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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인도하심

출애굽기 김필곤 목사............... 조회 수 3217 추천 수 0 2011.04.13 16:4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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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출13:17-22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시사주간지 뉴스 위크에 [美커플 50만명 `다자간 연애` 열풍]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아내가 결혼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영국에서 매주 시청률 700만을 붙들었다는 “와이프 스와프(아내 교환)” 프로그램을 모방한 것입니다. 미국 ABC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허즈번드 스와프(남편 교환)”에서만 나오는 가상 현실을 모방한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50만명 쯤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부부들이 서로의 양해와 동의하에 각자의 연인을 사귀고 함께 동거하는 '다자간 연애'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 부부는 한 남자 또는 한 여자만 사귀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여러 명의 연인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다자간 연애'(폴리아모리)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변해야 산다”는 세상에서 이제는 “모든 것을 바꾸어야 즐겁다”고 표어가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합니다. 물론 바꾸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바꾸지 말아할 것까지 바꾸면 안 됩니다. 어떤 젊은 엄마가 아이를 낳아 유치원에 보냈답니다. 그런데 유치원이 맘이 들지 않아 세 번이나 바꾸었답니다. 모든 것은 아이를 위해서입니다. 네 번째 엄마가 유치원을 옮기 기 위해서 아이에게 옮기라고 말했답니다. 그러자 아이가 "엄마, 또 다른 유치원으로 가는 거야?" "응" "그럼 선생님도 또 바뀌어?" "응" 그러자 꼬마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럼 엄마는 언제 바뀌어?" 엄마가 대답했답니다. "...... 그건 아빠한테 물어봐." 이러한 실용적이고 상대적인 생각은 절대적인 신앙생활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교회도 맘에 들지 않으면 밥 먹듯이 바꿉니다. 하나님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꿉니다. 불교에서 믿는 하나님이나 이슬람교에서 믿는 하나님이나 기독교에서 믿는 하나님이나 똑같다는 것입니다. 종교 다원주의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도 내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아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11:36)” 세상 만물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섭리하신다는 것입니다.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사 58:11)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시 37:23)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참새)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과 역사 우리 인생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우리를 바꾸어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우리가 바뀌어야 인생을 행복해지고 즐거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를 우리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1.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인도하십니다(17).
오늘 말씀을 보십시오. 17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셨습니까? 그들이 살고 있었던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가는데 가장 가까운 직선 코스가 있는데 그곳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최단의 길은 4일 내지 5일 걸리는 직선 코스로 블레셋 사람이 거주하는 땅 가자를 통하여 가는 길이었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달 쯤 걸리는 광야의 길로 그들을 인도하였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시 강대국인 블레셋과 전쟁을 하면 그들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마음을 고쳐먹을 것 같아 하나님은 우회 도로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막강한 군대를 만나면 정예군이 없는 이스라엘은 혼비백산되어 도망가기 때문에 미리 아시고 그들이 포기하지 않고 가나안 땅까지 갈 수 있는 가장 적합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홍해에 이르는 광야길로 인도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 방법에 대하여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실 때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방법, 우리가 결국 완주하여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자신 보다 잘 아시고 가장 적절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광야길을 만났다고 낙심하거나 원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나만 이런 질병을 주십니까? 왜 나를 이런 부도의 길을 걷게 하십니까? 왜 나에게 이런 대적을 붙여 주십니까? 왜 이런 집에 시집오게 했습니까? 왜 이런 광야 같은 직장에 다니게 했습니까?” 이렇게 원망하며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저도 97년 교회를 개척할 때 개척하자마자 IMF 경제 위기를 맞이하였습니다. 사명의 길이었지만 광야길 이었습니다. 토지 공사로부터 교회 부지를 당첨받고 제 2의 교회개척을 하려고 할 때 또다시 미국 발 금융위기를 만났습니다. 제 속으로 “하나님 왜 저는 이래야 합니까? 그래도 주님 위해 살려고 했는데 왜 저에게 이런 광야길을 주십니까?”라고 여러 차례 반문을 했습니다. 우리는 광야길을 만나면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평안한 것 같은 빠른 길을 가면 칼과 창으로 무장한 블레셋 군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늦은 것 같지만 광야길이 너에게는 가장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에 보면 광야길로 보낸 이유를 명쾌하게 3가지로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가 낮추시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2). 인간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 주제를 파악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아니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이 잘되면 사람은 끝없이 교만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교만이야 말로 인간의 최악의 문제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 몰입되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쾌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잘 났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하면 그 때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아 내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구나!, 인생이란 내 힘으로 살 수 없구나. 나는 지극히 연약한 존재이구나" 이것이 인간입니다. 광야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인간이 인간답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낮추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3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기 위해(3)"서입니다.
둘째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2절 하반절입니다. 믿음과 순종의 훈련을 위해서입니다(2).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즉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지 아니 지키는 지 알아 보기 위해서입니다. 순종보다 더 완벽한 신앙은 없습니다. 순종은 신앙의 절정입니다. 순종은 신앙의 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훈련을 25년 동안이나 광야의 방랑자로 받았습니다. 야곱은 30여 년을 광야에서,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시나이 광야에서 40년을 다윗은 17여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며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특히 바울은 3년 반 동안이나 아라비아 사막에서 외로운 광야 훈련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 119:67)"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16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낮추시고 훈련하여 마침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16).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2-4)"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의 세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마침내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요셉은 마침내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마침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광야는 끝이 아니고 축복의 시작입니다. 광야는 손해가 아니가 거룩한 투자입니다. 요셉은 노예와 감옥이라는 광야를 통과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오랜 기다림의 광야를 통과했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둘 다 시작할 때의 배경은 비슷하지만 한 사람은 광야를 통과했고 한 사람은 광야를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무엇보다 우리 예수님을 만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광야길을 만나면 파괴적으로 대처하여 도피하고 원망하고 포기하지 말고 창조적으로 대처하여 겸손해지고 훈련받고 그 과정을 통하여 마침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걸어가고 있는 광야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해도 예수님이 걸었던 광야길 같겠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격적으로 갖은 수모와 수치를 당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는 가난한 길이었습니다. 육체적으로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와 물을 다 쏟아야 할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사랑하는 제자들로부터 인신 매매 되고 저주받고 배신당하는 길이었습니다. 마지막 길도 무덤도 없어 남의 무덤을 빌려 가야하는 길이었습니다. 광야길이 있다고 왜 나만 이런 길을 가야 하느냐고 좌절하고 원망하며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광야길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이 있습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이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있을지라도 당신만은 일어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다면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2. 하나님은 언약을 성취하는 정확한 길로 인도하십니다(18,19)
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적합한 길을 선택하여 광야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군사답게 대열을 지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일이 발생합니다. 어떤 특이한 일입니까? 19절을 보십시오. 요셉의 유해를 가지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19절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필연 너희를 권고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개혁 개정판에서는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 오시니리”라고 번역했습니다. 요셉이 “하나님께서 너희를 돌보아 주시려고 찾아오실 테니 그 때 너희는 내 뼈를 여기에서 가지고 나가 다오”라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단단히 다짐을 해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살았습니다. 총리로 권력을 가지고 부요하고 화려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활 중에서도 마지막 붙들고 있는 언약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 땅의 자신의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약속의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에 근거해서 그런 것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말씀하신 약속에 근거해서입니다. 출애굽하기 전 360여년의 일입니다. 요셉이 늙어 죽기 전입니다. 그 때 유언을 남긴 것입니다. 창세기 50장 24,25절을 보십시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요셉이 그 형제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 가겠다 하라 하였더라(창 50:24-25)”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이 분명히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 한 것입니다. 그 날이 오면 해골을 매고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그 언약을 완벽하게 실현해 주신 것입니다. 모세는 그 언약을 성취하는 주인공으로 자신의 조상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오면서 백성들에게 시청각적으로 교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언약했던 것이 360여년이 지난 후에 이루어진 것처럼 비록 지금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광야길, 험한 길, 두려운 길, 불확실한 길을 가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어떤 교훈을 주시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언약을 성취하는 정확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첫째는 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무 더디고 지루하다고 포기하거나 인간적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너무 성급하여 분별없는 행동을 함으로 인생을 그르칠 수 있습니다. 사울왕은 기다리지 못하였습니다.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이 성급하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결국 왕국을 빼앗기고 자신의 가정의 불행을 불행하게 만드는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아무리 긴급한 것보다 정확한 것이 더 중요합니다. 빠른 길일지라도 바른 길이 아니면 그 길은 망하는 길입니다. 긴급하게 보일 때에도 우리는 인도하심을 완전히 확신할 때까지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험난한 광야길이라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비전들을 반드시 성취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2:13-14)”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다시 광야같은 70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70년 후에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시겠다고 했습니다.(렘 29:10-14, 겔 36:37) 그 약속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엘리야 시대 때의 3년 6개월의 가뭄이 있을 것을 말씀해 주었습니다. 그 약속대로 그대로 역사 속에서 성취해 주었습니다.(왕상18:1) 하나님은 언약하시고 언약하신 대로 그대로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언약도 마찬가지입니다. 반드시 역사 속에서 성취될 날이 올 줄 믿습니다.
셋째는 이 땅에 안주하지 말고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이끄는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요셉은 국무총리였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사모하였습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다 영원한 천국에 갈 것입니다. 죽음의 순간 우리의 삶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죽음은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밀알이 썩지 않으면 밀밭은 없습니다. 죽음은 종결이 아니라 인생의 절정입니다. 우리의 마지막 소명은 부르심을 받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명예로웠든 비참했든, 충만했든 부족했든, 그릇이 컸든 작았든 언젠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는 순간이 옵니다. 그 죽음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외 없이, 예고 없이 언젠가 우리에게 다가 옵니다. 하나님은 궁극적으로 이 광야같은 세상에서 영원한 천국으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그 곳은 죽음도 슬픔도 눈물도 한숨도 시기도 질투도 없는 곳입니다. 험한 광야길에서 그 나라를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날에 우리 주님으로부터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동굴은 막혔어도 터널은 아무리 길어도 반드시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끝이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이 땅은 우리가 영원히 거주할 땅이 아닙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 오 주님 같은 친구 없도다 저 천국 없으면 난 어떻게 하나 저 천국 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3.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함께하셔서 앞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광야길이라고 해서 불확실한 미래 앞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도 광야길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인생길이 누구에게나 다 똑같습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입니다. 충분히 식량을 준비한 것도 아닙니다. 낮에는 더위와 싸워야 하고 밤에는 추위와 싸워야 하는 길입니다. 언제 적이 나올지 모르는 길입니다. 한 편에는 기대도 있지만 두려움이 있는 길, 불안한 길입니다. 넉넉한 자본도 훌륭한 무기도 없습니다. 훈련된 정예군도 없습니다. 오늘날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였습니까? 21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먼저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셨다는 것입니다. 미래의 불확실 앞에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앞서 가셔서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 앞에 광야길이 놓여 있습니까?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광야 앞에 두려워 떨고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명 붙들고 담대하게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앞서 인도하시면서 무엇을 하십니까? 신명기 1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신 1:30)” 애굽에서 10가지 재앙을 내린 것처럼 우리를 위해 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떤 광야가 앞에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인도해 주십니다.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라는 책을 쓴 존 파피가 있습니다. 양팔이 없는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매일 수많은 절망에 부딪쳤습니다. 옷 입고 용변을 보는 사소한 일도 그에게는 절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상실의 아픔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는 말씀을 붙들고 자신을 기른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진 사랑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더 아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팔이 없다는 사실이, 자신이 한 인격체를 이루는데 어떤 결격 사유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등생으로 공부하였고 박사학위를 받아 회사를 경영하는 전문 강사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이 광야길을 어떻게 인도해 주십니까?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광야길을 걸어가는 이스라엘 민족과 24시간 함께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인도해 주십니다.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 말씀해 주셨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바울을 보십시오.
노년이 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죽음의 순간이 다가 오고 있었습니다.(빌4:6) 그 때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바울을 버렸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고, 사랑하는 아들처럼 생각했던 디도마저 떠나 버렸습니다.(딛 1:4) 감옥에서 가장 어려운 때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도와주기는커녕 몹시 괴롭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구리 세공을 하는 알렉산더는 바울에게 해를 끼쳤습니다(빌4:14) 바울이 어려움에 처하자 누구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재판을 받는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변호해 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김정문집사님이 책을 보내와서 읽어 보았더니 58세에 부도가 나니까 아무도 돕는 사람이 없었다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 있을 때는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자신들에게 짐이 된다고 생각하면 자식도 부부도 싫어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욥의 부부를 보십시오. 동방에서 최고의 부자였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재산을 다 잃어 버리고 자식들은 다 사고로 죽고 욥은 심각한 질병 악창에 걸렸습니다. 이 때 부인이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욥2:9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남편도 귀찮은 존재입니다. 빨리 죽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40년 동안 입법 행정 사법권을 한 손에 쥐고 휘두른 다윗 역시 어려움을 당하니까 따르던 사람들이 배신합니다. 그 때 그는 "시25: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롭사오니 내게 돌이키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그러나 다 떠나도 우리 주님은 함께 해 주셨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고난을 받을 때(행18:9-10) 함께 하셨고, 바울이 공회에서 잡혀 죽음의 위험에 처했을 때(행23:11)도 함께 하셨으며 파선의 위험을 당했을 때(행27:23) 함께 하였습니다. 다윗이 음식 먹을 기력까지 잃었을 때도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였습니다.(시102:1-7)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에게 광야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베토벤은 보청기를 사용해도 들을 수 없을 정도 귀가 먹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고독을 극복하고 제9번 "영광의 합창"을 작곡했습니다. 윌러 스코트는 어려서부터 절름발이었지만 세계적 작품을 만들었고 디즈니랜드 세문 월트 디즈니는 젊은 시절 교회창고에 절망의 나날을 보내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속에서 미키 마우스를 그려 디즈니랜드를 만들었습니다. 로버트 스티븐슨은 14년간 앓아 누워있으면서도 "보물섬"을 썼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둘째는 하나님의 인도를 의미합니다. 어디에 머물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그들에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장막칠 곳을 알려주시고 떠날 때 떠날 곳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구름 기둥으로 작렬한 사막의 태양으로부터 저들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불기둥으로 밤의 추위와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광야길에 임재해 주시고, 인도해 주시며, 보호해 주었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광야길입니까? 질병으로 인하여, 경제적 위기로 인하여, 잘 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원치 않은 외부적 환경으로 인하여,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광야길이 예측됩니까? 광야 길 앞에 절망하거나 도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피값으로 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해 주었듯이 오늘날로 우리 가운데 임재하셔서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이제 하루 하루를 주를 위해 살리라 주께서 내길 예비하시네 ”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인도하십니다(17).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정확한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디에 있든지 우리 삶의 현장에 함께 계시며 우리 앞서 인도해 주십니다.

열린교회/김필곤 목사/200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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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86 사무엘상 사울의 그린 마일(Green Mile) 삼상28:15-25  이윤식 목사  2011-04-18 2350
5085 사무엘상 하나님의 침묵에 절망하는 사울 삼28:3-14  이윤식 목사  2011-04-18 2633
5084 사무엘상 찢겨진 왕권 삼상15:24-35  이윤식 목사  2011-04-18 2341
5083 사무엘상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삼상15:17-23  이윤식 목사  2011-04-18 5873
5082 사무엘상 후회 하시는 하나님 삼상15:10-16  이윤식 목사  2011-04-18 3157
5081 사무엘상 성전(聖戰)과 불순종 삼상15:1-9  이윤식 목사  2011-04-18 2404
5080 사무엘상 고통을 기억하시는 하나님 삼상1:9-20  이윤식 목사  2011-04-18 1383
5079 사무엘상 하나님께서 하신 일 삼상1:1-8  이윤식 목사  2011-04-18 2580
5078 시편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시43:1-5  한태완 목사  2011-04-18 3329
5077 누가복음 기도로 십자가를 지라 눅22:42-44  강종수 목사  2011-04-17 2349
5076 창세기 아브라함과 축복의 언약 창17:1-27  한태완 목사  2011-04-16 3366
5075 마태복음 십자가와 세 사람의 손 마26:47-48  하원양 목사  2011-04-16 3243
5074 마가복음 예수님의 기도생활 막1:35-39  이동원 목사  2011-04-15 1814
» 출애굽기 하나님의 인도하심 출13:17-22  김필곤 목사  2011-04-13 3217
5072 출애굽기 내가 남길 위대한 유산은? 출13:1-16  김필곤 목사  2011-04-13 2740
5071 출애굽기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출12:29-42  김필곤 목사  2011-04-13 2622
5070 출애굽기 마지막까지 꼭 기억해야 할 일 출12:15-28  김필곤 목사  2011-04-13 2604
5069 출애굽기 보혈의 능력 출12:1-14  김필곤 목사  2011-04-13 3577
5068 출애굽기 약속 붙들며 낙심하지 말아야 할 이유. 출11:1-10  김필곤 목사  2011-04-13 2401
5067 출애굽기 흑암 재앙의 교훈 출10:21-29  김필곤 목사  2011-04-13 2755
5066 전도서 인간의 지혜와 인생의 허무 전8:1-17  한태완 목사  2011-04-10 2757
5065 고린도전 건전한 신비 고전14:15-19  강종수 목사  2011-04-10 2053
5064 사도행전 남에게 주고 흘려보내야 합니다. 행20:35  한태완 목사  2011-04-10 2201
5063 신명기 공부하는 즐거움 신6:4-9  이정수 목사  2011-04-08 2496
5062 신명기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신6:4-9  이정수 목사  2011-04-08 3638
5061 히브리서 버려라! 닦으라! 정돈하라! 히12:1-2  이정수 목사  2011-04-08 2167
5060 디모데전 예의범절의 힘(The Power of Manners) 딤전3:1-13  이정수 목사  2011-04-08 2923
5059 잠언 日常(일상)의 힘(The Power of Everyday Life) 잠4:18-19  이정수 목사  2011-04-08 2003
5058 창세기 억척의 힘(The Power of Tough) 창25:19-49:33  이정수 목사  2011-04-08 2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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