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
성경본문 : | |
---|---|
구분 : |
7:1 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게 모였다가 2 그의 제자중 몇사람의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어 손을 부지런히 씻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리지 않으면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 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준행치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 6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는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9 또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입니다. 형식을 소홀히 해서도 안되지만 그 내용보다 형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담는 그릇입니다. 그 율법이 아무리 대단해도 율법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 율법이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만 율법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빠진 율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겠지요. 처음에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 성경에 없는 특별한 규칙을 만듭니다. 예를 들어 떡을 먹을 때는 손을 씻고 먹어야 한다든지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린다든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나중에 율법에 대한 세미한 해석을 붙인 미쉬나라고 부르는 일종의 규례집으로 발전을 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것들을 '장로의 전통'이러고 합니다.
장로들의 전통은 원래 의도는 율법을 보호하고 율법을 잘 지키도록 돕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울타리'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 울타리는 거대한 성이 되어서 율법 자체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율법은 전통이라는 벽에 가려 보이지도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오히려 '장로들의 유전'이 율법보다 더 우위의 권위를 지니게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정결규례가 그 대표적인 본보기입니다. 구약 율법에 보면 제사장들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율법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장로들은 '식사 전에는 손을 씻어야 한다'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서 지키도록 강요한 것입니다. 그 전통들은 오히려 율법보다도 더 가지수가 많았고 아주 세미한 부분까지도 전통으로 만들어서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종교 지도자들이 정결의식을 가지고 시비를 걸자 그에 맞서 한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15-16절)
외면이 내면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음식이나 환경이나 어떤 형식이 속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형식적인 신앙의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집 텃밭에서 기르는 박하와 운향과 채소의 십일조까지 철저하게 구분하여 드려습니다. 박하의 십일조라는 것은 귀이게로 귓밥을 판 것 만큼 작은 것도 십분의 일을 덜어내어 구분하였을 만큼 지독하게 철저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말하는 공의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더욱 중요한 것은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내면의 치장 보다는 외적인 형식 갖추기에만 열중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 이외의 전통이나 교리나 관슴에 따른 유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캐톨릭 교회의 타락은 전통의 개입 - 성경 말씀의 경시 - 전통의 중시 - 전통의 고수 - 성경 말씀의 폐기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함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개신교 개혁의 깃발을 든 선조들에 의하여 전통을 파괴하고 '오직 말씀으로'되돌아 온 것이 바로 우리들 개신교입니다.
사람이 만든 전통이나 교리는 처음에 교회 속에 들어올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순종케 하고, 예배를 돕는 다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수용되는 여러 가지 인간적인 방법들은 '장로들의 유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들이 예배의 구심점으로 등장하면 어느 틈엔가 하나님의 말씀 대신 그러한 형식이 자리를 잡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객이 전도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교회에 성경 말씀과는 상관없이 전통으로 자리잡은 것들을 몇가지 살펴보겠습니다. (내일로 이어집니다.)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입니다. 형식을 소홀히 해서도 안되지만 그 내용보다 형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율법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담는 그릇입니다. 그 율법이 아무리 대단해도 율법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 율법이 하나님을 향해 있어야만 율법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이 빠진 율법'을 준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겠지요. 처음에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기 위해서 성경에 없는 특별한 규칙을 만듭니다. 예를 들어 떡을 먹을 때는 손을 씻고 먹어야 한다든지 시장에서 돌아와서는 물을 뿌린다든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나중에 율법에 대한 세미한 해석을 붙인 미쉬나라고 부르는 일종의 규례집으로 발전을 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것들을 '장로의 전통'이러고 합니다.
장로들의 전통은 원래 의도는 율법을 보호하고 율법을 잘 지키도록 돕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 졌습니다. 그래서 '율법의 울타리'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그러나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 울타리는 거대한 성이 되어서 율법 자체를 차단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율법은 전통이라는 벽에 가려 보이지도 않게 되어 버렸습니다. 오히려 '장로들의 유전'이 율법보다 더 우위의 권위를 지니게 되어버렸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정결규례가 그 대표적인 본보기입니다. 구약 율법에 보면 제사장들은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손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식사를 하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한다는 율법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장로들은 '식사 전에는 손을 씻어야 한다'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서 지키도록 강요한 것입니다. 그 전통들은 오히려 율법보다도 더 가지수가 많았고 아주 세미한 부분까지도 전통으로 만들어서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종교 지도자들이 정결의식을 가지고 시비를 걸자 그에 맞서 한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15-16절)
외면이 내면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음식이나 환경이나 어떤 형식이 속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형식적인 신앙의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집 텃밭에서 기르는 박하와 운향과 채소의 십일조까지 철저하게 구분하여 드려습니다. 박하의 십일조라는 것은 귀이게로 귓밥을 판 것 만큼 작은 것도 십분의 일을 덜어내어 구분하였을 만큼 지독하게 철저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율법이 말하는 공의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더욱 중요한 것은 외면했습니다. 그들은 내면의 치장 보다는 외적인 형식 갖추기에만 열중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 이외의 전통이나 교리나 관슴에 따른 유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캐톨릭 교회의 타락은 전통의 개입 - 성경 말씀의 경시 - 전통의 중시 - 전통의 고수 - 성경 말씀의 폐기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함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 개신교 개혁의 깃발을 든 선조들에 의하여 전통을 파괴하고 '오직 말씀으로'되돌아 온 것이 바로 우리들 개신교입니다.
사람이 만든 전통이나 교리는 처음에 교회 속에 들어올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히 여기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고 순종케 하고, 예배를 돕는 다는 이름으로 무분별하게 수용되는 여러 가지 인간적인 방법들은 '장로들의 유전'이나 다름없습니다. 그것들이 예배의 구심점으로 등장하면 어느 틈엔가 하나님의 말씀 대신 그러한 형식이 자리를 잡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객이 전도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이제 우리나라의 교회에 성경 말씀과는 상관없이 전통으로 자리잡은 것들을 몇가지 살펴보겠습니다. (내일로 이어집니다.)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