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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성경본문 : | 마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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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마태복음01 |
마태복음1 /하나님의 약속
마1:1-7
1999.12.6. 사이버 새벽예배
1.하나님의 약속
2.동서남북(東西南北) 춘하추동(春夏秋冬) 4복음서
3.첫 번째 넘어야 할 ‘족보 고개’.
4.‘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이야기
5.약속과 은혜
1.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을 지켜주십니다. 그분의 약속은 틀림이 없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속고 속이고 서로 믿지 못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믿어도 됩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100%정확하게 지켜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언약)창12:2-3, 17:3-8 그리고 다윗에게 하신 약속(언약)삼하7:11-16을 신실하게 지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약속은 2천년, 혹은 1천년만에 정확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다말, 룻,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와 같은 수치스런 간음죄를 저지른 이방의 여인들까지도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어가게 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오늘 ‘순종’할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 진정 모든 것 다 드려 순종합니다. 오늘 회개할 것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찢으며 회개합니다. 오늘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주님 발 앞에 무릎 꿇어 간절히 기도하겠습니다. 그저 생명책에 이름 석자 올려주신 그것만으로도 감격의 눈물을 글썽입니다. 주님을 사랑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불같은 시험을 하신다 해도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며 견디어 내겠습니다. 다만 긍휼히 여기시어서 감당할 힘도 주십시오!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10)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우리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고 계십니다. 낳고 죽고, 낳고 죽고... 사람들은 그 가운데서 싸우고 미워하고 울고 웃고... 당장 눈앞에서 펼쳐지는 일만 보고 살아갑니다. 간혹 지혜로운 어떤 사람들은 몇 세대 정도를 내다보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인류 전체, 역사 전체를 바라보시며 섭리 중에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위대한 하나님이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똑같은 관심을 가지시고 섭리 중에 인도하신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그 한사람 가운데 저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감격의 눈물이 흐릅니다. 힘들고 어려운 중에 문득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떠오르게 하시고, 그 약속이 기록되어 있는 성경을 열어보게 하시고, 그 첫 말씀을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신 사건으로부터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동서남북 춘하추동 4복음서
이레네우스(Irenaeus)는 동서남북이 있고 춘하추동이 있어 복음서도 네 개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가 성경에 네 권이나 있는 이유는 예수님을 네 가지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겔1:10) 에스겔서의 이 구절은 그룹의 얼굴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룹들은 각기 4면의 얼굴을 가졌는데, 사람, 사자, 소, 독수리이며, 이는 모두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마태는 예수님의 왕권에 촛점을 맞추어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동물의 왕 사자는 예수님의 왕권을 상징합니다. 사자는 왕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
마가복음 -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막1:38) 마가는 종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초점으로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소는 종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누가복음 -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 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눅3:28) 누가는 예수님을 ‘사람의 아들’에 촛점을 맞추어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요한복음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요한은 예수님을 하나님 아버지의 독생자라는 지위에 중점을 두었고 예수님은 독수리를 의미합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0-31)
마태복음은 신약에서 가장 먼저 쓰여진 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에 위치한 이유는 마태복음이 그리스도를 통한 구약 예언의 성취와 새로운 복음 역사의 출발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만큼 구약은 신약을 향해 열려있고 신약은 구약 속에 감추어져 있음을 잘 보여 주는 책은 없습니다.
3.첫 번째 넘어야 할 ‘족보’ 고개
성경을 한번 읽어보자 결심하고 가장 먼저 펼치는 부분이 구약의 창세기와 신약의 마태복음입니다. 그런데 구약은 하나님의 창조의 기사와 아담과 하와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세계라” 해놓고는 그 뒤로 계속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를 낳고 낳고 낳고.... 뭐야? 그래도 참고 계속 읽어 보아도 하염없이 낳고 낳고 낳고 낳고 낳은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무려 한 페이지 분량이 넘도록 낳고 낳고 하다가 사람들은 아! 성경은 재미가 없는 책이구나 하면서 휙 던져버립니다.
①신약성경의 첫 부분을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길 이야기로 시작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성경읽기에 재미를 붙일텐데 왜 재미없는 족보가 실려 있을까요? 족보는 구약 39권의 전체 요약입니다. 신약을 시작하면서 첫 머리에 구약 전체를 간단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족보에 나오는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공부하다보면 어느새 구약을 다 이해하게 됩니다.
②어느 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대문을 통과해야 됩니다. 대문은 안과 밖을 차단하거나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신약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족보라는 대문을 통과해야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진리를 찾기를 원하는 사람은 족보이야기가 흥미로울 것이고, 다른 목적으로 성경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족보 대문에 걸려 더 이상 성경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③전 세계에서 족보를 엄하게 따지는 민족이 있는데 한국과 이스라엘 이라고 합니다. 한국 사람은 만나면 이름이 무엇이냐, 어디가 고향이냐, 몇 살이며 어디 학교를 나왔느냐... 하며 호구조사를 하는데, 이스라엘 민족도 그런다고 합니다. 족보를 맨 앞에 배치함으로 예수님이 어느 지파의 누구의 후손인지를 명확히 밝힐 필요가 있었습니다.
④ 마태는 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서를 기록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으로부터 예수님까지 이르는 하향식 족보를 기록했습니다. 누가는 이방인들을 향해 기록했기 때문에 예수님부터 상향식으로 아담과 하나님께 이르는 족보를 기록했습니다. 마태는 각 세대사이를 ‘낳고(begat)’라는 말로 연결시켰고 누가는 누구누구의 아들이라는 식의 ‘의’ 소유격을 사용하여 각 세대를 연결시켰습니다. 족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아브라함-다윗왕까지(2-6절), 다윗왕-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12-16절), 바빌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예수님까지(12-16절) 세 그룹으로 나뉘고 각 그룹은 열 네 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4.‘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이야기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역사는 몇 군데에서 갈라져 서로 다른 줄기를 이룹니다. 첫 번째 갈라지는 부분은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셋입니다. 셋의 8대손 노아에 이르러 다시 셈(창11:10-27황인종) 함(흑인종창10:6) 야벳(창10:2백인종) 세 갈래로 갈라집니다. 셈의 9대손은 아브라함입니다. 마태는 아담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시작하지 않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아담이 최초의 조상이기는 하지만 죄를 지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최초로 언약(약속)을 맺은 사람이며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처음으로 형성된 아브라함을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으로 본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구약(구약) 은 옛날 약속’ 이라는 뜻인데, 바로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약속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돌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2000년 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창13:16, 롬4:16-17)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약속대로 오셨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가장 먼저 사용하였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까지 13대가 걸렸고 다윗으로부터 역사는 다시 두 가지로 갈라지는데 다윗이 밧세바로부터 낳은 두 아들 솔로몬과 나단의 갈래입니다. 마태복음은 왕통으로 이어지는 솔로몬을 따라 족보를 기록하였고, 누가복음은 평범한 사람 나단으로 이어지는 족보를 기록하였습니다. 마태는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며, 누가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누가복음에서 제일 많이 언급된 인자(人子)로 오신 예수님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태가 예수님에 대해 기록하려고 했던 것은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즉 왕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왕’이사라는 사실은 마태복음 전체의 주제입니다. 다윗의 자손임을 밝힌 것도 예수 그리스도는 왕통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집안의 왕국이 이 세상 끝까지 존속할 것이며, 한 왕은 해와 달이 비치는 한 왕좌에 올라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시72:5, 시89:29, 삼상7:8-16)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만약 조상님들 가운데 이름을 대면 누구나 알만한 분이 있다면 그분의 몇 대손이라고 자신을 소개하지 않겠습니까? 마태가 바로 예수님을 소개하면서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5.복음은 새로운 생명을 낳는 것
마태복음은 “낳고 낳고 낳고....”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이야기로 시작을 합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도 수많은 족보가 나오지만 대부분은 “죽고 죽고 죽고...” 죽었다는 이야기뿐입니다. 구약은 ‘죽음’으로 끝났고 신약은 ‘새 생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라하리라”(요11:25-26) 예수님을 믿으면 새로운 생명, 영원한 생명(永生)을 얻게 됩니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유대교와 이슬람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예수그리스도,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이 없습니다. 유대교는 하나님을 믿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므로 성령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진리도 모르며 생명도 없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수건에 눈이 가리워진 시각장애인들입니다. 육신의 생명과 인간의 지식으로는 성령을 결코 알 수 없으며 그것이 율법종교와 육신적인 생명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하더라도 생명이 없으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닌 것과 같이 성경을 전한다 하더라도 생명이 없으면 그것은 복음이 아닙니다. 찬양하고 예배한다 하더라도 생명이신 성령이 없으면 그것은 예배가 아니며 교회라 이름 붙여 있다 하더라도 생명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며 생명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떠나 자기소견대로 제 갈 길로 가며 행하는 것이 죄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으므로 죄가 들어왔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여전히 오늘날에도 믿는다고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나 말씀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예배당이 없는 것이 아니고 설교가 없는 것도 아니고 순종이 없으며 강단에서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메시지가 드문 것입니다. 설교강단에는 율법과 신변잡기는 넘치나 생명은 드물고 신자들에게는 순종하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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