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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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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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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12:43-45)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후에 다시 돌아와 그들의 옛 땅을 되찾게 되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숭배의 귀신들을 단호하게 때려 부수고 쫓아내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새사람이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시니 그 깨끗하게 된 것처럼 보였던 그들 속에는 더 지독한 일곱 귀신들이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 올 때 다른 일곱 구신들을 데리고 함께 온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옛날 우상숭배가 심하여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던 그때보다 더욱 부패하고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위선, 자기 고집, 강퍅함, 교만, 악의는 우상숭배 보다 도덕적으로 더 나쁜 귀신들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은, 어떤 악한 습관과의 결별이나 새로운 모임의 일원이 되는 것 쯤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리하여 술과 담배를 끊기도 하고 그 동안의 방탕했던 생활을 정리하고 새 생활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예배나 구역모임과 성도들의 친교활동에 참여하고 새로운 직분을 받아 점차적으로 한사람의 기독교인다운 모습이 되어갑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모양만 변했을 뿐 그 사람의 옛 성품은 더욱 고약한 방법으로 바뀌어서 생활가운데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눈에 띄는 습관들은 고쳐졌다고 하지만 눈에 안 띄는 마음은 예전보다 배나 더 독해진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이라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정작 기독교인들의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이기적입니다. 그 사랑이 교회 울타리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고, 교회와 교회 사이에도 자기 교단이라면 모를까 너무나 서로 무관심합니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투기하는데 기독교인이 빠지는 법이 없으며, 돈을 사랑하는 발걸음은 번개와 같고 이 사회의 온갖 비리의 주범중에 기독교인이 빠진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목회자의 경우는 어떤가요? 가관입니다. 교회를 사고 팝니다. 성도들의 숫자로 성공과 실패를 가름합니다. 목회자가 간음을 하고, 땅놀이를 하고 더욱 무서운 일은 거룩한 성령을 가지고 '예언'이니 '계시'니 하면서 무당노릇을 한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그 안에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있기는 있으되 이름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껍데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우기는 비웠으되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영으로 채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허상으로만 가득 채워진 머리는 아는 것은 많되 능력은 없습니다. 자신이 대단한 그리스도인 것처럼 믿지만 실상은 예수도 모르고 성령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무지 몽매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포기되어진 그 자리에 예수님이 들어와 자리잡는 것입니다.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나입니까 예수님 이십니까?
진정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면 주인의 생각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인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릅니다. 주인의 명령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주인의 계획된 일을 하여야 합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내 안에 계셔서 나가 되고 나는 주님 안에 있어 불이(不二)임을 믿습니다. 호시탐탐 내 마음을 노리는 나의 자아를 단호하게 치시고 주님의 의도만이 나를 통해 나타나게 하소서. 아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후에 다시 돌아와 그들의 옛 땅을 되찾게 되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숭배의 귀신들을 단호하게 때려 부수고 쫓아내었습니다. 그들은 완전히 새사람이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시니 그 깨끗하게 된 것처럼 보였던 그들 속에는 더 지독한 일곱 귀신들이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 올 때 다른 일곱 구신들을 데리고 함께 온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옛날 우상숭배가 심하여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던 그때보다 더욱 부패하고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위선, 자기 고집, 강퍅함, 교만, 악의는 우상숭배 보다 도덕적으로 더 나쁜 귀신들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것은, 어떤 악한 습관과의 결별이나 새로운 모임의 일원이 되는 것 쯤으로 이해를 합니다. 그리하여 술과 담배를 끊기도 하고 그 동안의 방탕했던 생활을 정리하고 새 생활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예배나 구역모임과 성도들의 친교활동에 참여하고 새로운 직분을 받아 점차적으로 한사람의 기독교인다운 모습이 되어갑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날수록 모양만 변했을 뿐 그 사람의 옛 성품은 더욱 고약한 방법으로 바뀌어서 생활가운데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눈에 띄는 습관들은 고쳐졌다고 하지만 눈에 안 띄는 마음은 예전보다 배나 더 독해진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랑'이라 말은 그럴듯하게 하면서 정작 기독교인들의 사랑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이기적입니다. 그 사랑이 교회 울타리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고, 교회와 교회 사이에도 자기 교단이라면 모를까 너무나 서로 무관심합니다.
거짓말을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투기하는데 기독교인이 빠지는 법이 없으며, 돈을 사랑하는 발걸음은 번개와 같고 이 사회의 온갖 비리의 주범중에 기독교인이 빠진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목회자의 경우는 어떤가요? 가관입니다. 교회를 사고 팝니다. 성도들의 숫자로 성공과 실패를 가름합니다. 목회자가 간음을 하고, 땅놀이를 하고 더욱 무서운 일은 거룩한 성령을 가지고 '예언'이니 '계시'니 하면서 무당노릇을 한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이 그 안에 안 계시기 때문입니다. 있기는 있으되 이름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껍데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우기는 비웠으되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영으로 채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허상으로만 가득 채워진 머리는 아는 것은 많되 능력은 없습니다. 자신이 대단한 그리스도인 것처럼 믿지만 실상은 예수도 모르고 성령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무지 몽매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포기되어진 그 자리에 예수님이 들어와 자리잡는 것입니다.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나입니까 예수님 이십니까?
진정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면 주인의 생각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인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릅니다. 주인의 명령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주인의 계획된 일을 하여야 합니다.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내 안에 계셔서 나가 되고 나는 주님 안에 있어 불이(不二)임을 믿습니다. 호시탐탐 내 마음을 노리는 나의 자아를 단호하게 치시고 주님의 의도만이 나를 통해 나타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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