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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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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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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본문 25:34 그때에 임금이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대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마태복음을 묵상하다 보면 계속해서 서로 대립적인 두 그룹이 있습니다.
마3:12 알곡과 쭉정이
마7:24-27 반석과 모래
마13:24-30 밀과 가라지
마13:47-48 좋은고기와 나쁜고기
마24:45-51 지혜로운 종과 악한 종
마25:1-13 슬기로운 처녀, 미련한 처녀
마25:14-29 충성된 종과 게으른 종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양과 염소를 분별하신다(32절)고 하셨습니다. 분별하신다는 말씀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그룹에 속하게 될까? 생각해 봅니다.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하였습니다. 오른쪽이냐 왼쪽이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하나님께 어떤 평가를 받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오른쪽으로 분류된 그룹에게 하신 말씀은 '내가 주릴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였습니다.
아! 참 복되고 아름답고 행복한 평가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모아 놓고 죽은들, 아무리 찬란한 공적을 쌓아 놓고 죽은들 이런 평가 보다 더 좋을까... 수천 수만명을 모은 목회를 한들, 수천 수만평의 성같은 예배당을 지어도 하나님이 이렇게 칭찬해 주시지는 않을것입니다.
'돌아 보았다(visit)'는 말의 헬라어 단어는 '에피스켚토마이'인데 단순히 돌봄의 의미를 떠나 더욱 풍성하고 충만한 의미가 그 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가 들어간 다른 성경구절을 살펴 그 뜻을 더욱 정확히 하면 '눈을 가지고 감시하다. 조사하다, 검사하다, 돕기 위해서 또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 방문하다, 돌보다, 염려해주다, 공급해주다' 의 의미가 있습니다.
"...... 옥에 갖혔을 때에 와서 (돌아)보았느니라 (36절)" 는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네가 올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딤후4:13) 하여 에바브로디도가 감옥의 바울을 찾아 '돌아 본(visit)' 것과 똑같은 단어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visit, 돌아보아) 하시나이까" (히2:6) 하나님이 나의 미천함을 돌보시며, 나를 돕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며, 나를 찾아오신 그 '돌아봄'이 너무나도 경탄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주님을 닮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주님의 '돌아봄'을 닮는 것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데 아주 힘이 들었습니다. 하루종일 왔다갔다, 산에도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들이켜도 진한 커피를 마셔도 도무지 집중이 안되어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이 늦은 시간에 저의 간절한 바램을 외면치 않으시고 드디어 '돌아 보았다'는 단어 하나 열어 주시는군요. 할렐루야! 절대로 말씀은 사람이 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자'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지 않으면 설교는 '사람 소리'를 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을 묵상하다 보면 계속해서 서로 대립적인 두 그룹이 있습니다.
마3:12 알곡과 쭉정이
마7:24-27 반석과 모래
마13:24-30 밀과 가라지
마13:47-48 좋은고기와 나쁜고기
마24:45-51 지혜로운 종과 악한 종
마25:1-13 슬기로운 처녀, 미련한 처녀
마25:14-29 충성된 종과 게으른 종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양과 염소를 분별하신다(32절)고 하셨습니다. 분별하신다는 말씀에 주목합니다! 그리고 나는 어떤 그룹에 속하게 될까? 생각해 봅니다.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하였습니다. 오른쪽이냐 왼쪽이냐가 중요한게 아니고 하나님께 어떤 평가를 받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오른쪽으로 분류된 그룹에게 하신 말씀은 '내가 주릴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였습니다.
아! 참 복되고 아름답고 행복한 평가입니다. 돈을 아무리 많이 모아 놓고 죽은들, 아무리 찬란한 공적을 쌓아 놓고 죽은들 이런 평가 보다 더 좋을까... 수천 수만명을 모은 목회를 한들, 수천 수만평의 성같은 예배당을 지어도 하나님이 이렇게 칭찬해 주시지는 않을것입니다.
'돌아 보았다(visit)'는 말의 헬라어 단어는 '에피스켚토마이'인데 단순히 돌봄의 의미를 떠나 더욱 풍성하고 충만한 의미가 그 안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가 들어간 다른 성경구절을 살펴 그 뜻을 더욱 정확히 하면 '눈을 가지고 감시하다. 조사하다, 검사하다, 돕기 위해서 또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 방문하다, 돌보다, 염려해주다, 공급해주다' 의 의미가 있습니다.
"...... 옥에 갖혔을 때에 와서 (돌아)보았느니라 (36절)" 는 말씀은 사도 바울이 옥중에서 디모데에게 편지하기를 '네가 올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라'(딤후4:13) 하여 에바브로디도가 감옥의 바울을 찾아 '돌아 본(visit)' 것과 똑같은 단어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visit, 돌아보아) 하시나이까" (히2:6) 하나님이 나의 미천함을 돌보시며, 나를 돕고, 나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며, 나를 찾아오신 그 '돌아봄'이 너무나도 경탄스러운 일입니다. 내가 주님을 닮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주님의 '돌아봄'을 닮는 것일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는데 아주 힘이 들었습니다. 하루종일 왔다갔다, 산에도 올라가 시원한 바람을 들이켜도 진한 커피를 마셔도 도무지 집중이 안되어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이 늦은 시간에 저의 간절한 바램을 외면치 않으시고 드디어 '돌아 보았다'는 단어 하나 열어 주시는군요. 할렐루야! 절대로 말씀은 사람이 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교자'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시지 않으면 설교는 '사람 소리'를 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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