 가뜩이나, 이슬람 문명과 기독교 문명의 대 충돌을 염려하고 있는 시기에 또 하나의 예민한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이슬람 세계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자, 기독교계에서는, "이슬람 교도들이 기독교에 대해 자행해 온 폭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을 두고, 공연히 트집 잡는다"고 불평하기도 합니다. 이 불평에도 일리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맞서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닙니다. 혹시 상대방은 칼로 우리를 향해 오더라도, "칼을 쓰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한다" (마 26:52)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십시오"(롬 12:17)라는 바울 사도의 말씀을 기억한다면, 이 사건에 대해 우리 기독교인들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 대한 뉴스를 접하는 순간, 저에게는 몇 년 전에 한국에서 일어났던 불상 훼손(mutilation of Buddhist statues)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1998년 6월 26일 아침, 제주시 화복동 원명선원의 정원에 전시되어 있던 불상 750점의 머리 부분이 모두 잘려나간 것이 발견되었습니다. 현장에서 잡힌 범인 김아무개씨(당시 32세)는 "절을 모두 교회로 바꾸기 위해 불상을 파괴했다"고 자백했습니다. 이 사건은 어쩌다가 한 번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요즈음에는 그런 일이 거의 없습니다만, 약 10여년 전에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불교 대학교인 동국 대학교의 교정에 있는 불상에 누군가가 빨간 페인트로 크게 X자를 쓰고는 그 밑에 "오직 예수"라고 글을 써 놓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현직 목사와 신도들이 안성에 있는 청룡사 대웅전에 쇠파이프를 들고 난입해 불상을 부수고 탱화(Buddhistic icon)를 찢기도 했습니다.

 

이런 뉴스를 접하면서 저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깊은 수치심을 느끼곤 했습니다. 제가 이 뉴스에 수치심(sense of shame)을 느낀다는 말을 듣고는 제 신앙심을 의심하는 분들이 계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우리 와싱톤한인교회에는 그런 분이 계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전반적인 의식 수준으로 볼 때, 그리고 통계적(statistically)으로 볼 때, 그 사건을 통해 수치심을 느끼기보다는 통쾌한 감정을 느끼는 분들이 없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게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의 부족한 열심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계신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표현하기 위해 분연히 쇠파이프를 들고 사찰이나 모스크를 습격하고 싶은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2.

저는 오늘, '새 해에 받은 말씀'이라는 5회 연속 설교 중 네 번째, "현대판 우상을 타파하라"는 말씀을 생각해 보려 합니다. 아마도, 이 제목을 보고는, 제가 "기독교 이외의 모든 종교들을 박멸하자"고 말씀드릴 것을 기대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기독교는 처음부터 우상에 대한 깊은 혐오감을 가지고 시작되었습니다. 구약성서로부터 끊임없이 경고되어 온 가장 심각한 죄가 바로 우상 숭배(idolartry)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모든 율법의 기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의 첫 두 계명도 바로 우상 숭배에 대해 경계합니다.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판한 가장 큰 이유도 우상 숭배였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우상을 제거하라", "우상을 파괴하라"고 요청합니다.

 

오늘 읽은 에스겔 6장에서 우리는 동일한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택한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우상 숭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산마다, 계곡마다 산당과 번제단을 만들어놓고, 우상들에게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믿었거나, 혹시 하나님이 계시더라도 아무런 힘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하고 싶은대로 살아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아무런 행동도 하실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우상을 위해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이 즉각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일이 잘 되어가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지 않으신 것은 그들이 제 정신을 차려 스스로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기다리신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없신 여겼습니다. 아무 말 없이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더 두려워해야 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오히려 우습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행동을 시작하시겠다는 겁니다. 참된 하나님, 살아계신 참된 주님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보이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상 숭배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우상을 없애버리라고, 우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가 끝까지 우상에게 빠져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손을 들어 우리를 내려 치신다는 겁니다. 우상 숭배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기 위해 최악의 수단을 사용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기억할 것은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안에 있는 우상'(idols within our territory)을 제거하고 파괴하라고 명령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영역에 침입하여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을 자세히 살펴서, 우리가 섬기고 있는 우상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우선적인 관심은 언제나 '우리의' 우상 숭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을 타파하라'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 쇠파이프를 들고 다른 사람들의 영역에 침입하여 우상을 파괴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은 것이 아닙니다.

 

둘째로 기억할 것은 하나님께서 왜 우상 숭배를 이렇게도 혐오하시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십계명을 주시면서 하나님은 "나, 주 너희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출 20:5)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을 잘 못 들으면, 마치 하나님이 애정 결핍증에 시달리는 분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절절한 사랑의 표현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인간이 섬길만한 대상 중에 인간을 진실로 사랑하고 자유케 하며 복되게 하는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도, 인간의 섬김의 대상이 되는 순간, 인간은 그 노예가 되어버립니다. 그것이 다른 영적 존재이든, 물질이든, 사람이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것은 우리 인간보다 작은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섬기는 순간 속박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보다 크신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3.

제가 불상 훼손 사건에 대한 뉴스를 들으면서 수치심을 느낀 이유가 이제는 좀 해명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일을 행한 분들은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고 기독교의 세력을 더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은 그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더럽혀지고, 선교의 길은 더욱 막혀 버렸습니다. 그 행동을 보고 "아, 기독교가 참된 종교구나!"라고 깨닫고 마음을 고쳐 먹을 사람이 하나라도 있겠습니까? 머리가 잘려나간 불상을 보고, "아, 역시 기독교가 세구나!"하고 생각하고 개종할 불교인이 하나라도 있겠습니까? 오히려, 이 일을 보고, "다른 것은 몰라도, 기독교인은 되지 않으리라!"고 결심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선교의 출발점은 내 안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내 신앙을 참되게 회복하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참된 하나님을 드러내 보일 때, 그 때 다른 사람들은 내 종교에 관심을 보일 것이고, 때가 되면 그들 스스로 자신의 우상을 제거하고 참된 하나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덮어놓고 다른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을 파괴시킨다고 해서 선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선교를 막는 일이 됩니다.

 

선교의 목적은 기독교의 세력을 확장하자는 데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해외 선교에 관한 글을 읽을 때마다 제 마음에 석연치 않은 느낌이 일 때가 있습니다. 해외 선교에 대한 논의가 마치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세력 다툼'처럼 진행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교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교는,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실 때에만 가능하다는 것을 믿고, 겸손히 나의 삶과 믿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타파하여 참된 신앙으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참된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 나온 어느 기독교 저널에서, 매우 엄격한 이슬람 지역에서 사역을 하는 데이빗 쉥크 (David Shenk)의 대담을 읽었습니다. 그는 그 지역의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고, 그들을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신실한 사랑과 낮아짐의 진리를 나타내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그 지역의 단체장이 그를 사무실로 불렀답니다. 그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이슬람을 떠나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당장 모든 사역을 중지하지 않으면 중대한 사태가 올 수 있다고 협박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데이빗 쉥크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내가 기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만일 이것이 문제라면 내일이라도 사무실의 문을 닫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겠습니까? ('목회와 신학', 2006년 2월호, 177쪽).

 

그 단체장은 이 대답에 할 말을 잃고 그냥 일을 지속하도록 허락했다고 합니다. 이번에 방문했던 방글라데시 개발 협회(KDAB)도 역시 이와 같은 정신으로 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사역의 우선적인 목적은 모슬렘들을 개종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 즉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을 보살피는 일을 정성들여 할 뿐입니다. 그러는 가운데서 자신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이 드러나기를 기대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에 대해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하나님을 만나야만 온전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기에, 하나님께서 거기까지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정성을 다해 섬기는 것뿐이었습니다.

 

참된 선교는 결코 다른 종교를 원수로 두고 그것을 박멸하려는 열심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는 선교는 오히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뿐입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선교의 결실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선교의 사역을 방해합니다. 저는 방글라데시에 가서야 비로소, 지난 수 세기 동안의 잘못된 선교 활동으로 인해 모슬렘들이 기독교인들을 얼마나 지독하게 증오하고 의심하고 경계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문제가, 내 안에 있는 우상은 그대로 두고 다른 사람이 섬기는 우상만을 파괴하려 했던 잘못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 그분이 진정으로 참된 하나님이라면, 그분을 의지하고, 모든 사람들을 형제, 자매로 받아주고 선대하십시다.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까지도 주의 사랑으로 선대하십시다. 살아계신, 참된 우리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믿으십시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시듯,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온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온전하도록 힘쓰십시다. 참된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애틋한 사랑으로 모든 사람들을 대하십시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겸손하고 진지하게 나누십시다. 미움으로는 아무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4.

그러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우상을 타파하는 일입니다. 내 안에 있는 우상, 우리 안에 있는 우상을 찾아서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여 참된 신앙을 회복해야 합니다.

 

크게 보면, 세 종류의 우상 숭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입니다. 실상 '다른 신'은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씀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알기로는, 세상에 우상이란 것은 아무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신이 없습니다"(고전 8:5). 우리가 '신'이라고 부를만한 존재는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있다면, 실은 신이 아닌 것을 신으로 섬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보다 크신, 참된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작은 무엇을 신으로 만들어 섬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에 인도 종교에 대한 다큐멘터리(documentary)를 보았는데, 한 부족은 쥐를 신으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쥐가 득실대는 곳에서 그것들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이 아닌 것을 신으로 섬기는 것이 얼마나 불행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둘째, 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놓고 섬기는 종류의 우상 숭배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이런 잘못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런 잘못에 더욱 잘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리'라는 말은 내 마음의 가장 높고 중요한 자리를 말합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무엇이 최대의 관심사 (the ultimate concern)가 되면, 그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돈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돈이 우상이 된 것입니다. 예뻐지는 것이 최대의 관심사가 될 수 있습니다. 유명해지는 것이 최대 관심사가 되기도 합니다. 승진하고 출세하는 것이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골프에 사로잡힐 수도 있고, 노름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성적인 쾌락에 사로잡힐 수도 있고, 낚시에 사로잡힐 수도 있습니다. 뭐든지, 내 마음을 사로잡아 나로 하여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을 마비시키는 것이 바로 우상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것들 대부분은, 잘 통제하면, 우리 인생에 유익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그것에 의해 사로잡혀 통제력을 잃어버리면, 우리 인생은 낭패를 보게 됩니다.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하나님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연예인이나 정치인을 우상으로 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상대방을 위해 잘 하는 것처럼 착각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하나님의 자리에 두고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참된 위치를 알고 사랑할 때,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깨닫고, 언젠가

이런 기도문을 제 기도 일기에 쓴 적이 있습니다.

 

알게 하소서, 제가 제 자식의 진짜 아비가 아님을.
참된 아버지를 만나 함께 살 때까지
잠시 맡아 기르는 양아버지임을.

알게 하소서, 제가 제 아내의 진짜 남편이 아님을.
참 신랑에게 돌려보낼 때까지
함께 지내는 동무임을.

알게 하소서, 제가 교인들의 진짜 목사가 아님을.
참된 목자께 그들을 안내하고 물러서야 함을.

알게 하소서, 제가 제 자신의 진짜 주인이 아님을.
참된 주인을 만나
그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도록 인도하는
관리인일뿐임을.

오, 아버지!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고, 행하게 하소서.
('사귐의 기도를 위한 기도선집', 140쪽)

 

5.

셋째, 가장 교묘한 형태의 우상 숭배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허울 속에서 실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참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이름짓고 섬기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8장을 읽어보면, 예루살렘 성전 내부에 있는 벽에 온갖 불결한 짐승의 그림과 이방 신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그 우상에게 절을 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허울 아래 실은 우상을 섬기고 있는 영적 타락을 상징합니다.

 

이 영적 타락이 우리 한국 교회 안에 얼마나 널리 그리고 깊이 퍼져 있는지요! 참된 하나님을 믿는 일은 실로 위험 천만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예상과 기대를 항상 뛰어 넘으십니다. 그분은 늘상 새로운 차원을 드러내심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십니다. 우리가 예상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언제나 예상을 깨뜨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런 분을 섬기고 살아간다는 것은 모험적인(adventurous) 일입니다. 하지만 그분이 우리보다 크시기 때문에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진정한 행복이 있음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그분을 믿고 따릅니다.

 

하지만 이런 용기를 가진 신자들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놀래키지 않는 하나님, 예상 안에서 움직이시는 하나님, 언제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하나님, 언제나 곁에 있어서 자신의 요청을 들어주는 하나님을 더 원합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하나님을 축소시키고 박제시켜(stuffed) 예배당 안에 걸어두고, 정기적으로 그 '우상 하나님'(idol god) 앞에 와서 복을 빕니다. 그 '우상 하나님'은 언제나 잔잔한 미소로 그들을 맞아 주고, 아무런 요구도 없이, 그들이 원하는 것을 들어줍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참된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은 우상을 섬기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리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다"라고 목청을 돋굽니다. 그러나 살아가는 것을 보면, 믿지 않는 사람과 별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아니,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만도 못합니다.

 

독일 신학자 본 회퍼(Bon Hoeffer)는 "네가 제단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다가, 네 형제나 자매가 네게 어떤 원한을 품고 있다는 생각이 나거든, 너는 그 제물을 제단 앞에 놓아두고, 먼저 가서 네 형제나 자매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 제물을 드려라"(마 5:23-24)는 말씀을 해석하면서, 만일 누구에겐가 원한을 품은 채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면서 복을 빈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섬기는 것이라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The Cost of Discipleship>). 이 예는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습니다. 부부 간에 절대 양보 없이 아웅 다웅 다투다가, 주일 아침이 되면 말끔히 차려 입고 나와 예배를 드리고, 예배 후, 차에 올라 타자 마자 다시 싸움을 시작합니다. 그분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 아니라 우상을 예배한 것입니다. 예배 전에 파킹장에서 사소한 일로 다른 사람과 말다툼을 하고, 예배 후에도 여전히 분이 삭지 않아 당사자를 찾아가 험한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한 것이 아니라 우상을 예배한 것입니다. 이런 예를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지만, 혹시나 여러분 중에 "내가 그러는 거, 언제 봤지?"하고 상처 받을까봐 그만 하겠습니다.

 

반면, 만일 예배 드리고 나서 마음에 깊은 가책이 생겼다면, 예배 드리고 나서 마음에 큰 부담을 받았다면, 예배 드리고 나서 마음에 큰 도전을 받았다면, 예배 드리고 나서 그 동안의 생각과 방향과 가치관이 온통 흔들려 버렸다면, 그렇다면 우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예배 드리고 나서, 속히 뭔가 하지 않고는 안 될 일을 찾았다면, 우상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보다 크시기 때문에 그분을 만나고 나면 이런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드리려는 말씀의 요지는 이겁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하나님이 무엇을 요청하시는지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우상 숭배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위험 천만한 우상 숭배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장 빠지기 쉬운 우상 숭배입니다. 한국 교회에 가장 흔한 우상 숭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 자신에게 냉정하게 물어 보십시다. 내 하나님은 나보다 크십니까? 내 하나님은 내가 만든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 예수께서 계시하신 하나님입니까? 내 하나님은 나를 언제나 두둔하고 위로하는 분입니까, 아니면 나를 항상 놀라게 하는 분입니까? 과연, 나는 살아계신 참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상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6.

모두들, 지금이 기독교의 위기라고 말합니다. 기독교가 위기를 만난 것은 생명을 바쳐 기독교를 위해 싸울 신자들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다른 종교가 기독교 세계를 위협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기독교가 위기를 만난 진정한 이유는 기독교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우상 숭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열고, 늘 새롭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찾고 따르는 진정한 용기의 사람들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부르십니다. 내 안에 있는 모든 우상들을 깨끗이 치워버릴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늘 새롭게 계시하시는 참된 하나님 앞에 설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부르십니다. 우리를 희망으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새해 벽두에 "현대판 우상을 타파하라"는 말씀을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를 그리고 우리 교회를 희망의 불씨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아, 이 부름에 우리 모두 응답하여, 순결한 신앙을 회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리고 이 순결한 신앙의 불길이 온 누리로 퍼져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주여, 이 소원을 허락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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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64 요한복음 사순절에 읽는 공짜 복음 요3:16-18  하원양 목사  2011-04-02 7656
4963 창세기 믿음의 선택 창13:1-18  한태완 목사  2011-04-02 5245
4962 시편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영혼 시42:1-11  한태완 목사  2011-04-01 3555
4961 창세기 행복한 부부 창2:18-25  한태완 목사  2011-03-31 4985
4960 마가복음 간절한 믿음 막5:22-34  연규홍 목사  2011-03-31 2229
4959 욥기 고난의 배후에 있는 것 욥1:6-12  한태완 목사  2011-03-31 2611
4958 마태복음 네 이웃을 사랑하라 마22:39  한태완 목사  2011-03-31 3118
4957 시편 희망은 사람을 살리는 힘 시146:5  한태완 목사  2011-03-31 2331
4956 창세기 아브라함의 소명과 복 창12:1-20  한태완 목사  2011-03-31 2811
4955 고린도전 영성 목회로 성숙되는 교회 고전3:12-18  김영봉 목사  2011-03-30 2318
4954 빌립보서 우리를 깨우는 나팔소리 빌2:6-11  김영봉 목사  2011-03-30 2480
4953 골로새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비" (Mystery That We Should Seek) 골2:1-5  김영봉 목사  2011-03-30 2531
4952 디모데전 저속하고 헛된 꾸며낸 이야기들"(Godless and Silly Stories) 딤전4:6-10  김영봉 목사  2011-03-30 2267
4951 요한복음 진리를 위해, 진리를 따라"(For Truth and By Truth) 요8:31-38  김영봉 목사  2011-03-30 2661
4950 에스겔 시간이 없다!"(Time Is Short) 겔7:1-7  김영봉 목사  2011-03-30 2312
» 에스겔 내 하나님은 나보다 작다!" (My God Is Smaller Than I Am!) 겔6:1-7  김영봉 목사  2011-03-30 2997
4948 에스겔 하나님의 손에 들려진 몽당연필"(A Worn-out Pensil Held by God) 겔5:5-7  김영봉 목사  2011-03-30 3464
4947 에스겔 우리를 부르신 이유"(Why He Called Us) 겔4:1-6  김영봉 목사  2011-03-30 3939
4946 에스겔 내 안에 있는 것이 나를 움직인다"(Driven By What's Inside) 겔3:1-3  김영봉 목사  2011-03-30 4799
4945 시편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지심 시40:1-17  한태완 목사  2011-03-30 3236
4944 시편 눈물 양식 시80:5  한태완 목사  2011-03-29 2070
4943 사무엘상 때를 기다리는 사람 삼상26:21-25  한태완 목사  2011-03-29 2544
4942 누가복음 예수님과 강도 눅23:39-42  이원준 목사  2011-03-29 2683
4941 고린도후 참된 소망 고후4:16-18  강종수 목사  2011-03-27 2610
4940 고린도전 모범을 보여라 고전4:16  한태완 목사  2011-03-26 2116
4939 야고보서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약1:12-18  황광민 목사  2011-03-26 2753
4938 고린도전 약한 자여 기뻐하라 고전1:26-31  김삼환 목사  2011-03-26 2584
4937 이사야 쉬운 일, 어려운 일 사42:1-9  하원양 목사  2011-03-26 2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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