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
성경본문 : | |
---|---|
구분 : |
본문 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까
젊음과 재산과 권력과 명예를 두루 가진 한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청년은 아주 놀라운 사람입니다. 먼저 젊은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고, 신분 또한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했던 관원으로서 당시의 최고의 지성인이었습니다.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고 그의 삶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무릎을 꿇을 만큼 겸손한 신앙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인정해줄 만한 사람 아닙니까? 이 청년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은 셈입니다. 건강, 돈, 명예, 권력, 젊음, 신앙적 겸손,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삶 등등 그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영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이 영생입니다. 영생이란 '영원히 계속되는 시간'이 아닙니다. 영생이신 하나님의 인격적인 삶에 동참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죽어서 영원히 계속되는 삶이 영생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죽어서 갖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내 안에 있게 되어, 그 영생을 맛보며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어둠의 세력이나 죽음의 세력이나 절망과 실망이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을 가진 사람에게는 암이나 불치명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실패나 불합격이나 그런 것들이 근본적으로 절망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황적인 고민은 줄 수 있어도 절망은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가진 사람은 자유가 있고 평안함이 있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소망이 그 안에 있습니다.
참 영생을 가졌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아직 있다면 다시 한번 그대의 영생을 점검해 보십시오! 참 영생은 어떤 경우에도 근본적인 삶의 불안이 없습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에 대한 관심도 있었고, 영생을 가지고 싶은 간절한 마음도 있었지만 불안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 왔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께 와서 자신의 영생을 확인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영생은 인간의 노력이나 수행이나 선행이나 어떤 대가를 치루고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영생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청년은 커다란 착각을 하였습니다. 무슨 선한 일을 많이 하여야만 영생을 얻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한 일을 자신이 완벽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청년의 수준에 맞추어 말씀하십니다.
"계명들을 지키라" 예수님의 대답에 청년의 눈이 반짝거리고 입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계명들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완벽하게 지키며 살았던 것이 아닌가! 오호라 이제 영생은 틀림없는 것이로구나!
그러나 예수님은 그 청년의 마음 바닥에 깔아놓은 본심을 읽으셨습니다. 아니, 그 청년 자신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부자 청년의 한계인지도 모릅니다. 본질과는 전혀 동떨어진 우문우답을 지금 청년과 예수님은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어짜피 계명을 지키는 것 가지고는 영생을 얻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계명을 아무리 완벽하게 지킨다해도 말입니다. 부자 청년이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누어준다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부자 청년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뭉개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아무 조건 없이 영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리고 그 영생을 누리며 삽시다. 그것이 세상 것을 완벽하게 갖추고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사람보다 훨씬 복되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감사하면서... *
젊음과 재산과 권력과 명예를 두루 가진 한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 청년은 아주 놀라운 사람입니다. 먼저 젊은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고, 신분 또한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했던 관원으로서 당시의 최고의 지성인이었습니다.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고 그의 삶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무릎을 꿇을 만큼 겸손한 신앙까지 가지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인정해줄 만한 사람 아닙니까? 이 청년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 얻은 셈입니다. 건강, 돈, 명예, 권력, 젊음, 신앙적 겸손,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삶 등등 그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온 것입니다. 영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이 영생입니다. 영생이란 '영원히 계속되는 시간'이 아닙니다. 영생이신 하나님의 인격적인 삶에 동참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죽어서 영원히 계속되는 삶이 영생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은 죽어서 갖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내 안에 있게 되어, 그 영생을 맛보며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어둠의 세력이나 죽음의 세력이나 절망과 실망이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생을 가진 사람에게는 암이나 불치명이 무서운 것이 아닙니다. 실패나 불합격이나 그런 것들이 근본적으로 절망케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상황적인 고민은 줄 수 있어도 절망은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가진 사람은 자유가 있고 평안함이 있고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소망이 그 안에 있습니다.
참 영생을 가졌습니까?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아직 있다면 다시 한번 그대의 영생을 점검해 보십시오! 참 영생은 어떤 경우에도 근본적인 삶의 불안이 없습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에 대한 관심도 있었고, 영생을 가지고 싶은 간절한 마음도 있었지만 불안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 왔다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께 와서 자신의 영생을 확인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영생은 인간의 노력이나 수행이나 선행이나 어떤 대가를 치루고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집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영생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청년은 커다란 착각을 하였습니다. 무슨 선한 일을 많이 하여야만 영생을 얻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한 일을 자신이 완벽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청년의 수준에 맞추어 말씀하십니다.
"계명들을 지키라" 예수님의 대답에 청년의 눈이 반짝거리고 입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계명들이라면 어렸을 때부터 완벽하게 지키며 살았던 것이 아닌가! 오호라 이제 영생은 틀림없는 것이로구나!
그러나 예수님은 그 청년의 마음 바닥에 깔아놓은 본심을 읽으셨습니다. 아니, 그 청년 자신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부자 청년의 한계인지도 모릅니다. 본질과는 전혀 동떨어진 우문우답을 지금 청년과 예수님은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어짜피 계명을 지키는 것 가지고는 영생을 얻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계명을 아무리 완벽하게 지킨다해도 말입니다. 부자 청년이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다 나누어준다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부자 청년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뭉개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아무 조건 없이 영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리고 그 영생을 누리며 삽시다. 그것이 세상 것을 완벽하게 갖추고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사람보다 훨씬 복되게 사는 것이라는 것을 감사하면서... *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