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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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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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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본문/15:29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 30 큰 무리가 절둑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두매 고쳐 주시니 31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둑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가 보고 기이히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며칠 전 어느 기독교신문에 커다란 전면광고가 하나 실렸는데 '동양에서 가장 큰 성전 완공예배안내'와 그 성전의 여러 곳곳의 사진이 자세히 실려 있었습니다.
그 깨끗하고 잘 꾸며진 최신 시설의 첨단 성전(?)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려면 적어도 밍크코트를 입거나 아니면 고급 자가용을 끌고 다니는 세련된 상류층이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저처럼 밍크코트는커녕 토끼코트도 없고 돌쇠같이 덥수룩하고 꾸밀 줄 모르는 가난한 촌놈은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세련된 교회들이 이 땅에 점점 많아지고 있고, 그런 교회에 출석하는 세련된 교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두 세사람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그 모임이 '무형의 교회'라면 오늘 갈릴리 호숫가의 어느 동산에 앉으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여든 수천명의 무리들 또한 '교회'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회장이고 제자들은 장로들인 일명 '들판교회'입니다.
그 들판교회에 꾸역꾸역 몰려든 사람들은 여자와 아이들을 빼고도 4천명이 넘는 엄청난 숫자들이었는데 모두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절뚝발이, 불구자, 소경, 벙어리, 각종 병자들이 뒤섞여서 결코 그 분위기가 지성적이거나 세련된 모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물론 멋진 성가대도 없었고 파이프 오르간이나 피아노도 없었습니다. 어떤 이상한 냄새도 나고 각종 병자들의 신음소리와 아이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시끄럽고 흥분에 들떠있고 가끔 탄성소리와 고함소리와 찬송소리가 뒤범벅이 된 그런 약간은 촌스러운 교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들판교회의 한 가운데 예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각종 병자들이 예수님께 나음을 입는 기적이 일어날 때마다 그 자리에서는 환호성이 터지고 박수와 함께 예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사람들을 흥분시켰을 것입니다.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순간이 밤낮 사흘씩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택받았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여서 격식에 맞춰 회당에서 드리는 제사는 너무나도 거룩하고 엄숙하고 경건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열기도 없었고 기쁨도 없었고 환호성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보면서도, 기적을 보면서도 계속 냉소적이고 비판적이고 냉랭했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기적 앞에서 흥분하고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밤을 꼬박새며 춤을 추었는데, 천국말씀을 너무나 많이 들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차갑고 복음의 열기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렇습니다. 건물이 멋지고 교인이 많이 모이고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며 최첨단 시설을 갖춘 교회들이 놀라웁게도 냉랭하고 교인들의 눈빛은 죽어 있으며 '전통있는 교회'에 다닌다는 교만한 몸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기이한 일입니다)
교회가 크고 작고를 떠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교회에 예수님이 계시는가 아니 계시는가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각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는 예수님 사진이 든 액자를 걸어놓고 자기 교회에는 예수님이 계신다고 믿고 있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을 가지고 예수님이 계신다고 착각을 합니다. 알고 있는 것과 예수님이 계신 것은 서로 다릅니다. 마치 대통령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과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로 들어가는 행위는 엄청난 차이가 있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의 피묻은 손을 잡고 그분의 뛰는 심장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 예수님과의 만남을 이룬 사람은 밤에 잠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이란 이러한 감격에 동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놀라운 일의 연속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내 생활가운데 연속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있지만, 하나님이 보내 주시는 것도 있습니다. 기적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병든 자가 낫는 것만 기적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대단한 기적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건이 새롭습니다. 세상이 새로워집니다. 인간관계도 새로워집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생깁니다.
오늘도 관념 속에만 예수님이 머물러 있게 하시렵니까?
손을 내밀어 내 생활의 현장에 예수님을 끌어들이십시오! 들판교회로 나아와 자비하시고 긍휼을 베푸시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는 예수님을 불러보십시오! *
며칠 전 어느 기독교신문에 커다란 전면광고가 하나 실렸는데 '동양에서 가장 큰 성전 완공예배안내'와 그 성전의 여러 곳곳의 사진이 자세히 실려 있었습니다.
그 깨끗하고 잘 꾸며진 최신 시설의 첨단 성전(?)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그런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려면 적어도 밍크코트를 입거나 아니면 고급 자가용을 끌고 다니는 세련된 상류층이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저처럼 밍크코트는커녕 토끼코트도 없고 돌쇠같이 덥수룩하고 꾸밀 줄 모르는 가난한 촌놈은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세련된 교회들이 이 땅에 점점 많아지고 있고, 그런 교회에 출석하는 세련된 교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두 세사람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인 그 모임이 '무형의 교회'라면 오늘 갈릴리 호숫가의 어느 동산에 앉으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여든 수천명의 무리들 또한 '교회'일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회장이고 제자들은 장로들인 일명 '들판교회'입니다.
그 들판교회에 꾸역꾸역 몰려든 사람들은 여자와 아이들을 빼고도 4천명이 넘는 엄청난 숫자들이었는데 모두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고, 절뚝발이, 불구자, 소경, 벙어리, 각종 병자들이 뒤섞여서 결코 그 분위기가 지성적이거나 세련된 모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물론 멋진 성가대도 없었고 파이프 오르간이나 피아노도 없었습니다. 어떤 이상한 냄새도 나고 각종 병자들의 신음소리와 아이들은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시끄럽고 흥분에 들떠있고 가끔 탄성소리와 고함소리와 찬송소리가 뒤범벅이 된 그런 약간은 촌스러운 교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들판교회의 한 가운데 예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각종 병자들이 예수님께 나음을 입는 기적이 일어날 때마다 그 자리에서는 환호성이 터지고 박수와 함께 예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사람들을 흥분시켰을 것입니다. 기쁨과 감격이 넘치는 순간이 밤낮 사흘씩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되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택받았다고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여서 격식에 맞춰 회당에서 드리는 제사는 너무나도 거룩하고 엄숙하고 경건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에게는 열기도 없었고 기쁨도 없었고 환호성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보면서도, 기적을 보면서도 계속 냉소적이고 비판적이고 냉랭했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이방인들은 기적 앞에서 흥분하고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밤을 꼬박새며 춤을 추었는데, 천국말씀을 너무나 많이 들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차갑고 복음의 열기가 없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그렇습니다. 건물이 멋지고 교인이 많이 모이고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며 최첨단 시설을 갖춘 교회들이 놀라웁게도 냉랭하고 교인들의 눈빛은 죽어 있으며 '전통있는 교회'에 다닌다는 교만한 몸짓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기이한 일입니다)
교회가 크고 작고를 떠나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교회에 예수님이 계시는가 아니 계시는가의 문제입니다. 이것은 각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떤 교회는 예수님 사진이 든 액자를 걸어놓고 자기 교회에는 예수님이 계신다고 믿고 있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을 가지고 예수님이 계신다고 착각을 합니다. 알고 있는 것과 예수님이 계신 것은 서로 다릅니다. 마치 대통령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과 대통령을 만나러 청와대로 들어가는 행위는 엄청난 차이가 있듯이 말입니다.
예수님의 피묻은 손을 잡고 그분의 뛰는 심장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런 예수님과의 만남을 이룬 사람은 밤에 잠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이란 이러한 감격에 동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놀라운 일의 연속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내 생활가운데 연속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있지만, 하나님이 보내 주시는 것도 있습니다. 기적입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병든 자가 낫는 것만 기적이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대단한 기적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건이 새롭습니다. 세상이 새로워집니다. 인간관계도 새로워집니다. 미래에 대한 소망이 생깁니다.
오늘도 관념 속에만 예수님이 머물러 있게 하시렵니까?
손을 내밀어 내 생활의 현장에 예수님을 끌어들이십시오! 들판교회로 나아와 자비하시고 긍휼을 베푸시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는 예수님을 불러보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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