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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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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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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본문/마21: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
그들은 두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도대체 네가 누구한테 허락을 받고 이 성전에서 마음대로 상을 뒤엎고 호통을 치는가, 그리고 네가 누구관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병을 고치고, 이상한 교리를 가르치는가? 당신이 가르치는 권세가 정치적인 권세인가, 종교적인 권세인가? 사회적인 권세인가? 병고치는 치유의 권세인가? 아니면 어떤 영적인 권세인가?" 도대체 어느 교단 어느 노회에서 안수를 받았느냐? 누가 너에게 그런 병고치는 권세와 안수의 권세와 축복권을 주셨는가? 도대체 네가 뭔데 거룩한 성전에 와서 그런 일을 하는가? 보아하니 이제 서른 막 넘은 새파란 젊은이인데, 목회의 대 선배를 몰라보고 이렇게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가? " 뭐 그런 질문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을 한 것입니다.
'권위'의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위'를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권위하면 벌써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가 없으면 세상이 무너집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앙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권위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으로서 남을 복종시키는 힘입니다. 권위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요, 권위의 근거도 하나님에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탄과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가장 잘 섬겼던 천사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순간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아담과 하와의 죄가 그래서 큰 죄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짓고 나쁜짓을 하고 음란을 행하고 도적질하고 사기치는 이런 것들은 '현상'입니다. 그 죄들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반항하게 하는 '거역의 영'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그 배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뭔가 반항적이고, 뭔가 분노하고, 뭔가 거역하는 것 같다면, 그것이 아무리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아무리 개혁이니 혁명이니 하는 명분이 붙었다 할지라도, 이미 교묘한 사탄의 영향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항하고 비판하고 부정적이고 파괴하는 영들은 하나님의 영일 수 없습니다.
혹 내 안에 성장 과정에서 생긴 쓴 뿌리로 인해 항상 반항하며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든지 늘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참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근본적으로 그 성격을 바꾸지 않는 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하나님에게 걸림이 되는일을 평생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권위 그 자체를 인정하고 성경의 권위에 자기를 맞추려고 할 때 그 사람은 변화되고 또 은혜를 입게됩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하면 이마에 주름살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탄은 '여호와의 증인'이 보석임을 알고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가짜 여호와의 증인(이단 단체)'을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의 최후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휴거, 재림'말만 나오면 종말론자들의 광끼어린 행동을 떠올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탄은 '휴거, 재림'이 보석인 것을 알고 가짜보석을 만든 것입니다. 구원이 너무 중요하니까 사탄은 '구원파(이단)'를 만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아무도 '나는 구원파다'라고 말을 못하도록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자신있게 고백합니다.
"나 최용우는 여호와의 증인이 틀림없고, 구원파가 틀림없고, 휴거와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성도가 틀림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권위'는 보석입니다. 사탄이 이 소중한 보석을 그냥둘리 없지요! 그래서 '가짜 권위'를 만들어서 아우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가짜 권위'를 퍼트렸습니다. 진짜 권위는 권위자이신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가짜 권위는 사탄에게서 나옵니다.
권위 그 자체이신 예수님에게 '도데체 누가 네게 그런 권세를 주었느냐?' 참으로 어리석게도 물었던 저 멍청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을 보세요!! 자기들이 세운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권위를 판단하는 저 용감한 지도자들 좀 보세요!
권위는 중요합니다. 아무리 권위가 싫어도 세상은 권위주의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적인 일을 위하여 특별하게 어떤 지도자에게 자신의 권위를 베풀어 주십니다. 모세와 다윗같은 사람이요,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행전의 70문도 같은 분들입니다. 오늘날엔 목사나 장로들 그리고 각 구역을 인도하는 구역장이나 순장들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직분이라도 사람이 스스로 만든 가짜권위가 항상 말썽입니다. 진짜 가짜를 어찌 구분할 수 있습니까? 권위 그 자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진짜 권위는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철저하게 가짜권위를 막아야 합니다. 사람으로부터 오는 가짜 권세는 사람들이 투표해서 얻은 권세요, 세상적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내려주는 권세입니다. 예를들면 검찰의 권세요, 청와대의 권세요, 정권의 권세요, 총장의 권세요, 교수의 권세요, 박사의 권세요, 무슨무슨 단체장의 권세요, 돈많은 사장의 권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의 훈장들을 교회에까지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것으로 자기를 보호하고 나타내면서 교회권세와 세상 권세를 적당히 섞어놓으려 합니다.
장로가 세상 권세의 상징처럼 직책으로 변할 때, 목사가 목사라는 직분보다 '당회장'이나 '박사'니 '총회장'같은 직책을 더 선호하고 내세울 때 그것은 교회의 결정적인 위기입니다. 교회가 사람의 영적인 능력과 상태를 무시하고 세상 직급을 가지고 교회의 권위를 세우려하는 것은 아주 무서운 사탄의 영향력입니다. 어떤 좋은교회에 가장 존경받는 장로님은 교회사찰입니다. 그런데 세상적으로 의사나 장군이나 대학교수인 성도들이 그 장로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모습이 바로 그 교회가 '좋은교회'인 것을 증명해줍니다.
예수님은 '권위'에 대하여 항상 '순종과 섬김'의 태도를 취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까지 섬기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셨습니다.
순종을 단순한 맹종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사람이 틀린 줄 알면서도 속아주고 따라가는 사람이 제일 무섭습니다. 몰라서 속는 덕도 아니고 몰라서 순종하는게 아니라 알지만 그것이 영적인 능력이요 질서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하여 미움을 이기고
용서를 통하여 분노를 이기고
순종을 통하여 모든 부정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부정과의 타협이 결코 아닙니다. 순종의 능력인 것이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방법으로 구원을 주셨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얻은 구원을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완성시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시작이면 순종은 끝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들은 두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도대체 네가 누구한테 허락을 받고 이 성전에서 마음대로 상을 뒤엎고 호통을 치는가, 그리고 네가 누구관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병을 고치고, 이상한 교리를 가르치는가? 당신이 가르치는 권세가 정치적인 권세인가, 종교적인 권세인가? 사회적인 권세인가? 병고치는 치유의 권세인가? 아니면 어떤 영적인 권세인가?" 도대체 어느 교단 어느 노회에서 안수를 받았느냐? 누가 너에게 그런 병고치는 권세와 안수의 권세와 축복권을 주셨는가? 도대체 네가 뭔데 거룩한 성전에 와서 그런 일을 하는가? 보아하니 이제 서른 막 넘은 새파란 젊은이인데, 목회의 대 선배를 몰라보고 이렇게 위계질서를 무너뜨리는가? " 뭐 그런 질문입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권위에 도전을 한 것입니다.
'권위'의 문제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위'를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권위하면 벌써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가 없으면 세상이 무너집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신앙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권위라는 것은 절대적인 것으로서 남을 복종시키는 힘입니다. 권위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요, 권위의 근거도 하나님에서부터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탄과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가장 잘 섬겼던 천사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순간 '사탄'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되려고 했던 아담과 하와의 죄가 그래서 큰 죄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짓고 나쁜짓을 하고 음란을 행하고 도적질하고 사기치는 이런 것들은 '현상'입니다. 그 죄들의 내면에는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반항하게 하는 '거역의 영'이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그 배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뭔가 반항적이고, 뭔가 분노하고, 뭔가 거역하는 것 같다면, 그것이 아무리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아무리 개혁이니 혁명이니 하는 명분이 붙었다 할지라도, 이미 교묘한 사탄의 영향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반항하고 비판하고 부정적이고 파괴하는 영들은 하나님의 영일 수 없습니다.
혹 내 안에 성장 과정에서 생긴 쓴 뿌리로 인해 항상 반항하며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든지 늘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참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근본적으로 그 성격을 바꾸지 않는 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하나님에게 걸림이 되는일을 평생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권위 그 자체를 인정하고 성경의 권위에 자기를 맞추려고 할 때 그 사람은 변화되고 또 은혜를 입게됩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하면 이마에 주름살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탄은 '여호와의 증인'이 보석임을 알고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가짜 여호와의 증인(이단 단체)'을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의 최후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틀림없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휴거, 재림'말만 나오면 종말론자들의 광끼어린 행동을 떠올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탄은 '휴거, 재림'이 보석인 것을 알고 가짜보석을 만든 것입니다. 구원이 너무 중요하니까 사탄은 '구원파(이단)'를 만들어서 우리로 하여금 아무도 '나는 구원파다'라고 말을 못하도록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자신있게 고백합니다.
"나 최용우는 여호와의 증인이 틀림없고, 구원파가 틀림없고, 휴거와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성도가 틀림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권위'는 보석입니다. 사탄이 이 소중한 보석을 그냥둘리 없지요! 그래서 '가짜 권위'를 만들어서 아우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가짜 권위'를 퍼트렸습니다. 진짜 권위는 권위자이신 하나님에게서 나오고, 가짜 권위는 사탄에게서 나옵니다.
권위 그 자체이신 예수님에게 '도데체 누가 네게 그런 권세를 주었느냐?' 참으로 어리석게도 물었던 저 멍청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을 보세요!! 자기들이 세운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권위를 판단하는 저 용감한 지도자들 좀 보세요!
권위는 중요합니다. 아무리 권위가 싫어도 세상은 권위주의 세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적인 일을 위하여 특별하게 어떤 지도자에게 자신의 권위를 베풀어 주십니다. 모세와 다윗같은 사람이요,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행전의 70문도 같은 분들입니다. 오늘날엔 목사나 장로들 그리고 각 구역을 인도하는 구역장이나 순장들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직분이라도 사람이 스스로 만든 가짜권위가 항상 말썽입니다. 진짜 가짜를 어찌 구분할 수 있습니까? 권위 그 자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진짜 권위는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닮을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철저하게 가짜권위를 막아야 합니다. 사람으로부터 오는 가짜 권세는 사람들이 투표해서 얻은 권세요, 세상적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 내려주는 권세입니다. 예를들면 검찰의 권세요, 청와대의 권세요, 정권의 권세요, 총장의 권세요, 교수의 권세요, 박사의 권세요, 무슨무슨 단체장의 권세요, 돈많은 사장의 권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의 훈장들을 교회에까지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것으로 자기를 보호하고 나타내면서 교회권세와 세상 권세를 적당히 섞어놓으려 합니다.
장로가 세상 권세의 상징처럼 직책으로 변할 때, 목사가 목사라는 직분보다 '당회장'이나 '박사'니 '총회장'같은 직책을 더 선호하고 내세울 때 그것은 교회의 결정적인 위기입니다. 교회가 사람의 영적인 능력과 상태를 무시하고 세상 직급을 가지고 교회의 권위를 세우려하는 것은 아주 무서운 사탄의 영향력입니다. 어떤 좋은교회에 가장 존경받는 장로님은 교회사찰입니다. 그런데 세상적으로 의사나 장군이나 대학교수인 성도들이 그 장로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모습이 바로 그 교회가 '좋은교회'인 것을 증명해줍니다.
예수님은 '권위'에 대하여 항상 '순종과 섬김'의 태도를 취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기까지 섬기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셨습니다.
순종을 단순한 맹종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사람이 틀린 줄 알면서도 속아주고 따라가는 사람이 제일 무섭습니다. 몰라서 속는 덕도 아니고 몰라서 순종하는게 아니라 알지만 그것이 영적인 능력이요 질서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하여 미움을 이기고
용서를 통하여 분노를 이기고
순종을 통하여 모든 부정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부정과의 타협이 결코 아닙니다. 순종의 능력인 것이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방법으로 구원을 주셨습니다. 믿음을 통하여 우리는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그 얻은 구원을 '순종'하는 삶을 통하여 완성시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시작이면 순종은 끝이라 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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