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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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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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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분 : |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명하시기를 마치시고 이에 저희 여러 동네에서 가르치시며 전도(傳道) 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마11:1) 제자들을 사도로 임명하시고 희어져 추수해야 될 밭, 그러나 큰 위험과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밭으로 파송하신 예수님은 그냥 앉아서 제자들이 돌아와 전도보고(?)를 하기를 기다리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처럼 본인 스스로도 나가 가르치시며 전도하셨습니다.
복음의 선포와 선포된 복음의 내용을 현실화, 구체화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르쳐 순종하기를 요구하는데에만 익숙해져 있지 스스로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복음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시킬 모범을 보일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인데 꼭 다른 사람을 먼저 지적하고 정죄하는데 익숙해져 있단 말입니다.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고 자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살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스스로 그 말씀하신 대로 움직이셨습니다. 오늘 '전도하라!' 말만하고 자신은 전도하지 않는 사람들과 얼마나 비교가 됩니까?
성경말씀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 하려면 말씀 가운데 동사(動詞: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말)에 특히 주목해야 합니다. '(전도 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떠나 가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떠나 가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교회 청년으로 있을 때는 그렇게 겸손하고 착한 사람이 신학생이 되면 졸지에 위대한 지도자가 된 양 오만 방자하기 그지 없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 목사가 되면 이제야 말로 20세기와 21세기를 책임질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된 양 기고 만장하여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아니하고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아니하려 하는 독불 장군들, 남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어떤 여집사는 어설프기 그지 없는 신학교를 3년 다니고 여전도사가 되었는데 그 스스로 위대함과 잘남과 똑똑함이 과히 상상을 불하한지라 아무도 감당할 수 없고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그러나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가정도, 자식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싸돌아 다니니 보다 못한 남편이 이혼을 하고 자식들에게 배안시를 당하고 말았는데도 그런 꼴을 당했음에도 자기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떠벌리며 싸 돌아 다니니 이런 사람이 광신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느 정도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신학생, 전도사. 젊은 목사들, 조금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들,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들.... 수도 없이 많는 하나님의 종들이 스스로 높아져 섬기는 자세를 잃고 '성도의 발씻기'를 도외시하고, 지도 받을 수 없는 지도자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가르치는 자요, 하나님 다음으로 존경을 받아야 할 자로 자부하고 있으니 어찌 하나님의 교회가 온전할까? >
최근에 30년 목회를 하신 노 목사님이 은퇴를 앞두고 그 동안의 목회를 뒤돌아보며 쓴 글 중의 한 부분입니다. 저는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터지는 아픔과 회개의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이 얼마나 예수님과 대조가 되는 모습인가! 말씀하시고 즉시 몸으로 본을 보여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끝내버리는 나의 모습은 근본적으로 살아 있음과 죽어있음의 차이가 아닌가!
복음의 선포와 선포된 복음의 내용을 현실화, 구체화 하는 것은 예수님의 사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가르쳐 순종하기를 요구하는데에만 익숙해져 있지 스스로 순종하지는 않습니다. 복음을 현실 속에서 구체화시킬 모범을 보일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인데 꼭 다른 사람을 먼저 지적하고 정죄하는데 익숙해져 있단 말입니다.
살아있는 것은 움직이고 자랍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살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스스로 그 말씀하신 대로 움직이셨습니다. 오늘 '전도하라!' 말만하고 자신은 전도하지 않는 사람들과 얼마나 비교가 됩니까?
성경말씀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씀이 되게 하려면 말씀 가운데 동사(動詞: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이나 작용을 나타내는 말)에 특히 주목해야 합니다. '(전도 하시려고 거기를 떠나) 가시니라' 예수님께서 떠나 가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들도 예수님의 뒤를 따라 떠나 가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말씀이 내 안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교회 청년으로 있을 때는 그렇게 겸손하고 착한 사람이 신학생이 되면 졸지에 위대한 지도자가 된 양 오만 방자하기 그지 없어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 사람들, 목사가 되면 이제야 말로 20세기와 21세기를 책임질 수 있는 하나님의 종이 된 양 기고 만장하여 누구의 충고도 듣지 아니하고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아니하려 하는 독불 장군들, 남자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어떤 여집사는 어설프기 그지 없는 신학교를 3년 다니고 여전도사가 되었는데 그 스스로 위대함과 잘남과 똑똑함이 과히 상상을 불하한지라 아무도 감당할 수 없고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그러나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가정도, 자식도 돌보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한답시고 싸돌아 다니니 보다 못한 남편이 이혼을 하고 자식들에게 배안시를 당하고 말았는데도 그런 꼴을 당했음에도 자기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떠벌리며 싸 돌아 다니니 이런 사람이 광신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어느 정도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신학생, 전도사. 젊은 목사들, 조금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들, 큰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들.... 수도 없이 많는 하나님의 종들이 스스로 높아져 섬기는 자세를 잃고 '성도의 발씻기'를 도외시하고, 지도 받을 수 없는 지도자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가르치는 자요, 하나님 다음으로 존경을 받아야 할 자로 자부하고 있으니 어찌 하나님의 교회가 온전할까? >
최근에 30년 목회를 하신 노 목사님이 은퇴를 앞두고 그 동안의 목회를 뒤돌아보며 쓴 글 중의 한 부분입니다. 저는 목사님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터지는 아픔과 회개의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이 얼마나 예수님과 대조가 되는 모습인가! 말씀하시고 즉시 몸으로 본을 보여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끝내버리는 나의 모습은 근본적으로 살아 있음과 죽어있음의 차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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