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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말씀묵상

깊은데로가서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마태복음13;1-9 , 18-23 농부의 사랑

마태복음 마태복음40............... 조회 수 1549 추천 수 0 2001.12.25 16: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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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구분 :  
오늘 본문 말씀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로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농부양반의 씨뿌리는 모습을 보면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쩌자고 이 농부는 씨를 여기저기 길바닥 위에도, 바위 위에도, 가시덤불 위에도 마구 뿌려대는 것일까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 아무데나 씨를 부리는 농부를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렇듯 상식을 벗어난 사실에 주목하여 왜 그럴까? 의문을 가지고 풀어가다 보면 의외의 보물을 건지게 되는 것이 말씀을 풀어내는 묘미입니다.
오늘 말씀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 (예컨데 씨뿌리는 자에, 씨 자체에, 씨가 뿌려지는 밭에, 좋은밭 아님 나쁜 밭에등등)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본문입니다. 그중 오늘은 '하나님은 말씀이라는 씨앗을 뿌리는 농부'에 초점을 맞추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시는 도구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 하셨고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계십니다. 말씀이란 보이지 않는 어떤 진리 명제가 아니라 움직이는 것이요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뿌리신 그 말씀이 떨어지는 곳에는 생명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두움이 빛으로, 혼돈이 질서와 조화로, 다툼이 있는 곳에 평화가,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가, 불신의 곳에 믿음의 싹이 트며,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꽃이 피어 하늘나라의 열매를 맺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말씀의 씨앗을 뿌리되 이곳 저곳 가리지 않고 고루고루 어디에나 남김없이 뿌리십니다. 길과 바위 위에 또 가시덤불 속에 뿌려봤자 그곳에 떨어진 씨앗들은 결국에는 상실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찌하여 하나님은 그런 무모한 낭비를 하고 계신단 말입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한마디로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그와 같은 어이없는 씨뿌리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낭비입니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항상 낭비가 있습니다. 값비싼 나드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야기, 돌아온 탕자 아들을 위하여 소를 잡은 이야기, 창녀 아내를 위하여 많은 돈을 지불한 호세아 선지자 이야기,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사랑을 위하여 비싼 대가를 치루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눈이 멀게 되어 이성적인 계산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계산을 모릅니다. 도무지 따질줄을 모릅니다. 그냥 쏟고 흘리고 퍼줄줄만 알지 담을 줄을 모르는게 사랑입니다. 아닙니다. 압니다. 알아도 확실하게 압니다. 무엇이 귀하고 귀하지 않은지 정확하게 압니다. 무엇이 가치있는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그 가치있는 것을 얻기 위해 아낌없이 낭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행위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수학적, 이성적인 눈으로 사물을 보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모든 행위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직 사랑 때문에 돌 같은 사람에게도 길바닥처럼 반질반질한 사람에게도 가시 엉겅퀴 같은 사람에게도 말씀의 씨앗을 뿌리시는 것입니다.
지옥의 자식들이건 악마의 자식들이건 당신의 손으로 지음을 받은 자식들은 누구든지 나몰라라 외면할 수 없는, 그 크신 보편적인 사랑 말입니다. 그래 어떤 부모가 병신 아들이라고 업신여기거나 차별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이신 하나님에게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지옥에 있는 자식이라고 어찌 말씀을 뿌려 주시지 않겠느냐는 그런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보편적이고 무제한적인 사랑입니다. 원수건 반역자들이건 이교도들이건 지옥의 자식들이건 아무리 구제불능의 자식들이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너무나 잔인합니다! 다 구원 얻기를 바라고 고루고루 씨를 뿌려도 결과는 열매를 얻지 못하는 씨앗이 더 많습니다. 각각의 밭은 같은 크기로 본다면 수확을 거둔 밭은 사분의 일에 불과 합니다. 이는 말씀을 받아 구원의 열매, 성령의 열매를 거둔 인생들 보다 떨어진 말씀을 무효화시킴으로 구원과는 상관없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꼭 세배는 아닐지라도 훨씬 많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밭에서 30,60,100배의 수확을 거두었다 할지라도 사랑이신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여전히 훨씬 더 많은 씨앗들이 허비되고 있다는 현실이 너무 잔인하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맘과는 반대로 남긴 30, 60 ,100배만 바라보고 위로를 받으며 자족하는 경향으로 오늘날의 본문 해석은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의 씨앗을 뿌리시고 그 씨앗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밭에 떨어지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의도대로 열매를 맺는 씨앗은 소수입니다. 말씀이 떨어진다는 문제는 객관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존적인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들을 귀를 가진 자에게만 말씀이 떨어진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죽느냐 사느냐, 구원이냐 멸망이냐, 천국이냐 지옥이냐가 여기서 결정지어지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으로 말씀이 떨어지느냐, 관념적으로(의미로) 떨어지느냐는 우리의 신앙의 방향성을 결정합니다.
똑같은 말씀의 씨앗이 떨어졌는데 어떤 사람 속에서는 그 말씀이 실제적으로 살아서 역사를 합니다. 생명 창조의 역사, 구원의 역사, 은혜의 역사, 믿음의 역사, 사랑의 역사가 꿈틀대며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의 영혼 속에서 어둠이 물러가고, 혼돈이 사라지며 조화와 평화와 기쁨과 용기와 사랑의 싹이 트기 시작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똑같은 말씀을 듣고 있는데 말씀이 가슴에 와 닿지 않습니다. 말씀이 지루하게만 느껴지고 하품만 나오고  
재미가 없습니다.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실존적으로 들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구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구원은 교리나, 교단이나 이 교회, 저 교회, 어디에도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구원은 오직 내 마음속에만 있습니다. 복음을 듣거나 듣지 않고가 내 마음속에 있으니 구원도 내 마음속에 있는 셈입니다. 구원받았다고 믿는데 구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구원을 경험하고있는가에(실존적) 있다는 말입니다. 나의 구원을 보증해주는 보증수표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직 내 속에 있는 말씀의 현실성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귀 있는자는 들으라! 하셨습니다. 귀 있는자는 들으십시오! 듣는 귀입니다. 객관적이고 이론적이고 논리적인 귀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현실적이고 지금 내 머리통에 달려 있는 귀 말입니다. 이 귀에 말씀이 들려질 때 그 귀가 옥토입니다.
어떻게 해야 내 귀가 열리고 내 마음이 옥토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오늘의 과제입니다. 현실은 좋은 밭보다 나쁜 밭이 훨씬 더 많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의 삶을 칼로 무 자르듯 옥토다 박토다 딱! 단정적으로 갈라 놓을 수는 없습니다. 사실은 시간적으로건 공간적으로건 완전한 100%의 옥토란 없기 때문입니다.
들을귀 있는자는 들으라! 는 이 다그침 앞에서 겸손히 머리 숙이고 귀를 기울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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