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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우 말씀묵상

깊은데로가서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마가복음6:30-44 다 배불리 먹었다.

마가복음 마가복음18............... 조회 수 3395 추천 수 0 2002.04.16 23: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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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구분 :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저물어 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가로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니다" 하거늘 제자들을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떼로 혹 백씩, 혹 오십씩 앉은지라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 앞에 놓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가 오천 명이었더라 (마가복음6:35-44)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은 4복음서에 모두 언급되어 있는 사건으로서, 예수님께서 수난 당하시기 1년 전에 벳세다 광야에서 일어났던 사건입니다.(눅9:10) 예수님께서는 영적 필요뿐만 아니라 나의 육적인 필요도 돌보아 주십니다. 아멘

  예수님은 빈들에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계시면서 무리들을 돌보셨습니다. 굶주리고 지친 백성들을 '푸른 잔디 위에 앉게'(39절)하셨고 '모든 사람에게'(41절) 떡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또한 무리들을 '여러 가지로'(34절)가르치셨습니다. 황량한 빈 들판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영육간의 안식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그리하여 거치른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공평이 광야에 거하며...내 백성이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사32:18)머물게 되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害)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安慰)하시나이다. (시편23:1-4)

  예수님은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습니다.'(34절) 목자가 없는 양은 쉽게 초장에서 벗어나며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날카로운 이리떼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언제 찢겨 죽을지 모르는 불쌍하고 가련한 상태입니다.
우선 '목자 없는 양'은 어떤 상태인지 살펴봅시다. 동양문화권에서 양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생각들은 우선 기질적으로 양순하고, 사람의 말을 잘 듣고, 다른 동물들과 다툴 줄 모르는 유순한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며, 잘 길들여져 있으며, 비교적 사람과 친근하며 깨끗한 동물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양들이 파란 풀밭에서 한가로이 뛰노는 그림과 같은 장면을 연상하며 거기에 우리 자신을 비추어 보기도 합니다. 아마도 양을 가까이서 실제로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는 없고, 글이나 동화를 통해서 순한 동물로 묘사되기 때문에 양에 대한 그릇된 이미지를 가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동 지방에서는 양에 대한 생각과 이미지가 우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회교권에서 사용되는 가장 상스런 욕 중의 하나가 무엇인고 하니, "이 양 같은 놈, 이 양 같은 시끼가" 이는 마치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이 개 같은 놈, 이 개 같은 시끼가" 와 동일한 뜻입니다. 그 지방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천박하고 치욕적인 욕설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양'이란 동물은 생각이 모자라고 어리석으며 고집이 세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고 지저분한 짐승의 대명사입니다.

  양이 힘이 없고 연약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우리의 선입견일 따름입니다. 덩치가 큰 양은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앞발을 뻗어 버티고 있으면 좀처럼 끌고 가기 어려운 고집스런 짐승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에서도 양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으로 비유하면서 그들의 특징인 고집과 독선이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의 길로 가게 할 것임을 예고하였습니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53:6)

  더욱 양이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력이 매우 나쁘다는 사실입니다. 양이 분명하게 물체를 분간할 수 있는 시력은 2미터에서 3미터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선천적으로 눈이 나쁜 짐승입니다. 그래서 성경 중에 길을 가장 잘 잃어버리는 동물의 대명사로 양을 거론하는 것도 이러한 약점 때문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양이라는 짐승은 이빨도튼튼하지 못합니다. 표범이나 사자처럼 자기의 적을 물어 뜯을 수 있는 강력한 이빨을 가지고 있지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또한 염소처럼 적수를 받아 넘어뜨릴 날카로운 뿔이 있는것도 아닙니다. 치타처럼 빠른 다리나, 곰같이 날카로운 발톱도 없습니다. 숲속의 카멜레온처럼 자신을 숨기거나 변신할 수 있는 능력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양입니다.

  그래서 내리는 결론은 "양은 절대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다. 누군가의 돌봄 아래서 살아가야 할 존재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니 큰 무리가 와글와글 예수님 앞에 오기는 왔는데 마치 목자 없는 양 같았다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셨습니다.'(34절)  무리를 보는 예수님의 심정이 조금 이해가 됩니까?

  예수님께서 목자없는 양같은 그들과 오늘의 나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신 것은 인생의 빈 들에서 굶주리며 방황하는 나와 그들의 절박한 현실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느끼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같은 자비하심은 빈들의 무리들과 오늘 나를 결코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넉넉히 채워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열 두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처럼 무리들을 깊게 바라보는 시각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무리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성가시게 하는 덧없는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 교회'에 있었다고 하였고(행7:38)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교회가 광야에서 양육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계12;6)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을 에굽의 종살이에서 자유케 하시면서 그들을 데리고 나온 곳은 광야였습니다. 광야는 악과 질병과 궁핍과 가난과 곤란과 갈등과 온갖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는 곳입니다.

  오늘 저는 또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광야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 서 있는 이유를 저는 압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신8:2) 오늘 광야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먹을 것을 주어라"(37절) 빈들에서의 시험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줍니다.

  예수님께 귀신을 제어하는 능력과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곳에 대한 모든 것을 다 보장 받고 전도여행을 떠났다가 한 사람도 굶어죽은 사람 없이 무사히 방금 돌아온(30-31절) 제자들과 저는 '예!" 하고 대답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엄청난 숫자의 무리들과 그야말로 텅 빈 들판을 바라보고는 그만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광야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광야에서는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을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먹을 것을 주어라' 하셨을때는 아무리 광야이지만 초자연적인 예수님의 기적이 분명히 있음을 믿고 '예' 하고 대답했어야 하는데 그들은 인간적인 계산을 하고서 근심어린 눈빛으로 주님께 불신의 고백을 하고 맙니다.
  
  황량한 빈 들에서 우리들이 받는 하나님의 소명은 본질적으로 항상 불가능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들과 빈들에 함께 머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 받은 모든 소명은 사실상 가능한 사역들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바울도 자신의 빈 들에서 스스로는 도무지 불가능한 소명을 받았지만 (행9:15-16)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오! 빈들은 나에게 아무 것도 주지 못하지만, 내가 의지하여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저 광야에 꽃이 피게 하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시고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시네! 할렐루야
  
  제자들은 빈 들에서 무리들을 먹일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다시 찾아보니 비록 한 입거리밖에 안되는 작은 음식이었지만 있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개떡 다섯 개가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장정만 오천명을 먹인다는 것은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계산이었지만 한 어린 아이가 그것을 내어 놓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작은 음식을 들고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남자만 오천명이나 먹고도 부스러기를 거두니 열 두 바구니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모두 '배불리 먹고'도 남을만큼 풍성하고 넉넉하게 주신 것입니다.

  땡볕이 내리 쬐는 광야에서 하루종일 고생하다가 이제 해가 서산으로 넘어갑니다. 도무지 배가 고파 못견디겠습니다. 누구 하나 나를 도와 배부르게 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한 분 예수님 바라보고 이렇게 광야까지 나왔으니, 예수님이 해결해 주시기를  기다릴 수 밖에요.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예! 예수님. 여기 작은 물고기와 한 줌의 떡이 있습니다. 이것을 먼저 내어 놓습니다."   최용우 2001.7.10

그림출처/이요한의 성화겔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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