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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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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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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본문 26:74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성난 폭도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퍽! 퍽! 쳤습니다. 이 야만적인 구타의 예언을 이사야가 했습니다.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사55:14) 그러니까 예수님께 가해진 행동은 아주 야만적인 행위로서 다른 사람들 보다도 더 참옥하게 사람의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예수님의 얼굴을 상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 충격적인 장면을 멀리 튀었던 베드로가 살금살금 다가와 무리들 틈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훗날 그 장면을 떠올리며 이렇게 씁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2: 19-20)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 때아닌 불이 밝혀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며 날씨가 추웠던 탓에 불을 피웠습니다. 마치 초상집 같은 음산한 분위기였습니다. 어쩌자고 베드로는 지금 이 무리들 사이에서 춥다고 불을 쬐고 있었을까요? 베드로는 '멀찍히 예수를 쫓아 대제사장의 뜰에 가서 예수님이 어찌되는지 구경하려고'(58절)하였다 했습니다. 3년동안이나 섬겼던 스승이 무고하게 잡혀서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참옥한 수치과 모멸을 당하는데 멀찍히 따르며 어찌되나 구경하려 하였다니요. 잠시 전까지 그가 예수님께 무어라 했습니까?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저는 주를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죽기까지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라고 했던 그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렇게 비겁해지다니요!
의로운 소리는 혼자 다하고, 잘 믿는 척도 혼자 다하고, 한국교회는 혼자 다 개혁시킬 것처럼 말하면서도, 실제 삶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비겁한 나의 자화상입니다. 베드로처럼 큰소리는 펑펑 치면서 위기상황에서는 슬쩍 발을 빼버리는 정말 미치도록 비열한 나의 모습을 베드로를 통해서 봅니다. 한국에 교회가 그렇게 많고, 교인들이 그렇게 많아도 사회가 점점 더 더러워져 가는 것은 바로 나의 이런 회색빛 신앙 때문입니다.
가야바의 집에서 일하는 한 여종이 불을 쬐고 태연하게 서 있는 베드로를 발견하고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 하거늘 당황한 베드로가 벌떡 일어나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버럭 화를 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허무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처럼 고문을 당했다든지, 가야바 대제사장이나 빌라도 총독에게 이런 질문을 받고 무너졌다면 그래도 일말의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으련만 세상에 지나가던 하녀의 질문에 '모든 사람들 앞에서'(70절) 자신의 결백(?)을 확실하게 증명하다니요.
그래놓고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지 뒷문으로 슬쩍 도망치고 있는 베드로에게 또 다른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야!"
"너는 틀림없는 예수쟁이야!" 저는 이런 말을 듣고 싶습니다. 이보다 더 자랑스러운 평가가 어디있습니까! 이처럼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저놈은 예수에 미친 놈이여" 생각만 해도 할렐루야!가 절로 나오는 말입니다. 그런 말을 여종이 지금 베드로에게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런 말을 듣고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혹 자신에게도 해가 올까봐 '맹세'까지 하며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 부인하는 베드로의 초라한 몰락을 보세요.
그 베드로의 목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이 말합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틀림없이 예수와 한 패같은데..." 약해질대로 약해지고 겁을 먹을대로 먹은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저주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그것은 베드로의 진심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환경 때문에 그렇게 말해버리고 만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베드로가 아직 거듭나지 못한 인간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만 이런 실수를 범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들은 그보다 훨씬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독똑하고 훈련이 잘 되어 있고 지성적이고 의지적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누구든지 이런 실수와 자기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 과신하지 마십시오. 알고보면 나라는 사람은 그리 대단한 사람이 못됩니다. 예수님께 직접 일대일 양육 프로그램을 3년간이나 받은 베드로도 이렇게 무너졌는데,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부인하여'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저주하며 맹세하여 부인' 하고서 완벽하고 처참하게 무너진 베드로의 귀에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베드로야! 베드로야! 베드로야!' 한밤중에 어디선가 닭울음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닭울음 소리는 마치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는 신음소리처럼 애절하게 들렸습니다.
닭 울음 소리에 베드로는 술에서 깬 사람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 하리라 성령님이 그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순간입니다. 베드로의 가슴 속에서 드디어 징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드디어 깨달아지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닭울음 소리를 듣는 순간 베드로의 영혼이 통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산산히 부서지고 조각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의 대단했던 신앙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얼마나 자신이 바보였는지 눈을 떴습니다.
베드로는 급히 밖으로 빠져 나와서 심히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데굴데굴 구르면서 회개하고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었고, 이런 자신을 그래도 버리지 아니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서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닭울음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그러지고, 찌그러지고, 얼굴을 감싸안고, 성령의 핵폭탄을 맞아 거꾸러지며 심음하듯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오! 예수님, 저는 엉터리입니다. 저는 위선자입니다. 저는 인간적인 신앙으로 위장하고 살았습니다. 저는 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솔찍히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적도 없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면서도 신앙적인 프라이드는 왜이리 강하고 단단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깨지지 않는 쇠로 만든 구슬같습니다. 예수님! 저를 바로 오늘 이순간 다듬어 주시옵소서! 그 닭울음소리가 나의 귀에도 들리게 하시옵소서! 그 닭울음 소리를 듣고 몸서리 치며 회개하게 하시옵소서" * 들꽃편지 2000.3.11 제27호
성난 폭도들이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주먹으로 퍽! 퍽! 쳤습니다. 이 야만적인 구타의 예언을 이사야가 했습니다.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으므로"(사55:14) 그러니까 예수님께 가해진 행동은 아주 야만적인 행위로서 다른 사람들 보다도 더 참옥하게 사람의 눈으로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예수님의 얼굴을 상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 충격적인 장면을 멀리 튀었던 베드로가 살금살금 다가와 무리들 틈에서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훗날 그 장면을 떠올리며 이렇게 씁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벧전2: 19-20)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에 때아닌 불이 밝혀지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웅성거리며 날씨가 추웠던 탓에 불을 피웠습니다. 마치 초상집 같은 음산한 분위기였습니다. 어쩌자고 베드로는 지금 이 무리들 사이에서 춥다고 불을 쬐고 있었을까요? 베드로는 '멀찍히 예수를 쫓아 대제사장의 뜰에 가서 예수님이 어찌되는지 구경하려고'(58절)하였다 했습니다. 3년동안이나 섬겼던 스승이 무고하게 잡혀서 차마 볼 수 없을 만큼 참옥한 수치과 모멸을 당하는데 멀찍히 따르며 어찌되나 구경하려 하였다니요. 잠시 전까지 그가 예수님께 무어라 했습니까?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저는 주를 절대로 버리지 않겠습니다. 죽기까지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라고 했던 그가 결정적인 순간에 이렇게 비겁해지다니요!
의로운 소리는 혼자 다하고, 잘 믿는 척도 혼자 다하고, 한국교회는 혼자 다 개혁시킬 것처럼 말하면서도, 실제 삶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비겁한 나의 자화상입니다. 베드로처럼 큰소리는 펑펑 치면서 위기상황에서는 슬쩍 발을 빼버리는 정말 미치도록 비열한 나의 모습을 베드로를 통해서 봅니다. 한국에 교회가 그렇게 많고, 교인들이 그렇게 많아도 사회가 점점 더 더러워져 가는 것은 바로 나의 이런 회색빛 신앙 때문입니다.
가야바의 집에서 일하는 한 여종이 불을 쬐고 태연하게 서 있는 베드로를 발견하고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 하거늘 당황한 베드로가 벌떡 일어나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버럭 화를 냈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허무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처럼 고문을 당했다든지, 가야바 대제사장이나 빌라도 총독에게 이런 질문을 받고 무너졌다면 그래도 일말의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으련만 세상에 지나가던 하녀의 질문에 '모든 사람들 앞에서'(70절) 자신의 결백(?)을 확실하게 증명하다니요.
그래놓고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지 뒷문으로 슬쩍 도망치고 있는 베드로에게 또 다른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야!"
"너는 틀림없는 예수쟁이야!" 저는 이런 말을 듣고 싶습니다. 이보다 더 자랑스러운 평가가 어디있습니까! 이처럼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저놈은 예수에 미친 놈이여" 생각만 해도 할렐루야!가 절로 나오는 말입니다. 그런 말을 여종이 지금 베드로에게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런 말을 듣고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혹 자신에게도 해가 올까봐 '맹세'까지 하며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 부인하는 베드로의 초라한 몰락을 보세요.
그 베드로의 목소리를 듣고 다른 사람이 말합니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틀림없이 예수와 한 패같은데..." 약해질대로 약해지고 겁을 먹을대로 먹은 베드로는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저주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그것은 베드로의 진심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환경 때문에 그렇게 말해버리고 만 것이지요. 왜냐하면 그것은 베드로가 아직 거듭나지 못한 인간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만 이런 실수를 범할까요? 아닙니다. 우리들은 그보다 훨씬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독똑하고 훈련이 잘 되어 있고 지성적이고 의지적이라 할지라도 인간은 누구든지 이런 실수와 자기 절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 자신에 대해서 과신하지 마십시오. 알고보면 나라는 사람은 그리 대단한 사람이 못됩니다. 예수님께 직접 일대일 양육 프로그램을 3년간이나 받은 베드로도 이렇게 무너졌는데,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구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부인하여'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저주하며 맹세하여 부인' 하고서 완벽하고 처참하게 무너진 베드로의 귀에 예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베드로야! 베드로야! 베드로야!' 한밤중에 어디선가 닭울음소리가 들려온 것입니다. 닭울음 소리는 마치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는 신음소리처럼 애절하게 들렸습니다.
닭 울음 소리에 베드로는 술에서 깬 사람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 하리라 성령님이 그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순간입니다. 베드로의 가슴 속에서 드디어 징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드디어 깨달아지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닭울음 소리를 듣는 순간 베드로의 영혼이 통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산산히 부서지고 조각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기의 대단했던 신앙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 얼마나 자신이 바보였는지 눈을 떴습니다.
베드로는 급히 밖으로 빠져 나와서 심히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데굴데굴 구르면서 회개하고 얼굴이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울고 또 울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회한의 눈물이었고, 이런 자신을 그래도 버리지 아니하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서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닭울음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일그러지고, 찌그러지고, 얼굴을 감싸안고, 성령의 핵폭탄을 맞아 거꾸러지며 심음하듯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오! 예수님, 저는 엉터리입니다. 저는 위선자입니다. 저는 인간적인 신앙으로 위장하고 살았습니다. 저는 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솔찍히 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본적도 없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인간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면서도 신앙적인 프라이드는 왜이리 강하고 단단한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깨지지 않는 쇠로 만든 구슬같습니다. 예수님! 저를 바로 오늘 이순간 다듬어 주시옵소서! 그 닭울음소리가 나의 귀에도 들리게 하시옵소서! 그 닭울음 소리를 듣고 몸서리 치며 회개하게 하시옵소서" * 들꽃편지 2000.3.11 제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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