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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을 사랑하라

마태복음 한태완 목사............... 조회 수 3118 추천 수 0 2011.03.31 19: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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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2:39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네 이웃을 사랑하라
본문 : 마22: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은 당연히 지켜야 할 가장 큰 계명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마치 부모님께서 자녀들이 부모님을 공경하고, 또 형제 자매간에 우애와 사랑으로 살기를 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자녀가 그 부모를 닮듯이 우리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형제를 멸시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가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예물을 드리며 찬송하면서도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이웃 사랑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내 이웃에게 어떤 사랑을 줄 까를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우스겟 소리가 있습니다. 중년의 두 친구가 우연히 만나, '자네 부인 죽었는가 ?'하자, '내 복에 벌써 죽었겠는가!'하더랍니다. 처음 연애를 하는 남녀는 어느 쪽이나 모두 자기들의 사랑이 영원할 것을 기대합니다. 적어도 자기들의 사랑만은 결코 종말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흔히 권태로 성장해 가는 작은 균열이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서서히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아무튼 한때는 서로 떨어져 살 수 없었던 남녀가 결과적으로 만나지 않았어야 좋았을걸 하는 것처럼 큰 비극은 없습니다.

세상에 남을 괴롭히고서 스스로 괴로움 받지 않는 자는 없습니다. 많은 다른 짐승을 괴롭히는 사자는 많은 기생충의 괴로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기생충에는 또한 기생충이 있어서, 그 기생적 생활로 하여금 불안케 하고 있습니다. 남을 괴롭히는 것은 자기를 괴롭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한번은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시험받기 위해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율법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에게 율법에는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고 너는 어떻게 읽느냐? 고 반문하셨습니다. 이 때 이 율법사는 아주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계시던 예수님은 네 대답이 옳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 때 이 율법사는 예수님에게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고 되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대답 대 신에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시고 결론으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도 그렇습니다마는 이웃을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 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무엇인가 아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그렇게 해야겠다는 마음의 다짐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사랑은 실제로 행하는데 있습니다.

 

 어떤 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대개의 사랑은 혀끝에 있습니다. 그런데 참 사랑은 손끝에 있습니다. 의미 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믿음인 것처럼 실천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7-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물이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워 올 때의 특색 가운데 하나는 믿는 자를 찾기 어려워지고, 사랑하는 사람이 적어지고, 사랑이 식어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믿는 사람의 수가 많아졌는데 왜 이런 말씀이 있을까요? 이 말씀은 믿는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 그러니까 교회에 적을 둔 교인은 많지마는 참으로 믿는 신자는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말씀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대개의 사람들이 자기 중심으로 믿는다고 하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니란 말입니다. 참 믿음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모든 것을 믿음의 대상인 주님을 온전히 의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입으로 사랑을 외쳐 보아도 마음과 생활을 통해서 사랑이 나타나지 않으면 이것처럼 가증스러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합니까? 그 대답이 요한 1서 4장 7절 이하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죄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 내셨음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러면서 20절 이하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여기 계명이란 말씀이 나오지요.

 

요한복음 13장 34-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리라. 계명이란 하지 말라 하는 것을 하면 죄가 되고, 하라는 것을 하지 아니하면 죄가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십계명 중에 어느 계명을 범하게 되면 내가 어느 계명을 범했다고 말을 하면서 이 새 계명을 범하면서도 계명을 범한다고 의식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습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도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 중에 하나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 요한 의 증거대로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라 고 한 것은 옳은 말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사랑처럼 아름다운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교회에 있는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에 대하여 언급하다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2장 마지막 부분에 가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 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 하면서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에 대해서 말씀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 고 말씀합니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가 아닙니다. 돈 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권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해박한 지식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놀라운 재능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적으로 말해도 그렇습니다. 방언을 하고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언을 하고 하늘에 대한 비밀을 알고 모든 지식이 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네게 있는 모든 것 가지고 어려운 사람을 구제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 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산을 옮기는 믿음이 있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 사랑의 요소를 제거하면 남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실 아무것 도 없습니다. 사랑처럼 귀한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구체적입니다. 가령, 부부간에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의 교훈을 보면 아내가 남편을 사랑할 때에 교회가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듯이 순종하므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더구나 남편에게 대해서 불평하는 마음을 품지 않아야 합니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골의 말이 사랑의 별명은 이해라고 했습니다. 이해하는 사람은 불평하지 아니합니다. 영어로 이해라는 말을 understanding 이라고 하는데 그 뜻은 밑에 선다는 것입니다. 우리말로 그 입장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면 불평할 일이 없습니다. 더구나 남편이 수입이 적다고 바가지 긁지 말아야 합니다. 생활비 조금 가져오면 요것 가지 고 어떻게 살아요? 하면서 불평하지 말고 오죽하면 요것밖에 가지고 오지 못할까? 고 이해해야 합니다. 생활비 적다고 불평만 하면은 남편이 무엇입니까? 도둑질해야지요. 그래서 부정 부패가 생기는 게 아닙니까? 잠언에 보면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 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했습니다. (잠21:9, 25:24) 여러분의 남편을 따뜻하게 대해 주세요. 아내 된 여러분의 부드러운 위로와 격려의 말 한마디가 피곤하던 남편의 마음에 활기를 더해 줍니다. 사실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할 때 그리스도가 그 몸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주심 같이 아내에게 모든 것을 주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3장 7절에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 남편 하나 믿고 와서 모든 수고 다하는 아내를 위해 주어야 합니다. 집에 있는 아내에게 오후에 전화 한 통이라도 걸어 주면 아내가 그렇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남편의 사랑스러운 전화를 받은 아내는 힘든 것 모르고 행복해 한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의 가정을 간섭하는 말은 아닙니다마는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실 때 인색하지 마십시오. 형편에 따라서 한 달에 한 번 봉 급 봉투를 아예 맡기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사업하시는 분은 한 달이나 보름에 한 번씩 주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혹 어떤 경우에는 그 때 그때 필요한 만큼 아내가 요청하는 대로 주시는 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색하지 마세요. 두부 값 얼마? 콩나물 값 얼마? 쌀 두말은 많고 한말만 사지. 왜 요새 생선 값이 그렇게 많이 올랐지? 하면서 부들부들 떨지 마세요. 그런 남편하고 사는 아내의 말을 들어보니까 아니꼽고 치사하데요. 그 생활비 누구 대접하는 것입니까? 남편 대접하고 자녀를 위해 쓰는 것인데 왜 인색합니까? 부부간에 사랑해야 그 가정에서 자라는 자녀들이 바로 자랄 수가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사랑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보이는 부모를 위하지 못하면서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자녀의 효성을 받는 부모는 그렇게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해서도 마음만 품어도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보셨다고 하면서 그 마음을 받으셨다 고 했습니다. 성도간에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 주안에서 형제 자매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한 교회에 다니면서도 사이가 좋지 않아서 얼굴을 돌리는 분이 있는 모양인데 이런 마음을 품고는 하나님께 예배드린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이 1부 예배에 나온다니까 나는 아예 3부 예배에 나가는 게 좋겠다고 해서 그래야 만나지 않으니까 예배 출석 시간을 달리하는 이도 있을 수 있는데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예배는 받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며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예물을 가지고 가다가 형제에게 원망을 들을 만 한 일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두고 먼저 형제와 화해하고 그리고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료끼리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민족도 초월하고, 국경도 초월하고, 계급도 초월하고 누구든지 나와 접촉되는 사람은 이웃으로 알고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 사랑하라 는 말은 어떤 사람은 사랑하고, 어떤 사람은 사랑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유대인이나 사마리아인이나 분별할 것이 없습니다. 유식하든지, 무식하든지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부한 사람이든지 가난한 사람이든지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어떤 때는 부한 사람은 사랑하기 쉽지만 가난한 사람은 멸시하기 쉽습니다. 어떤 때는 오히려 그와 반대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자는 사랑하기가 대단히 어렵고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가 쉽습니다.

 

사랑하라는 말은 어떤 사람이 성공할 때에만 사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실패할 때에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표준이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얼마나 사랑합니까? 자신이 잘못했을 때 어떻게 합니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양해하고 용서합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하고도 아, 그거야 내가 하기 싫어서 안 했나? 그저 그때 사정이 부득이 해서 그랬지. 그 때는 너무 피곤해서 그랬기 이렇게 자기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는 양해를 잘 합니다. 어떤 때는 안 해야 할 말을 하고도 아 그거야 내가 뭐 그런 말을 하고 싶어서 했나? 상대방 이 먼저 그러니까 나도 그런 말을 하게 됐지 합니다. 사람이 그저 자기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는 늘 이해하고, 용서도 하고, 변명도 합니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다른 사람이 잘못해도 혹 무슨 실수를 해도 양해해 주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 용서해 준 것만큼 용서해 주라는 뜻입니다. 물론 자기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자신에 대해서 성을 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대한 것에 비하면 성을 더디 냅니다. 혹 성이 난다고 해도 오래 자기 아니합니다. 잠깐 있다가 그 노는 곧 풀리고 맙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노랄 일 이 있다고 하더라도 할 수 있는 대로 노하기를 더디 하고 혹 노했다 할지라도 그 노를 오래 품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에 보면 분을 내오고 죄를 짓지 말고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했습니다. 언제든지 내 마음속에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분한 마음을 풀지 아니하고 오래 품고 있으면 결국은 내가 손해를 받을 뿐더러 분한 마음을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아니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 자신을 용서한다면 내가 내 이웃의 죄도 용서해 주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보통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시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가 잘 되고 성공하는데 배가 아파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시기라고 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의 부족한 데서 오는 것입니다. 시기하는 감정은 아주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시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우리가 이 사랑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할 것이면 우리 생활의 특색이 아무래도 사랑으로 나타나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필요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당면한 문제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의 안정은 발등에 떨어진 불과 같이 다급한 문제입니다. 남북통일은 이 민족의 숙원입니다.

 

그러니 이 문제를 어떻게 하든지 해결해야 온 국민이 안정된 상태에서 살수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유능한 지도력을 가진 정치가가 필요합니다. 경제정책 전문가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우리 온 국민 전체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과 생활입니다. 사랑만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잘 극복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류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내 생명처럼 귀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의 인격을 내 자신의 인격처럼 존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을 도와주기를 내 자신을 돌보는 것과 같은 자리에 이르기 전에는 현대의 문명과 인류를 보존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미우라 아야코 여사는 일본의 유명한 여류작가입니다. 이름이 알려지기 전 그는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생활에 도움을 얻고 손님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자는 마음으로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가게가 너무 잘돼 트럭으로 물건을 들여와야 할 정도로 번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분주히 일하는 아내를 안쓰럽게 여겨 “우리 가게가 이렇게 잘되는 것은 좋지만 주위 다른 가게들이 우리 때문에 안되면 어떻게 하느냐“하고 염려했습니다. 미우라 아야코 여사는 지금까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때부터는 아예 가게에 물건을 들여놓지 않았습니다. 손님이 물건을 찾으면 다른 가게로 안내했습니다. 그렇게 되자 시간의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틈틈이 펜을 들어 글을 쓴 것이 빙점이라는 작품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런 방법으로 보상해주셨던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불한당 만나 죽게 된 사람을 보고 내가 만일 저런 자리에 놓였다면? 하는 생각을 하고 도와 준 것입니다. 거룩한 제사장이 지나갔으나 무슨 소용이 있었으며 유식 한 지도자 레위인이 무슨 도움이 되었습니까? 저희는 어려움 당해 죽게 된 사람을 보고 그저 아, 거참 안 됐군 하는 말만 남기고 지나갔습니다. 주님께서 율법사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합니까?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 때 율법사의 대답이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행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주고, 추워서 떨고 있는 사람을 따뜻하게 해 주라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했습니다. 그 행하는 일에 복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명령 따라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 사랑의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하는 자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시고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만 믿는 형제조차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음을 용서해 주옵소서.
이제 전심으로 회개하오니 우리의 이러한 부끄러운 모습들을 용서하시고 치유해 주시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신앙 고백하는 성도들이 진정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게 하시고 한마음 한뜻이 되어 주님처럼 겸손하고 낮아져서 서로 섬기며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우리가 이제는 더욱더 성숙한 신앙인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그리스도의 편지로 세상에 보내어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하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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