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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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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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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4: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 말씀이 길가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단이 즉시 와서 저희에게 뿌리운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이들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란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 또 어떤이는 거시떨기에 뿌리우는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되 19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되는자요 20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인천 계산동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은 참으로 화려한 불야성이었습니다. 부평 부천 중동을 지나면서 끝도없이 이어지는 아파트단지의 거대한 몸집은 마치 시커먼 괴물에 여기저기 반짝이는 눈이 붙은 것 같은 무서움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 초고층 아파트 사이사이로 미처 점령당하지 않은 논과 밭들이 보이고 게딱지처럼 붙은 초라한 집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저 금싸라기 땅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작업복을 입고 그랜져를 타고 논에 와서 농사를 짓고 또 핸드폰으로 새참을 시켜먹고 해가 아직 넘어가지도 않은 이른 시간에 그랜져를 타고 일찌감치 퇴근(?)하는 이상한 농부들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산업화사회 이전 농경사회에서는 아이가 하나 태어나면 온 가족들의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아이가 태어나서 장가를 가 기전까지 기여할 노동력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힘이 쎈 남자가 여자보다 더 환영받는 이유이기도 했고, 어떤 학자는 그 노동력의 가치를 약 8백만원정도라고 계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 자식은 오히려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짐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한 아이가 장성하여 독립시키기까지 약 5천만원이 들어가야 하는 골치아픈 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낳지 않게 되고 이전처럼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나 모정, 부정을 잃어버린 비정한 부모들에 의한 심각한 가정문제가 늘어만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의 씨뿌리는 농부에 대한 비유가 그렇게 실감나지 않는 불행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씨를 뿌려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씨를 뿌리고 싹이 난다는 이야기는 수학의 기하학이나 형이상학 같은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뜬금없는 이야기 일 것입니다.
한 농부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그 농부는 진짜 농부인지? 씨를 길가에도 뿌리고, 돌밭에도 뿌리고, 가시덤불 속에도 뿌리고, 좋은 땅에도 뿌립니다. 세상에 이런 엉터리 농부가 어디 있습니까? 좋은 곳에 뿌리면 많은 수확이 있고 나쁜 곳에 뿌리면 싹이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원리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저기 아무데나 죽죽 뿌려 대다니요. 어떻게 보면 커다란 낭비이고 비효율적인 농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천국 농사법"이라는 것입니다. 계산하지 않고 손해보는 농사법입니다. 따지지 않고 그냥 허비하는 농사법입니다. 실패한 것 같으나 결과를 보면 언제나 신기하게 풍성하게 거두는 신비의 농사법입니다. 이 농사법을 교회 안에서도 적용을 시키면 언제나 틀림없는 풍성한 수확을 거둘 것입니다. 계산하거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어디든 씨앗을 퍼내어 주는 교회가 하나님의 원리에 따르는 교회입니다. 돌짝밭이든 가시덤불이든 길가이든 힘껏 뿌리는 것입니다. 거두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우리는 뿌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어느날 누군가 뿌린 씨앗 하나가 내 마음속에까지 던져져 어느틈엔가 자라더니 싹이 나고 꿈틀꿈틀 솟아 올라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농사에 감격의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놀라운 말씀의 씨뿌리기를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중단하지 말고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천 계산동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은 참으로 화려한 불야성이었습니다. 부평 부천 중동을 지나면서 끝도없이 이어지는 아파트단지의 거대한 몸집은 마치 시커먼 괴물에 여기저기 반짝이는 눈이 붙은 것 같은 무서움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 초고층 아파트 사이사이로 미처 점령당하지 않은 논과 밭들이 보이고 게딱지처럼 붙은 초라한 집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저 금싸라기 땅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작업복을 입고 그랜져를 타고 논에 와서 농사를 짓고 또 핸드폰으로 새참을 시켜먹고 해가 아직 넘어가지도 않은 이른 시간에 그랜져를 타고 일찌감치 퇴근(?)하는 이상한 농부들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산업화사회 이전 농경사회에서는 아이가 하나 태어나면 온 가족들의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그것은 그 아이가 태어나서 장가를 가 기전까지 기여할 노동력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힘이 쎈 남자가 여자보다 더 환영받는 이유이기도 했고, 어떤 학자는 그 노동력의 가치를 약 8백만원정도라고 계산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산업화 사회가 되면서 자식은 오히려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짐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한 아이가 장성하여 독립시키기까지 약 5천만원이 들어가야 하는 골치아픈 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낳지 않게 되고 이전처럼 자식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나 모정, 부정을 잃어버린 비정한 부모들에 의한 심각한 가정문제가 늘어만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의 씨뿌리는 농부에 대한 비유가 그렇게 실감나지 않는 불행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입니다. 씨를 뿌려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씨를 뿌리고 싹이 난다는 이야기는 수학의 기하학이나 형이상학 같은 이야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뜬금없는 이야기 일 것입니다.
한 농부가 씨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그 농부는 진짜 농부인지? 씨를 길가에도 뿌리고, 돌밭에도 뿌리고, 가시덤불 속에도 뿌리고, 좋은 땅에도 뿌립니다. 세상에 이런 엉터리 농부가 어디 있습니까? 좋은 곳에 뿌리면 많은 수확이 있고 나쁜 곳에 뿌리면 싹이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원리 아닙니까? 그런데 여기저기 아무데나 죽죽 뿌려 대다니요. 어떻게 보면 커다란 낭비이고 비효율적인 농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천국 농사법"이라는 것입니다. 계산하지 않고 손해보는 농사법입니다. 따지지 않고 그냥 허비하는 농사법입니다. 실패한 것 같으나 결과를 보면 언제나 신기하게 풍성하게 거두는 신비의 농사법입니다. 이 농사법을 교회 안에서도 적용을 시키면 언제나 틀림없는 풍성한 수확을 거둘 것입니다. 계산하거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어디든 씨앗을 퍼내어 주는 교회가 하나님의 원리에 따르는 교회입니다. 돌짝밭이든 가시덤불이든 길가이든 힘껏 뿌리는 것입니다. 거두시는 이는 하나님이심을 믿고 우리는 뿌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어느날 누군가 뿌린 씨앗 하나가 내 마음속에까지 던져져 어느틈엔가 자라더니 싹이 나고 꿈틀꿈틀 솟아 올라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농사에 감격의 눈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 놀라운 말씀의 씨뿌리기를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중단하지 말고 계속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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