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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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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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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본문 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피를 흘리는 사람이 있고, 피를 흘리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10)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저주라고 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흘리는 피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축복중의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랍니다. 고난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축복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축복이라는게 돈을 많이 벌었다던가, 원하던 좋은 대학에 합격을 하였다던가, 좋은 신랑을 만나서 결혼을 하였다던가, 아니면 병이 나았다던가, 큰 차를 사고 집을 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일차적인 축복이라면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축복은 의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축복의 클라이맥스, 축복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피를 흘리는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1차적인 축복에서 머무르려 합니다. 많은 물질축복만 원하고, 예수님을 위한 희생의 피를 흘리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받기만 하는 초보 신앙에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성장이 멈추어버립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부질없는 일입니다.
그런 고난을 원치 않는 '적당주의자'들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런 '적당주의자'들은 기독교를 무력화시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성경지식만 늘고, 욕심만 늘고, 머리만 커져서 점점 다루기 힘든 염소같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이름 때문에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피를 흘리게 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예수님이 보낸)서기관들'을 죽이고 십자가에 못박고 채찍질하고 이동네 저동네로 끌고다니며 핍박하였습니다. (34절)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죽인 선지자들의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는 신앙이 있는척 하였던 것(29절)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믿는 사람을 오히려 똑같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힘들고 어렵게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믿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입을 여십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이 무시무시한 독설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그 자비하시고 한량없이 인애하신 예수님의 입에서 이런 이런 무지막지한 욕설이 나왔다니요.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말이 마귀나 사탄! 귀신, 아니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당시에 종교적 지도자들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러한 이렇게 저주의 말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겉으로는 너희들이 예수 잘 믿는척 하면서 온갖 더러운 것과, 위선과, 정욕이 너희 마음속에 가득하구나!
너희들의 찬송이 무엇이며, 너희들의 기도가 무엇이며 너희들의 구제와 선한 척 하는 행동들이 다 쇼쇼쇼구나!"
이 소리는 예수님이 바로 나를 향하여 책망하시는 소리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 쿵! 심장이 떨어져야 정상입니다. 괴롭고 옷을 찟는 회개가 터져 나와야 정상입니다. 울음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라와야 정상입니다. 이 소리는 예수님이 나를 향하여 하시는 소리입니다. 나는 아니겠지...하며 아무런 감동도 없다면 ...이미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증거입니다. 마음속에 과연 나는 보여지는 모습과 내 마음이 한결같습니까? 예수님은 시시때때로 강조하고 또 강조하십니다. "네 속과 겉은 같은가?" 사람들은 피상적인 선한 행동이나 미소짓는 위선적인 행동으로 자기의 과거를 감추고 자기의 죄악을 숨깁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해서 숨겨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 차리고 깨어나십시오! 알량한 축복에 눈이 멀지 마십시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축복 받으십시오. 물질 축복도 많이 받으시고 '고난'도 받으시오.
둘중 택하라면 오히려 '고난'의 축복 선택하시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받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천국시민'의 주민등록증을 받는 것입니다. '고난'을 두려워 한다면 아직도 우리는 신앙의 나이 18세도 못된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한국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적당히 살고, 적당히 예배도 참석하고, 봉사 헌금도 부담스럽지 않게 적당히 적당히 해서는 안됩니다. 적당히 믿는 믿음은 한국을 살리기는커녕 나 하나도 못살리고 마귀의 노리겟감 밖에 안됩니다. 그런 신앙 가지고는 죽도 밥도 안됩니다. 목회도 적당히는 안됩니다. 인천의 어떤 목사님은 교회 개척 2년동안 성도가 단 한사람도 없어서 교회 문을 닫았답니다. 그게 말이나 됩니까? 교회 앞 가게에라도 날마다 드나들며 전도를 했어도 한 명은 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그렇게 전도하다가 고난받는 것이 두려워서 눈먼 고기가 그물에 걸리기만을 기다렸다는 말입니까? 이제는 죽으나 사나 순교의 길 뿐입니다. 이 길 밖에는 한국을 구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걸죽한 입담을 회피하지 맙시다.
피를 흘리는 사람이 있고, 피를 흘리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10)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저주라고 말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흘리는 피는 그리스도인에게는 축복중의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랍니다. 고난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축복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축복이라는게 돈을 많이 벌었다던가, 원하던 좋은 대학에 합격을 하였다던가, 좋은 신랑을 만나서 결혼을 하였다던가, 아니면 병이 나았다던가, 큰 차를 사고 집을 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일차적인 축복이라면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축복은 의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핍박'을 받고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축복의 클라이맥스, 축복의 절정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피를 흘리는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1차적인 축복에서 머무르려 합니다. 많은 물질축복만 원하고, 예수님을 위한 희생의 피를 흘리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받기만 하는 초보 신앙에서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성장이 멈추어버립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부질없는 일입니다.
그런 고난을 원치 않는 '적당주의자'들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그런 '적당주의자'들은 기독교를 무력화시킵니다. 세월이 지날수록 성경지식만 늘고, 욕심만 늘고, 머리만 커져서 점점 다루기 힘든 염소같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 이름 때문에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피를 흘리게 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예수님이 보낸)서기관들'을 죽이고 십자가에 못박고 채찍질하고 이동네 저동네로 끌고다니며 핍박하였습니다. (34절)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죽인 선지자들의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는 신앙이 있는척 하였던 것(29절)입니다. 오늘날도 예수믿는 사람을 오히려 똑같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 힘들고 어렵게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예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배를 채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믿고 있으니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바로 이런 신앙인들을 향하여 예수님이 입을 여십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이 무시무시한 독설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십니까? 그 자비하시고 한량없이 인애하신 예수님의 입에서 이런 이런 무지막지한 욕설이 나왔다니요. 더 중요한 사실은 이 말이 마귀나 사탄! 귀신, 아니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당시에 종교적 지도자들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이러한 이렇게 저주의 말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겉으로는 너희들이 예수 잘 믿는척 하면서 온갖 더러운 것과, 위선과, 정욕이 너희 마음속에 가득하구나!
너희들의 찬송이 무엇이며, 너희들의 기도가 무엇이며 너희들의 구제와 선한 척 하는 행동들이 다 쇼쇼쇼구나!"
이 소리는 예수님이 바로 나를 향하여 책망하시는 소리입니다. 이 소리를 듣고 쿵! 심장이 떨어져야 정상입니다. 괴롭고 옷을 찟는 회개가 터져 나와야 정상입니다. 울음이 목구멍까지 치솟아 올라와야 정상입니다. 이 소리는 예수님이 나를 향하여 하시는 소리입니다. 나는 아니겠지...하며 아무런 감동도 없다면 ...이미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증거입니다. 마음속에 과연 나는 보여지는 모습과 내 마음이 한결같습니까? 예수님은 시시때때로 강조하고 또 강조하십니다. "네 속과 겉은 같은가?" 사람들은 피상적인 선한 행동이나 미소짓는 위선적인 행동으로 자기의 과거를 감추고 자기의 죄악을 숨깁니다. 그리고 또 그렇게 해서 숨겨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 차리고 깨어나십시오! 알량한 축복에 눈이 멀지 마십시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축복 받으십시오. 물질 축복도 많이 받으시고 '고난'도 받으시오.
둘중 택하라면 오히려 '고난'의 축복 선택하시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 이름 때문에 고난을 받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천국시민'의 주민등록증을 받는 것입니다. '고난'을 두려워 한다면 아직도 우리는 신앙의 나이 18세도 못된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한국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적당히 살고, 적당히 예배도 참석하고, 봉사 헌금도 부담스럽지 않게 적당히 적당히 해서는 안됩니다. 적당히 믿는 믿음은 한국을 살리기는커녕 나 하나도 못살리고 마귀의 노리겟감 밖에 안됩니다. 그런 신앙 가지고는 죽도 밥도 안됩니다. 목회도 적당히는 안됩니다. 인천의 어떤 목사님은 교회 개척 2년동안 성도가 단 한사람도 없어서 교회 문을 닫았답니다. 그게 말이나 됩니까? 교회 앞 가게에라도 날마다 드나들며 전도를 했어도 한 명은 했을 것입니다. 도대체 말이나 됩니까? 그렇게 전도하다가 고난받는 것이 두려워서 눈먼 고기가 그물에 걸리기만을 기다렸다는 말입니까? 이제는 죽으나 사나 순교의 길 뿐입니다. 이 길 밖에는 한국을 구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걸죽한 입담을 회피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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